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여러 곳에서 날도 무딘 식칼과 가위만으로 수술하여 수많은 불치의 병을 고친다는, 또는 썩은 이빨을 기도로 금 이빨로 변화시킨다는, 또는 쓰러짐, 등등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키는 무당이나 종교인들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에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안에서

서성필.

 

 

 

16, 성령의 은사들과 교회의 세움(고전12: 1-31)

 

 

 

1. 하나님께 속한 사람 (1-3)

 

   하나님의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들(spiritual gifts)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친히 교회에 허락하신 것이다. 따라서 그 은사들에 관한 지식은 세상의 인정이나 지원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도 그 전에 올바른 신앙을 가지지 않았을 때는 이방의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 그것이 이끄는 대로 어두운 곳으로 끌려 다녔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진리를 알지 못하여 그것을 따를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된 성도들의 삶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성령에 의해 천상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되며, 공개적인 십자가 처형으로 인해 그를 저주받은 자라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은 예수님을 유일한 하나님의 독생자로 받아들여 그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게 된다. 그것은 물론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전적인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가운데 천상에 속한 거룩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여 자연을 초월한 신령한 방법과 더불어 역사하셨다. 그것을 위해 지상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 세상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는 다양한 은사들과 직분들을 허락하시게 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신비한 일들은 곧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즉 기독교인들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형태의 초자연적인 특별한 현상들을 행하면 그것만으로 성령의 은사들이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이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 여간 민감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그에 대해서는 성경의 교훈을 기초로 하는 냉철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사악한 인간들은 항상 이적과 기사 등 초자연적인 신비한 현상을 통해 연약한 사람들을 자기가 원하는 세계로 미혹하려 한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점은 모든 신비한 일들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에 관한 기록은 모세 율법에 분명하게 예언되어 있다. 이는 타락한 인간세계에는 원래부터 그와 연관된 일들이 무수히 발생해 왔음을 말해준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13: 1-5)

 

   우리가 위의 본문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이적과 기사를 통해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엄청난 기적들이 진행되는 시내광야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며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발생하게 될 문제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배도에 빠진 악한 자들은 제멋대로 선지자나 꿈꾸는 자로 행세하며 일반 백성들로부터 그렇게 일컬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은 자칫 방심하면 저들의 말과 행동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자들이, 우리가 다른 신들을 좇아 섬기자고 요청했던 의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완전히 생소한 다른 이방 신들을 섬기자고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록 네가 본래 알지 못하는 다른 신이란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은 도리어 성경을 통해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을 저들의 취향과 체험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혼합적인 신으로 변형시켜 섬기자는 요구를 의미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수하게 믿는 그런 정도의 하나님이 아닌 이적과 기사를 통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신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사탄의 교묘한 세력이 개입된다. 따라서 그런 자들은 참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체험에 기초한 신앙을 제시하며 이적을 통해 드러나는 다른 형태의 신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백성들을 미혹하여 꾀는 그런 자들을 멀리할 뿐 아니라 죽여 제거하도록 명령했다. 그들이 행하는 기적이 순진한 백성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여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설령 인간들의 눈에 그럴듯한 종교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악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초자연적인 행위들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한 기적을 통해 배도의 길을 닦는 그들의 악행을 방치하게 되면 어린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법도를 떠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지 모른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와 연관된 말씀을 하셨다. 말세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어리석은 자들을 미혹하기 위해 예사롭지 않는 표적과 기사를 보이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내용이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24: 23-25)

 

   종교성에 가득 차 있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은 항상 초자연적인 신비한 체험을 하는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예수님께서는 기독교 밖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형태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기독교 내부에서 발생하는 표적과 기사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핑계대어 행하는 이적과 기사 등 신비한 사건들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그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신비로운 이적을 일으켰던 자들과 신약시대에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했던 모든 종교인들이 한결같이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능력을 받아 행하는 것으로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저들이 범상치 않은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핑계 댄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그에 미혹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이적들과 그것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 냉철한 대응을 해야만 한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개인적인 특이한 체험들을 앞세우는 자들은 매우 위험하다. 질병을 고치는 은사를 포함하여 개인이 받았다고 하는 소위 우리 시대에 난무하는 영적인 은사들이라 하는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초자연적인 어떤 사건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게 되는 공적인 교훈을 넘어서려는 자세는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2. 한 분 하나님과 다양한 은사들 (4-11)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특별히 허락하시는 선물이다. 인간들이 종교적인 전략과 아이디어를 동원해 그것들을 요구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만일 인간들의 판단과 요청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면 타락한 자들은 스스로 원하는 종교적 목적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고자 할 것이 분명하다.

   교회에 허락된 은사들은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에 따라 각 성도들에게 분량대로 주어진다. 엄격한 입장에서 본다면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은 그 은사들을 거부할 수조차 없다. 만일 어떤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은사의 본질적인 내용을 거부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사실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다양한 은사들을 허락하시는 것은 곧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지상에 온전히 세우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즉 그것은 개인 성도들에게 종교적 경험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개인을 종교적으로 영웅화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이는 모든 은사들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성도들에게 다양하게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속한 자기 자녀들에게 여러 형태의 은사들(gifts)과 직임들(ministries)을 주셨으며 다양한 사역들(works)을 허락하셨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지상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주인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다. 이는 인간들의 종교적인 목적 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된다.

 

   교회에 속한 각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름대로 다양한 은사들을 받게 된다. 그것은 지혜의 말씀(Word of wisdom), 지식의 말씀(Word of knowledge), 믿음(Faith), 병 고치는 은사(gifts of healing), 기적들을 행하는 사역(working of miracles), 예언(Prophecy), 영 분별(discerning of spirits), 방언(divers kinds of tongues), 방언에 대한 통변(interpretation of tongues) 등이다(고전12: 8-10). 이 모든 것들은 성령 하나님을 통해 각 성도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지혜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성경을 읽고 어떤 사람은 그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게 되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또한 지식의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시하신 내용에 대한 기억에 연관되는 은사로 여겨진다.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은사를 의미한다.

   또한 믿음을 특별한 은사로 받은 성도들이 있다는 의미는 교회적으로 이해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모든 성도들이 소유하게 되는 일반적인 믿음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지상의 교회들 가운데는 항상 믿음이 어린 연약한 자들이 많이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믿음에 대한 깨달음과 인식은 어른들이 가진 믿음 정도와 비교할 때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될 만한 성숙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을 믿음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병 고치는 은사기적들을 행하는 은사는 지상의 교회가 세상의 고통과 타락한 질서에 속해 있지 않음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질병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치유사역을 통해 천상에서 있을 온전한 삶을 맛보게 해준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특별한 은사들을 허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상에 얽매여 살아가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게 된다.

   그리고 예언의 은사,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통변의 은사등은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귀담아 들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지상의 언어들이 난무하는 세속적인 영역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교회는 도리어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 형성된 일반적인 이성과 경험을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통해 냉철하게 해석해야 할 주체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바울은 물론 은사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고린도전서에 열거한 내용들만으로 한정 지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즉 고린도교회를 향해 기록한 은사들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보다 다양한 은사들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 거기서는 교회에 허락된 하나님의 은사가 훨씬 폭넓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12: 6,7)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고린도교회에 언급하지 않은 은사들에 관한 것들을 기술하고 있다. 섬기는 일’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등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유한 모든 성품과 신앙적인 삶의 온전한 표현들이 곧 은사임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가 또한 여기서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바는 이러한 모든 은사들을 제각각 따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전체가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로 엮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교회 가운데 성령 하나님에 의한 다양한 은사들이 선물로 주어진 것은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은혜의 방편인 것이다.

 

 

3.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 하나님의 몸 된 교회 (12-27)

 

   인간의 몸은 하나이지만 수없이 크고 작은 여러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다양한 지체들이 없는 몸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 가운데는 팔다리와 눈코 등 겉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간과 폐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내장기관들도 있다. 또한 혈관과 신경계 등 몸 전체에 퍼져있는 것들도 있다. 이렇듯이 눈에 보이는 지체와 보이지 않는 지체들은 전부가 통합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게 된다.

   각 지체들은 제각기 전혀 다른 상이한 역할과 기능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외부로 활동하는 지체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게 내부에서 활동하는 지체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지체들은 머리와 연관되어 있는 가운데 온전한 지시를 받아야 한다. 만일 각 지체들이 머리의 말을 듣지 않고 지체들끼리 서로 명령을 내리고자 한다면 몸은 온전히 존재할 수 없다. 팔이 코나 귀를 보고 명령할 수 없으며 다리와 눈이 간을 보고 명령하지 않는다.

   인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예로 들고 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그의 지체가 된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움직이며 순종해야 한다. 만일 머리의 말에 귀를 막고 순종하지 않는 지체가 있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로마서에서도 그와 동일하게 인체를 예로 들면서 교회의 하나 됨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12: 4,5)

 

   하나님의 몸 된 교회는 다양한 은사들을 소유한 여러 지체들이 모인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체이다. 상이한 직분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교회는 은사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오해하듯이 뭔가 신비한 종교성으로 가득 찬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제각각 상이한 은사들을 지니고 있으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은사와 직분을 부여 받은 성도들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향해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다양한 은사들과 직분들은 상호간 우열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특정 직분자가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다른 직분을 가진 형제에게 무언가 명령을 내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다리에 붙은 발이 얼굴에 붙어 있는 눈을 향해 무언가 명령하는 것과 같다.

   한 교회 안에는 동일한 직분을 가진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 상호간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성도들끼리 교회 안에서 명령하고 복종해야만 하는 그런 관계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서로 간 협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본문 가운데, 개체적인 지 교회 내부뿐 아니라 보편교회를 염두에 두고 그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모든 성도들은 한 성령에 의해 세례를 받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말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 가운데서는 더 이상 종족에 연관된 출신배경과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따위는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게 됨을 말해주고 있다. 모든 성도들은 한결 같이 한 몸이 되어 한 성령께 속한 존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모든 지체들은 전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모든 지체들은 거룩한 하나의 몸에 속해 상호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다양한 형태의 많은 벽돌들이 쌓여 서로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건물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두고 자신이 건물의 모퉁이 돌이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21: 42; 12: 10; 20: 17). 또한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그것이 곧 교회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 20-22)

 

   사도바울은 위에 기록된 말씀에서 교회에 관한 분명한 언급을 하고 있다.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모퉁이 돌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 위에 놓인 터가 되었다. 이는 계시된 신 구약 성경말씀과 연관되며 이외에 인간들의 능력과 종교적인 체험이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그 위에서 서로 간 연결되어 하나의 교회를 이루게 된다. 신령한 그 건축물은 영원한 모퉁이 돌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연결되어 그 안에서 지어져 간다. 그리하여 교회는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된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서로 간 연결되어 신령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며 그 안에서 삶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 가운데서 교회의 지체가 된 자들이 주의해야 할 중요한 몇 가지 원리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보기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별다른 관심을 끌지 않는 신체의 기관들이 더욱 요긴하게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체 기관들을 통해 몸을 전체적으로 고르게 함으로써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그리고 모든 지체들은 서로 다른 신체기관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체들 간에 자기는 절대로 필요한 기관이지만 다른 지체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는 법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지체들 간에 분쟁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에 연약해 보이고 덜 귀하게 여겨지는 부위들을 도리어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주신다. 따라서 모든 지체들은 서로 간에 세워주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몸의 지체들은 전체가 연결되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몸의 특정한 부위에 위치해 있으면서 어떤 고유한 기능을 하는 지체이든지 간에 모든 지체들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것은 몸을 건강하게 보존하는 일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온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신체의 모든 기관들은 서로 간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어느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 지체뿐 아니라 몸 전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지체가 영광을 받게 되면 전체 몸이 영광을 입는다. 즉 손가락에 보배로운 가락지를 끼거나 머리에 화려한 면류관을 쓴다면 그것은 손가락이나 머리가 아니라 전체 몸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공동체에 있어서도 그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교회에 속한 한 지체에게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거나 어떤 고통스런 일이 닥치게 된다면 온 교회가 그 아픔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지체에게 감사할만한 좋은 일이 생긴다면 전체 교회가 그 즐거움에 참여하게 된다. 이처럼 지체가 고통을 당하거나 영광을 얻게 될 때 전체 몸은 다 같이 그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의 직분 자들 (28-31)

 

   교회는 살아 활동하는 유기적인 조직체이다. 하지만 교회는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의 탁월한 능력에 의해 움직여질 수 없을뿐더러 전체 회원들의 결집된 인간적 역량을 기초로 하여 공동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는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고유한 뜻에 따라 인도해 가시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교회에 다양한 여러 직분 자들을 허락하셨다. 그 가운데는 사도들(apostles), 선지자들(prophets), 교사들(teachers)이 있었으며, 기적을 행하는 자들(workers of miracles),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those having gifts of healing), 다른 이들을 돕는 자들(those able to help others), 지도력이 있는 사람들(those with gifts of administration), 다양한 방언을 말하는 자들(those speaking in different kinds of tongues) 등이 있었다(고전12: 28).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그와 같은 특별한 은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아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그것을 스스로 선택해 소유할 수도 없었다. 도리어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특정 직분을 소유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교회는 그것을 방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은 자신의 이성과 경험에 따라 그 직분을 이용하려고 하는 자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다양한 직분 자들 중에서는 특정 개인이 다른 직분 자들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고 상대적인 우위에 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직분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몸 된 교회에 온전히 순종해야만 한다. 또한 모든 교인들이 동일한 직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모두가 사도일 수 없으며 선지자나 교사일 수 없다. 그리고 누구나 특별한 기적을 행하거나 질병을 고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방언을 하고 통역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직분들에 관한 근본적인 원리는 비단 고린도교회뿐 아니라 초대교회들과 더불어 역사상 존재하는 지상의 모든 교회가 받아들여야 할 소중한 내용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요구이자 명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도 직분에 관한 분명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4: 11,12)

 

에베소서에 기록된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바울이 했던 말과 대동소이하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다양한 직분 자들을 허락하신 이유는 오로지 지상에 그리스도의 몸 즉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즉 직분은 종교적인 활동을 통해 개인을 교회 가운데 드러내고자 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만일 직분이 개인의 종교적인 명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 교회는 즉시 세속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권세와 연관된 조직적인 서열이 생기거나 부당한 권위주의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단지 주님께서 각 직분 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하게 잘 감당함으로써 참된 권위를 통해 주님의 교회를 순수하게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신앙이 없거나 미숙한 교인들이 그런 직분들을 탐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그런 직분들이 아니라 보다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이는 물론 직분과 은사들 사이에 크고 작은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교회 가운데 제일 좋은 길을 보이겠다는 말을 하면서, 신앙의 소중한 본질이 되는 믿음, 소망, 사랑에 관한 언급을 하게 된다.

 

 

5.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내용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교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은사들과 직분에 관한 특별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각별히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울이 말한 은사들과 직분들을 역사적 보편교회의 기초가 되는 사도교회 시대의 특성과 연관 지어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도교회와 보편교회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AD70,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제국의 이방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는 시점과 더불어 사도교회와 보편교회의 시대를 구분한다. 이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노아 홍수사건, 아브라함의 부르심, 모세의 사역, 다윗왕국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구속사적 시대를 구분하는 것과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동일한 백성들이지만 역사적 상이한 시대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은 획일적이지 않고 특성 있게 적용되었다. 이처럼 신약시대에도 사도교회와 보편교회는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상이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이는 특히 은사와 직분 문제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무관한 이방종교들 가운데서도 크고 작은 다양한 기적들이 수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방인들 가운데도 각종 방언, 예언, 병 고치는 일 등이 얼마든지 많이 발생한다. 이는 겉으로 나타나는 종교적인 현상만으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비록 기독교 내부에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성령의 사역으로 단정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구약성경의 첫 책인 모세오경과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거짓선지자들의 기적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하고 있다(13: 1-3; 13: 13,14; 19:20).

   우리에게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과연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분별을 해 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 즉 사도교회 시대에 사도들과 예루살렘 공의회가 감당했던 것과 같은 신령한 승인기관(承認機關)이 없는 것이다. 원래는 교회가 그 기능을 감당해야 하지만, 종말의 때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혼합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더 이상 교회의 진정한 권위로부터 그것을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타락한 인간들은 항상 자기 경험중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설령 아무리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단 한 줄의 말씀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우리가 방언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왔을 경우 그 방언은 곧 성경에 덧붙여져야 하는 진리의 말씀이 된다. 즉 방언과 통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되었다면 그것은 곧 성경이 되는 것이다.

 

   또한 직분에 있어서도 사도교회 시대와 보편교회 시대의 상이한 특성이 나타난다. 사도교회 시대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 등 다양한 직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보편교회 시대에는 특별 계시와 연관된 모든 은사들이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을 중심으로 통합되는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교회시대를 여는 사도행전의 초반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의 직분과 봉사하는 직분인 집사를 구분한 것에서 전체적인 의미가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목회서신이라 일컬어지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서 그에 관한 구체적인 교훈이 언급되고 있다. 이는 장래 보편교회 가운데 있게 될 직분에 대한 예언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보편교회 시대의 장로는 교회를 위한 감독자로서,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치리하는 일반 장로로 구분되어 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는 형제이며, 장로는 말씀보존과 그 말씀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거룩하게 감독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에 반해 집사는 교회의 일반적인 행사와 재정적인 문제에 연관되는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다양한 직분 자들 사이에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높고 낮음이 없다. 즉 목사가 장로보다 높은 것이 아니며 장로가 집사보다 높은 것이 아니다. 모든 직분 자들은 평등한 관계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에는 목사와 장로들의 회합인 당회가 있어서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인 면을 살피게 된다. 그리고 집사들의 모임인 집사회에서는 성도들의 생활을 살피며 성도들이 주안에서 서로 간 돌아보며 살아가도록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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