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하나님의 약속과 순결한 교회(고후7:1-8)

 

1. 하나님의 약속과 교회 (1)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교회에 주어진 가장 소중한 약속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고전6:18). 지상의 교회는 바로 그 약속을 소유한 매우 특별한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약속은 타락한 세상의 속성에 연유한 것이 아니라 오직 거룩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약속을 소유한 자로서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결코 하나님의 그 약속을 경솔하게 취급하지 않으며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지상의 모든 참된 성도들은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진정으로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온전한 자세를 가짐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 앞에서 진정으로 낮아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거룩하게 되어 성결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계신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므로 그의 자녀가 된 자들 역시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타락한 아담에게 속한 인간이 얼마나 더럽고 악한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게 된 자들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불결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이와 연관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하므로 성도들의 모든 행실이 거룩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유하게 된 칭의(justification)와 더불어 성도들의 현실적인 삶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한 말씀이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1: 15,16);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11:44,45)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방생활을 하며 더러운 세속에 물들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출애굽 했으니 저들의 몸을 구별하시어 더럽히지 말도록 명령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것은 스스로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함이었다. 홍해바다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공급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져서는 안 되는 성별 된 자들이었던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을 인용하며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거룩해지도록 요구하고 있다. 베드로전서에서 언급된 위 본문의 내용은 칭의(justification)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자녀들을 의롭게 보시는 것은 상태적인 의미를 말해준다. 그러나 성도들의 모든 행실이 거룩해져야 하는 것(벧전1:16)은 의롭게 된 자들로부터 거룩한 삶이 드러나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역시 의롭게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그런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도록 요구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을 뿐 아니라 거룩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형성된 육신과 영적인 부분의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물론 인간들의 종교적인 노력에 의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함으로써 거룩해질 수 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성령께서 저들 가운데 역사함으로써 거룩함을 이루어가게 된다. 따라서 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성도라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이 세상의 원리를 좇아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구별된 백성들은 항상 경건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지상의 교회는 그런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는 구별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 사도들을 영접해야 할 교회의 본질 (2-4)

 

바울을 비롯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세상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자 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타락한 세상의 일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나아가 종교적인 욕망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만족스런 삶을 살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과 그의 나라가 중심에 놓여 있었을 따름이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자신을 비롯해 자기와 함께하는 자들을 영접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 말은 단순히 환영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영접해 달라는 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도였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와 더불어 그 말을 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그 전에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계시에 관한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 있던 교회와 성도들이 바울을 비롯해 그와 함께 한 형제들의 말을 인간들의 언어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저들에게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사도들을 통해 계시된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의 진리로써 주님의 몸 된 교회 가운데 역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 13)

 

우리는 사도바울의 이 말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경은 단순한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의 말씀이다. 바울이 위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는 성경을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형성된 역사적이며 종교적인 산물로 이해하려는 자들이 많다. 나아가 단순히 인간들의 문학작품 정도로 이해하는 자들마저 있다. 그런 자들은 대개 신학자로 행세하고 있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을 위해 그들에게 불의를 행하거나 해롭게 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속여 무엇인가 빼앗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우리는 이 말을 매우 주의 깊게 이해해야만 한다. 이는 일상적인 정황 가운데서 어떤 불의와 악행을 저지르거나 탈취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울의 이 말을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교회 지도자가 전하는 종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바울이 그들에게 의도적인 악행을 저지르거나 해를 끼친 일이 없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지도 않았다. 하지만 고린도에 있는 자들 가운데는 바울을 그런 식으로 오해한 자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 가운데 당시의 종교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 의미가 훨씬 분명해진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핑계대어 자기의 목적을 추구하며 불의를 저지르는 일을 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겉으로는 종교적인 문제를 앞세워 저들을 이롭게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저들을 해롭게 하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과 종교를 빗대어 저들을 속여 재물을 빼앗은 적이 없었다.

당시 악한 종교인들 가운데는 어리석은 교인들을 속여 불의를 행하고 해롭게 하며 재물을 탈취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유대인들 중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등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핑계대어 백성들을 속이면서 저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며, 도리어 그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섬기는 것이라 착각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시대에도 지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상당수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의 종교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교인들을 속이며 불의를 행하고 저들의 재물을 우려내고 있다. 물론 그들 가운데 다수는 저들이 하는 행위가 얼마나 악한 것인가 하는 점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죄로 인해 타락한 본성 위에 나름대로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오늘날의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자신을 민감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 가운데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해 그와 연관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했다(고후7:3). 이 말 가운데는 고린도교회 지도자들 중에 악한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아 성도들을 속이며 악행을 저지르던 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그들 가운데 바울에 대해 악의적인 선전을 한 자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사자들의 그에 대한 인정여부와 관계없이 바울은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바울은 이제 와서 그들의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고 살게 하기 위해서 그 말을 한다고 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속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자들을 품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고 함께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는 지상교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바울이 쓴 로마서에는 성도들의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사는 문제에 연관된 분명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6:5-9)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죽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에 가졌던 종교적인 형태만 바뀐다고 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포함되어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아난 자들이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삶을 소유한 자들은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는 죄에 종 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의롭게 되었다. 그러므로 의로운 백성들은 사망이 다시금 자기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항상 방어적인 삶의 자세를 취한다. 그리하여 최종 심판 날이 이르게 되면 부활한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또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어떤 말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들도 있었다. 어쩌면 그 말로 인해 일부 반대하는 자들이 바울에게 적의(敵意)를 품고 심하게 저항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한 마음으로 직설적인 용어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들을 위해 칭찬할만한 자랑거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자세를 회복한 사실로 말미암아 많은 위로를 받았음을 전했다. 바울과 함께하는 형제들은 심한 환난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좋은 소식으로 인해 위로를 받아 기쁨이 넘쳤던 것이다.

 

 

3. 마게도니아에서의 고통 (5)

 

사도바울은 오래 전 그의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 마게도니아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때 여러 사람들을 만나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건들을 경험했다. 바울은 당시 빌립보를 방문했을 때 복음을 증거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어 심한 고생을 했다. 그 후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지역을 방문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증거했다.

당시 그는 마게도니아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심한 박해를 당했으며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기도 했다. 복음전파로 인해 사업에 차질을 빚어 손실을 보게 된 불신자들은 바울을 마냥 두고만 보지 않았다. 빌립보 뿐 아니라 바울이 가는 곳마다 온갖 핑계거리를 찾는 대적자들이 득실거렸다. 빌립보를 떠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을 때 거기서도 바울을 해하려던 유대인들은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결국 위험을 피해 베뢰아로 피신해 갔을 때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던 악한 유대인들은 그 지역까지 뒤따라가 그를 괴롭혔다. 결국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해치려는 그 사람들의 위협을 피해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 지역으로 갔던 것이다. 그에 관한 내용이 사도행전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16: 19-2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17: 13,14)

 

이 세상에서의 바울의 삶은 결코 평탄하거나 안락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가는 곳마다 협박을 당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바울의 주변에는 항상 자객(刺客)이 도사리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전혀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바울이 유대인들의 눈에는 가시같이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번에 바울이 마게도니아를 방문했을 때도 그는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지역에는 바울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들이 숱하게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바울에게 대적하던 세력에 속해 있던 자들에게도 바울은 여전히 요주의 인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참된 교회들은 마땅히 그를 하나님의 사도로 알고 반갑게 맞았다. 그러나 바울을 대적하는 세력은 그를 더욱 위험한 인물로 간주했을 것이 틀림없다. 특히 유대 민족주의를 버리고 복음을 통한 세계주의를 부르짖는 그를 반가워할 리 없었다. 그것은 모진 환난과 엄청난 두려움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며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후7:5)고 말했다. 이는 외부로는 진리에 대적하는 세력과 맞서 싸웠지만 연약한 육신을 소유한 인간으로서 내부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을 어찌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럴 때일수록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에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도리어 복된 일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평안함과 풍요로움은 오염된 세상에 정착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길 따름이다. 만일 세상의 만족이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만든다면 그것을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라 말할 수 없다.

 

 

4. 디도를 통한 위로 (6-8)

 

사도바울은 고린도 지역으로 가는 도중 마게도니아에 머무르고 있을 때 고린도에서 온 디도를 만났다. 디도는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를 받은 고린도교회의 반응과 형편에 관한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바울은 그를 통해 고린도교회의 긍정적인 소식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 디도가 고린도로부터 가져온 소식은 바울을 비롯한 여러 형제들에게 반가운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본문 가운데서 자신을 비천한 자들에 견주어 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그의 겸손한 마음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가 비천한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가야 하며 세상 사람들의 눈길과 인정을 의식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세상적인 비교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항상 그렇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을 평하기도 하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세상의 것들을 내세워 성도들을 평가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인해 낙망에 빠지지도 않는다. 이는 교회 안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비천한 자들을 위로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하며 자신을 그 비천한 자의 위치에 두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원리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에 연관되신 율법을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적인 능력을 의지하여 교만한 태도를 가진 자들이 아니라 아무런 힘이 없어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자들에게 응답하시는 분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찌라(22: 21-23)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연약하고 비천한 자들이 압제를 받거나 해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함을 강조해 말씀하셨다. 만일 강한 자들이 연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박해한다면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리라는 것이었다. 이는 모세를 통해 허락하신 율법의 원리에 해당된다. 이에 대해서는 신약시대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동일한 효력을 지니고 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세상적인 가치 기준에서 비천하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받게 된 자신의 처지를 고백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고린도지역에서 마게도니아에 도착한 디도가 바울에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위로의 말과 저들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바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으므로 그는 더욱 기뻐하게 되었다.

그런 위로와 기쁨을 얻은 바울은 그 전에 쓴 편지로 인해 그들을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 말은 고린도전서를 자의에 의해 쓴 편지라는 점을 암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 말을 통해 고린도교회에 대한 자신의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곧 그것으로 인해 저들이 심한 상처를 입거나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고린도교회의 형편에 대한 디도의 말을 들은 후로는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로 인해 잠시 근심했지만 저들이 금방 그 의미를 알아듣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앞으로 나아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고린도 교회를 위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애쓰는 사도바울의 경건한 모습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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