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창조질서 속의 남자와 여자(고전11: 1-16)

 

 

1. 나를 본받는 자 되라 (1, 2)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을 하고 있다. 죄인인 자신을 본받지 말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성도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기를 본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분명한 어조로 자신을 본받으라고 했다. 이 말의 중심에는 앞부분에서 그가 언급한 하나님의 영광(고전10: 31)하나님의 교회(고전10: 32)에 연관되어 있다. 이는 바울 자신의 윤리적 삶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과 그의 몸 된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 1)

 

   바울은 여기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언급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순종의 사역을 통해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분이다. 그에 대한 바울의 고백과 명령은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 유지해야 할 마땅한 처사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러한 신앙정신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대로 상속되어 살아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바울은 이 말과 더불어 유전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고전11: 2). 본문에 기록된 유전이란 단순한 전통(tradition)이 아니라 규례(ordinance: KJV)를 의미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언약에 밀접하게 연관된 의미로서 교회가 소유한 신앙의 근간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기억하며 그전에 교회에 전해준 유전 곧 규례를 잘 보존해 온 것으로 말했다. 사도는 그 점에 대해 저들을 칭찬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앞부분에서 보기에는 고린도교회에 상당한 문제들이 있었다. 대다수 교인들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고린도교회가 유전을 잘 보전하여 지킨 것으로 말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교회의 중심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보다 나중에 따라오는 일이기는 하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고린도후서, 참조). 그 가운데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회개가 뒤따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바울서신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저들의 중심에 하나님의 언약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사도바울의 편지를 진리의 계시로 받아들이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강하게 반발하며 제 갈 길로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연약할 때조차 하나님의 언약을 교회 가운데 잘 보존하는 것은 교회가 소유해야 할 신앙의 본질에 속한다.

 

 

2. 여자의 머리는 남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 (3-10)

 

(1) 창조질서

 

   또한 바울은 이와 더불어 창조와 연관된 중요한 질서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제시된 언약적인 관계로서 인간들이 자의에 따라 함부로 변개하지 못한다. 교회 가운데 창조와 연관된 질서가 굳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드러나고 있는 가장 소중한 창조질서는 하나님 자신과 그와 더불어 존재하는 성도들 사이의 관계이며, 동시에 남자와 여자의 보편적인 관계이다. 이는 결코 시대적인 환경에 따라 뒤바뀔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에 해당되는 근본적인 내용이다. 바울은 그 점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11: 3)

 

   우리가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 생각해야 할 점은 바울의 이 교훈이 하나님의 언약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현실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말이 아니라 교회의 근간이 되는 하나님의 언약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즉 이에 관한 교훈은 일반 윤리적인 내용에 연관되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시대적 문화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요청에 온전히 순종하시는 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선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위해 스스로 굳건한 언약을 세우셨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 타락한 세상에 성자 하나님을 독생자로 보내 놀라운 구원 사역을 감당하셨다.

   바울은 그에 관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교회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언약적 질서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우리가 주의 깊게 깨달아야 할 바는 여기서 보게 되는 성경본문이 가정의 남편과 아내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남자와 여자에 관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5: 22-24, 참조). 우리는 이것을 교회의 직분 및 남녀의 기능에 연관되는 중요한 교훈으로 이해해야 한다(딤전2: 12-14, 참조).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이래 할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 할례는 남자들에게만 베풀어졌다. 그렇다면 할례를 받지 않은 여성들은 그와 무관하다는 말인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남자들이 할례를 받음으로써 여자들은 그 의미 가운데 자동적으로 포함되었다. 즉 남자들이 대표성을 띠고 할례를 받음으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집안은 할례 받은 가정이 되었으며 그에 속한 모든 여성들도 당연히 그 의미에 참여했다.

  사도바울은 이처럼 신약시대 교회 역시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구별되는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형식적인 차별대우와 연관되는 의미가 아니며 남성우월이나 여성비하를 주장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이 교훈은 교회 가운데서 남성과 여성의 언약적 지위가 창조질서에 연관되어 있으며 그 역할적 의미가 상이하다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그에 대한 표시로 남자는 공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은사를 드러낼 때 머리에 수건을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요구했다. 이는 교회 안에서의 질서적 기능상 남녀간에 분명한 구별이 있어야 함을 말해준다. 거기에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그에 대한 거룩한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남자는 공적으로 기도할 때 결코 머리에 수건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시에는 자신의 구별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남자들 가운데 굳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자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울은 남자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란 남자의 머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요구를 벗어난 그의 기도와 예언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뿐더러 그의 열정적인 종교심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할 따름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가 공적인 예배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기도나 예언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머리 곧 하나님의 형상이자 영광이 되는 남자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질서에 기본적인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자가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머리를 빡빡 민 것과 같다는 사실을 말했다.

  만일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려거든 차라리 머리카락을 깎아버리도록 요구했다. 이는 그렇게 하지 말하는 의미이다. 여자가 머리를 미는 것이 부끄러운 행위임을 알고 있다면 머리에 수건을 쓰고 공적인 은사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은 채 공적으로 기도와 예언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뿐더러 교회에서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본문 가운데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영광이라는 점을 분명히 언급했다(고전11: 7). 따라서 남자는 마땅히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기도와 예언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여자는 남자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고 그의 영광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은사를 드러내야 한다. 이 말은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께 기도 드리며 예언을 할 때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구속사를 기억하는 가운데 그렇게 하라는 의미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우리는 바울의 이 가르침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며, 모든 성도들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창조질서와 그에 연관된 깨달음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 예속되어 있듯이 여자가 남자에게 예속된 관계에 놓여있음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교회에서 공적으로 기도하며 예언할 때, 남자는 짧은 두발을 한 머리에 수건을 쓰지 말아야 하며, 여자는 긴 두발이 있는 머리 위에 수건을 써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남성우월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맨 처음 여자를 통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사실을 교회가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딤전2: 12-14). 즉 아담과 하와로부터 발생한 처음 타락한 사건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항상 기억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2) 여자를 위한 남자가 아니라 남자를 위한 여자

 

   우리는 가정질서 가운데 남편과 아내의 상이한 기능과 역할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그와 더불어 온 교회가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공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경륜이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남녀는 신앙인격상 평등하되 주어진 의미와 사역의 기능에 있어서 동등한 것은 아니다.

   바울은 본문 가운데서 남자를 위해 여자가 지음을 받았으며, 여자를 위해 남자가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해 말하고 있다(고전11: 9). 우리는 이 말의 의미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옛날과 전혀 다름없이 그대로 유효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의 유행과 변화에 발맞추어 다양한 주장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에 대한 외부적인 표식으로써 머리 위에 표를 두고 있어야 함을 말했다. 여기서는 공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은사를 드러낼 때 남녀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쓰지 않는 문제를 언급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여자는 머리카락 곧 두발을 길게 해야 한다는 점과 연관이 된다.

   바울은,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여기서 천사들을 인하여라는 말은 천사들 때문에(because of the angels)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울은 무슨 이유로 인해 여자들에게 천사들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요구했을까?

   이 말은 아마도 타락한 천사들 곧 마귀의 졸개들이 두발을 통해 여성들을 미혹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탄은 맨 처음부터 남자가 아닌 여자를 일차적인 유혹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즉 사탄은 아담을 유혹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라 하와를 유혹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는 남자보다 여자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여자들은 머리를 길게 함으로써 하와를 기억하는 가운데 남성보다 강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상징적인 표를 두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3. 하나님을 위한 인간으로서 남자와 여자 (11-15)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등이 없다. 즉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남녀의 구별이 선명하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관점에서는 서로 간 동일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천국에는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음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혼인관계에 있어서도 우리가 지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22: 30). 영원한 천국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성별에 상관없이 훨씬 아름답고 완벽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과정과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형편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더불어 그와 연관된 언약적인 관계를 알려 주신 것이다. 이에 관한 의미는 지상 교회 가운데서 분명히 드러나야만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기도와 예언을 비롯한 공적인 은사를 드러냄에 있어서 남자는 결코 머리에 수건을 쓰지 말아야 하며 여자는 반드시 머리에 수건을 써야 했다. 그리고 남자는 짧은 두발을 해야 하며 여자는 머리카락을 길러 긴 두발을 해야 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남자든 여자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해야만 한다.

 

 

4. 우리가 받은 교훈과 교회의 규례 (16)

 

   인간은 남자든 여자든 인간의 두발이 자기의 외모를 치장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두발을 단정하게 하는 것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우리 시대에는 두발을 사람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식물 정도로 이해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언약과 질서가 드러나야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 있어서, 남자의 두발과 여자의 두발은 인간들이 자기 취향대로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세속화된 시대의 나쁜 영향을 받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여간 주의 깊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들이 두발을 자신의 외적인 미()와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인간들은 두발형태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했다. 그것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며 나름대로 권위의 상징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두발을 통한 인간들의 외모에 대한 변화추구와 미적인 가치 부여는 지난 세기에 들어와 서서히 시도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처럼 정착된 것이다.

나아가 우리 시대에는 성경의 모든 교훈들을 시대와 문화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21세기의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인간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모든 성경을 역사와 종교적 산물로 치부한다면 그런 식으로 접근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주어진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다. 그것은 역사적 반응에 따라 인간들이 기록한 내용이 아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적 정황 가운데 주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 항상 동등한 의미와 효력을 지닌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교회들뿐 아니라 역사적 모든 교회들을 포함하여 오늘날 우리시대의 교회들 역시 그 내용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두발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구약시대의 나실인 제도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세는 율법 가운데 그에 관한 기록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된 나실인 제도를 두신 것은 그에 대한 자신의 언약적 필요성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여기서 특별히 나실인의 머리카락 곧 두발에 연관된 교훈을 기억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6:1-8)

 

   우리는 구약시대의 나실인 제도를 보며 머리카락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남자든 여자든 인간의 두발은 자신의 미()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드러내는 방편이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두발의 의미를 기억하는 가운데 건전하게 잘 관리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두발은 인간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치장하도록 하기 위한 장식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는 방편으로 주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예수님의 초상화를 머리에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긴 머리카락을 지닌 예수라고 주장되는 초상화의 두발은 중세 타락한 시대의 관습에 따른 두발형태와 연관된다. 우리는 결코 우상화(偶像畵)인 그림을 본으로 삼을 수 없다. 교회 가운데는 항상 두발을 통해 남녀의 기능이 다르다는 사실이 언약적 표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여성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에 관한 사도바울의 교훈을 두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을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사도 시대 교회에서 기도와 예언의 은사를 공적으로 드러낼 때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는 고린도교회에만 국한된 요구가 아니었다. 당시 전 로마제국의 세계에 흩어져 있던 교회와 성도들은 어느 지역에 있든지 바울의 그 요구를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즉 남자와 여자의 머리에 수건을 쓰고 쓰지 않는 문제는 바울이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처음 만들어낸 규례가 아니라 언약적 질서 가운데 당시 교회에 이미 보편적으로 존재하던 규례였던 것이다.

   둘째는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예배 시간 동안 항상 계속 쓰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예배에 참여하는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은 채 예배에 참여했을 것이다. 단지 공적인 기도와 예언이 있을 때 특별히 머리에 수건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파괴와 더불어 열리는 보편교회 시대가 도래하기 전 직분 자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에 특별히 있었던 사도시대의 한시적 방편이었던 것이다.

   셋째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그 정신이 그대로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교회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반드시 써야 하는 것이 아닌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교회 가운데 남자와 여자의 기능상의 구별은 있어야 한다.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는 은사를 드러내는 특별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여자들의 두발이 남자들과 구별되게 길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시대에도 적용되어야 할 문제이다. 물론 우리는 남녀의 두발이 어느 정도 길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남성과 여성의 두발의 길이를 통해 쉽게 구별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단순히 1세기 당시의 사도 교회들에만 요구되었던 특수한 문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 의미가 상속되어 오고 있다. 그것은 결코 여성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들은 여성들에게만 특별한 제약이 가해졌던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처음부터 교회 안에서는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동일한 제약이 가해졌다. 즉 여자들에게 머리에 수건을 쓰고 기도와 예언을 하라는 제약을 가했듯이 남자들에게는 머리에 수건을 쓰지 말고 기도와 예언을 해야 한다는 제약을 가했던 것이다. 우리는 인간들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새겨야만 한다.

   우리는 현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두발의 자유와 다양함이 얼마나 무서운 풍조를 몰고 오는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두발에 대한 다양한 모양새와 무분별한 염색은 주의 깊게 견제해야 한다. 성 개방 풍조, 여성들의 자유주의 사상, 외모지상주의 등은 인간성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가정을 위협하는 무서운 독성을 끊임없이 내뿜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악습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허물고자 하는 강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두발에 관한 하나님의 요구를 기억하는 가운데 창조질서와 더불어 성도들의 교회적 삶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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