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리스도의 부활과 복음의 본질(고전15:1-28)

 

 

1. 복음과 구원 (1, 2)

 

   사도바울은 수년 전에 고린도 지역을 방문해 약 16개월간 머물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었다. 그로 말미암아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교회 가운데는 그 복음이 굳게 자리 잡고 있어야만 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유한 신앙의 본질적인 기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복음에 대한 깨달음이 서서히 약화되어 갔다. 세상에 편만한 인본적인 사고들이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으며 점차 하나님의 것이 아닌 사람들의 능력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시금 그 복음의 본질을 상기시켜 깨달음을 주고자 했다. 겉보기에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인다고 해도 복음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설령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고, 교인들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복음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런 교회를 참되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본문 가운데서 헛된 믿음에 관한 기록을 하고 있다. 인간들이 신앙이라 주장하는 모든 것들이 진정한 믿음이 될 수는 없다. 스스로 독실한 종교성을 소유하고 있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한 객관성 있는 믿음이 소중하다. 만일 헛된 믿음을 소유한 채 주관적인 성실성과 더불어 종교적 충성을 다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위험할 따름이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교회에 출석하여 봉사한다고 해도 기초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온전한 신앙이라 할 수 없다. 그런 헛된 믿음을 피하는 길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사도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굳건히 지키는 자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들 가운데 형성된 상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항상 성경의 교훈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만 한다.

   거기로부터 영원한 구원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된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되는 참된 구원은 인간들의 심성과 종교적인 결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 따라서 교회는 계시된 말씀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통해 다시금 교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복음의 본질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주고자 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관된 것이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들은 궁극적인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이에 관한 분명한 깨달음과 온전한 수용이 있을 때 성도들의 삶은 천상의 나라에 조화되는 정체성을 지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타락한 세상에 대한 관심이 달라지며 천상으로 말미암는 참된 가치관을 소유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속한 구원받은 성도로서 온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2.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목격자들 (3-8)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관한 모든 진리를 직접 말로써 전한 바 있었다. 그 내용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사건을 포함하고 있다.

   배도한 유대인들과 이방의 로마제국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부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들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인 하나님의 아들을 사탄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세상에서 제거하고자 했던 것이다. 인간들은 그 악행을 통해 일시적으로 승리한 듯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였으나 실상은 그것이 패망의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공개적인 처형을 당한 후 썩지 않는 시신의 상태로 사흘간 깜깜한 무덤에 묻혀계셨다. 그러나 그는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사십일 동안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에서 제자들을 비롯한 여러 성도들을 만나 교제하셨다. 그것은 역사적 흐름 가운데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라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일어난 구속사적 사건이었다.

   구약성경에는 그에 관한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시편기자는 썩지 않는 메시아의 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9-11)

 

   위의 시편 말씀은 구약의 메시아 고백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구약성경은 전체적으로 미래에 오실 메시아와 그의 십자가 사역에 관한 예언을 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메시아가 죽음에 처한다 해도 그의 몸은 썩지 않고 다시 살아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길을 제시하게 될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악한 인간들로부터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순전히 우리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부족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거룩한 생명을 내어주셨던 것이다.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전적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1:19).

   십자가에 달렸다가 장사된 후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십일 동안 지상 활동을 하시면서 천상에서의 삶에 관한 교훈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과 갈릴리호수 주변 등지에서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 영원한 천국복음을 확증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오백 여명이나 되는 성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부활하신 자신의 모습을 보이셨다. 그곳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몸이 천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1:9).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야고보를 비롯한 여러 성도들에게 나타나셨다.

   바울은 또한 맨 나중에 모든 것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자신에게도 보이셨음을 언급했다. 이는 그가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의 실제 모습을 대면했던 것이 분명하다. 즉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예수님은 환상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의 실제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부활과 승천의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한 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에도 생존해 있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과 그의 승천을 눈으로 목격했던 수백 명의 성도들 가운데 다수는 죽었지만 태반이 바울 당시에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제적 사건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도 (9-11)

 

   사도바울은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음을 고백했다. 이에 대해서는 비단 사도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그와 같은 은혜를 입었다. 우리 역시 그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리는 성도들에 속한다.

   바울은 본문 가운데서 자신을 만삭(滿朔)되지 못해 출생한 부족한 인간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사도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모질게 핍박하는 일을 자행했던 자로서 사도라 칭함을 받는 것조차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자신을 죄인들 중에 가장 악한 괴수(魁首)라는 언급을 했다. 이것은 결코 허울 좋은 말이 아니며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보이기 위해 한 말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하나님께 강력하게 저항하는 악한 일에 앞장섰던 부끄러운 인간이었음을 고백했던 것이다.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 15,16)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점은 사도바울이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어떤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더 크고 많은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더러운 과거를 마치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떠벌리는 자들이 없지 않다. 그들은 소위 간증을 하면서 자기의 과거를 은근히 자랑하듯이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말을 통해 자신의 악한 모습을 고백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막중한 사명을 부여 받은 사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사악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관한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한 여전히 나약한 존재이며 인간적인 것으로 인해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밝혔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그는 더욱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의 잘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4.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들 (12-19)

 

   하나님의 자녀들은 계시된 성경의 증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섭리와 성취된 약속들과 더불어 그 사실을 믿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어리석은 인간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그것을 전혀 믿지 않으며 신앙이 어린 자들은 그 의미를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 달리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적인 몸의 살아남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이해하려 하거나 상징적인 것으로 돌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실상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에 대해서는 사도교회 시대에 살았던 허다한 증인들이 그것을 직접 목격했으며 실제적인 많은 증인들이 사도시대 후반까지 생존해 있었다. 그들은 성경의 교훈과 더불어 저들이 직접 목격한 놀라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수많은 증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반 상식에 비추어본다면 아무리 많은 증인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우선 자신이 직접 목격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에 대한 타인의 진술 자체를 쉽게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사실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주님의 부활을 완전히 믿는다. 성경의 증언과 목격자들의 진술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몸 된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이 성경에 기록된 증인들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고린도교회 내부에는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입술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다른 일반 인간들의 최종적인 부활도 믿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 가운데 다수는 유대인들 중에 사두개인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것이다.

   구약시대 말기에 유대 민족의 종교와 정치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관한 서로 다른 관념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나름대로의 부활사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부활사상은 참된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연관된 부활신앙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한편 사두개파 사람들은 아예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위태로운 현실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전혀 믿지 않던 사두개인들은 현세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을 시험하기도 했다(22:23; 12:18; 20:27).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변론 가운데서 그에 관한 분명한 증거를 남기고 있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23:8)

 

   고린도교회에 출석하면서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던 유대인 배경을 가진 자들 가운데는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정통 유대인들이 가졌던 신앙인 것으로 오해하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메시아를 믿고 있었지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유대인들 중 사두개파의 잘못된 전통에 의존해 그렇게 주장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활이 하나님의 교회가 소유한 신앙의 근간이 됨을 강조해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이미 교회를 통해 전파되고 있는 영원한 불변의 진리임을 분명히 말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죽음에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며 그에게 속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 역시 최종적으로 부활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교회는 종교적인 거짓을 유포하는 악한 집단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의 모든 믿음도 헛것이며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도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과연 그런 악한 자들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핑계 대며 부활을 앞세워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거짓증인이 된다. 그것은 천벌을 받을 짓을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모든 것이 거짓일 뿐 아니라 멸망을 자처하는 악한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바울은 또한 여기서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의 생을 마감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성도들도 망하였으리라는 말을 했다. 만일 부활이 있지 않다면 성경에 나타난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믿음의 선배들이 가장 불쌍한 자가 되었을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부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주장하며 전파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선한 자가 아니라 가장 악하고 위험한 자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그런 엉터리 부활에 연관된 거짓을 믿고 그것이 마치 진리인 양 착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유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행동은 그들 스스로 거짓에 속으면서 다른 사람들마저도 자기의 거짓에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 애를 쓰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현대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 속한 자들의 궁극적인 부활이 없고 영원한 세계가 없다면 우리가 가장 악한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다. 없는 것을 마치 있는 듯이 포장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미혹하는 일에 앞장서 왔으니 그보다 더 악한 행위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의 궁극적인 부활을 강변하고 있는 사도바울의 음성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5. 아담과 그리스도의 역할 (20-24)

 

   교회는 막연하고 허망한 것을 믿고 따르는 종교집단이 아니다. 지상에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기록된 계시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천상의 비밀을 소유한 거룩한 신앙공동체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고유한 뜻에 따라 우주만물과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위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편으로 넘어감으로써 세상에 더러운 죄가 들어와 파멸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1:28; 3:6). 그렇게 되자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신실한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의 언약으로 인해 자기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인간의 역사에 친히 관여하셨으며 그 가운데 성자 하나님을 보내셨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에 빠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1: 19).

   그가 임마누엘 하나님으로써 인간이 되신 것은, 아담이 저지른 악한 죄를 인간이 되어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왔을 때 타락한 인간들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세상에 흩어진 죄에 빠진 인간들은 물론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조차도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사탄의 영향에 따라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영원한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다. 선택 받은 백성들은 그것을 보며 언약의 실상을 깨달아 하나님께로 돌아왔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에게 저항했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으며 일반 인간들보다 더 못한 자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조물주이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물인 타락한 인간들에 의해 십자가 위에서 잔인하게 처형당하게 되었다. 그것은 죄인들의 악행에 의해 인간의 몸을 입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죽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자녀들을 대신해 모진 고초를 겪으며 죽게 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마땅히 죽어야 할 자기 백성들의 죽음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죽음, 곧 사탄의 편에 속한 악한 인간들에 의해 거룩한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성도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즉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대속(代贖)의 죽음이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값을 치르기 위해 죽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처형당한 예수님은 완전한 죽음에 처해졌다. 그래서 그는 무덤에 장사되어 사흘간을 지내야 했다. 그러나 맨 처음 아담을 통해 인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탄의 세력은 하나님의 아들마저 사망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인간의 죽음을 대신하신 예수님께서는 결국 사흘 만에 사망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은 창세전에 선택 받은 모든 백성들을 위한 대표성을 띠고 있다. 그가 사망을 부수고 다시 살아남으로써 지상에서의 인생살이를 끝내고 무덤에서 잠자는 성도들의 첫 열매가 되셨던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것은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들어왔으므로 죽음에 빠져 있는 인간들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과 통한다. 인간이 사망을 끌어들이는 문제를 일으켰으니 인간이 사망을 결박하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셔야 했던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리하여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이 죄에 빠져 죽은 것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모든 백성들이 영원한 참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 일은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에 따라 차례대로 질서 있게 이루어진다. 부활에 연관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 허락되는 궁극적인 은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일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부활의 첫 열매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 다음은 그가 재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성도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지상의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최종적인 부활이 있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그에 속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완전히 멸하신다. 그리고 그의 구속사역으로 인해 다시 얻게 된 영원한 나라를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 이로써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6. 만유의 왕, 만유의 주 (25-2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한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후 일시적이나마 그것이 마치 저들의 승리인 양 착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여 자신의 거룩한 몸을 내어주신 성자 하나님의 섭리적 사역이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종적인 심판이 있을 때까지 지상의 교회를 다스리시며 세상을 관장하시게 된다. 즉 그는 모든 원수를 짓밟고 발아래 둘 때까지 엄위한 왕의 지위를 가지고 사역하신다. 그가 만물을 발아래 짓밟는다는 것은 그 자신은 피조세계인 우주만물에 속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은 천년왕국에 연관되는 것으로서 지상의 보편교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그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막강한 세력을 지닌 나라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이 땅에서 왕의 지위를 누리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5:10);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20:6)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결된 지상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타락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 속한 복되고 거룩한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는 둘째 사망이 결코 그들을 지배할 수 없다.

   그들이 도리어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의 권능을 수행하게 된다. 여기서 교회가 왕 노릇 한다는 것은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왕으로서 세상을 심판하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도 그리스도의 편에서 왕적인 지위를 소유하게 됨을 의미한다.

   최종적인 종말의 때가 이르게 되면 우주만물이 부활하신 주님께 온전히 복종하게 된다. 만물이 그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과 완전한 승리의 도래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발로 짓밟고 최종적인 승리를 노래하게 될 때 성자 하나님이신 그는 성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오염된 처음 피조세계를 심판하신 후 재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 안에 영원토록 거하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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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제22장, 바울의 여행 계획과 마지막 당부 (고전16: 1-24) 서성필 2016.12.16 647
263 제21장,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고전15:29-58) 서성필 2016.12.12 712
» 제20장, 그리스도의 부활과 복음의 본질(고전15:1-28) 서성필 2016.11.25 712
261 제19장, 공 예배를 위한 계시와 은사들(고전14: 26-40) 서성필 2016.11.18 732
260 제18장, ‘교회의 덕’을 위한 방언과 예언(고전14: 1-25) 서성필 2016.11.11 664
259 제17장, 본질적 은사인 사랑(고전13: 1-13) 서성필 2016.11.04 669
258 제15장, 교회에서 먹는 만찬(supper)과 예배시간의 거룩한 성찬(고전11: 17-34) 서성필 2016.10.28 657
257 제16장, 성령의 은사들과 교회의 세움(고전12: 1-31) 서성필 2016.10.28 666
256 제14장, 창조질서 속의 남자와 여자(고전11: 1-16) 서성필 2016.10.13 671
255 제13장, 언약적 세례와 신령한 음식(고전10: 1-33) 서성필 2016.09.23 673
254 제12장, 사도와 복음선포의 직무(고전9: 1-27) 서성필 2016.09.16 645
253 제11장, 우상제물에 연관된 문제(고전8: 1-13) 서성필 2016.09.09 643
252 제10장, 혼인의 본질과 독신자에 관한 교훈(고전7: 17-40) 서성필 2016.09.02 645
251 "제9장, 부부관계를 통한 교훈(고전7: 1-16)" 서성필 2016.08.29 970
250 제8장, ‘성도의 자유’와 교회와 순결(고전6: 12-20) 서성필 2016.08.19 639
249 제7장, 성도의 세상법정 소송문제(고전6: 1-11)입니다. 서성필 2016.08.12 697
248 '제6장, 교회의 권세와 순결(고전5: 1-13)' 서성필 2016.08.05 833
247 '제5장, 교회와 하나님 나라(고전4: 1-21)' 서성필 2016.07.29 743
246 '제4장,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고전3: 1-23)' 서성필 2016.07.22 857
245 '제3장,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고백(고전2: 1-16)' 서성필 2016.07.15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