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부부관계를 통한 교훈(고전7: 1-16)

 

 

 

1. 부부, 가정, 영광스러운 교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극도의 위기에 처한 시대이다. 이는 전쟁, 질병, 기근 등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의 기초가 되는 부부관계와 가정의 틀이 깨어지고 있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현대의 많은 부부들이 쉽게 이혼을 함으로써 가정이 해체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지난 20세기 후반 이래 사람들은 거의 누구나 남녀평등을 주장한다. 이는 일면 옳은 말이기도 하지만 매우 위험한 잘못된 말이기도 하다. 이를 오해하면 남녀 사이의 창조질서에 의한 차이에 대해서마저 포기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본질적인 남녀의 차별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남녀의 기능적인 면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가 난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원래 관계는 세속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이성과 경험에 따라 일반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식의 관계가 아니다. 가정에서는 아내도 남편도 서로 간 세상에서 익힌 개인적인 판단이나 시류에 따라 행동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고린도전서 7장에 기록된 본문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부부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 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5:22-33)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사실은, 바울이 기록한 위 성경 본문 말씀이 시대적 문화나 관습에 따라 주어진 교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일차적 수신자인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며, 1세기 당시 흩어진 교회들에 제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바울의 편지는 오늘날 우리를 포함한 지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바울은 위의 본문에서 부부관계와 가정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뿐 아니라 그것에 연관되는 영광스런 교회(5:27)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부부와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부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경륜을 깨닫게 된다. 이는 우주만물과 그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법칙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르다. 이처럼 우리는 부부관계와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더불어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 사이의 관계를 날마다 체험하게 된다. 이에 대한 비밀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바울은 부부간에 있어서 아내의 복종 남편의 사랑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아내는 주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남편의 모든 요구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기본적인 정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 바울은 이에 대해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이 아내들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께 복종하듯 하라는 명령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한다. 물론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몸을 내어준 것 같이 아내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요구했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그러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와 더불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바울은 그것이 곧 영광스런 교회를 세워가는 소중한 방편임을 시사하고 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과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존재하는 성도의 가정이 기초가 되어 정결한 교회로 세워져 간다. 부부와 가정의 창조질서에 따른 관계적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도께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나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그에 대한 실질적인 순종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 부부의 관계는 명확하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그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혼인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가 된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한 가지는 부부 중에 한 쪽이 신앙을 가지지 않는 경우이다.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남편은 불신자인 아내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간직해야 하며 하나님을 아는 아내는 주안에서 불신자인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즉 신앙에 연관된 내용이 아닌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사랑하고 복종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극도로 세속화되어 불건전한 남녀평등이 강조되는 타락한 우리시대에는 바울의 이 말을 구시대적인 유물(遺物)로 간주하는 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그것이 불공평하다고 여겨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곧 무서운 세속화를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계시를 그대로 가르치고 교육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나중 혼인을 하게 되면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가르치고 남자아이들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잘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복된 삶을 누리를 한 방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의 교훈은 결코 남성우월주의나 여권주의 등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위험한 개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그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2. 부부관계와 성생활 (1-4)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아담과 하와를 남편과 아내로 맺어주셨다. 이는 인간의 삶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하게 됨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보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필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반드시 혼인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들의 혼인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가 진행된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바는 부부가 되는 것과 그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가정은 하나님의 역사적 경륜에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원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성도들에게 연관되는 혼인은 창세전 하나님의 선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혼인할 배우자를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배우자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순조롭게 만나게 하신다.

 

   가정의 기본적인 중심에는 남녀간의 부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을 통해 자녀가 생산되며 지구상의 역사적 인간사회가 형성된다. 그 과정에는 창조로부터 허락된 인간들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작정과 뜻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부부로 맺어주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성()이 소중한 매개로 되어 있다. 원래적 의미에서 성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가는 은총의 방편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 가운데는 성을 더럽고 추잡한 것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완전히 벗어난 행위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한 가정으로 엮어주셨지만 하나님께 저항하는 가인 계열의 사람들은 성을 자신을 위한 주관적인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을 그렇게만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래의 뜻이 아니다. 성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부부간의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앞부분에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언급을 하면서 음행의 연고로 혼인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부부의 성관계를 나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배우자를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두라는 의미도 아니다. 이 교훈은 부부관계 이외의 기회를 엿보며 성적욕구를 충족하려는 악한 태도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부는 성생활에 있어서 상호 성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서로 간 성적인 의무를 다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부부 사이의 성생활에 있어서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상대 배우자의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아내는 자신의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맡겨야 하며 남편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배우자의 성적인 요구를 물리치거나 거부할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

   물론 부부가 상대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성관계를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자신의 신체와 정서적인 형편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가운데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물론 거기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인격과 존중감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3. 분방 (分房) 에 관한 교훈 (5, 6)

 

   인간이 혼인을 하는 주된 목적은 성생활 자체가 아니다. 육체적인 쾌락이 혼인의 근본적인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런 논리가 성립되면 성적인 장애를 지닌 사람은 혼인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건강이나 다른 여건상 육체적 쾌락을 누리지 못하게 될 때 엉뚱한 실의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부부에게 허락된 성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부부의 사랑으로 인해 인격성을 동반한 성생활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성적인 탐닉은 도리어 위험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적인 쾌락 자체를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낙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부부가 서로 분방하지 말도록 요구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 때문이라 할지라도 부부가 오랫동안 방을 따로 사용하는 것은 인간적인 이기심에 기인한다. 그것은 자신의 안일한 상태를 추구하거나 배우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옳지 않은 태도이다. 따라서 부부간의 분방은 단지 신앙적인 목적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

   바울은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얼마간 분방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찬찬히 살펴보면 부부간의 일시적인 불화를 해결하는 것과 더불어 성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자칫 부부간의 쾌락을 인생의 가치로 여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즉 부부간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얼마 동안 분방한 후 다시 합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물론 부부간의 인격적인 합의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부부간 한 쪽이 상대 배우자의 입장을 멸시하고 일방적으로 분방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사탄이 그들을 시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부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중에 상당한 부분은 성적인 갈등으로 인한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배우자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기적인 태도로 성생활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때 커다란 불만과 더불어 생활의 마찰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부간에 그런 이기적인 태도를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4. 독신자들과 과부들을 위한 권면 (7-9)

 

   사도바울은 자신의 개인적인 형편을 예로 들어 홀로 사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혼인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성경본문 가운데서 혼인과 연관된 성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성을 통한 쾌락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성생활에 대한 지나친 욕구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자신의 형편을 고백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의지를 통해 자유롭게 억누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적인 욕구가 크지 않은 것은 각 사람의 신체와 감성적인 특성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성욕에 대한 정도는 각 사람들에 따라 그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 성에 관한 욕구가 절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게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따라서 바울은 성욕이 강하고 약한 것 자체로서는 죄악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는 이를 두고 하나님께 받은 은사로 표현하고 있다(고전7:7). 즉 그 말은 성적인 욕구는 신체와 정신적인 반응으로서 인간들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억누를 수 있는 이상의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울은 성적인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정도가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혼인하지 않은 자들과 과부들에게 그냥 홀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는 성적인 욕구와 연관되는 원론적인 내용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만일 성적인 욕구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말했다.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고전7:9). 우리는 이 문제를 여간 주의 깊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성욕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성생활 자체가 마치 목적이 되는 양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이 교훈을 그런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와 같은 논리가 성립된다면 성욕을 절제할 수 없는 자는 혼인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게 되지만, 그 배우자는 상대의 성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대상이 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대두된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언급한 말을, 혼인하지 않음으로써 억지로 자신의 신앙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울은 혼인하지 않은 자들 특히 어떤 과부들 가운데 성적인 강한 욕구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혼인하지 않고 홀로 지내는 것이 미덕인양 생각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하고 있다.

 

 

5. 이혼금지 (10-13)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이혼은 어떤 경우에도 허락될 수 없다. 이는 혼인이 단순히 개인적인 남녀 사이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새로운 관계형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부부가 이혼한다고 해도 혼인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새로운 가족관계는 그대로 존속한다.

   부부가 설령 이혼을 한다고 해도 다른 가족관계를 해체하지 못하며 그것이 무효화될 수 없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은 여전히 그들의 자녀이며 그 자녀들의 본가 및 외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삼촌, 사촌 등의 가족관계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가족관계가 소멸되지 않은 부부의 이혼은 원천무효인 것이다. 세상법정이 이미 형성된 가족관계의 청산을 허락한다고 할지라도 성경은 그것을 허락 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법의 결정을 따라야 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지 분명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이혼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정당성을 띨 수 없다. 어떤 명분과 이유도 이혼을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살인은 절대 금지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도바울은 또한 혼인한 자들에게 부부관계에 관한 특별한 명령을 하고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혹 갈린다고 할지라도 혼자 그냥 지내든지 다시 남편과 화합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대해서는 아내뿐 아니라 남편도 동일하다. 남편은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본문 가운데서 갈린다는 말이 이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이혼이 아니라 별거에 연관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어성경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And unto the married I command, yet not I, but the Lord, Let not the wife depart from her husband: But and if she depart, let her remain unmarried or be reconciled to her husband: and let not the husband put away his wife(1Cor. 7:10, 11)

 

   바울은 여기서 부부의 갈라섬(depart)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만일 부부 가운데 한쪽이 이혼을 결심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게 되면 이혼이 아니라 별거를 할 수 있다. 만일 별거를 하게 된다고 해도 그 상태로 혼자 지내야 하며 이혼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현실을 두고 말하자면, 어떤 경우에도 세속법정에 이혼소송이나 이혼신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세속법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세속 법이 부부로 하여금 남남이 되는 것을 허용했다고 해서 하나님과 그의 몸 된 교회가 그것을 용납하거나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속 법을 근거로 하여 모든 것을 확증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말씀 그리고 그의 몸 된 교회의 관여와 통치아래 있다. 혼인과 이혼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악한 인간들은 개인적인 편의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쪽을 합법화하며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성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은 그런 악습을 멀리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는 형제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다면 그 여인을 버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 아내가 남편과 살기를 원하는 대도 불구하고 신앙을 이유로 저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여인에게 믿지 않는 남편이 있다고 해도 그와 마찬가지다. 이는 믿는 배우자가 불신자인 상대의 요구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 역시 별거와 연관 지어 이해해야 한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의 늪에 빠진 인간들은 교묘하게 조성된 악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부부간에 자기 마음에 차지 않거나 심한 불만이 생기면 배우자로 하여금 부정(不貞)한 길을 택하도록 교묘한 덫을 놓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배우자에게서 적절한 이혼사유를 캐내려 한다.그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타락한 인간들에게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합당하고 정당한 형편을 자신과 남에게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즉 저열하고 악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증거하고자 무던히 애를 쓰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정의 파괴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을 통해 자기는 면책(免責) 가운데 이혼의 욕망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6. 가정과 자녀 (14, 15)

 

   사도바울은 본문 가운데서 가정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믿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아내가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으며 믿는 아내로 인해 남편이 거룩한 성도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그에 대한 개념은 저들의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갈리기를 원하거든 그것을 허용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부부 사이의 관계 자체를 행복의 본질로 여기고 그것을 형식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지나친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인생을 낙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설령 부부간에 인내하기 힘든 갈등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나치게 낙심해서는 안 된다. 이는 물론 이혼을 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부르신 자기 자녀들에게 평강을 주시려는 것이지 불신자를 배우자로 둔 가정으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도록 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의 교훈이 성도의 이혼을 허용하는 말로 잘못 곡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혼이 아니라 부부간의 별거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배우자가 신앙생활을 근본적으로 방해할 경우에는 별거를 택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선의 방책일 따름이다.

   성숙한 성도들은 별거로 말미암아 심한 상처를 받게 된다고 해도 스스로 가족관계를 해체하지 않으며 고통 가운데서도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에 반해 이혼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는 위험한 행위가 된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평생 별거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이혼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 우리는 이혼이 간음의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부부관계를 죽음이 아니면 갈라놓을 수 없음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19: 6)

 

   예수님께서는 사악한 바리새인들의 시험하는 말에 대해 이같이 말씀하시면서 음행한 연고 외에는 그럴 수 없음을 말씀하셨다(19:9). 이는 배우자가 음행을 저지르게 될 경우에는 그렇게 하라는 말과는 다르다. 이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한 신약의 의미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구약 시대적 배경 가운데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순결한 삶을 강조하셨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부부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는 사실과 부부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그들을 나눌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방해하는 것은 죄악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혼인과 가정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의미가 존재함을 기억해야 한다.

 

 

7. 신앙에 있어서 부부의 역할 (17)

 

    신앙을 가진 배우자는 상대를 위해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부가 동일한 신앙을 소유한 경우에는 두 말할 나위 없다. 나아가 불신자인 배우자를 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부가 그렇지만 특히 불신 배우자를 둔 경우에는 더욱 신경 써야 할 내용이 많다. 자신의 순전한 희생과 인내를 통해 배우자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되고 전파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는 물론 단순히 인간적인 노력여하에 따라 배우자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말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는 성도들은 가정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부르심을 입은 배우자를 영원한 구원의 자리로 부르시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의 언약의 자녀들에게 말씀과 교리를 통한 올바른 교육을 시켜야 한다. 앞으로 그들이 가정과 교회를 역사 가운데 상속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1세기에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의 오염된 풍조에 따라 행동하며 반응할 것이 아니라 창조질서와 더불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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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에세이 산상수훈', 서문, [권두언]-“아프리카, 아쉬움이 남아있는 대륙’, [목차]. 이광호 목사 서성필 2015.02.13 7170
공지 '교회와 신앙'. 서 문, 머 리 말, 송영찬 목사 서성필 2014.10.11 6734
공지 ‘교회와 사명’ - 서 문, 머리말, 프롤로그. 송영찬 목사 [2] 서성필 2014.06.21 6314
공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머리글과 목차. 이광호 목사 [5] 서성필 2013.08.25 12020
258 제17장, 본질적 은사인 사랑(고전13: 1-13) 서성필 2016.11.04 798
257 제15장, 교회에서 먹는 만찬(supper)과 예배시간의 거룩한 성찬(고전11: 17-34) 서성필 2016.10.28 1004
256 제16장, 성령의 은사들과 교회의 세움(고전12: 1-31) 서성필 2016.10.28 771
255 제14장, 창조질서 속의 남자와 여자(고전11: 1-16) 서성필 2016.10.13 798
254 제13장, 언약적 세례와 신령한 음식(고전10: 1-33) 서성필 2016.09.23 763
253 제12장, 사도와 복음선포의 직무(고전9: 1-27) 서성필 2016.09.16 754
252 제11장, 우상제물에 연관된 문제(고전8: 1-13) 서성필 2016.09.09 735
251 제10장, 혼인의 본질과 독신자에 관한 교훈(고전7: 17-40) 서성필 2016.09.02 767
» "제9장, 부부관계를 통한 교훈(고전7: 1-16)" 서성필 2016.08.29 1157
249 제8장, ‘성도의 자유’와 교회와 순결(고전6: 12-20) 서성필 2016.08.19 752
248 제7장, 성도의 세상법정 소송문제(고전6: 1-11)입니다. 서성필 2016.08.12 806
247 '제6장, 교회의 권세와 순결(고전5: 1-13)' 서성필 2016.08.05 947
246 '제5장, 교회와 하나님 나라(고전4: 1-21)' 서성필 2016.07.29 827
245 '제4장,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고전3: 1-23)' 서성필 2016.07.22 963
244 '제3장,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고백(고전2: 1-16)' 서성필 2016.07.15 817
243 제2장, 교회의 본질과 참된 지혜(고전1: 10-31) 서성필 2016.07.08 798
242 고린도전서, 제1장, 고린도교회와 보편교회의 정체성(고전1: 1-9) 서성필 2016.07.01 1896
241 5장. 사역자들을 향한 당부, 6장. 복음을 알 수 있는 성경 서성필 2016.06.17 666
240 4장. 생명 (3)『선악과와 예수의 생명』 서성필 2016.06.17 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