내 속에 있는 반역자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로마서 7:15)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 [죄의 본성]니라. 
(
로마서 7:17)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한 평생 사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아담으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 죄의 본성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우리는 죄를 범한 후에 죄책감이나 회한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떄 우리는 참회를 하거나 자기징벌을 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으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우리가 싫어하는 바로 그것을 하려고  결정하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그 죄책감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벌합니다. 내가 용서받았다고 느낄 때 그때 나는 용서 되어진다고 잘못 판단합니다.  
** 죄의 본성은 에베소서 4:22 (KJV)옛 사람”; 로마서 8:3-4에 있는육신이라고 일컬어진 아담의 본성; 로마서 7:8-20에 규정하고 있는  의 기준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용서를 받기 위한 인간의 시도는 그저 혼란과 끔찍한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과 그리고영적으로 무기력하게 할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낼 수 있는 자격은 없습니다. 죄의 본성과 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죄에 연루되었을 때 강박적인 죄의식을 피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영적으로 죽었으며 죄의 본성으로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 죄의 본성은 그 다음에 모든 인류에게 유전적으로 상속되어져 영적 죽음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영적 죽음이란 이세와 영원한 내세에서 하나님과의 분리,그리고 죄의 본성이 인간의 삶에 대한 통치권 (로마서 6:12) 을 말합니다-. 죄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생식을 통해 유전적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사람 몸 속의 세포 구조 속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6; 7:14, 18). 


우리의 유전자 구성 속에 보이지 않게 잠복해 있는 이 죄의 본성은 끊임없이 사람의 혼이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렇지만 죄의 본성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유혹은 죄가 아닙니다. 죄의 본성은 오직 유혹의 근원일 뿐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개인적으로 범하는 죄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가 이 내적 유혹의 근원인 죄의 본성이 행하는 것에 굴복하기로 선택할 때만 우리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가 범한 모든 죄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의 본성을 소유합니다. (베드로전서 2:22; 참조. 로마서 3:23). 구원은 모든 인간 속에 내재되어 인간을 타락시키는 죄의 본성을 근절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죄의 파급효과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신자 어느 누구도 이생의 삶에서 결코 죄를 범하지 않거나 완벽해질 수는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죄의 문제를 간결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죄를 범하는 것을 부인하는 신자는 자기를 기만하는 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무지한 죄, 혹은 신성모독인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 부르는 죄를 범하는 것임을 요한일서 1:8, 10 말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신자는 일생 동안 끊임없이 죄로 고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의 본성의 유혹으로부터 끊임없는 맹공격에 대해 방어능력이 없는채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죄의 본성의 구조에 대한 도해는 첨부파일을 참조하십시오


 



                                            죄의 본성에 대한 이해


우리 삶 속에 있는 죄를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죄의 본성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혼을 지배하려는지에 대해 알아야만 합니다. 죄의 본성은 약한 영역과 강한 영역, 율법주의적 경향과 반도덕주의적 경향, 그리고 욕망의 유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죄의 본성 안에서 약한 영역은 사람이 직접 죄를 범하게 하는 유혹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강한 영역은 인간의 선 (인간의 관점에서 선하다고 여기는 것)의 근원입니다 


죄의 본성의 약한 영역 3가지 범주로 사람이 죄를 범하도록 유혹합니다. 첫 번째 범주는 정신적 태도의 죄인데  자만심, 부러움, 질투, 냉혹함, 증오, 원한, 앙심깊음, 죄책감, 공포, 근심, 불안감, 자기연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잠언 8:13; 이사야 41:10; 빌립보서 4:6; 요한일서 2:11). 정신적 태도의 죄들은 영적인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해가 됩니다. 그 죄들은연쇄적으로 죄를 범하게 하는 죄의 사태로 번지게 하는 죄의 집단을 신속하게 발진시킵니다. 혀로 범하는 죄들은 개인이 범하는 죄의 두 번째 범주를 이룹니다. 이 죄들은 정신적 태도의 죄들에서 발생하며 중상모략, 심판, 왕따시키기, 험담, 비판, 거짓말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이 범주의 죄에 의해 초래되는 대대적인 파괴에 대해 경고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야고보서 3:5-6)

사람이 범하는 죄의 세 번째 범주는 대번에 알 수 있는 죄 (명백한 죄 ) 입니다. 성경에 드러난 몇몇의 명백한 죄들은 살인, 간음, 술취함, 약물 남용, 절도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라디아서 5:19-21 전반부).

죄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특정한 금기 (타부)들도  역시 명백한 죄라고 주장합니다. 금기 (타부)는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에 의해 독단적으로 도입된 금지 규제입니다. 하지만 금기 (타부)들은 죄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이 특정 금기 (타부)를 용납할 수 없을지라도 성경에서는 그 금기 (타부)들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열중해야만 합니다 


죄의 본성의 강한 영역은 신자가 죄를 범하려고 결정하고 죄의 본성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된 후에만 활동합니다. 이 강한 영역에서 죄의 본성은 인간 기준에서의 선한 행함들 혹은 죽은 행실들을 만들어 냅니다 (히브리서 6:1). 이 선행들은 신자들이나 불신자들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결과는 같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애, 자선, 이타주의를 포함하는 인간의 선은 인류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에게 있어서 그 동기가 성령 충만에 의한 것이 아니면 인간 관점에서의 선한 행함 (인간의 선)에는 영적가치가 없습니다. 성경은 영적이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선행과 오직 일시적인 가치만 있는 선행을 구분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신자] 금이나 은이나 보석 [선행의 동기가 성령 충만에 의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행한 선]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 [인간의 힘으로 행한 선행으로 인간 관점에서의 선]으로 이 터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그리스도의 심판대]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 [하나님의 관점에서 행한 선]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 [인간의 관점에서 행한 선]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상을 잃는 것이지 구원을 잃는 것이 아님]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린도전서 3:12-15).

우리의 제한된 안목으로는 모든 선행들은 동일하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의본성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을 차별하십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행한 선한 행위들-나무, , -은 영적인 가치가 없으며 천국에서 보상이 없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선행들은 상을 받을만하지도 못하며 또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도 못합니다. 이러한 선행들은 하나님께 받아들여 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 [인간의 선]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이사야 64:6 후반부)

선행들은 빈번하게 그들이 의도했던 결과에 미치지 못하며 또 어떤 때에는 악한 일에 기여합니다. 인간의 죄의 본성은 선한 의도들을 변질시킵니다. 인간의 선에 의한 행위들은 우리 문제의 해결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성령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행해진 오직 하나님의 선에 의한 행위들이 영구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며 영적 성장의 탄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죄의 본성에는 두 가지의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덕성이나 선행을 통해 구원이나 영성 또는 하나님의 인정을 얻으려는 소용없는 시도를 하는 율법주의적 경향입니다. 다른 하나는 방종으로 유도하는 자기 만족인
**도덕률 폐기론의 경향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쪽이든 간에 한가지의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본성의 지배하에 있을 때 일반적으로 우리의 상습적인 경향 쪽으로 움직입니다. 적은 빈도이긴 하지만 우리는 반대 경향쪽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일반적인 죄의 본성의 경향이 선정적일지라도 율법주의적 경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독선적 (자기의 의/ self-righteousness)으로 향하는 경향을 가진 자가 갑자기 선정적 경향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 Antinomianism (반도덕주의, 도덕률 폐기론)은 헬라어의 두 낱말에서 온 것입니다.  anti~에 대항하여를 뜻하며 nomos을 뜻합니다. 반도덕주의적 양상은 무법, 외설 그리고 제어되지 않은 비도덕적 행태로 향하는 경향을 나타냅니다. 


욕망의 유형이란 죄의 본성의 또 다른 특성입니다. 욕망은 불법적이거나 아니면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입니다. 이는 죄의 본성의 어느 한 경향이로든 나아가고자 하는 동기입니다. 욕망에는 칭찬욕 (인정이나 칭찬을 얻고자 하는 욕구), 권력욕, 성욕, 사교적 욕구, 금전욕, 물질욕, 지나친 경쟁을  낳게하는 지나친 야망, 복수욕, 범죄욕, 화학적 욕망 (, 마약), 개혁 운동의 욕망 (시위등을 통해 옳다고 믿는 것을 이루기 위한 단호한 운동),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욕망의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오직 하나님께서만 부여하시는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죄의 본성의 욕망이라는 패턴에 의해 지배당할 때 우리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로마서 7:14) 현실에서 단절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의 본성의 약한 영역이 당신의 약한 영역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을 결코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마태복음 7:1-5). 성숙한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가끔은 지나치게 사악해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약한 영역이 당신에게는 강한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신자들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원칙은 그들이 주님께 하듯 그들 각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은밀하게 (개별적으로) 주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처리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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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Thieme 목사님의 Rebound & Keep Moving 의 한글 번역판 일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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