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하나님을 위해 한다며 많은 것을 잘못하고 자신들은 잘한다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원하심을 모르고 우리들의 방법인 사회적인 관례와 편법을 교회에 많이 응용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배워야 됩니다.

여러분의 교회에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주안에서

서성필.

 

 

2,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고후1: 12-24)

 

1. 하나님의 교회와 종말론적 의미에 관한 지식 (12-14)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참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특별한 공동체이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 이는 타락한 세상이 더러운 죄에 빠져 있는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색깔로 말하자면 교회는 흰 눈 같이 정결한 반면 세상은 흑암 같이 어두운 영역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교회와 사탄에게 속한 더러운 세상은 결코 뒤섞여 어우러질 수 없으며 항상 본질상 분리되어 존재한다. 즉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지만 타락한 세상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영역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상의 교회와 세상은 항상 대치관계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참된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자신이 교회 가운데 소유한 진정한 자랑이 무엇인지 언급하고 있다. 사도인 바울조차 지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도리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진실함으로 대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세상에서 얻은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은혜 가운데 교회를 대했음을 강조했다. 이는 그가 타락한 세상에서 형성된 이성과 경험에 의해 감히 하나님의 교회를 판단하거나 대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교회에 대한 자신의 그런 자세를 자기와 함께 하는 모든 성도들의 양심을 걸고 증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를 보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무엇 때문에 저들의 양심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말까지 해가면서 그와 같은 간절한 언급을 했을까?

교회에 대한 바울의 자세는 지상의 모든 성도들이 간직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울은 결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자신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우리시대의 교회와 직분자들이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다. 나아가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현대는 이미 개인의 종교적인 성공을 위해 하나님의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을 이용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한 상태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자신의 종교적 욕망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교회를 대상으로 삼아 개인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회의 외적인 성장여부는 결코 인간들의 성공실패여부를 확정 짓는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외형을 통해 목사의 성공실패 여부를 가늠하고자 한다. 교인들의 수가 많은 도시의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자들은 매우 성공한 목사이며, 그렇지 않고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한평생 목회하는 자들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올바른 생각이 될 수 없다. 도리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목회자들 스스로도 심각한 착각을 하게 되며 주변의 어린 교인들도 세상의 지혜에 따른 판단에 의해 스스로 속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에게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신앙생활을 영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이성과 종교적인 경험을 기초로 한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베푸시는 은혜에 따라 순종하는 것은 성도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바울은 자기와 함께 하는 성도들과 더불어 그 원칙을 성실하게 잘 지켰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것으로 인해 자랑하노라는 말을 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된 기록계시인 성경말씀을 통해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진리 이외에 그것을 벗어난 내용을 자신이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구약성경 전체와 앞서 기록된 신약성경의 일부를 두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바울이 기록한 모든 계시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진리 안에 존재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기록된 성경말씀을 읽고 그 내용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성도들은 그것을 통해 온전하고 참된 지식을 소유해야만 한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로 말미암은 진리를 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바울이 기록된 계시를 벗어난 내용을 말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바울은 그런 말을 하는 가운데 역사적인 종말의 의미에 관한 언급을 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미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지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은 마지막 심판 날 모든 성도들이 소유해야 할 본질적인 의미에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는 사도들의 자랑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들에게 증거한 사도들은 교회의 자랑이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순종 (15-20)

 

바울은, 종말의 때가 이르게 되면 사도들과 전체 교회가 서로 간 자랑스러워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점을 언급하면서 조만간 고린도를 방문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표명했다. 이는 저들로 하여금 또다시 갑절의 유익을 얻게(a second benefit; you might benefit twice) 하기 위함이었다.

한글 개역성경에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라고 한 말은 단순한 횟수나 분량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사도를 통한 분명한 가르침이 교회를 위해 커다란 덕이 되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교회와 성도들은 그것을 통해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바울은 바로 그 일을 위해 조만간 마게도니아를 거쳐 직접 고린도를 방문하리라는 계획을 전했다.

그리고 바울은 나중 고린도교회가 자기를 유대 지역으로 보내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의 유대지역 방문계획은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바울은 그 계획이 결코 경솔한 순간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감정이나 판단으로 인해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무런 의심 없이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신실한 분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도로서 자신의 입술로 라고 말한 것을 나중 생각을 바꾸어 임의로 아니라고 번복한 적이 없었음을 강조했다. 즉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입으로 교회를 향해 전한 말씀은 변함없는 참된 진리라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주변에 있는 많은 인간들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자신이 분명한 증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에 세워진 직분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번복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말을 각별히 귀담아 들어야 한다. 바울은 나중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직분자를 세움에 있어서 일구이언(一口二言)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말했다(담전3:8). 오늘날 우리 역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나 특별히 난처한 위기를 모면할 목적으로 말을 바꾸어 이말 저 말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사도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통해 고린도교회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결단코 약속을 어긴 적이 없음을 강조해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해 약속하셨던 모든 내용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김없이 성취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결코 거룩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 Christ)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는 것은 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도바울은 성자(聖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유일한 중보자가 됨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날 우리가 특별히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세속화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시대는 극도로 인본화된 시대이다. 현대과학과 그에 따른 물질문명에 익숙한 자들은 한없이 오만한 자세를 지니고 있다. 인간들의 잘못된 자신감은 하나님 앞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따라서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은 자기 자신의 노력과 정성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자들은 자신의 고상한 음성을 통한 노랫가락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으며, 다양한 악기들을 동원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나아가 율동을 통한 몸동작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며,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믿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건강하고 세련된 인간들의 모습과 활동을 그렇지 못한 자들의 외형보다 더 좋아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들의 노력과 정성에 탄복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인간들의 성악이나 기악 혹은 율동을 비롯한 몸동작 자체를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선택하신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회복된 자들을 기뻐하신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확실한 언약과 신실한 그의 성품에 기인한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바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열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이다. 인간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선택하신 자녀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는 자신의 놀라운 뜻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하셨던 것이다.

 

 

3. 하나님의 보증과 성령의 사역 (21, 22)

 

지상에서의 삶을 경험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들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생존하여 살았던지 한결같이 거룩하신 주님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벗어난 교회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택하신 백성들에게 구속사적 상황에 따라 상이한 직분들을 주셨다. 구약시대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비롯한 여러 족장들이 있었는가 하면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민족의 특별한 영도자도 있었다. 또한 다윗과 솔로몬 같은 왕이 있었으며 여러 제사장들과 숱한 선지자들도 있었다. 각 성도들은 구속사 가운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다양한 직분들을 감당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경륜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신약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도교회 시대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직접 계시 받은 특별한 사도들이 있었으며 다양한 직분들과 은사들을 소유한 성도들이 있었다. AD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뒤따른 보편교회 시대에는 목사, 장로, 집사 등이 있어서 지상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갔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셨음을 언급했다. 이는 인간들의 탁월한 능력과 재능으로 교회를 융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몸 된 교회를 강건하게 세워나가시지 않으면 교회는 결코 굳건하게 설 수 없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자신과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했다. 이는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본문에 언급된 기름을 붓는다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인가? 사도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교회와 성도들은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진리와 연관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그 기름이 밖에 칠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참된 교회는 인간들의 지혜를 통해 배울 필요가 없다. 단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통해 모든 진리를 배워 알게 된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참되고 진실한 자세로 얻은 교훈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만 한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기름부음을 받았다. 특별히 구별된 그들만이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며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신약시대 보편교회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도 기름부음은 구별상속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말은 신약시대 교회의 세례직분자 안수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교회의 기본요건에 해당되는 성례와 직분이 지상교회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점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도들에게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에 연결된 역사적 교회들의 상속을 끊임없이 이루어 가신다. 그 기름부음은 역사적 상속을 통해 현대의 건전한 교회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세례와 성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다양한 직분자들의 사역을 통해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게 된다.

이 신령한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직접 인치시고 그에 대한 보증으로 성령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의 마음에는 그에 대한 깊은 확신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역사하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고 있다.

 

 

4. 개체 교회의 독립성에 대한 사도바울의 언급 (23,24)

 

사도바울은 그 전에 고린도교회가 처한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한참 동안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바울의 그런 판단과 행동은 자신의 일반적인 형편 때문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매우 의도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가 고린도에 속히 가지 않았던 것은 그들을 위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던 사실과 연관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그 동안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았던 까닭은 전적으로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그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진정으로 아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거기에는 바울이 만일 고린도를 급하게 방문했더라면 그것이 도리어 고린도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바울은 자신의 그런 마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말했다. 즉 자기가 고린도교회를 급히 방문하지 않은 것은 단편적인 사욕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 말 가운데서 교회의 권위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그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즉 외부에서 제공되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당사자인 교회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체적인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 점에 대해 명확히 말하고 있다. 자기를 비롯해 함께 있는 여러 지도자들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일방적으로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오직 그들의 진정한 기쁨을 돕는 자가 되고자 했다. 그가 그렇게 하고자 했던 까닭은 그들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에 굳건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시대 교회들이 각별히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개혁주의 교회에 있어서 개체교회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성숙한 교회는 인간적으로 탁월한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회 안팎에는 개인의 능력으로 교회를 주관하려는 자가 있어서는 안되며, 동시에 어느 누구로부터도 불필요한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특정 개인이나 소수집단이 하나님의 교회를 지나치게 주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개체 교회는 적법하게 세워진 직분자들에 의해 공동으로 세워져 나간다. 교회의 교사인 목사와 장로를 통해 독립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세례 및 성찬 등 성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집사들을 통해 교회의 모든 일반 사역들이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를 이른바 교회의 정치적 불간섭 원칙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개체 교회가 진리를 위태롭게 하고 기독교 지도자들이 복음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게 될 때는 당연히 그에 대한 적극적인 간섭을 해야 한다. 그것은 그럴 수도 있다는 소극적인 말이 아니라 진리수호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된 교회라면 예외 없이 보편적인 하나님의 교회이므로 상호 건전한 간섭을 주고받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이기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랑의 근거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것을 거부한다면 보편교회를 벗어난 개 교회주의에 빠진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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