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교회와 복음사역을 위한 신실한 연보(고후9: 1-15)

 

 

1. 의무감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연보 (1-4)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타락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서로 간 보살피며 섬기는 일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바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는 계층적으로 신분상 높고 낮음이나 빈부귀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의 직분자들은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을 돌아보며 섬기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도들이 먼저 본을 보였으며 신앙이 성숙한 성도라면 누구나 저들을 따르게 되어 있다. 그것은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유형적인 것들뿐 아니라 이웃을 위한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면들을 포함하게 된다. 성도들이 그런 온전한 신앙자세를 가지게 되면 저절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그런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될 때 진정한 교회다움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자신 혹은 자신의 가족만 이 땅에서 안전한 삶을 누리며 잘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자기보다 어렵고 힘든 형편에 놓여있는 다른 성도들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함을 말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가운데서, 성도들이 이웃에 대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을 제자들에게 교훈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 12)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 상호간에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으로서 일반적인 윤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구속사에 연관된 진리를 내포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성령을 보내신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7: 11; 11: 13, 참조).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듯이, 그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삶의 자세가 기본적인 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는 물론 그리스도의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성령의 도우심에 따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의 원리를 말해주고 있다.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을 배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삶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자세는 일시적인 만족을 제공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보장성은 없다. 그들이 바라는 바 세상의 욕구에 대한 목적은 분명할지라도 그 결과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기억하며 저들을 위해 자신의 것들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되는 안정된 삶이 보장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에 관한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였다. 따라서 바울은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관련된 저들의 자세와 의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다시금 그에 대해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그 전부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기억하는 삶을 일상적인 신앙생활 가운데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마게도니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아가야 지역 곧 고린도 지역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경제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다른 지역의 어려운 형제들을 위한 연보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 삼아 이야기했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이웃을 기억하는 성실한 삶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교회들과 성도들로 하여금 분발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이 여러 형제들을 고린도 교회에 보낸 것은, 그 동안 그들에 대해 자신이 자랑했던 내용이 허망하게 되지 않도록 성실하게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마게도니아 교회의 형제들이 고린도 지역을 방문하게 될 때, 그들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것을 보면 고린도의 성도들은 물론 그들에 대해 자랑을 아끼지 않았던 바울 자신조차도 신뢰를 잃게 되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바울이 마게도니아 교회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의식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서로 간 격려와 위로를 받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성실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소속한 교회 내부뿐 아니라, 비록 얼굴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보편교회에 속한 흩어진 성도들을 기억하는 마음은 매우 소중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할 내용이다.

 

 

2. 연보에 대한 약속 (5-7)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 간에 서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했던 바울은 이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권면했다. 극심한 궁핍에 처한 성도들을 기억하면서 형편에 따라 미리 조금씩 준비하여 연보 하는 것이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라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시적인 감정이나 임기응변적인 태도로써 연보 하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무조건 많은 액수의 돈을 내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에 따라 연보다운 연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성도들이라면 항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와 주변의 이웃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부를 축적하고 풍요로움을 추구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결과는 기대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웃을 위해 자기가 소유한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데도 더욱 부유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굳이 자기의 소유물들을 움켜잡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해서 여유로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들을 가난한 이웃들과 넉넉히 나눈다 해도 여전히 영육 간의 풍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에 관련된 언급을 하며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언급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여간 주의 깊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많은 액수의 연보를 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서 더욱 풍요롭게 되어 소위 물질적 축복을 더 크게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일 그런 논리를 앞세우게 되면 생활이 궁핍하여 연보를 제대로 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연보를 못하거나 적게 하기 때문에 과연 이 세상에서 물질적 고통을 동반한 채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바울의 말은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즉 그 말의 의미는 단순히 산술적인 수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재물을 복음 사역과 교회 및 이웃을 위해 적절히 나누는 것과 연관된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살아가야 함을 말해준다. 구약성경 잠언서에는 그와 연관된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11: 24-26)

 

잠언서에 기록된 이 말씀은 타락한 세상에서 나그네가 되어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기본적인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자기의 목숨과 개인적인 화려한 인생을 꾸미기 위해 과도한 욕심을 부린다면 의도와는 달리 도리어 예기치 못한 위험을 초래할 따름이다. 잠언은, 이웃이 먹을 음식이 부족해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도 저들과 나누지 않고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 곡식을 비축하기만 한다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재물을 나누는 일은 결코 생색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자들의 천박한 심리적 취향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연보와 이웃을 위한 구제행위를 통해 내심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즉 자기의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연보를 하거나 가난한 이웃을 위해 구제하는 행위는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구제할 때,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6:3).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형편을 살피지 않는 채 무분별한 일시적인 종교적 감정에 의해 연보를 하거나 구제를 결정해서도 안 된다. 정체성이 없는 그런 연보는 오래지 않아 자신의 경솔함으로 인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미성숙한 태도는 성도의 올바른 신앙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숙한 성도들은 마음에 결정한대로 형편에 맞게 신중한 자세로 연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교회와 복음 사역을 위해 연보 하는 성도들은 인색 함으로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강요에 의해서 연보 해서도 안 되며 종교적인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 연보 해서도 안 된다. 외부적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연보와 구제를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연보 하는 성도들은 항상 영원한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웃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연보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의 마음을 보시며 그런 성도들의 연보를 기쁘게 받으신다.

 

 

3. 연보 하는 자에게 넘치는 은혜 (8-11)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도록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들을 위해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것들이 항상 넉넉하도록 하셨다(고후9:8).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선한 일이 넘치도록 하시고자 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다.

성도들이 세상에 살아갈 때 일상생활을 위한 절대 필요조건이 되는 재물과 식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날마다 먹고 살아가야 하는 생존문제에 있어서 조차 어려운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이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이 개인을 위해 물질을 과잉 비축하거나 혼자 배불리 먹고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을 수만 있다면 그런 어려움에 빠지지 않는다.

모든 성도들이 부지런히 일하며 검소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소유를 가난에 처한 자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다 같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교훈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다(고후9: 9)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으로서 시편에 기록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112: 9,10)

 

시편 기자가 노래했던 이 내용은 메시아 예언에 연관된 말씀이다. 죄에 빠진 자기 백성들을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게 될 메시아는, 원래부터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다(112:3). 이는 비단 재물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그의 의가 영원히 드러나며 그의 뿔이 영화롭게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한 자들은 그것을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심히 분노하게 되며 이를 갈며 대응하게 된다. 어처구니없는 그러한 태도는 저들을 패망의 길로 이끌어간다. 결국 악한 자들의 욕망은 아무런 의미 없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바울은 그에 연관된 말씀을 전하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의 삶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심는 자들에게 씨앗과 더불어 그들이 먹을 양식을 주신다(고후9: 10). 그 씨앗을 통해 많은 곡식을 추수해 더욱 풍성하게 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맺게 된다. 즉 저들이, 육신이 섭취하게 되는 양식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눔으로써 하나님께서 저들로 하여금 영적인 열매를 더하게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것에 부요 하여 교회와 가난한 이웃을 위해 너그럽게 연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복음 사역과 더불어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교회를 위한 성도들의 사랑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성숙한 나눔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메마르고 각박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이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항상 교회의 복음전파 사역과 주변의 이웃들을 살펴보며 어려움과 고통에 빠진 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상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바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공적으로 세상에 흩어져 존재하는 보편교회를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개체 교회는 가까운 이웃 가운데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빠진 형제들이 있지 않은지 주의 깊게 살피며 저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서 다른 성도들을 통해 힘을 얻게 되는 연약한 교회와 성도들은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찬송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4. 연보로 인한 감사와 하나님의 영광 (12-15)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한 연보를 통해 이루어지는 봉사의 직무는 가난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물질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앞에서 언급된 평균케 하는 원리(고후8:14)가 구체적으로 적용된다. 그것은 단순한 나눔이라기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이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교회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성도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일을 행하는 것과 동시에 성도들 간의 선한 의무를 상호 감당함으로써 지상의 교회를 세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성실하고 자발적인 연보는,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또한 그것이 가난한 이웃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성숙한 자세로 연보 하는 삶은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돌리는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적 연보를 통한 삶의 나눔은, 직접 도움을 입게 되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인해 도움을 베풀어준 형제들을 진심으로 사모하게 된다. 그들은 저들의 성숙한 신앙을 보며 그들 또한 그러한 신앙을 본받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저들을 위해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런 삶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사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반드시 양식을 공급받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께 더 크게 감사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성도들의 자발적인 연보와 사랑의 나눔을 통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 가운데서도 온전히 세워져 가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이 모든 성도들에게 허용되는 가장 감사한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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