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복음을 위한 신실한 동역자들(고후8: 16-24)

 

1. 바울의 동역자 디도 (16, 17)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교회에 대한 마음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교회를 위한 애절함과 간절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지상의 교회에 속하여 여러 성도들과 더불어 교회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치 종교적 취미생활을 하듯이 가볍게 임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가 원하는 종교적 욕망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즉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그것을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든지,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꾸미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목회자가 자신의 종교적인 성공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런 식으로 교회에 출석하면서 현실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며 종교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영원한 삶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가지지 못할 우려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소유하게 된 영원한 천상의 나라와 참된 교회에 대한 간절함이 개인을 위한 종교적인 욕망에 의해 크게 반감될 수 있는 것이다.

사도교회 시대의 성숙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특히 사도들은 항상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한 마음이 절실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디도에게도 교회를 위한 간절한 마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노라고 말했다. 디도는 사도들의 권면을 받고 더욱 간절한 마음과 더불어 자원하는 심정으로 고린도교회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가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은 고린도 지역에 있는 성도들을 진정으로 돕기 위해서였다.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는 교회에 대하여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는 결코 종교적인 피신처가 아니며 종교적 취미활동을 하는 영역이 되어서도 안 된다. 영원한 천상의 나라에 소망을 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항상 자신을 포함한 교회 공동체에 대한 애틋한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가르치는 목회자들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특별한 소명을 받아 교회의 교사가 된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를 전할 따름이다. 결코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도구화하여 자신의 종교적인 욕망을 추구하시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2. 모든 교회에서 칭찬받는 신실한 동역자 (18, 19)

 

디도는 혼자 고린도교회를 방문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신실한 형제들과 함께 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교회의 칭찬을 받는 인물들이었다. 그것은 일반 윤리적인 관점에서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과 연관된 내용의 칭찬이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사도들이 원하는 바를 교회 가운데 온전히 드러내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과 그에 속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삶의 주된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사명을 망각한 채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오만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교회의 직분자들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직접 계시 받아 교회 가운데 전달한 사도들의 교훈과 요구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사도들이 원하는바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저들의 사역의 목적이었듯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와 동일하다. 우리가 기록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은 디도와 함께 동행 하는 형제가 여러 교회들로부터 선택 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증거 했다. 우리가 여기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바는 그가 한 교회가 아니라 모든 교회들(all the churches)로부터 칭찬을 들었으며 여러 교회들(churches)로부터 택함을 입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상에 흩어진 교회들 상호 간에 진리를 보존하기 위한 공조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은 개 교회주의를 용납하지 않음과 동시에, 교인들의 이기적인 판단이나 행동이 교회 안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모든 성도들은 개별적인 판단에 따른 목적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가 저들에게 맡긴 일들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들은 곧 사도들에게 맡겨진 은혜의 일을 수행하며 사도들과 동행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택함을 받은 사역자들의 임무와 사명은 분명하다. 거기에는 개인의 종교적 욕망을 내세운 임의적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에 있어서 직분자를 세우는 것 역시 이와 직접 연관된다. 모든 직분은 개인이 원해서 맡게 되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교회의 교사인 목사 직분을 가진 형제들은 이에 대해 더욱 분명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 할 때나 교회로부터 이명(移名)을 해 갈 때 이명 증서를 주는 것 역시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여러 교회들이 공동으로 성도들을 보증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악한 자들이 비밀리에 교회 안으로 숨어들어가 어린 교인들을 미혹하거나 교회를 어지럽힐 수 없게 된다. 교회가 그에 관한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3. 거액의 연보와 사도들의 자세 (20,21)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이 세상에서 의식주(衣食住) 생활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가장 중심 자리를 돈이 차지하고 있다. 돈은 실질적인 것들에 대한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써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돈은 항상 올바른 자세로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패망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돈에 집착하다가 그 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예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근원이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다.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그 점을 언급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저6: 10)

 

하나님의 자녀들은 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돈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거나 잘못 사용하게 되면 그것이 자신을 찌르는 흉기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무가치 한 것으로 여겨 가볍게 생각하거나 아무 것도 아닌 듯이 생각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사실은 돈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잘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숙한 성도들은 자신이 소유한 돈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는데 훈련되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돈을 적절하게 잘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돈을 성실하게 관리하는 일은 개인 성도들에게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그에 연관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 일행이 마게도니아 교회로부터 모으게 된 연보는 당시 성도들의 형편에 비추어 볼 때 거액(巨額)이었다.

사도바울은 많은 액수의 연보가 도리어 바람직하지 못한 시험거리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돈으로 인해 교회와 성도들을 훼방하는 위험한 자들이 생겨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느 누구도 그 연보 때문에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는 교회의 재정이 많아지는 것 자체를 하나님의 축복인 양 생각하는 자들이 없잖아 많이 있다. 그러나 현명한 자들은 그것이 도리어 저들을 훼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혜롭게 대처하게 된다.

성경에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패망한 사람들의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그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기보다 돈을 더 사랑하다가 인생을 망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로 사도교회 시대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기억한다. 그들 부부는 돈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에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땅을 판 값 가운데 일부를 몰래 감추었다. 그들은 돈에 의지하여 그것으로 인해 저들의 인생을 살찌우고자 했지만 사도들은 그들을 죽음에 내어주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5: 1-6)

 

돈을 교회 몰래 따로 챙겨 잘 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아나니아에게는 전혀 예기치 못한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 사도 베드로가 하나님과 교회를 속인 그를 죽음에 내어주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그 때 저가 하나님의 성령을 속이고 사탄의 말을 청종한 것으로 선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아나니아가 급작스럽게 죽게 되었으며,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 삽비라도 뒤따라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나니아 부부의 갑작스런 죽음은 하나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속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바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결코 저들이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속이지 않았으며 교회에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들은 아마도 원래의 생각을 바꾸어 자신의 재산 가운데 일부를 취했을 따름이지 달리 하나님을 속이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과 거룩한 교회를 속이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있고 난 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즉시 죽음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은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돈에 연관된 하나님의 엄격한 징계였다. 지상의 모든 교회들은 그 사건이 주는 교훈을 올바르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도행전은 그 사건을 통해 돈에 연관된 성도들의 자세에 관한 기본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과 교회가 아니라 저들이 소유한 돈을 더 사랑했다. 그들은 돈이 자신의 인생을 보장하며 의미 있게 꾸며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의 삶을 빛나게 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패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돈으로 인해, 주님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한다(고후8:21)는 사실을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 앞에서라는 말은 교회 앞이라는 말과 통하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처럼 모든 성도들은 개인의 물질뿐 아니라 교회의 연보에 연관된 문제에 대해서도 여간 신중한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4. 여러 번의 시험을 거친 동역자 (22)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에게든지 무분별한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도리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신앙이 확실하지 않은 교인들에 대해 건전한 관심을 가지고 저들의 신앙자세를 시험해보아야 한다. 그들이 과연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인지 아니면 형식적인 종교인인지 적절하게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 된다. 따라서 교회를 위해서는 항상 세속적 가치의 유입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대개 인간들의 두뇌에 의해 생성 발전해 가게 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들은 세상의 잘못된 사상과 가치관을 가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있지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편이 되며 당사자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참된 유익이 된다. 요한은 외형상 교회에 속한 자들이 행하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성도들이 취해야 할 자세인 양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매우 위험할 따름이다. 요한은 교회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의 모든 것을 다 믿지 말고 과연 그것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시험해 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핑계 대며 자신의 종교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다. 그들은 교회 안으로 몰래 숨어 들어와 어리석은 교인들을 속이며 교회를 어지럽히게 된다. 나아가 공개적으로 거짓된 종교방식을 통해 교회를 어지럽히며 해악을 끼치는 종교 지도자들도 많이 있다. 교회가 그런 자들에 대해 분명한 경계를 하지 않으면 신앙이 어린 교인들이 그에 미혹될지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그와 연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1-2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언어적인 표현이나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저들의 신앙을 가늠하지 말도록 주의하셨다. 그들은 종교적인 열정을 가졌을 뿐 아니라 다양한 이적들을 동반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 자체로서 저들이 올바른 신앙을 가졌다는 보증을 하지 않는다.

위의 말씀에 비추어 보건데, 이에 대해서는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그들의 말과 주장, 나타나는 종교적 현상들 등 모든 것들을 계시된 말씀을 통해 교회적 시험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음전파 사역에 동참하겠다는 자들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검증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수종 드는 모든 사역은 인간들의 이성과 경험적인 판단에 근거하지 말아야 한다. 즉 개인이 그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진정한 보증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디도와 함께 고린도에 보낸 형제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충분히 시험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과연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진정한 열정을 소유했는지 여러 번 시험했다는 것이다. 바울을 비롯한 그와 함께 한 성도들은 그 형제의 여러 가지 면에 대해 여러 차례 시험함으로써 그의 진정성을 확인했다.

그런 온전한 신앙 정신을 소유한 형제는 고린도교회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으므로 성도들을 위해 성실한 자세로 임하게 될 것이다. 바울을 비롯한 형제들이 그를 여러모로 시험했던 것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한 것이었다. 즉 충분한 교회적 검증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형제를 다른 교회에 파송한다는 것은 해당 교회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시대의 목회자들의 사역지 이동이나 선교사 파송에 있어서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이다. 목회자가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해 갈 경우에는 그곳으로 보내는 교회와 그를 받아들이는 교회가 서로 간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선교사를 해외로 보내거나 전도자를 파송 할 경우에도 여러 가지 신앙적인 내용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시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5. 사도의 신실한 동역자인 디도와 여러 교회의 사자들 (23, 24)

 

사도바울은 여기서 다시금 디도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디도는 바울의 신실한 친구(friend)로서 교회를 섬기기 위한 동역자였다. 바울은 앞에서 이미 디도에 관해 여러 차례 말했었는데 여기서는 또다시 강조해 언급했다.

디도는 바울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친구이자 그의 신실한 제자였다. 그에게는 사도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다. 바울은 그를 직접 데리고 여러 지역을 여행하기도 했으며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다른 지역에 보내거나 특정 지역에서 남겨두기도 했다.

바울은 나중 디도에게 편지(디도서)를 써 보내게 되는 데, 그 때 디도는 그레데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1:5). 그는 그레데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 여러 직분자들을 세우는 일을 했다. 지상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회를 올바르게 감독하는 장로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그레데 지역에는 이단자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어지럽히고 있었다(3:9-11). 직분을 통해 교회가 안전하게 서지 않으면 이단들이 더욱 성행할 것이며 신앙이 어린 교인들은 그에 미혹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위태로운 형편 가운데 사도바울은 디도를 그곳에 남겨두어 감독자인 장로들을 세워 이단자들을 경계하며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1:5-9).

이는 바울이 디도를 절대로 신뢰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과 디도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된 이러한 신뢰 관계는 우리에게 소중한 귀감이 된다. 참되고 겸손한 성도들은 교회 앞에서 무례하게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신뢰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성도들에게 주어진 최상의 축복이다.

사도바울은 또한 디도와 함께 고린도교회에 보냈던 모든 형제들에 대한 보증을 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을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라 표현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 형제들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대해도 좋을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로 하여금 여러 성도들 앞에서 저들의 진정한 사랑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고린도교회를 보증하고 있는 바울 자신과 형제들이 자랑했던 그 증거를 저들에게 보여주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는 저들의 상호 신뢰관계가 분명히 드러나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보편교회의 분명한 원리를 보게 된다. 여러 교회들이 형제들을 공적으로 보내서 또 다른 여러 교회들을 위해 사역하게 한다는 것은 보편교회에 속한 교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관계에 대한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날 우리 시대 교회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을 최선의 목적이라 생각지 않는다. 나아가 일반 교인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저들과 형식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주된 목적이 될 수 없다. 교회의 직분자들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은 사도들의 분명한 보증을 받아야 한다.

이는 성경과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보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지상의 교회가 유지해야만 할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교회 가운데 온전한 신뢰관계가 형성될 때 교회를 위한 모든 사역자들은 교회의 사자들로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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