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가 성경에서 떠난 길로 때에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우리가 절실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주안에서

서성필.

 

 

13, 언약적 세례와 신령한 음식(고전10: 1-33)

 

 

1. 홍해바다와 세례 및 성찬 (1-4)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면서 모세에게 속해 홍해바다를 건넌 사건을 세례라 표현하고 있다. 그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즉 홍해바다를 가르는 일은 인간들이 계획한 것이 아니며 사전에 기대했던 일도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군대세력에 포위되어 죽음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신 기적적인 은혜였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으면서 바다 한 가운데로 건넌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더불어 홍해바다를 건널 때 바다가 갈라져 양쪽에 거대한 물 벽을 만들었으며 땅바닥이 말랐다. 그리고 그 위에는 짙은 구름이 뒤덮여 있었다. 이는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일이었으며 인간 역사상 전무후무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홍해바다를 건너게 됨으로써 애굽과는 완전히 단절된다. 백성들은 그 바다를 건넘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순순히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이방의 군대 세력이 무기를 갖춘 채 그들을 뒤쫓았다. 애굽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홍해바다를 건너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애굽 왕국의 적극적인 군사행동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바다를 무사히 건너 시내광야에 당도함으로써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그들을 뒤쫓던 애굽의 군인들은 홍해바다에서 몰사(沒死)했다. 동일한 홍해바다 물이 모세에게 속한(고전1:2)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출애굽을 방해하던 자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심판의 방편이 되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사건을 신약시대의 세례와 연관 지어 기록하고 있다. 홍해를 건너 시내광야에 당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전에 애굽에서 먹던 음식과는 전혀 다른 신령한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음식이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으며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나는 물을 마셨다.

   성경은 그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말하고 있다(고전10: 4).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 달려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홍해바다를 건넌 후 시내광야에서 신령한 음식을 먹고 살아간 삶은 인간 역사상 매우 독특한 사건이었다. 즉 세상 가운데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 특별한 일이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신약시대의 세례가 이와 같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르심을 입고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가입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를 건넌 사건과 비견된다. 그리고 매주 성도들에게 제공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허락되는 신령한 음식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음식을 통해 진정한 생명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2. 거짓신앙과 우상숭배 (5-7)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바다를 건넘으로써 이방신을 섬기는 애굽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더 이상 애굽에서 나는 음식이 저들의 생명을 유지시키지 않았으며 그것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나아가 그들은 그 동안 애굽에서 눈과 귀로 보고 들어 익숙해져 있던 모든 경험들을 버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한 후 시내광야에 거하던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는 애굽의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형식적인 신앙을 소유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에 따른 신앙이 아니라 저들의 종교적 감정을 만족시켜주는 신적인 존재를 원했다.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기둥과 불기둥 등 놀라운 기적 가운데 살아가면서 가시적인 하나님을 요구했다.

   출애굽기 32장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정상으로 불러 올리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과 영원한 언약을 맺기 위해서였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후 며칠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앉자 성급한 백성의 지도자들은 서서히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 주된 이유는 단지 저들이 판단하고 있던 것보다 기간이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백성의 지도자들은 당시 두 번째 영도자였던 모세의 형 아론을 찾아갔다. 백성들로부터 금을 거두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자는 것이었다. 아론은 그들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백성들로부터 금장신구들을 모았다. 아마도 그는 백성들의 종교적인 열정을 가상히 여겼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주신 것들이니 아낌없이 내어놓으라고 강요했을지도 모른다.

그 금들을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든 후, 아론은 이스라엘 민족 앞에 여호와의 절일을 공포했다(32:5). 그리고 온 백성들은 그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지내며 먹고 마시며 뛰노는 가운데 거창한 종교 축제를 벌였다. 무지한 백성들은 배도에 빠진 자신들의 형편을 망각한 채 하나님이 저들을 위해 가시적인 형태의 특별한 금송아지를 허락하신 것으로 착각하며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사실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과 민족 지도자들의 말을 듣고 그렇게 했지만 참된 성숙한 성도라면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만일 그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면 엄청난 괴로움을 감수해야만 했을 것이 틀림없다. 우상을 만드는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들은 기쁨으로 들떠 있는데 반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들은 힘든 고통에 빠지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발생한다. 기독교에 대한 굴절된 열정과 잘못된 연보와 금전적 기부행위는 도리어 하나님께 욕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적 행위를 할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선전하며 연보를 요구하는 위험한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상숭배적인 종교행위를 하면서도 배도에 빠져 기쁨에 가득 차 있는 자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해야만 한다.

 

 

3. 배도자들의 악행과 멸망 (8-10)

 

   하나님의 뜻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던 배도자들은 출애굽 하여 시내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는 애굽에서의 고된 노역이 사라지자 해방된 인생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이 많았다. 그들의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은 점차 더러운 이방종교와 연관이 되어 갔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갇혀있는 시내광야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외부로 눈을 돌려 이방 여인들과 음행 하기 시작했다. 모압 여인들이 그들을 저들의 종교적 행사에 초청했을 때 그 의례에 참여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들은 저들과 더불어 이방신인 바알브올을 섬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이방인들의 최고의 신이 곧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의 신과 동일한 존재인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들은 더러운 이방 신을 섬기는데 가담하면서도 우상숭배를 한다고 생각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크게 진노하셨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25:1-3)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서운 질병의 재앙을 내리셨다. 민수기에서는 그 재앙으로 인해 24천명이 죽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25:9). 이에 반해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시내광야의 배도적 간음행위로 말미암아 23천명이 죽었다고 말했다(고전10:8).

   우리는 민수기의 기록과 바울서신의 기록이 동일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인지 혹은 다른 유사한 사건이 또 있었는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버리고 종교적인 욕망에 이끌려 이방 여인들과 간음하다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은 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부터 가고자 했던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지 척박한 시내광야가 아니라는 그럴듯한 생각을 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했던 그 땅으로 가시기를 열망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품은 자들은 하나님께 직접 불평하는 대신 외형상 모세를 원망하면서 실제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21:5,6)

 

   배도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음식물에 대해 강한 비판을 했다. 인간들이 재배한 곡식과 목축한 동물이 아닌 특별한 음식이 하나님으로부터 날마다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들은 만나와 메추라기가 싫다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원망함으로써 배도에 빠진 자들을 결코 가만히 살려두지 않으셨다. 무서운 불 뱀들을 보내 백성들을 물어 죽이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악한 불평이 편만하게 퍼지지 않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의 방편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잘못된 불평을 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자유롭게 마음껏 인생을 누리던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복음을 알게 된 후에 신앙 안에서 제한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불평하는 행위를 막았던 것이다. 그런 자들은 세상에서의 삶은 노력여하에 따라 다채로울 수 있는데 반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런 것으로 인해 영원한 세계를 멀리한 채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은 실로 어리석은 자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4. 성도들의 거울 (11-15)

 

   이스라엘 민족은 교회 곧 우리의 거울 역할을 한다. 인간은 거울에 비추어보지 않으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도한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참된 지혜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말세에 처한 우리에게 경고를 발하는 메시지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성숙한 신앙인일수록 성경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냉철하게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신앙이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세속에 물들게 되어 자신의 신앙을 착각하게 된다. 타락한 인간들은 항상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항상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스스로 옹호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속적인 습성에 익숙한 그런 판단은 객관성을 결여한 주관적인 신앙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전10:12).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들은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타락한 이 세상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다양한 유혹들(temptations)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이 그런 것들을 보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성숙한 성도들은 오염된 세상에서 발생하는 유혹들을 피하려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에 맞서 싸움으로써 이겨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유혹거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는 백성들에게 세상의 더러운 유혹들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신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가까이 두지 말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참된 지혜를 소유한 자들은 사도 바울이 저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올바른 분별력을 가져야만 한다. 바울이 받은 계시의 말씀은 그것 자체로서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5. 그리스도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 (16-22)

 

(1) 성찬과 그리스도의 몸(16-18)

 

   성도들에게 필요한 영적인 양식은 이 세상에서 날마다 먹는 음식이 아니라 거룩한 떡과 잔이다. 바울은, 사도들의 축복과 더불어 성도들이 감사하며 마시는 축복의 잔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라 언급했다. 그리고 성도들이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했다.

   바울은 교회가 소유한 떡이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라는 사실을 연관 지어 말하고 있다. 하나의 떡으로 상징되는 한 분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은 한 몸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의미상 한 성전에 바쳐진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한 제단에 참여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즉 성전 제물을 먹는 자들이 그것을 통해 동일한 한 본질적 의미에 참여하게 되듯이,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피와 살을 섭취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2) 우상제물과 귀신의 상(19-22)

 

   사도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상과 그의 제물에 참예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상이 무엇인지 우상 제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더러운 것들이며 그에 참예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모독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러운 귀신을 섬기는 자들의 종교행위에 참예함으로써 귀신과 교제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더러운 귀신의 잔을 마셔서는 안되며 귀신의 상에 참예해서는 안 된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것과 귀신의 것을 혼합하려 하며, 배도에 빠진 자들은 귀신들과 타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은 진리와 거짓을 혼합하여 인간들의 구미에 맞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에 대해 매우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10: 21)

 

   귀신을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본질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도에 빠진 자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되풀이해 언급하면서 귀신의 편에 있는 자들과 타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행동인 양 주장한다.

   사도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경우를 상기시키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에서 발생하는 귀신의 상에 관한 문제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배척하고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먹고 마시던 행위는 이스라엘 민족 내부에서 귀신의 상을 만들어 참여하는 우상숭배에 해당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외부의 이방신들에게 눈을 돌리는 행위에 관한 것이다.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인들이 저들의 신 바알브올을 섬기는 행위에 동참했다. 그것은 곧 귀신을 섬기는 행위였다. 그들은 바알브올을 자기들이 믿는 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신인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이방인들의 종교를 수용하며 관대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악한 행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노케 만든다. 인간적인 판단을 의지하고 스스로 종교적인 즐거움을 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노엽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한 성도의 삶 (23-33)

 

  사도바울은 여기서 다시금 자신의 자유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자의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했다. 성도들이 소유한 자유는 성도들 사이에 진정한 덕을 세우는 일을 위해 사용되어야만 한다. 이는 성도의 삶은 개인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에 대한 당부를 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4)

 

   바울의 이 말은 단순히 일반적인 상황을 두고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특별히 음식에 관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 이 교훈을 주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거룩한 성찬과 더불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고기에 대해서는 굳이 따져 묻지 않고 먹을 수 있음을 말했다. 당시 시장에 나온 고기들은 대개 종교의례에 사용되었거나 관습적인 종교행위를 거친 고기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런 고기들을 먹을 때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먹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또한 불신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식탁에 초청할 때 구태여 우상제물과 연관되는지 물어볼 필요 없이 양심에 따라자연스럽게 먹으면 된다. 그렇지만 누가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란 사실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말한 자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양심과 더불어 그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것은 양심에 연관된 교훈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양심은 개인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양심이라 말하고 있다.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 29-31)

 

   바울은 이 말을 하면서 자신의 자유와 양심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서 언급된 남이란 일반적인 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성도들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서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당부를 했다. 이 말은 일상적인 생활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먹는 음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이는 일상적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상 제물에 연관된 언급을 하면서 하나님의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삶을 두고 하는 교훈이다. 따라서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말은 모든 판단과 행동에 있어서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를 가짐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시험거리가 되지 말고 신앙의 본이 되는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바울 자신은 그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주의하며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며 그들의 유익을 위해 살고자 애썼다. 그리고 주안에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는 언급을 했다. 이는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는 삶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는 것과도 같다. 바울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깨달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형제들이 많아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불신자들로부터 성별(聖別)되어야 한다. 이는 성도들의 성품 자체가 거룩하게 변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타락한 세상이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중심에 두고 매주일 성찬을 행하는 것은 타락한 세상과 구별되는 중요한 표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성별을 포기하고 하나님과 귀신을 동시에 섬기려는 혼합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음을 주의 깊게 인식해야 한다. 겉으로는 건전한 기독교의 모습을 띠고 있는 듯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이방 종교들과 내통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이 곧 그런 인물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상과 귀신의 상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잔과 귀신의 잔을 동시에 마시는 위험한 자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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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제6장, 교회의 권세와 순결(고전5: 1-13)' 서성필 2016.08.05 1071
246 '제5장, 교회와 하나님 나라(고전4: 1-21)' 서성필 2016.07.29 963
245 '제4장,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고전3: 1-23)' 서성필 2016.07.22 1078
244 '제3장,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고백(고전2: 1-16)' 서성필 2016.07.15 944
243 제2장, 교회의 본질과 참된 지혜(고전1: 10-31) 서성필 2016.07.08 923
242 고린도전서, 제1장, 고린도교회와 보편교회의 정체성(고전1: 1-9) 서성필 2016.07.01 2010
241 5장. 사역자들을 향한 당부, 6장. 복음을 알 수 있는 성경 서성필 2016.06.17 772
240 4장. 생명 (3)『선악과와 예수의 생명』 서성필 2016.06.17 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