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들 상호간에 심각한 분쟁이 생길 경우, 세속국가의 법정에 소송할 것이 아니라 교회에 그에 대한 판단을 의뢰하여야 하는데......

여러분들의 교회 당회는 그런 일에 대한 분별력과 판단을 있게 준비되어 있습니까?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교회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주안에서

서성필.

 

 

 

7, 성도의 세상법정 소송문제(고전6: 1-11)

 

 

 

1. 성도의 소송에 관한 개괄적 이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원한 천상의 나라에 속한 시민이다. 바울은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에서 성도들의 시민권은 천상의 나라(Heaven)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3: 20). 그렇지만 그들이 육신의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교회공동체 안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간다. 인간들이 서로 간 더불어 살아가면서 인간관계가 항상 원만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늘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삶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상호간에도 다양한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으며, 성도와 불신자들 사이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 또한 개별 성도와 교회조직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으며 교회와 교회 사이에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다. 또한 개별 성도와 국가 사이, 교회와 국가 사이에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험난한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일반적인 갈등을 경험하는 정도라면 모르거니와 그것이 법적인 충돌을 일으킬만한 정도의 사정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나아가 성도들 상호간에 일어나는 갈등이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성도 사이 인줄 몰랐으나 문제가 점차 심각해져 가는 가운데 상대방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과는 기본적인 자세가 달라야 한다. 더구나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만한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이성과 경험에 의한 세속적인 판단이 아니라 모든 것을 기록된 말씀과 교회의 교훈에 따라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힘써야 한다. 만일 스스로 그에 대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면 반드시 교회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 특히 목사와 장로들의 모임인 당회는 당연히 성경을 통해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당회는 그것을 통해, 교회에 속한 성도인 당사자들의 쟁점에 대하여 온전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법정과 재판관들보다 훨씬 객관적이며 분명한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 방안은 성경의 교훈을 근거로 한 공적인 답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리적으로 보아 모든 성도들은 마땅히 그에 온전히 순종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는 물론 민사적인 문제인지 형사적인 사건인지에 따라 대응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원고가 될 형편에 놓일 경우와 피고의 입장에서의 경우가 다르다. 물론 불가피하게 법정 소송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의 의사(意思)를 염두에 두고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손해 볼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2.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1)

 

   사도바울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의 갈등이나 분쟁이 일어나게 될 때 세상법정에 소송하는 일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세속정부에 속한 재판관에게 판단을 의뢰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가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 상호간에 심각한 분쟁이 생길 경우 세속국가의 법정에 소송할 것이 아니라 교회에 그에 대한 판단을 의뢰해야 한다. 바울이 성도들 앞에서(고전6: 1) 소송해야 함을 말하는 것은 곧 교회의 사역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재판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6: 1)

 

   우리가 여기서 특별히 유념해야 할 바는, 바울이 세상법정에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를 나무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방치하는 교회를 질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도들이 문제가 있을 때 교회가 아니라 세상법정에 소송하는 까닭은 그에 대한 원리를 모르거나 교회를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일반 교인들의 무지와 불신에 연유한다.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들이 교회에 그 판단을 의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적인 일반 민사문제와 형사문제는 물론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비록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뿐 아니라 세상의 제반사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하물며 교회와 성도들 상호간에 발생하는 분쟁에 대해서 진리를 소유한 교회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따라서 교회는 곧 지상의 성도들을 위한 재판기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물론 그 실제적인 담당은 말씀에 연관된 직분 자들인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의 몫이다.

 

 

3. 세상에 대한 재판관 (2-5)

 

   하나님의 교회와 그에 속한 참된 성도들은 세상을 판단하는 기능을 소유하고 있다. 이는 이성적인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말씀을 통한 심판(judge)의 권세를 포함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판단하고 심판할 수 있는 교회가 내부에서 일어난 작은 일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사도바울은 교회가 인간사(人間事)에 관한 것뿐 아니라 하늘의 천사들마저 판단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이는 사탄과 그에 속한 무리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천사들을 심판하는 위치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 성경을 근거로 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것들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서로 간 다른 주장을 하며 분쟁이 생길 때 교회는 그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성숙한 성도들은 마땅히 교회의 판단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는 성도라 일컫는 자들이 세상의 일반적인 사건에 대해 불신자인 재판관에게 판단을 의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성도라고 주장하면서 도리어 타락한 불신자들의 논리와 법리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세상 법정의 재판관에게 판단을 의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그러한 행위에 대해 강한 질책을 했다. 그것은 성도들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성경의 교훈을 따라 올바른 판단을 내릴만한 사람이 교회 가운데 하나도 없느냐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에서 성도들 간에 발생한 사건을 해결할 수 없어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교회 밖의 불신자를 재판관으로 세우는 행위에 대해 질책했던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그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고린도교회와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특별히 부끄럽게 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이는 앞에서, 고린도교회의 지도자들이 부유하고 호사스런 삶을 살고 있는 데 반해 자기를 비롯한 사도들은 환난과 궁핍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 가운데 살고 있음을 언급할 때 저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록했던 것과 크게 대조된다(고전4:10-14).

   바울은 세상을 판단하고 심판할만한 자가 고린도교회 가운데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 어처구니없어 했다. 더구나 교회에 속한 성도들 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그 전모를 확인하고 판단할 만한 참된 지혜를 소유한 자가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은 교인들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로운 자가 있으면 그에게 모든 일에 대한 판단을 맡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은 교회의 말씀을 맡은 직분에 연관되는 당회 즉 목사와 장로들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직분 기구인 당회가 해야 할 중요한 직임 가운데 하나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당회는 세속적인 문제들에 대한 성경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러므로 세상의 잘못된 가치나 악한 풍조가 성도들 가운데 들어와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분별하여 판단하게 된다. 또한 성도들 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재판관의 기능을 감당하게 된다.

 

 

4. 세속정부에 속한 불신 재판관들 (6-8)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형제가 신앙을 가진 다른 형제를 세상 법정에 소송하는 것은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성숙한 성도들은 굳이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전6:6). 이는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올바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물며 교회에 속한 성도가 타락한 세상의 불신자들 앞에서 다른 형제를 소송한다는 것은 원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울은, 성도들 상호간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어떤 교인이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존재하는 분명한 허물이라는 것이다(고전6:7).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도들 가운데서 상당한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세상의 법정에 다른 형제를 소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억울한 일을 당하고 속는 편이 낫다. 이는 그렇게 함으로써 관대한 인간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형제를 세상 법정에 소송함으로써 교회가 겪게 되는 혼란과 어려움이다.

   교회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성도들이 교회를 불신하게 되는 상황이다.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을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 왕국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도들 간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세상법정에 가져간다는 것은 교회가 이미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그런 위기를 촉발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교회 가운데 허물이 조성되도록 하는 것보다, 억울하게 손해를 보더라도 세상에 소송하지 않고 온전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다른 사람이 를 폭행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리고 혹 무엇인가 착각하여 형제라 하는 자가 를 법정에 고소하면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 성도들은 결코 자기의 권리를 찾거나 이득을 지키기 위해 세속 법정에서 법적인 투쟁을 하지 않는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들 간에는 더욱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에 연관되는 분명한 교훈을 주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5: 39,4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했던 본질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성도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세상 법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 오해하여 자신을 고소한다면, 그 이유를 알고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을 손해 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법정투쟁을 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형제들 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세상 법정에 소송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면, 믿음이 있다고 하는 당사자는 물론 그것을 묵인하는 교회 역시 불의를 행하며 서로 간 속이는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세에 대해 항상 입술로 언급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허구로 만들어 버리는 악한 일에 가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법정을 통해 개인적인 사사로운 이익을 보겠다는 자들은 형제를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결코 경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를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만하면서 하나님을 욕되고 하고 있는 것이다.

 

 

5. 불의한 자들의 결과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9-11)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의로운 자들과 세상에 속한 불의한 자들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그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속해 불의에 빠진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그로부터 받는 영원한 상속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그것을 믿음으로 수용하는 자들이 진정한 성도라는 사실을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권리를 좇는 이기적인 자들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약속되어 있음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2:5,6)

 

   하나님의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한 자들이 도리어 성도들을 괄시한다. 그들은 또한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면서 연약한 자들을 압제하며 이권을 얻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한다. 심지어는 세상의 것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것을 착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법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는 불의한 자들은 항상 연약한 백성들을 괴롭히며 미혹한다. 나아가 그것은 저들의 의도성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은 세상의 악한 것들을 동원해 성도들을 유혹하게 될 따름이다. 즉 그런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음란을 즐기며 더러운 우상들을 숭배한다. 또한 남의 것들을 탐내며 토색하면서 술 취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런 자들과 상관이 있을 수 없다.

   악한 자들은 그런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보다 세상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들은 도리어 간악한 세상의 판단이 객관성 있으며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일반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은 국가의 재판이며 교회의 판단은 종교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소유해야 할 교회에 대한 진정한 신뢰문제이다. 따라서 교회는 성숙하게 자라가야 하며 성도들은 교회의 결정에 온전히 따를 수 있을 만큼 신앙이 성장해야 한다. 즉 말씀에 근거한 교회의 판단이 세속법정의 재판보다 객관적이란 사실을 깨닫고 공교회적 판결에 순종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교회 공동체와 당사자인 본인에게 진정한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6. 누구를 위한 소송인가!

 

   일반적으로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자들은 대개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법적인 호소를 한다. 그 내용이 억울한 것이든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것이든 자신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든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 세상에서는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도리어 세상의 법적인 판결을 통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마땅히 지켜야 할 권리라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그에 대한 의미가 기본적으로 다르다. 물론 타락한 인간은 본성상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개인적인 의도와 목적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성도들의 자세 가운데는 교회를 위한다는 분명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말은 교회를 위해 세상법정에 소송한다거나 교회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성을 띤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리어 정말 위험한 태도는 자기의 개인적이며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상법정에 소송하면서 마치 하나님을 위한 것인 양 핑계 대는 행위이다. 설령 세상법정의 판결로 말미암아 교회가 상당한 이익을 취하고 개인에게 엄청난 이득이 돌아온다 할지라도 교회와 성도들 간에 일어난 문제를 세상법정에 판단을 의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나라에 연관되어 있으며 그 나라의 법질서 가운데 살아간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6:33)고 하신 명령은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적용되어야 할 말씀이다. 그러므로 소송을 고려할만한 어떤 극단적인 형편에 놓인다 할지라도 성도들은 그 말씀을 기억해야만 한다.

   성도들 간에 분쟁이 야기될만한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세상 법정에 가져가지 않고 교회로 가져왔을 때 교회 역시 주님의 그 말씀을 염두에 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진지한 자세로 문제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성도들이 요구하는 판단을 기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정소송은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근본 목적이 될 수 없다. 인간생활 가운데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생겨날 수 있으며 교회 가운데서도 그와 같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만일 저들에게 그런 문제가 생길 경우 교회에 판단을 의뢰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그것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교회는 인간적인 편견이 없이 공평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온전히 성장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시대에는 교회 내부뿐 아니라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가정 내부에 관한 심각한 문제들이 대두되는 경우가 있다. 현대사회는 이혼으로 인해 가정이 파국을 맞는 사례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혼을 위해 세속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가운데는 기독교인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성도들의 경우 불신자들과 다른 소중한 원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성도들의 가정에서 이혼을 고려할 만큼 부부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세상법정에 이혼소송을 하려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판단을 묻고 그에 맡겨야 한다. 물론 교회는 결코 이혼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간의 옳고 그름과 시정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과연 자신이 속한 교회에 대해 그만한 믿음과 신뢰가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교회는 성도들로부터 근본적인 신뢰를 소유할 수 있어야만 한다. 특히 교회에 의해 세움을 받은 직분 자들인 목사와 장로가 공적인 관점에서 신뢰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7.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과 교회의 법정 (法庭) 기능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원칙적으로 욕망에 근거한 자기 판단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지만 결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는 인간에게는 항상 법이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과 법은 결코 상호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들은 법에 갇혀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이 있는 것은 개인의 욕망에 따라 살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타락한 인간들의 사회에 있어서 법이 없다면 질서유지가 불가능하다. 모든 인간들이 제각각 욕망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욕망은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기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살아도 좋은 존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자기가 아닌 외부 혹은 외부 인격자의 의사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 인격자란 곧 객관성 있는 판단력을 갖춘 존재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경우 국가와 법이 이에 해당한다. 국가는 법을 제정해 둠으로써 국가에 속한 백성들의 삶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들은 욕망의 충돌로 말미암아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될 때 다른 중재자지혜자를 찾아 자문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유, 불리에 따라 그것을 수용하거나 거부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세속법정의 판결이 아닌 한 그 조언이 아무런 강제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설령 객관성 있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실제적인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법을 소유한 특별한 통치기구인 국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국가는 백성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세속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마찰이 일어날 때 재판관을 세워 국가가 제정한 법률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게 된다.

   세속국가의 법은 일반적인 권면이나 충고의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라 강제성을 띠고 있으며 명령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법에 따른 적법한 판결이 있게 되면 누구든지 그에 순복 할 수밖에 없다. 만일 그것을 거부하고 저항한다면 법을 무시한 죄로 훨씬 더 중한 가중처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세상법과 본질적으로 상이한 특별한 율법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성경으로서 교회 가운데 절대적인 잣대의 기능을 한다. 즉 성경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로 하여금 인간적인 욕망대로 사는 것을 금하고 율법 곧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요구하고 있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아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대로 살아야 한다. 따라서 교회에 속한 성도들 사이에 충돌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교회가 성경의 원리적 기준을 통해 그에 대한 해석을 하고 판결해야만 한다. 때로는 교회의 전체적인 유익을 위해 영적인 강제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 가운데 권징사역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세상의 법정으로 가져간다면 스스로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객관성 있는 을 기준으로 하여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이기적이지 않은 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는 방편이 된다. 일반 시민들은 국가가 제정한 세속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법을 준수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인 성경의 교훈에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가 또한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바는 교회법과 국가 법이 상호 충돌할 경우이다. 그 때는 마땅히 하나님의 율법이 우선이다.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인 진리이며 세속국가에 세워진 법은 백성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은 불변하는 영원한 진리지만 세속 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천하기 마련이다. 즉 하나님의 법은 전적으로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국가 법은 통치자, 일반 백성 등이 사회적 환경을 배경으로 하여 제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세속 법은 강력한 공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성경을 기초로 하는 교회법에는 강제력이 없다. 설령 누군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실제적인 제재방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교회법의 구속력이 본질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한 교훈은 계시된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사실은 교회가 법정(法庭)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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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머리글과 목차. 이광호 목사 [5] 서성필 2013.08.25 12021
258 제17장, 본질적 은사인 사랑(고전13: 1-13) 서성필 2016.11.04 799
257 제15장, 교회에서 먹는 만찬(supper)과 예배시간의 거룩한 성찬(고전11: 17-34) 서성필 2016.10.28 1005
256 제16장, 성령의 은사들과 교회의 세움(고전12: 1-31) 서성필 2016.10.28 773
255 제14장, 창조질서 속의 남자와 여자(고전11: 1-16) 서성필 2016.10.13 800
254 제13장, 언약적 세례와 신령한 음식(고전10: 1-33) 서성필 2016.09.23 765
253 제12장, 사도와 복음선포의 직무(고전9: 1-27) 서성필 2016.09.16 756
252 제11장, 우상제물에 연관된 문제(고전8: 1-13) 서성필 2016.09.09 736
251 제10장, 혼인의 본질과 독신자에 관한 교훈(고전7: 17-40) 서성필 2016.09.02 768
250 "제9장, 부부관계를 통한 교훈(고전7: 1-16)" 서성필 2016.08.29 1157
249 제8장, ‘성도의 자유’와 교회와 순결(고전6: 12-20) 서성필 2016.08.19 754
» 제7장, 성도의 세상법정 소송문제(고전6: 1-11)입니다. 서성필 2016.08.12 807
247 '제6장, 교회의 권세와 순결(고전5: 1-13)' 서성필 2016.08.05 948
246 '제5장, 교회와 하나님 나라(고전4: 1-21)' 서성필 2016.07.29 829
245 '제4장,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고전3: 1-23)' 서성필 2016.07.22 964
244 '제3장,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고백(고전2: 1-16)' 서성필 2016.07.15 818
243 제2장, 교회의 본질과 참된 지혜(고전1: 10-31) 서성필 2016.07.08 799
242 고린도전서, 제1장, 고린도교회와 보편교회의 정체성(고전1: 1-9) 서성필 2016.07.01 1897
241 5장. 사역자들을 향한 당부, 6장. 복음을 알 수 있는 성경 서성필 2016.06.17 666
240 4장. 생명 (3)『선악과와 예수의 생명』 서성필 2016.06.17 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