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죄송하게도 9 10일부터 9 22일까지 출장을 갔다 옵니다.

제가 돌아온 글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교회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주안에서

서성필.

 

 

19, 바울의 사랑과 호소(고후12: 11-21)

 

1. 사도의 표 (11-13)

 

바울은 자기가 체험한 천상에 관련된 사실을 드러낸 점을 두고 어리석은 말을 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단순한 자랑처럼 인식될 수 있음에 대한 해명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 사실에 대해 밝힌 것은 순전히 고린도교회를 비롯한 여러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말했다. 바울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하는 사도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가 셋째 하늘에 관한 기록을 하게 된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억지로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 가운데는 바울의 사도 직과 그에 따른 영적인 권위를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 또한 그를 의도적으로 모함하거나 폄하하는 거짓교사들도 없지 않았다. 신앙을 떠난 저들의 잘못된 태도가 바울로 하여금 셋째 하늘에 대한 기록을 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특별한 천상체험에 대한 기록으로 말미암아 성도들로부터 사도로서 진정한 보증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이는 그것이 개인적인 자랑을 늘어놓고자 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회와 여러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셋째 하늘에서의 체험과 더불어 자신의 사도 직에 연관된 언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바울이 가지게 된 사도 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울이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예루살렘 공의회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로부터 진정한 사도로 인정받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 사역 동안 직접 그를 따라다니던 제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의 공 사역 기간 동안 그에 대해 강력히 대적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앞장서 핍박하던 잔인한 인물이었다. 바울은 지상에 세워져 가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멸하기 위해 스데반을 비롯한 여러 성도들의 생명을 박탈하기까지 했다(7:57-60). 이처럼 산헤드린 공회에 속한 그는 철저한 유대 민족주의자로서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반 율법적인 행동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드러내면서 모세의 율법과 예루살렘 성전을 자기와 연관 지어 해석했다. 또한 안식일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과 적용을 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나아가 세리와 같은 반민족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천박한 사마리아인들을 감싸 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극렬 유대주의자들의 눈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저들의 모든 언행들이 도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당시 산헤드린 공회에 속한 유대 민족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신랄하게 비난했으며 회심하기 전의 바울 또한 그들 가운데 크게 한몫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부정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던 바울이 회심을 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신실한 성도로 인정받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감히 말씀 사역에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사도들의 반열에 서게 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가 아니었을 뿐 더러 그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심각하게 박해한 인물을 사도들과 동등한 지위에 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자기가 지극히 큰 사도들 곧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았던 여러 사도들 보다 조금도 부족한 점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했다. 이는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간 사건은 다른 사도들이 전혀 체험해보지 못한 것으로써 그 사건을 통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을 천상으로 불러 올려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셨음에 대한 언급을 했던 것이다.

셋째 하늘에 올라간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사도의 표(the signs of an apostle)를 지니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교회 가운데 사역하면서 온갖 환난과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뎌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한 사도로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다양한 표적과 이적과 능력을 베풀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는 다른 지역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 상당한 신세를 지며 그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은 사실과 비교된다. 어쩌면 바울의 그런 태도로 말미암아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서운하게 생각한 자들이 많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지원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 저들을 무시하거나 덜 미더워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에 관한 언급을 하며 그에 대해 공평치 못하게 행동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바울에게는 저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전혀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2. 성도와 성도의 재물 (14, 15)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상당히 친숙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는 전에 그들을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었으며 이제 세 번째 방문하고자 한다고 했다. 첫 번째 방문은 그의 두 번째 복음전파 여행 중에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 마게도니아 여러 지역을 방문한 후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에 갔을 때였다.

당시 그는 거기서 로마제국의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의 로마 추방령(18:2)으로 인해 고린도에 와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다. 그 때 바울은 저들과 함께 일 년 반을 머물면서 심한 환난을 당하면서도 복음사역을 감당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두 번째 그의 고린도 방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성경이 그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에베소에서 삼년간 머무는 동안 잠시 고린도지역을 방문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항구도시 에베소에서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단의 항구도시 고린도를 선박을 이용해 에게 해를 건넌다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두 번째 보내는 그의 편지 가운데서 이번에 방문할 때도 저들에게 물질적인 폐를 끼치지 않겠노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 전에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그에 대한 자기의 생각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바울이 그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다른 지역의 교회와는 달리 고린도 지역의 교인들 가운데는 바울을 오해하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고린도교회 성도들로부터 재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복음전파를 위해 교회의 재정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자체가 주된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울이 원했던 것은 저들이 소유한 재물이 아니라 저들 자신이었다. 즉 바울의 관심은 사역을 위해 필요한 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백성들 자신이었다. 다시 말해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에게 중요한 대상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지 그들이 가진 재력이나 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바울은 적절한 예를 들고 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해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어린 자녀를 위해 저축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통해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어린아이 같은 수준임을 말하면서 자기를 부모와 같은 마음을 지닌 어른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일반 성도들이 바울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도인 바울이 저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었다.

바울의 관심은 고린도 지역의 성도들 곧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거룩한 교회였다. 비록 돈이 복음사역을 위한 소중한 방편으로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도들의 영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소유한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나아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음을 밝혔다.

이런 언사들을 통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린도교회를 위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나타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 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인들로부터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고 있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바울 자신은 진심으로 저들을 사랑하고 있지만 도리어 저들로부터는 사랑은커녕 오해를 받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것은 거짓 교사들의 모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따라서 바울은 이 모든 말들을 통해 자기가 고린도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바울의 신앙자세에서 참된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교회의 지도자라 하면서 개인의 목적을 이룩하기 위해 감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용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교회의 외양을 통해 특정 종교인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악한 자들의 모함 (16-18)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진정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고린도 지역의 일부 교인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고 있었다. 하나님께 저항하는 악한 자들은 공교한 말로써 바울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가 겉으로 드러나게 자기를 위해 고린도교회에 어떤 짐을 지우지는 않았지만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교인들의 재물을 착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음은 물론 그가 보낸 자들 가운데 그런 악행을 저지른 자가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그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아무도 그런 악행을 저지른 자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 전에 디도를 비롯한 여러 형제들을 고린도 지역에 보낸 적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교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을 탐낼 자들이 아니었다. 바울은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들의 신앙을 잘 알고 있었다. 동일한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간섭을 받고 있는 성도들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동일한 신앙자세를 가지기 마련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 점을 강조해 말했던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당시 악한 지도자들 가운데는 교인들의 재물을 탐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종교적인 사업을 핑계 대며 교인들의 재물을 긁어내려 했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의 어그러진 말을 듣고 많은 돈을 냄으로써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적인 만족감을 누렸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지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4. 교회의 덕을 세움 (19)

 

사도바울의 주된 관심은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 일이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도 기꺼이 견딜 자세가 준비되어 있었다. 바울은 그 일을 위해 신앙이 어린 성도들을 간절히 권면하기도 했으며 자기를 오해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도에 빠진 악한 교사들과 어리석은 교인들은 바울의 진심 어린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들은 잘못된 사고에 빠져있는 자신의 수준에 따라 바울을 판단했을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은 바울의 해명을 듣고서도 그가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 변명하는 것으로 여겼다. 즉 그들은 바울이 성도들의 재물을 탐하여 착취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자 자신을 변명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해 말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밝힌다고 했다. 이는 바울을 비롯한 형제들이 결단코 교인들의 재물을 탐하여 그에 관심을 가지거나 억지로 착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말하고 행동했던 모든 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는 바울의 복음전파 사역은 개인의 종교적인 욕망이나 이기적인 야망을 충족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에게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이 땅에 온전히 세우는 것이 소중했을 따름이다.

 

 

5. 바울의 염려 (20,21)

 

사도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신실한 형제들에 대해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과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심히 염려되었다. 신앙이 어린 어리석은 성도들은 양의 탈을 쓰고 교회 가운데 들어와 진리를 어지럽히는 악한 이리들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그런 자들은 거짓된 정보에 의해 신앙이 흔들려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 지역에 도착할 때, 교회가 올바른 신앙 위에 서있지 못하고 그들이 여전히 자신을 오해하고 있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또한 그들 사이에 다툼과 시기와 분노에 빠져 파당과 중상모략을 일삼으면서 수군거리며 거만한 태도를 가진 자들이 득세하여 교회가 어지러운 분위기에 빠져 있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엄격하고 단호하게 대함으로써 어린 성도들은 부담스런 마음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바울이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실까 하는 점이었다. 이는 바울 자신이 당하는 고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바울은 숱하게 많은 경우 고난을 당함으로써 자신이 낮아졌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지우시는 무거운 짐이었다. 앞에 썼던 고린도전서에서 그는 자신이 처한 처참한 형편에 대한 묘사를 하고 있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4:9)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도들 역시 세상에서는 엄청난 고난을 당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고통의 자리에 두시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이유는 우선 악한 자들에 의해 조롱 당하는 자기의 모습을 보는 어린 성도들의 신앙이 함께 약해지게 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바울은 물론 자신이 당하게 되는 고통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에게는 항상 당하는 고통이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숙한 성도들이라 해서 어떤 핍박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핍박이나 내부에서 발생하는 고통이 바울에게는 동일하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에 따라 그 역경을 능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바울은 그 전에 사악한 세력에 빠진 자들이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淫亂)과 호색(好色)을 회개하지 않은 채 여전히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인간들은 자신이 저지른 더러운 죄를 진정으로 회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합리화하려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어린 교인들 가운데 무서운 누룩이 되어 쉽게 퍼져나가게 된다.

참된 하나님의 성도라면 결코 교회 가운데 그런 더러운 것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악행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로부터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자기가 고린도 지역에 도착할 때 하나님의 교회 안에 그런 악한 것들이 청산되지 않고 잔존해 있을까 봐 염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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