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라는 뜻이 우리 눈에 보이는 장소나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인 성도들의 공동체 뜻하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교회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주안에서

서성필.

 

 

 

8, 성도의 자유와 교회와 순결(고전6: 12-20)

 

 

 

1. 성도의 자유 (12)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성도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자유라고 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그리고 그 자유로 인해 다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했다. 이는 자기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자유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미와 더불어 그 자유를 빌미로 다른 것에 자신을 얽매이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성도의 자유에 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가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와 양심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의지란 개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말이 아니다. 나아가 구원과 연관하여 자유로운 의지의 작용을 통해 하나님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말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신학적인 의미에서 말할 때 자유의지란 인간들의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자유의지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 아담을 창조하실 때 기계처럼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형상과 더불어 인격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후에는 그 자유의지마저 완전히 오염되어 타락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오염된 자유의지로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경배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는 인간의 전적 부패로 말미암아 그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일컫는 양심의 자유란 자연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일반적인 양심의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장로교 헌법의 맨 앞부분에 위치한 교회정치원리에는 양심의 자유에 관한 기록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양심의 자유란 일반 세속 법에서 말하는 양심의 자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타락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양심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오염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소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양심이란 그 자체로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양심의 자유라는 명분을 통해 개인적인 자유를 맘껏 누릴 수는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을 통해 자기 자녀들을 위한 그 자유를 회복하시게 된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8: 32,36)

 

   대다수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에 대해 근본적인 오해를 하고 있다. 그들은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며 자기를 죽이는 위험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참된 자유에 대한 온전한 깨달음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참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들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인 방종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즉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 말하지 않는다. 사도바울도 그 점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즉 자기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어 있지만 그것 자체로서 유익한 것은 아니며, 그 자유를 다른 것에 의해 제제를 받지도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고전6: 12).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교회를 위해 그 자유를 누릴 때 진정한 의미가 발생하게 됨을 말해준다.

 

 

2. 몸과 음식 (13, 14)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날마다 음식을 먹고 살아간다. 음식을 먹지 않고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결국 모든 인간들은 입으로 먹는 음식을 통해 자신의 몸을 지탱하게 된다. 인간은 먹는 음식이 없이는 잠시도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배불리 먹고 살아가는 삶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그것을 만족스럽게 먹기 위해 살기도 한다. 즉 그런 사람들이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남보다 더 배불리 먹고 풍족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세상에 살아가는 목적은 잘 먹고 잘사는 것에 집약된다.

   그런 식의 사고가 보편화됨에 따라, 인간들은 더 맛있고 더 비싼 음식을 풍요롭게 먹고 살아가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되는 양 착각하고 있다. 남보다 더 나은 음식을 먹으며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성공한 삶의 한 지표가 되어있는 것이다. 물론 음식을 풍족하게 먹는 문제는 그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내용들을 동반하게 된다. 즉 일반적인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형편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대다수 인간들은 세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또한 굳이 화려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힘써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나름대로 보다 나은 의식주 생활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다수의 사람들은 설령 자기가 그런 삶을 실현하지 못한다 해도 자기 자식들은 그렇게 되어 살아가기를 바라며 양육에 임한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그런 식의 사고를 가진 인간들의 판단은 어리석은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잠시 지나가는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영화(富貴榮華)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날마다 풍족하게 먹는 음식이든 그것을 먹고 즐거워하는 생활이든 결국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본문 중에서 성도들의 몸은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들의 몸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즉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의 몸은 더 나은 음식을 풍족하게 먹음으로써 값어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몸일 때 그 진정한 값어치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몸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곧 먹는 음식이 인간의 몸의 값어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몸을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에 의해 그 값어치가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살리셨다.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이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동일한 권능으로 자신의 자녀인 성도들의 몸을 다시 살리시게 된다. 타락한 인간의 육신은 멸망 당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원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상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망이다.

 

 

3. 그리스도의 지체인 몸 (15-18)

 

   하나님의 자녀들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에 붙어있는 지체이다. 이는 성도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만일 인간의 몸이 개인의 소유라면 제 맘대로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그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몸에 연결된 몸이라면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어린 교인들은 그 몸이 개인의 소유인 양 오해하고 있다. 바울은 이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있는 성도의 몸을 인간의 욕망에 의해 창기(娼妓)의 지체를 만들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창기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몸을 아무렇게나 돌리며 파는 자를 의미한다.

   사도바울은 성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그것을 예로 들어 그 점을 설명하고 있다. 교인인 자신의 몸을 창기와 연합하는 자는 그 창기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즉 부부간에 한 몸이 되어야 할 사람이 창기와 연합함으로써 더러운 자와 한 몸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바울은 그것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과 합한 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주님과 연합한 성도들은 거룩한 하나님과 한 영을 이루어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하나님과 연합하여 한 영이 된 성도가 거룩한 주님이 아닌 더러운 세상과 연합한다면 그것은 창기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룩하게 된 백성들이다. 이는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하나로 연결된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룩함을 유지해야 할 성도들이 다시금 타락한 세상과 짝하게 되면 더러운 자와 연합한 가운데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며 욕되게 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음행을 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즉 마땅히 사랑해야 할 자를 사랑하고 더러운 음행을 저지르는 자를 미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죄악은 인간의 몸밖에 존재하지만 더러운 음란을 행하는 죄는 인간에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거룩해야 할 성도의 몸을 더러운 세상에 맡기지 말아야 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성도의 몸은 거룩한 하나님께 속해 그의 지체가 되어 있는데 그 몸을 다시금 타락한 세상에 맡기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악한 죄악이 된다. 그것은 창기와 같은 세상과 더불어 쾌락을 누리며 즐기는 삶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잠시 실수하여 범죄하는 것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음행은 자신의 순결을 버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배신하는 악한 행위이다.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더러운 사랑노름을 하는 창기에게 몸을 맡기는 것은 자신의 몸을 남편으로부터 분리해 다시금 창기의 몸에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하나님께 연합된 지체를 스스로 분리해 내어 더러운 세상에 붙이는 행위는 몸으로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몸에 지체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욕망에 따라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과 연합하는 것은 도리어 죄의 종이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온전히 연합되어 있음으로써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4. 성령의 전인 성도의 몸 (19)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몸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 말하고 있다. 이는 성도들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이루고 있는 지체이며 기본적인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 좀더 근원적인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성령은 과연 지상의 어디에 거하고 계시는가? 즉 성령 하나님의 성전은 어디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선 성령의 전이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지상의 교회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 가운데 거하고 계신다. 즉 성령 하나님은 타락한 이 세상 아무 곳에나 거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오염된 세상 여기저기에 한가롭게 노니는 그런 분이 아닌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성령께서 거하시는 소중한 거처가 되어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유월절 뒤에 따라온 오순절날 있었던 성령강림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께서는 무덤에 묻힌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언약의 기초가 되는 열두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모인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다.

   악한 사탄에게 속한 가룟 유다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을 배신하고 영원한 파멸을 향해 제 갈 길로 간 후 맛디아가 결원된 그 자리를 채운 상태에서 성령께서 임하셨다. 그리하여 열두 제자로 확립된 언약의 기초 위에 모인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시게 되었다. 그 때 맨 처음 교회 가운데 모였던 성도들은 성령의 전을 이루는 최초의 구성원들이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 1-4)

 

   우리가 이 본문 가운데서 이해해야 할 바는 오순절 날 강림하셨던 처음 그 시간에는 열두 제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이 모인 바로 거기에 거하셨다는 사실이다. 성령께서는 다른 곳에는 거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교회가 퍼져나감에 따라 성령께서 거하시는 영역도 점차 확대되었다. 즉 예루살렘에 모였던 그 첫 번째 교회는 세월이 흘러 가면서 로마제국 전역으로 성장해갔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오랜 역사를 거쳐 오늘날 우리 시대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오순절날 열두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처음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성령 강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다는 사실은 그것을 증거해 준다. 이는 성령께서 강림하신 사건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상황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교회는 처음부터 천상의 언어가 존재하는 영역이었다. 그 때 성도들이 방언으로 말했다는 사실은 교회 가운데 인간의 언술이 아닌 천상의 언어가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특별한 공동체를 세워 하나의 끈으로 엮으셨던 것이다.

   이처럼 오순절날 처음 교회 가운데 강림하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거룩한 성전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 가운데 거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그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몸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는 지체가 되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5. 주님의 소유인 성도의 몸 (19, 20)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택하신 자기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 세상은 인간을 유혹해 하나님을 배신하게 했던 사탄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처참한 상태에서 신음하는 자기 백성들을 사셨다.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의 생명을 내어주고 주고 멸망 가운데 빠져있는 자기 백성들을 은혜로 구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약속하신 대로 자신의 백성들이 다시금 자기에게 속하도록 하기 위해 그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이는 인간들의 기대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작정에 기인한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이제 모든 성도들의 몸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몸은 이제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자기 백성들을 피로 값 주고 사심으로써 자신의 교회로 불러 모으셨기 때문이다(20: 28). 그러므로 성도들의 몸은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도구가 되어 있는 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사도바울은 여기서 성도들의 몸은 더 이상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만일 자신의 몸을 개인을 위한 것이라 여기고 제 맘대로 사용한다면 주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는 악한 행동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용도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나아가 자신의 몸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백성들의 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베풀어진 놀라운 은혜이자 감사의 제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그와 동일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 1)

 

   사도바울은 성도들의 몸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어야 하는지 명백히 밝혔다. 그것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교회를 권면하고 있는 바울의 말 가운데는 몸에 대한 분명한 조건이 제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도들의 몸은 더 이상 인간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피로 값 주고 사신 백성들을 자신의 기뻐하시는 소유물로 삼기를 원하신다. 그것을 위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것이 곧 교회가 드릴 영적인 예배가 된다.

   아무리 열심히 형식적인 종교 활동을 한다고 해도 자기 몸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아무런 값어치가 없다. 입술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실상은 자기를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피로 값 주고 사신 백성들의 몸을 산제사로 요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성도들의 삶 가운데 온전히 실천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더불어 타락한 세상을 거부하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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