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공 예배를 위한 계시와 은사들(고전14: 26-40)

 

 

 

1. 공예배의 내용과 절차 (26)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신실한 성도들은 매주일 공 예배모임을 갖는다. 그 모임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 교회의 공 예배 참여를 등한시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다.

   주일 공 예배 모임 가운데는 기도와 찬송, 성경읽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절차는 언제부터 있었으며 성경적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 중요한 근거를 고린도전서 가운데서 발견하게 된다. 이는 그 절차를 인간들이 임의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사도 바울은 앞에서 방언과 예언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관한 설명을 한 후 예배절차에 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성도들이 공적인 예배모임을 가질 때 포함되는 내용들에 관한 기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14: 26)

 

   공적인 예배 시에 있어야 할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psalm), 성도들을 가르치는 말씀(word of instruction),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 방언(tongue), 통역(interpretation) 등이다. 이는 사도교회 시대의 공 예배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시편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든 내용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물론 이외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다른 특별한 은사들이 포함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 모든 것들이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즉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특별한 은사를 허락하신 까닭은 단순히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상의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따라서 모든 은사들은 하나님과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한 것이며 그 의미는 예배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각별히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예배 절차의 모든 내용들이 계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시대의 공 예배 절차에 있어서도 계시적 성격을 지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들의 종교적인 취향과 그에 따른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복잡한 내용들을 예배에 첨가할 수 없다.

 

 

2. 질서의 하나님 (27-33)

 

   교회에 허락된 다양한 하나님의 은사들은 다른 성도들과 합의나 협력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통해 개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지만 각각의 은사는 다른 은사들과 상관없이 단독적으로 그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모든 은사들은 성령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교회 가운데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이한 모든 은사들은 서로 간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동일한 은사를 소유한 성도들 사이에도 온전한 조화를 이룬다.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간에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서로 간 존중해야 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그에 관한 의미는 하나님을 공적으로 예배하는 모임 중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됨으로써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직접 다양한 은사들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에 참여한 성도들 가운데 특별한 은사들이 나타날 때는 질서에 따라 은사가 행해져야 한다. 예배 중 방언을 할 경우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하게 되면 순서를 좇아 질서 있게 말해야 하며 통변의 은사를 받은 성도의 통역이 필요하다. 만일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 중에 통변의 은사를 받은 자가 없다면 방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그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 드리게 된다. 그 기도는 개인이 신비한 방언으로 하는 것이지만 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통변의 은사를 받은 성도를 통해 그 기도의 내용이 교회 가운데 공개되어야 한다는 사실로써 그것을 알 수 있다.

   공 예배시간에 한 성도가 예언을 하는 동안 다른 성도를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주어진다면 먼저 말했던 사람은 잠잠히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바울은 예언의 은사와 연관하여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에게 예언을 허락하실 때는 한 사람씩 차례대로 예언을 해야 한다. 예언을 통해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교훈과 더불어 권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훈과 권면은 단순한 윤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계시적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다.

   사도바울은 또한,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언급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바는 타락한 인간은 그 자체로서 어지러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죄에 빠진 인간은 참된 평화와는 원천적으로 거리가 먼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죄 성을 지닌 자연적인 상태의 인간들은 예배 가운데 어지러움을 더하고 하나님의 화평을 깨트리려는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 인간들은 항상 자신의 종교적인 취향과 욕망에 따라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내용들을 첨가 하려고 한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의에 찬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을 냉철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그 본성으로 인해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성향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 요구하신 내용이 아닌 것들을 동원해 자신이 원하는 종교성이 가득 찬 열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들은 그런 것들에 대해 분명한 경계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3. 남성과 여성의 직분 (34, 35)

 

   바울은 자신의 여러 서신들에서 남성과 여성의 분명한 차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고전11:3)라는 사실과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위해 여자를 창조하셨으며 여자를 위해 남자를 창조하지 않았다(고전11:9)는 사실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5: 22-24).

   이제 바울은 고린도전서 본문 가운데서 교회 안에 존재하는 남녀간의 문제와 더불어 예배 가운데 있어야 할 질서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나타나게 됨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서신을 통해 여자는 교회의 공적인 집회에서 잠잠해야 함을 말씀하셨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 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 임이라(고전14: 34,35)

 

   바울은 이 교훈이 고린도교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상에 존재하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그러해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은 단순히 여자들로 하여금 다소곳하게 행동하라는 말이라기보다 가르치는 직분과 연관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바울이 율법의 교훈과 더불어 분명한 어조로 그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교훈은 역사적인 정황이나 시대에 따른 문화적 배경에 의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구약성경의 율법에 기록된 증거에 의한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바울은 창세기에 언급된 남편과 아내에 관한 기록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3: 1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를 지으시고 그를 위해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창조하셨다(2: 18). 물론 이 말은 남녀간의 성적인 불평등 관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을 위해 지음 받은 하와는 남편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로 하여금 죄의 올무에 걸려들게 했다. 하와가 먼저 사탄의 미혹을 받음으로써 아담도 같이 죄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더불어 하와로부터 아담에게 전달된 인간의 범죄를 이해하고 기억해야만 한다. 죄가 하와를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내용이다. 이는 세상에서의 남녀 사이의 일반질서와 더불어 교회의 질서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남편에게 물으라고 했다. 이는 교회 가운데 마땅히 있어야 할 질서에 관한 내용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 말 가운데는 또한 가정에서의 남편의 권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없는 부인들과 미혼여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당시 일반적인 가족제도를 생각해 보면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인간사회에서는 온 집안이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 제도가 일반적인 가정형태였다. 가정에는 항상 온 가족을 돌보는 가장(家長)이 있어서 그 책무를 다해야만 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속한 여성들을 향해 남편에게 물어보아 배우도록 요구했던 것은 가장의 영적 지도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기초로 한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이 점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그것이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현대 사회는 소가족, 나아가서는 핵가족이 일반화 되어 버렸다.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할 점은 현대 가정에 있어서도 가장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핵가족 제도가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가장의 권위가 완전히 땅에 떨어져 버렸다. 잘못된 남녀평등사상과 여권주의(女權主義)가 가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타락한 세상의 위험한 풍조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현대에 들어와 일반화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가정 안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전체적인 질서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이기적인 풍조가 가정 내부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안에마저 그 사상은 강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과학주의와 맞물린 인간들의 현실적 이성을 앞세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상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적 질서에 온전히 순종하는 신앙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는 남녀 간 누구에게는 유리하고 누구에게는 불리한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요구하고 계시는 신령한 내용일 따름이다. 사도바울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린도전서 뿐 아니라 다른 서신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그 점을 분명히 말했던 것이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 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딤후2: 11-14)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구약성경을 근거로 하여 교훈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과 연관된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똑똑하고 잘난 인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성경의 규례를 벗어나 아무렇게나 직분을 맡길 수 없다.

   성경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은 여자가 감당할 수 있는 직분이 아님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바울이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고전14:35) 기록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 이미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 여자목사제도와 더불어 반성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신앙이 어린 많은 사람들은 목사직분을 종교인으로서의 권리 혹은 권세에 연관 지어 생각함으로써 직분에 대한 근본적인 착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남자만 목사가 될 수 있다는 제도는 남성들의 가부장적 독점욕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인 양 생각한다. 여자목사제도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직분이 마치 인간들의 종교적인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4. 사도의 서신을 통한 하나님의 기록 계시 (36-38)

 

   하나님의 계시에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가 있다. 일반계시란 하나님의 모든 피조세계가 그에 속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통해 자신이 어떤 분임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하늘에 있는 해 달 별들과 땅 위에 있는 동식물들, 그리고 천지만물의 운행과 변화의 법칙 등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일반 계시들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며 깨닫게 된다.

   이에 반해 특별 계시란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말씀하신 것을 의미한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다양한 은사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아무리 유식한 자라 할지라도 결코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즉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교회 안에만 존재한다.

   또한 우리는 특별 계시를 크게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한시적 특별 계시와 상시적 특별 계시이다. 한시적 특별 계시에는 다양한 이적들과 방언, 예언 등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상시적 계시가 완성되어 교회에 주어지기 전에 있었던 한시적 특별 계시에 해당된다.

 

   이에 반해 상시적인 특별 계시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 66권이 완성된 후에는 더 이상 한시적인 특별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특별 계시들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은총에 해당된다. 즉 그 계시들은 인간들에게 일반적인 혜택을 베풀기 위해 허락된 것이 아니다. 상시적 특별 계시인 기록된 성경이 교회에 주어진 후에는 그것만으로 인간들의 구원을 위한 충분한 메시지가 되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의 본문 가운데서 이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것은 기록 계시에 연관된 문제이다. 당시 방언과 예언, 그리고 병 고치는 은사 등을 통한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한시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즉 한시적으로 주어진 특별 계시들을 상시적으로 교회 가운데 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교회들에 쓴 편지가 기록된 계시로서 하나님의 명령인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말했다. 만일 그것이 진리의 계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라면 진정한 진리를 아는 자라 할 수 없다. 한시적인 특별 계시들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마땅히 바울을 통해 기록된 언어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진리를 알아가야만 한다.

 

 

5. 예언과 방언 (39, 40)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예언을 사모하며 방언을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도록 요구했다. 또한 적당하게 질서대로 그 은사들을 드러내도록 했다. 이는 모든 은사들이 하나님과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은 앞에서 바울이 말했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리라(고전13:8)는 말씀과 더불어 이해해야 한다.

   즉 예언과 방언이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폐지되기 전까지는 한시적인 특별 계시들이 교회 가운데 임했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던 시점에서 본다면 한시적인 특별 계시의 시대가 끝나고 상시적 계시가 완성되는 날이 조만간 반드시 오게 되어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예언과 방언 등의 은사는 사도시대에 교회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있었던 특별한 은사들이었다. 그러나 온전한 것(고전13:10)이 온 후에는 그 특별한 은사들이 폐지되었다. 즉 신약성경이 완성되고 보편교회 시대가 도래한 후에는 특별한 은사로서의 예언과 방언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시대에도 예언을 하는 정신과 방언으로 기도하는 고유한 신앙정신을 배워야 한다. 우리 역시 그 정신을 사모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 역시 예언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하며 방언하듯이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즉 사도교회 시대의 성도들처럼 예언하고 방언을 말하기 위해 그것들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성경과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진리를 말하고 온전한 기도를 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6. 은사와 재능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세우고 보존하시기 위해 각양 특별한 은사들을 허락하셨다. 그것은 인간들의 종교성을 통해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만일 인간들이 스스로 계발하는 것들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은사라 할 수 없다. 야고보서에서는 그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하고 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 17)

 

   야고보는 여기서, 선하고 온전한 은사들은 전적으로 천상에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불변하는 분으로서 그로부터 오는 모든 신령한 은사들 역시 완전한 통일성을 지니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은사가 오염된 이 땅에서 발생하지 않으며, 하늘로부터 허락된 은사만이 교회 가운데 온전히 적용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방언과 예언 등 사도교회 시대에 있었던 특별한 은사들은 우리시대에 전혀 필요하지 않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된 형태로 교회에 주어졌으므로 더 이상 그런 부분적인 특별한 은사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일반적인 은사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울이 앞에서 언급했던 믿음, 소망, 사랑과 같은 보편은사들이다. 나아가 이는 그것들에 국한되지 않고 봉사, 위로, 권면 등 그와 연관되는 다양한 형태의 은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흔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사와 인간들이 가지는 재능을 혼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교회에 허락된 은사와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재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나아가 교회에 속한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라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은사인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들은 크든 작든 나름대로의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 각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개성을 나타내며 자신의 숙련된 탁월성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보다 크고 나은 재능을 가지고자 애쓰며 많은 재능을 소유한 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나아가 그것을 계발하여 자기 발전을 도모하고자 애쓰기도 한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은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들에 대해서는 크고 작음을 비교하여 평가하거나 자랑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따름이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모든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 필요한 나름대로의 일반적인 은사들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자신이 받은 일반적인 은사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이해해야 할 바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은사이지만 신불신(信不信)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에게 있는 것이라면 재능이라는 사실이다. 즉 은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특별히 주어지며 재능은 자연적인 모든 인간들이 나름대로 가질 수 있는 성질을 지닌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 등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들은 은사에 해당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은 결코 그런 은사들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피아노를 잘 친다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것, 미술, 연극, 스포츠 등에 남다른 탁월한 소질이 있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재능이다. 어떤 교인이 그런 능력이 있어서 교회 가운데서 활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은사가 아니라 재능인 것이다. 즉 불신자들 가운데도 그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재능에 해당된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재능을 올바르게 잘 사용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모든 은사들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들은 교회 가운데서 종교적인 목적을 이룩하기 위해 어떤 은사를 만들거나 창출해 낼 수 없다. 설령 외견상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참된 은사가 아니다. 교회에 존재하는 모든 은사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성숙한 성도들은 결코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거나 탐내지 않는다. 만일 그런 마음을 품게 되면 자기를 위한 욕망의 도구로 그것을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단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그냥 묻어두지 않고 성실하게 잘 드러내어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세워나가는 것이 소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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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제8장, ‘성도의 자유’와 교회와 순결(고전6: 12-20) 서성필 2016.08.19 639
249 제7장, 성도의 세상법정 소송문제(고전6: 1-11)입니다. 서성필 2016.08.12 697
248 '제6장, 교회의 권세와 순결(고전5: 1-13)' 서성필 2016.08.05 833
247 '제5장, 교회와 하나님 나라(고전4: 1-21)' 서성필 2016.07.29 743
246 '제4장,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고전3: 1-23)' 서성필 2016.07.22 857
245 '제3장,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고백(고전2: 1-16)' 서성필 2016.07.15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