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와 새 언약(고후3: 1-11)

 

1.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교회 (1-3)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지금 또다시 자신을 비롯해 자기와 함께 하는 자들에 대한 추천을 해야겠느냐며 반문하고 있다. 즉 그들이 올바른 신앙을 소유한 믿을만한 성도인지 여부를 보증하기 위해 새롭게 추천서를 써 보내거나 특별한 추천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그들이 이미 서로 간 그리스도 안에서 신뢰하는 관계에 놓여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바울은 저들에게, 너희가 우리 마음에 새겨진 우리의 편지라(You are our letter, written in our hearts)는 언급을 했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매우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적인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교회공동체가 사도들의 교훈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점을 시사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의미는 사적(私的)인 개념을 넘어 공적(公的)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상의 모든 참된 교회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들이 기록한 편지로서 흩어진 교회들 상호간에 읽혀질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게 된다. 이 말은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교회 자체가 그들을 위한 추천서가 된다고 말했다.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 공동체가 곧 사도들을 보증하는 추천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도들과 교회가 본질적으로 상호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그 사실을 언급하면서 지상의 참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사실을 강조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특별한 편지를 사도들의 교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시게 되었다.

따라서 지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편지를 읽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아담으로 인해 범죄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교회공동체로 드러나고 있는 그 편지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선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 교회에 새겨진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읽고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그 편지를 읽을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것이 놀라운 은혜가 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통해 허락하신 그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셨다. 그것은 구약시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두 돌 판에 기록한 것처럼 새겨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비(心碑) 곧 성도들의 마음 판에 영으로 기록하신 것이다. 이는 교회공동체와 그에 속한 각 성도들의 심령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을 말해주고 있다.

종이 위에 먹으로 쓴 편지나 돌 판에 새긴 글귀는 인간들의 마음 밖에 별도로 존재하지만 교회와 성도들의 심비에 새겨진 편지는 항상 살아서 움직이는 메시지이다. 먹으로 쓴 편지는 인간들이 지우고 다시 고쳐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도들의 마음 판에 새겨진 편지는 그렇지 않다. 또한 돌 위에 새겨진 글이라면 그것을 가지고 오거나 꺼내어 다른 사람들이 읽도록 보여줄 수 있지만, 심비에 새겨진 편지는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소중한 뜻을 전달하는 메시지가 된다. 따라서 그 편지는 세상 가운데 숨겨진 채 존재하지 않고 뭇 사람들에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2.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만족 (4,5)

 

이 세상에 살아가는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은 항상 자신의 만족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움직이며 활동한다.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러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명예를 지키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정성을 다해 가정을 행복하게 꾸리려는 것도 만족스런 인생을 살고자 하는 방편이 된다.

그러나 그런 식의 만족에는 결코 진정한 생명력이 없다. 그것을 통해 어느 정도 일시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야 있겠지만 더 이상의 영원한 보장성은 제공되지 않는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나름대로 그 점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획득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만족은 타락한 인간들의 그런 류의 욕망에 근거하지 않는다. 천국에 진정한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인간적인 욕망을 추구함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제공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 안에서 즐거워했다. 그에 대해서는 신약시대뿐 아니라 구약시대의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약성경에는 시편기자의 노래와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 그에 대한 묘사가 선명하게 잘 나타나고 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32:11);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35:9);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3:18)

 

시편기자는 의인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치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함을 노래하고 있다. 그 노래는 되풀이 되는 입술의 연습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허락되는 은혜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선한 자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즐겁게 노래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성도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찬송하며 경배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이 모든 성도들에게 변치 않는 참된 만족이 되는 것이다.

또한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기뻐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기쁨과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타락한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거나 기쁨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편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구약시대 성도들뿐 아니라 신약시대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님의 교회들이 마땅히 소유해야만 할 본질적인 내용이다. 즉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진정한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하나님 이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것들을 통해 적극적인 만족을 추구한다면 배도의 길에 들어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경은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이라면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과 우상에 관심을 두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세는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 세력인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오직 그를 경외하며 섬기도록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을 요구했다. 만일 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이방 신들과 그 사상을 추종하게 되면 저들에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6:12-15)

 

모세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매우 엄중한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며 섬길 것을 맹세해야 한다. 그들은 절대로 주변에 있는 이방 민족의 종교와 신들을 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저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배도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되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배도에 빠진 백성들을 진노하심으로 심판하게 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단순한 모세의 권면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엄중한 율법이다. 따라서 구약시대에 살았던 성도들뿐 아니라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은 이에 대한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만 한다. 이는 구약시대 성도들과 신약시대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에게 공히 적용되어야 할 내용인 것이다.

타락한 인간들이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종교적인 자기만족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의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과 그의 뜻을 벗어난 상태에서 구하는 모든 것들은 우상숭배행위와 연관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자녀들이 그런 더러운 삶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그는 도리어 언약의 영역 안에 있는 자들이 우상숭배를 하며 이방 종교사상에 빠지는 것들을 질투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여기서 깊이 유의해야 할 점은 이방 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이방 신 사상을 삶 전반에 수용하는 위험한 신앙태도이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특정한 이방 신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자가 있다면 스스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도의 길에 빠져있는 어리석은 자들은 형식적 생활에 있어서는 매주일 교회에 나가면서 기독교적 활동을 부지런히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저들의 행동과는 달리 속마음으로는 잡다한 이방 신 사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기복신앙, 종교다원주의, 종교적 현세주의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만일 누군가 이방 종교들에서 스며들어온 그런 형태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기독교를 통해 자기중심적인 종교생활을 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자기 자녀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것은 종교적인 악한 배도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섬겨야 할 백성들이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진노하시게 된다. 오늘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참된 교회들과 그에 속한 성도들은 그 점에 대해 여간 민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새 언약의 일꾼 (6)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기 백성들을 향해 언약을 베푸셨다. 그는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까지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더불어 발전적인 언약을 맺으셨다.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등이 곧 그것들이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언약은 장래 새롭게 갱신될 언약이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맺어졌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새 언약으로 갱신되었다. 사도들과 그들의 복음전파 사역을 통해 세워진 지상 교회와 모든 성도들은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특별히 세우신 사도들을 새 언약의 온전한 일꾼으로 세우셨던 것이다.

즉 구약시대에 주어졌던 옛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확립될 새 언약을 위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모든 사실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예언되어 왔다. 그들 가운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장래 임하게 될 그에 관한 분명한 예언을 했다. 앞으로 때가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우시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1-33)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통해 새 언약이 세워지는 그 날이 이르게 되면, 하나님의 법이 외부가 아니라 백성들 가운데 존재하게 되며 그 마음에 새겨지게 된다. 이는 앞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말한 것처럼 교회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내용과 상통하는 개념이다. 그들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는 것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가로 놓여있던 담이 허물어짐으로써 완벽한 관계가 회복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확립되어 성도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과 연관된다(4:6; 8:15).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 사이에서 새 언약의 중보자 역할을 하신다. 그가 고통스러운 십자가 사역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범죄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9: 14,15)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신의 몸을 성부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로 드리게 되었다. 그의 몸은 죄에 빠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흠 없는 속죄 제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거룩한 피로써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양심과 삶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죄의 자리에 앉아 저주의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다. 그분께서는 십자가 사역을 통해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심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중재자가 되셨다. 그 일을 위해 그분께서는 첫 언약 가운데 정죄된 죄를 속하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이다. 이는 새 언약이 없이는 참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첫 언약인 의문(儀文)은 죄를 드러내고 그것을 정죄하여 죽이는 기능을 하는데 반해 하나님의 영은 새 언약을 통해 성도들을 죄 가운데서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모든 성도들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상속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일꾼이 되었던 것이다.

 

 

4. 영광의 직분: 직분의 영광 (7-11)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놀라운 영광으로 드러난다. 그 영광은 타락한 세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탄의 세력권으로 들어간 이 세상에는 진정한 영광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생성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부터 자기 자녀들에게 영원한 영광에 관한 계시를 하셨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한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애굽에서 탈출한 후부터는 그에 대한 특별한 계시가 이루어졌다. 노아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가시적인 말씀으로 주어졌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으로 형성된 이스라엘 백성과 구체적인 언약을 맺으셨다. 모세를 통해 특별한 규례에 따른 성막과 그에 속한 모든 부속물들을 만들게 하신 것과 시내산에서 율법을 허락하신 사실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머무는 40년 동안 있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등도 가시적인 언약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그 율법은 이방 왕국인 애굽의 법령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단순한 질서를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거룩한 율법은 타락한 인간들의 죄를 드러냄으로써 선택 받은 백성들로 하여금 구원의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을 찾도록 했다. 이는 그 더러운 죄를 가진 상태에서는 영원히 멸망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인간들의 악한 죄를 드러내고 처참한 죽음을 가져오는 직분, 곧 인간들을 죽음에 가두게 되는 율법의 직분은 영광의 광채와 더불어 나오게 된다. 십계명이 기록된 모세의 두 돌 판은 하나님의 언약과 더불어 율법을 집약하고 있다. 모세가 계시 받은 출애굽기에는 그에 관한 성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34: 29)

 

하나님께서 시내산 위에서 친히 기록하신 두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은 배타적 의미가 들어 있다. 이는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며 죽음을 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직분은 영광스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받아 시내산을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는 영광의 광채가 나타났다(3: 3). 이스라엘의 일반 백성들은 그 광채로 인해 감히 모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시내 광야에서 모세의 얼굴에 나타났던 그 광채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었다.

사도바울은 그 사실과 연관하여, 율법을 통해 인간들의 죄악을 정죄하는 직분도 영광스러운 것인데 하물며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의 직분은 오죽 더하겠느냐고 말했다. 앞으로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며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기능과 더불어 없어지게 될 율법이 영광스럽다면 영원히 존재할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직분이 더욱 영광스러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신약시대의 교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자신의 직분사역(ministry)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밝혔다. 그것은 앞으로 지상에 설립되어 완성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1: 13,14)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여 받은 자신의 직분사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그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광스러움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피로 값 주시고 사신 지상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라는 사실에 연관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자기의 직분이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는 특히 자신의 골육친척(骨肉親戚)인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진 구원으로 인해 시기함으로써 그 가운데 선택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기를 원했다. 바울은 자신의 그러한 구원사역을 영광스럽게 여겼다. 복음을 위한 그의 직분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더욱 영광스러웠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상의 모든 보편교회들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 역시 이 땅에 존재하는 썩어질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그 영광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한시라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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