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피조물(고후5: 11-21)

               

1.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는 인간들 (11, 12)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경외해야 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죄인들이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는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악이 가득한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창세전에 작정하신 언약과 진정한 그의 사랑에 기인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들이 경험한 일반적인 사랑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늘날 우리시대에는 하나님을 사랑의 주님으로 인식하면서도 참된 의미를 상실한 채 경거망동하게 대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따라 종교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있을 따름이다. 성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하면서 마치 인간을 대하듯이 인간적인 구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사도바울은 엄위하신 주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권면했다. 그는 자신은 물론 함께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그대로 드러난 상태이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된 상태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진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올바르게 깨달아 알기를 원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은 본질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자신의 비밀스런 부끄러운 일들을 누구에게나 숨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전지전능하신 조물주의 눈길마저도 피할 수 있는 듯이 착각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참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 나아가 어리석은 교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악 된 본질을 망각한 채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의롭고 떳떳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더러운 죄에 빠진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올바르게 깨달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온전히 의존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모든 죄를 낱낱이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에 관한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4: 12,13)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의 말씀은 성도들에게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성경은 지상의 교회들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역사하고 있으며 성도들의 마음속에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그 말씀은 강력한 운동력이 있으며 양쪽에 날 선 예리한 칼보다도 더 날카롭다.

따라서 그 말씀의 칼은 인간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즉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그 어떤 기관도 숨겨질 수 없다. 나아가 기록된 말씀은 인간들의 마음과 머릿속에 존재하는 생각들을 비롯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사상들조차도 정확하게 분별해 낸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만물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죄악에 물든 우리의 더러운 모습도 마지막 때가 되면 그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지게 된다. 인간들의 모든 것들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시게 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은 앞으로 그런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의 외양(外樣)을 화려하게 꾸미고 그것을 자랑하는 가운데 교만해져 간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종말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그에 대처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더러운 속 모습을 낱낱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는 죄에 물들어 둔감하게 된 인간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피조물인 인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항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들키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스스로 저지른 더러운 죄악들에 대해 자신만 알고 있는 것처럼 여기며 다른 인간들의 눈을 쉽게 속일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감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우리가 그에 대한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아 알고 있다면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저절로 낮아지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인간들 앞에서도 부끄러운 자신의 삶으로 인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도록 한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바울은 자신을 성도들 앞에 내세우려는 것이 아님을 언급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도들의 사역으로 인해 저들에게 자랑할 기회를 주고자 한다고 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한 것은, 사람들의 진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외모를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 부화내동(附和雷同)하지 말고 정당하게 대응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인본적인 형식을 내세우는 자들은 하나님께 드러나는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비쳐지는 외양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2. 오직 하나님을 위한 인생 (13-15)                  

 

사도바울은 하나님과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는 결코 일반 사람들의 눈에 평범한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남 보기에 미친 짓으로 비쳐진다 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또한 정신이 온전한 사람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간적인 목적을 위해 무엇인가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직 연약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자주 넘어지고 쓰러지기는 하지만 그에 연관된 의미 자체를 잊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앞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편지하면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며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도록 요구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 31-33)

 

올바른 신앙을 소유한 성숙한 성도들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한 인생을 살지 않도록 자제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말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은 개인의 종교적인 욕망을 포기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며 그의 뜻 가운데 살아갈 때 마땅히 복음을 들어야 할 자들에게 하나님의 참된 구원이 선포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본문에서 성도들의 그런 삶은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자신의 모든 백성을 위해 죽으실 때 그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도 그와 더불어 죽게 되었다(고후5: 14).

이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타락한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이는 세상에 대한 포기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성도들이 세례를 받을 때 그 구체적인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사도바울이 쓴 로마서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 4)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현장에서 그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도 그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이는 사탄으로 말미암아 훼손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구원사역의 과정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시대의 성도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과 더불어 새로운 생명 가운데 거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역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죄악 세상의 통치로부터 구원하셨으므로(1: 21, 참조) 성도들은 더 이상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대신 죽음을 담당하셨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만 한다. 만일 그런 삶을 거부한다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진정으로 아는 성도라 말할 수 없다. 이는 결코 상징적이거나 형식적인 의미가 아니라 현실의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16, 17)

 

사탄의 유혹에 의해 죄에 빠져 타락한 인간들은 항상 세상에서 익힌 자기의 이성과 경험에 따라 모든 것을 가늠하며 판단하고자 한다. 나아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에 맞아떨어지는 것들을 지향하는 가운데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본질이 아니라 외모로 판단하며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거나 취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히 사람의 얼굴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존재하며 드러나는 세상의 모든 형편들을 포함하고 있다. 야고보 선생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취하는 것이 무서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2: 9)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은 세상에서 형성된 주관적인 취향에 따라 함부로 이웃을 평가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계시된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를 소유한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삶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외모가 수려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겉 치례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서의 능력과 성공여부에 따라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되거니와 그것으로 말미암아 남으로부터 판단 받을 필요가 없다. 나아가 일반적인 윤리적 사고와 행동이 참된 인간과 삶의 여부에 대한 평가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드러나게 될 따름이다. 우리는 항상 그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고 취하는 것은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행위가 된다. 인간들의 이성과 경험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엄중한 심판을 하시게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자기도 그 전에는 육체의 판단에 따라 그리스도를 알려고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 평가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도 그러했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나약한 모습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 이성과 종교적 경험에 기초한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영원한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메시아를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인간의 몸을 입고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관심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진리들을 깨달아 알게 된다. 이는 인간들이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자들은 옛 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 1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서 옛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행위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위를 회복한 성도들은 이제 천상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이 땅에서의 삶은 궁극적인 가치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과 함께 이미 역사 가운데 죽어 장사되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은 세례를 통해 그것을 확인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몸 된 교회 가운데서 새 생명을 지닌 피조물로 드러나게 된다. 이는 회복된 하나님의 영광과 직접 연관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섭리와 경륜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사탄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훼손된 자기의 영광을 회복하시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장사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담으로 인해 죄를 소유하게 되었던 옛 사람과는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4. 속죄제물과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18-21)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인격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사탄의 유혹을 받은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악한 사탄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 때 인간은 단독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피조 세계를 끌어안은 채 멸망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로 인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죄로 오염되어 그것 자체로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는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소유하신 분이다. 그분께서는 창세전에 범죄하기 전의 아담에게 속한 자기자녀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담이 범죄했을 때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완전히 버리시지 않고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것을 작정하셨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인간을 위한 속죄제물과 하나님 자신을 위한 화목제물로 삼으시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로부터 벗어나 의롭다 함을 받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그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3: 25,26)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자기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사건은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상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아담이 범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다. 즉 타락한 인간이 죽어야 할 자리에서 무죄한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이 죽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에 가담했었지만 저들의 죄를 간과하시고 의로운 자로 인정하시게 되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 때문에 다시 죽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일의 완성을 위해 사도들을 비롯한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후5: 18). 이는 지상의 교회가 소유하게 된 특별한 역할에 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계시된 말씀을 저들에게 위임하신 것으로서 복음선포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특별한 책무를 맡은 지상교회의 사명을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에 자신의 거룩한 사역을 맡기셨다는 사실은 자기 백성들에게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회복된 관계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은 경외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그 놀라운 책무에 참여해야 한다.

처음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특별한 위임과 부탁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들이 무서운 죄의 굴레에 빠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가 그만큼 무서웠던 것이다.

 

모든 피조세계에 대한 관리를 아담에게 맡기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교회에 세워진 직분자들에게 화해의 말씀(the word of reconciliation)을 맡기셨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가운데서 올바르게 드러내고 선포해야 하는 임무를 의미한다. 만일 지상의 교회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태만히 하거나 거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된다. 그런 오만한 태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배도의 길에 들어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화목하게 하는 그 일을 이룩하시기 위해 항상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 가운데 계신다. 세상에 있는 자기 자녀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구원함으로써 진정한 화목을 이루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교회와 직분자들을 통해 창세전에 택한 자기 백성들을 불러 구원하시므로 저들에게 죄를 묻지 않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직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로 하나님의 사신(使臣)이 되어 택하신 백성들에게 나아가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계시된 말씀으로 저들을 권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들에게 간청한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 위에서 죄책(罪責)을 대신 감당하게 하신 것은 순전히 자기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죄에 빠진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전가될 수 있었다. 교회에 속한 우리는 은혜로 허락된 그 의로움으로 인해 지상에서 성도의 삶을 살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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