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오늘로서 정진국 목사님의’2008 6 중국 신학교 강의록 끝납니다.

정진국 목사님과 나눔을 가지고 싶으신 분들은 jjkn9708@hanmail.net  직접 메일을 보내시면 됩니다.

 

다음주부터는 이광호 목사님의 고린도전서 시작됩니다.

여러분들이 고린도전서를 통해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우리 가운데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악한 문제들을 철저하게 제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머리말에서 인용)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주안에서

서성필.

 

 

 

5. 사역자들을 향한 당부

 

 

(2008 6월 중국 신학교 강의록)     정진국 목사.(예본교회)

 

생명의 삶을 가르치십시오.

 

여러분들이 차분하게 성경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성경은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대단히 쉬운 책입니다. 성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복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사람에게 성경은 참 쉬운 책입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는 성경을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복음을 깨닫기 전에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 말씀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언제나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하지 마라” 라는 행위적인 내용들을 집중해서 봤습니다. 그런 행위적인 내용들은 너무 쉬웠습니다. 그것이 율법이기 때문에, 쉽게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쉬운 이유는 우리는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면서, 인간은 율법과 행위에 익숙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준”이 발동되면, 우리는 반드시 “그것은 옳아. 그것은 틀렸어. 이렇게 해. 그렇게 하지 마.”라는 율법적인 기준으로 적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친숙하게 느끼고, 성경말씀도 율법에 대한 말씀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율법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하지 마라” 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익숙해진 타락한 인간은 생명의 말씀을 오히려 어렵게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목회를 할 때, 생명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성도들이 굉장히 어려워할 것입니다. 저도 제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생명을 가르칠 때, 성도들이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성도들은 매일 저에게 와서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하지 마라” 라는 말씀들을 듣기 원합니다. “목사님. “술을 마셔도 됩니까? 마시면 안 됩니까?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 피우면 안 됩니까?” 그들은 날마다 그것을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써 해야 하나요? 하지 말아야 하나요? 해야 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들은 날마다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하지 마라” 라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악과의 영향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생명을 어려워합니다. 생명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술을 마시지 마라. 담배를 피우지 마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명은 이것을 말합니다. “술을 마셔도 된다. 안 마셔도 된다. 이렇게 행동해도 좋고, 저렇게 행동해도 좋다. 너의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너를 인도하실 것이다.” 생명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애매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내가 술을 마셔도 되나? 마시면 안 되나?” 하는 것을 애매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해야 하는 보편적인 율법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복음을 중국의 한 형제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중국인이셨습니다만, 지금은 순교를 당하셔서 세상에 안 계십니다. 굉장히 정확하게 복음을 깨달으시고, 수많은 책을 통해서 복음을 말씀하신 분이신데, 그분의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산골에 있는 한 부부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부부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1년 후에 그 부부가 복음을 전한 형제를 다시 만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날씨가 추운 곳이기 때문에, 술을 마셔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날도 술을 마셔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술을 마시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희들은 그때 우리가 왜 술을 마시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은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하지 마라” 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됩니다. 생명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 성도에게 직접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은 없지만, 그들의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삶입니다. 새 언약의 삶은 내 안에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밖에 있는 율법을 주목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목회를 하시면서 성도들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주목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들을 율법으로 괴롭히는 것입니다. “주일날 몇 시까지 와라. 성경은 하루에 몇 장씩 읽어라. 술 마시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도박하지 마라.”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너는 잘못된 거야. 믿음이 잘못된 거야.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해.” 라고 이야기합니다. 밖에 있는 율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 평가에 길들여지기 때문에, 자신의 밖에 있는 율법들을 외형적으로 지키면 그것이 훌륭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밖에 있는 율법을 지킬 때, 성도들의 안에 있는 예수께서는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신의 안에 있는 예수가 아니라, 자신의 밖에 있는 계명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교회에서 그렇게 목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의 성도들에게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하지 마라” 라는 율법을 가르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성도들은 쉽게 따라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저들의 삶 속에서 생명이 역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변화된 삶을 살수도 없을 것입니다. 종교심은 높아가고, 외형적인 모습으로는 다듬어질 수 있어도, 생명의 놀라운 역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참된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목회를 하고 싶습니까? 그런 목회를 원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으로 하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생명이 역사하는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성도들을 율법으로 이끌어가려면, 성도들을 전부 따라다니며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행위를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성도들의 겉모습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성도를 따라다니면서 행위를 가르쳐주고, 저 성도를 따라다니면서 행위를 가르쳐주면 몸이 10개라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 목회를 해도, 성도들은 그리스도처럼 변화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만 꾸미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성도들에게 생명을 가르쳐주면,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고, 여러분들이 가르치고 싶은 내용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안에 있는 예수님이 그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예수님의 성품처럼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생명으로 목회를 하겠습니까? 율법으로 목회를 하시겠습니까? 생명으로 목회를 하십시오. 그것은 곧 하나님께 목회를 맡기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으로 목회를 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의 힘으로 목회를 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생명으로 교회를 세우십시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몸은 유기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외형적인 조직이 있지만, 그 조직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어떤 정해진 룰에 따라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어떤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대로 성도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교회를 조직화시키는 것입니다. 교회를 조직화 시켜놓으면 생명이 차단됩니다. 생명이 죽습니다. 생명이 유기적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규칙을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예배당을 청소할 당번을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들이 스스로 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하셔서 스스로 예배당을 청소하고, 스스로 다른 성도들을 심방하고, 스스로 헌신하고 봉사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과시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안에 있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항상 즐겁습니다. 모든 헌신과 봉사를 기쁘고 즐겁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생명 안에서 유기적으로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일은 기쁘고, 즐겁고, 생동감이 넘치는 일들이 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고, 그러면서도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생명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성령 하나님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오케스트라에서는 여러 악기들이 자기 마음대로 연주하지 않습니다. 지휘자가 피리를 불라고 하면 피리를 불고, 피아노를 치라고 하면 피아노를 치는 것입니다.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서, 하라고 하면 합니다. 멈추라고 하면 멈춥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아름다운 음악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휘자의 지시를 무시하고, 모든 악기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결코 아름다운 음악이 아닙니다. 시끄러운 소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성령도 그런 분이십니다.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모든 성도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은 일하게 하고, 어떤 사람은 쉬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게 하고, 어떤 사람은 심방하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배우게 하고, 어떤 사람은 봉사하게 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많은 악기들이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많은 성도들이 함께 아름다운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누구는 기도해라. 누구는 일해라. 누구는 심방해라.”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그런 아름다운 교회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셔야만 이 일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성령을 따라 행하도록 가르치십시오. 성령에게 집중하는 법을 가르치십시오. 다시 말해서 성령을 좇아 사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성도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교회에서 규칙을 세우는 목회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런 목회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도 수는 늘어나고, 교회는 커진다고 할지라도 그 교회는 이미 생명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단지 조직에 불과합니다.

 

기독교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직이 되는 순간 생명은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자연세계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조직을 세우시지 않았지만, 모든 자연 만물들은 때에 따라서 자신의 역할들을 잘합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숲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다음에 찾아올 봄을 준비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규칙이나 율법을 세우지 않아도, 그들은 하나님의 자연섭리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연 질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서 살면,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질서를 이루듯이 하나님의 교회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목회를 하시기 바랍니다.

 

 

 

 

6. 복음을 알 수 있는 성경

 

 

(2008 6월 중국 신학교 강의록)     정진국 목사. (예본교회)

 

저는 이번 강의에서 여러분들께 하나님의 경륜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경륜 중에서도 특히 생명을 강조해서 여러분께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 곧 이번 강의를 마쳐야 합니다. 그러나 다음 7월에 다시 여러분들을 만나면, 그때는 이 강의를 계속 이어가길 원합니다.

저는 이번 강의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경륜이 무엇이고, 생명이 무엇이고, 죄가 무엇인지를 전체적으로 말씀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7월에 여러분과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실제적인 내용을 다루고자 합니다. 생명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생명은 어떻게 성장시키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아담의 생명을 버리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7월에 다시 만나서 해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번 강의를 마치면서, 여러분들이 생명의 복음을 깨닫기 위해 어떤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복음의 첫 걸음 - 창세기

 

모든 성경은 다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약 중에서도 감기 걸렸을 때 먹는 약과 배탈이 났을 때 먹는 약이 다른 것처럼, 성경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경륜과 생명의 복음을 깨닫는 일에 아주 유용한 성경이 몇 권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창세기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모든 복음의 기초가 들어있습니다. 창세기가 복음의 기초입니다. 다시 말해서 창세기를 이해하는 것은 복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타락의 성격, 구속의 약속, 예수의 필요성, 그리고 율법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모두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복음의 기초가 창세기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창세기의 말씀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창세기를 모르면 성경을 전부 엉터리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올바르게 알면, 복음과 생명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창세기를 철저하게 연구해야 합니다. 특히 창세기 중에서도 1장부터 12장까지가 매우 중요한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을 여러분들께 자세히 강해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복음의 핵심 - 사복음서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성경 중 두 번째가 사복음서입니다.

사복음서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입니다. 공관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말하는 것인데, 공통적인 관점으로 예수님을 봤다고 해서 공관복음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예수님의 행적 위주로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태어나셨으며, 무슨 일을 행하셨고,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에 대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대속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대속적인 죽음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이 공관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조금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생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생명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또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사도가 다섯 권의 성경을 기록했는데, 그 중에서 요한복음만큼 생명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성경이 없습니다. 요한 사도의 다섯 권의 책은 모두 생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이 가장 정확하고 자세하게 생명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중점적으로 기록한 공관복음과는 다르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을 해석해 놓은 책입니다. 공관복음이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거듭남이라는 단어도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이 “거듭남”이라는 단어는 생명적인 관점에서 구원을 설명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대속이라는 것은 죄 사함을 의미하지만, 거듭남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거듭남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관복음만 알게 되는 것은 그저 예수에 대해서 껍데기만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사역을 시작했고, 무슨 일을 하셨으며, 무슨 교훈을 가르치셨고, 어떻게 돌아가셨다.”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일들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을 통해서만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사복음서가 다 중요합니다. 네 권의 복음서 중에서 필요 없는 책은 한권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요한복음을 깨닫는 사람은 생명을 더욱 쉽게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복음 중의 복음 - 로마서 (구원의 복음)

 

그 다음에 세 번째가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복음중의 복음입니다. 특별히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는 복음이 무엇인가를 가장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읽고 또 읽어야 할 성경 중에 하나가 로마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특히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의 말씀을 꼼꼼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열심히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그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복음을 깨달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시간에는 제가 간단하게 로마서의 있는 말씀들을 정리하길 원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해드리진 못할 것 같습니다.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로마서 1장부터 3 23절까지는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며, 로마서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수많은 죄를 지은 죄인이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들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유대인들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로마서의 1장부터 3장까지 바울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4장부터 5 11절까지 바울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가 자격이 없어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 - 로마서 (대표원리)

 

그리고 로마서 5 12절부터 사도 바울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로마서 5 12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이 로마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5 12절부터는 대표원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들의 대표가 되는 아담과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으며, 이제는 사망이 모든 사람의 안에서 왕 노릇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과 반대되는 또 다른 인류의 대표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아담 안에서 태어나서 사망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순종하심으로 인해서 의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로 인해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의인이 되었으며, 이제는 생명이 모든 사람의 안에서 왕 노릇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대표 원리입니다.

이 대표 원리를 모르면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은 “아담 안에 있느냐? 예수 안에 있느냐?” 라는 것을 모든 인간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사람들은 아담 안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를 영접하면 예수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담의 생명으로 말미암아서 죄를 범하며 사망가운데 거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의를 덧입고 생명 안에서 의를 행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확연한 차이입니다.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죄의 생명이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 24)

 

사망은 아담 안에 있는 사람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임합니다. 결국 로마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아담의 생명이냐? 예수의 생명이냐?”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생명을 물려받은 사람은 그 안에서 죄를 범하며, 사망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의를 행하며,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합니다. 이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릅니다. 또 예수를 둘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예수님의 별명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마지막 아담이며, 둘째 사람입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 45-47)

 

예수님은 아담을 끝장낸 분이십니다. 예수 안에서 아담이 끝났습니다. 아담을 통해 우리가 물려받았던 죄의 근원이 예수님을 통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입니다. 또한 아담을 끝내시고 새로운 인류의 대표자가 되셨습니다. 아담이 첫 번째 대표자였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두 번째 대표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둘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두 사람 중에 어느 한 사람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 첫째 사람 아담 안에 있는 사람과 둘째 사람 예수 안에 있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들어온 사람은 이미 아담의 생명이 끝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아담 안에 있던 모든 죄의 저주를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둘째 사람 예수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에서는 저와 여러분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 17)

 

이전의 것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를 통해서 모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둘째 사람이신 예수 안에서 우리는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둘째 사람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사람이란 말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생명이 무엇인지를 이해 못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율법으로 풀어 갑니다. 행위로 풀어 갑니다. 결국 기독교를 행위의 종교로 만들고, 율법의 종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고, 율법도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로마서 5 12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앞에서 로마서 중에서도 특별히 1장부터 8장까지가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서에 있는 말씀들은 5 12-21절을 중심으로 전반부는 구원의 복음을 말하고, 후반부는 성화의 복음을 말합니다. ,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변화되는지를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의 로마서 6장부터 나오는 성화의 복음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로마서 5장의 대표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즉 생명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로마서 6, 7, 8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행위관념을 가지고 생명을 읽으려고 하니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신 분들이 신약성경을 설교할 때는 대부분 행위를 강조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는 주로 앞부분에서는 복음을 이야기하고, 뒷부분에서는 그 복음을 실생활에 적용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부분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목사님들은 뒷부분의 실생활에 대한 부분을 설교하시면서, “이것을 해라. 저것은 하지 말아라.” 같은 내용만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생명을 율법으로 바꿔서 설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런 일을 행하시지 마십시오. 성도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실 때, 반드시 생명의 복음 안에서 가르치고 설교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 - 로마서 (성화의 복음)

 

로마서의 6장부터 8장까지는 성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6장은 특히 옛 사람의 죽음을 가르칩니다. 로마서 1장부터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이중적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이신 곳이지만, 그뿐 아니라 예수와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이 죽은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위한 죽음일 뿐만 아니라, 나의 옛사람이 죽이신 장소인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우리는 나의 옛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나의 옛사람도 함께 못 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라디아서 2 20절 앞부분)

 

나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 6장은 옛 사람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새사람으로 부활했다는 사실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옛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아담의 생명으로 살던 내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의 부활과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했습니다. 이 새사람은 죄가 끝난 사람입니다. 아담의 생명이 끝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 11)

 

다시 말해서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우리가 새사람으로 부활했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의를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 있을 때는 결코 죄와 싸워 이길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죄에게 사로잡혀 죄의 종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의 옛 사람을 함께 못 박아 버리셨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함께 부활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장악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산 자입니다. 이것은 이제 우리가 의를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상관할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의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계명들을 우리가 능히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이 끝난 이후, 7장이 나옵니다. 6장은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장입니다만, 7장은 우리가 패배하는 장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누리지 못하고, 비참하게 패배하는 것이 바로 로마서 7장의 내용인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은 옛 사람의 죽음과 새사람의 부활을 깨닫고도, 율법을 지켜서 의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떨어지는 늪입니다. 다시 말해서 7장은 율법주의자들의 절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부활했다”라는 이야기에 덧붙여서 로마서 7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 우리는 옛사람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도 죽은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새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 로마서 7장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을 뿐 아니라, 율법에게 벗어났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우리는 율법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옛 사람이 죽었어. 나는 새사람이야. 그러니까 이제는 율법을 지켜야 돼.”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율법을 지키려 하는 사람들이 로마서 7장의 패배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은 복음을 말하다가 갑자기 절망으로 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바르게 복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고, 우리가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율법을 벗어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바르게 깨닫는 사람은 로마서 7장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로마서 8장에 도달하게 됩니다.

로마서 6장은 우리에게 승리가 약속되는 장입니다. 그리고 8장은 약속된 승리가 정말로 내 것이 되는 장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실생활 속에서 죄를 범하지 않고 의를 행하는 것이 로마서 8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 1-2)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 된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에게 패배하는 일이 결코 없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성령이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성령은 하늘로부터 임하는 어떤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가 영으로 우리 안에 오신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영으로 우리 안에서 사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을 요구를 이룰 수 있도록 하십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 4)

 

로마서 7장에서는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실패했는데, 로마서 8장에서는 오히려 그 생명의 성령의 법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복음을 가르치고 있는 책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작은 로마서 갈라디아서

 

66권의 성경은 모두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지금 어떤 성경은 중요하고, 어떤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복음을 깨닫고 생명을 깨닫는 일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성경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깨닫기 위해서 갈라디아서도 열심히 읽고 연구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작은 로마서다.” 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로마서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그리고 로마서와 비슷한 만큼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갈라디아서는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율법이 왜 주어졌으며, 율법의 역할이 무엇이고, 율법은 언제까지 유효한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 갈라디아서도 성령의 열매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에 대한 문제를 정리할 때는 갈라디아서가 아주 유용합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교회 - 에베소서

 

갈라디아서의 뒤에 있는 에베소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경륜과 교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교회는 성경의 주제 가운데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인데, 그것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 바로 에베소서입니다. 중국어 성경에서는 에베소서에 나온 경륜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번역이 되어있긴 합니다만, 경륜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도 이 에베소서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도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뭐라고 설명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교회는 건물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연합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에베소서 1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구원받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연합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두 가지로 나눌 때, 우주적인 교회와 기능적인 교회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교회라는 것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모든 성도들이 몸의 지체가 되어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 우주적인 교회입니다. 이 우주적인 교회 안에는 한국교회, 중국교회가 하나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이 우주적인 교회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주적인 교회는 기능적 교회는 아닙니다. 기능적인 교회라는 것은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주적인 교회 안에서 한 몸입니다. 그러나 기능적인 교회를 보면 저와 여러분은 서로 다른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교회가 있고, 여러분들이 목회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서로 다른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교회를 기능적인 교회라고 말합니다.

 

우주적인 교회와 기능적인 교회는 서로 의미하는 바가 다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우주적인 교회 안에서 한 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행정과 기능까지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주적인 교회와 기능적인 교회를 구분할 줄 아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천주교회는 우주적인 교회와 기능적인 교회를 같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천주교회가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나의 행정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천주교회의 기능과 행정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우리 모두가 영 안에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목회 현장 속에서 기능적인 교회를 세우셔야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목회를 하는 교회와 여러분들의 교회는 영적으로는 하나로 묶여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능적이고 행정적인 면에서는 서로 독립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행정적인 일들을 여러분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행정적인 일들을 저와 상의하지 않습니다. 기능적이고 행정적으로는 독립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교회를 행적으로 묶기 시작하면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초대교회는 각각의 교회가 서로 독립적이었습니다. 영적으로는 하나이지만, 기능과 행정적으로는 독립적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신약의 관점으로 보는 구약 - 히브리서

 

제가 지금까지 8권의 성경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면 알겠지만, 창세기를 제외한 7권이 신약성경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받은 생명은 신약성경이 잘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은 읽을 필요가 없는 책입니까? 창세기를 제외한 38권의 구약성경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약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약을 잘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구약성경을 중심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누가 히브리서를 썼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을 신약적인 관점으로 해석해준 책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옛 언약이라고 말하고, 신약을 새 언약이라고 말하는데, 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를 히브리서는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새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율법의 언약을 의미합니다. 그 율법의 언약이 흠이 있고 부족하기 때문에, 새 언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구약의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될 새 언약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 구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모든 것을 완성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도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고, 모든 구약적인 내용들이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입니다.

이 히브리서를 이야기하는 일에 있어서,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한 내용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별히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길 원합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브리서 8 7)

 

이 말씀을 보면 첫 언약에는 흠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옛 언약은 문제가 있고, 완벽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둘째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새 언약을 이야기하면서, 8 8절부터 구약의 예레미야서에 있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구약을 이야기한 다음에 말하는 8 13절이 결론입니다.

『새 언약이라 말씀 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 13)

 

이것이 바로 옛 언약과 새 언약 문제의 결론입니다. 새 언약은 낡아진 첫 언약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세워지는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새 언약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에서 새 언약의 내용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온전한 죄 사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죄 사함은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8 12)

 

율법 언약 안에서의 죄 사함은 1년에 한 번씩 양을 잡아야만 했습니다. , 짐승의 피를 가지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효력은 1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매년 양을 잡아서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어린양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는 대제사장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의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히브리서에서 말하고 있는 새 언약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동물의 피로 완전하지 못했던 속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로, 우리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새 언약의 두 번째 내용은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생각에 두시고, 마음에 새기셨다는 것입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브리서 8 10)

 

구약에는 하나님의 법이 돌 판에 새겨졌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율법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법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게 됩니다. 영으로써 우리의 안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결국 새 언약의 내용은 신약에서 강조하고 있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히브리서를 보면, 결국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복음을 약속하셨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1장부터 4장이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영원한 속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 언약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6장부터 8장이 성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두 번째 내용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로마서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새 언약의 두 번째 내용을 여러분이 더욱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의 1절부터 5절의 내용은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을 때에는 열매를 맺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열매를 맺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지키는 방법으로는 결코 거룩하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죽고, 새로운 신랑이신 예수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왜 예수를 새 신랑으로 맞이했습니까? 율법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안에서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7장에 1절부터 5절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로마서 7 6)

 

6절의 말씀은이제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새 언약의 시대가 온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시대가 된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의 시대에는 우리를 얽매고 있던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의문의 묵은 것이라는 말로 율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묵은 것입니다.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영은 새로운 것입니다. 이제 새 언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성경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새 언약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고,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셨고,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주셔서, 우리가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제 새 언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을 좇아 행함으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히브리서의 내용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9권이 성경을 소개했습니다. 창세기와 사복음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히브리서입니다. 그리고 특히 사복음서 중에서는 요한복음이 중요하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성경의 모든 책은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성경을 보기에 앞서서, 여러분들은 이 9권의 성경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복음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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