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부활)

(역사의 시작점에서부터 인류는 저 너머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발전해 나가면서 다양한 꿈속에 희망을 가꾸어 왔습니다. 인류는 원시적인 믿음으로부터 음부라고 불리는 저 어두움의 실체를 지나 궁극적으로 지금보다 더 발전되고 더 크게 인류를 완성하려는 비전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나 비전은 단지 꿈에 불과합니다.  )

 

 

윌리엄 E. 생스터(William E. Sangster)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마가복음 16:4)

 

이미 고인(故人)이 되신 분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인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이러한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슬픈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장례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고인은 사랑받았던 한 사람의 소중한 영혼이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실로 버림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드님께서는 끝까지 그분에게 뜨겁게 헌신했던 사랑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무덤을 가기 위해 새벽같이 출발한 여인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의 간절한 마음은 무덤을 향해 가는 그들의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마가와 누가는 그 여인들이아침 매우 일찍서둘러 무덤으로 갔다고 전합니다. 마태는 “주() 첫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에”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 이 여인들이 손에 향품을 들고 무덤을 향해 갔다고 증언합니다. 여인들은 죽은 자를 향한 정결한 열망과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필사적인 사랑으로 죽음의 기나긴 밤을 지내고 안식하고 있는 예수님의 육신을 찾아 왔던 것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찾은 시각만이 그들의 간절하고 다급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무덤을 향해 갔던 자들이 누구였는가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은 돌로 봉인되어 있었고 그 돌은아주 컸습니다.” 여인들은 아주 급하게 출발했기에 아마도 이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무덤을 향해 가던 중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서로 안타까워하며누가 무덤 돌을 굴려 옮길 수 있을까?”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드디어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돌은 벌써 굴러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무덤 안에 들어가서, 긴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매, 청년이 말하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나자렛의 예수님을 찾는구나. 그분께서 일어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분을 두었던 곳을 보라.( 16:5-6)

 

여인들은 심히 놀라 떨며 아무 말도 못하고 무덤에서 나와 도망쳤습니다.

 

그 날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새벽이었습니다. 세상이 결코 알지 못했던 황금빛 광채가 그날 아침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제 이 장엄한 사건의 의미를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질문들은 성도 여러분에게 다소 천진난만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무슨 돌이 굴러졌습니까?

 

첫 번째 질문입니다. 무슨 돌이 굴려졌습니까?

 

죽음은 인생의 큰 수수께끼입니다.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입니다. 죽음은 우주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기도 합니다. 결코 그 비밀에 대한 침묵은 깨지지 않습니다. 죽음은 모든 인류에게 다가오는 희귀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그 끝은 영광의 좁은 길이거나 수치의 넓은 길입니다. 인생이 피곤하여 절망한 자들에게 죽음은 친구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냉소적이고 인생에 환멸을 느끼는 자들에게 무심코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냉소적이고 인생에 환멸을 느끼는 자들에게 무심코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자에게 원수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원수처럼, 아니면 냉정한 동료처럼 죽음은 모두에게 다가옵니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모든 계획도 죽음이 엄습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죽음을 이길 어떠한 힘도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높은 자든 낮은 자든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더욱이 이 미스터리는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함께해 왔습니다. 역사의 시작점에서부터 인류는 저 너머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발전해 나가면서 다양한 꿈속에 희망을 가꾸어 왔습니다. 인류는 원시적인 믿음으로부터 음부라고 불리는 저 어두움의 실체를 지나 궁극적으로 지금보다 더 발전되고 더 크게 인류를 완성하려는 비전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나 비전은 단지 꿈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여전히 인류에게 미스터리입니다. 또한 죽음은 흥미로운 사색(思索)은 되지만, 결코  그 이상은 아닙니다. 죽음은 여전히어느 누구도 일단 여행을 떠나면 결코 돌아오지 못하는 미지의 나라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추구하는삶에 대한 열망이라는 작은 길을 가로막는 큰 돌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에게는 영생에 대한 확신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선한 사람도 영생을 완성할 수 있는 가치를 그 자신 속에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숭고한 사랑도 죽음이라는 침묵으로 끝나버리면 더 이상 지속할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마침내 첫 번째 부활절 날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굴려져 버렸습니다. 마가는 그 돌이아주 무거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돌이 지금 굴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죽음을 이기신 주님이 돌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더 이상 인간을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낭떠러지가 아닙니다. 죽음은 이제 저 먼 끝에서부터 황금빛을 비추는 터널이 되었습니다. 죽음은 감추어져 있는 뒷골목이 아니라 훤하게 뚫린 대로인 것입니다. 또한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잘 뚫린 고속도로입니다. 미스터리는 이제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죽은 것은 죽음이지 예수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8:11)

 

돌은 굴려졌으며, 장례식에서나 자주 사용되는영생의 소망이라는 죽음과 대조되는 말은 이제 진정 참된 말이 된 것입니다.

 

왜 돌이 굴러졌습니까?

 

이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왜 돌이 굴러졌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오시기 위해 돌이 굴려진 것이 확실합니까? 주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 그분은 문이 닫혀 있어도 벽이 가로막혀 있어도 자유로이 다니셨습니다. 요한은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님께서 오사, 한가운데 서서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돌이 굴려졌습니까? 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돌이 굴려진 것은 주님께서 나오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들어가게 하기 위해 굴려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부분일 뿐입니다. 돌이 굴려진 것은 예수님께서 나오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무덤 속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어떤 한 미미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보증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것은 단지 어떤 소식을 전하는 수준을 넘어 부활을 약속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이 부활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부활하셨음을 우리로 알게 하기 위해 돌을 굴려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빈 무덤으로 몰래 들어가서 바로이 장소가 예수님께서 누워 계셨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돌을 굴려 놓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그 차이를 명확히 아시겠습니까?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제가 한 아이를 보살피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제가 그 아이의 잠자리를 봐줘야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비록 좋은 의도로 그 일을 하지만 저는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색하게 아이를 침실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기도한 후 이불을 덮어 주고 불을 끄고 그 방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 때, 이 어린 아이가 머뭇거리며 나에게 무섭다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아이가 방 저편 한 구석에 있는 어둡고 무거워 보이는 커튼을 무섭다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그 아이의 두려움은 어리석은 것이지만, 그쪽에서 뭔가 무서운 것이 나올 것 같다고 아이는 생각하고 있으며, 그 어두움 속에서 그를 해치려는 알 수 없는 사악한 어떤 물체가 보이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나는 어른의 입장에서 그 아이의 두려움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적절하게 한 마디 한 후 그 방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또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 아이가 마음의 평화를 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방 저편 한 구석으로 가서 커튼을 치워버리고 어두운 바닥에 빛을 비추어 주며 그 아이의 두려움이 근거가 없다고 확실하게 보여 줄 것입니다. 저는 그 아이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봤니? 두려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제가 커튼을 치우는 것이 실제로 악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아이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가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아이의 눈높이까지 몸을 낮추어 앉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평안히 잠이 드는 것을 보게 될 때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와 같은 목적으로 무덤 돌을 옮겨 놓으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은 것은 우리 구주 예수님의 부활에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하게 널리 알리기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는 데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데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 굴려진 돌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 이제 세 번째 질문입니다. 저 굴려진 돌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함께 무덤에 속에 있던 여인들을 따라가 봅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묻히셨던 무덤은 큰 암벽을 파서 만든 굴이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덤이기에 몸을 움츠리십니까? 무덤이 여러분에게도 섬뜩한 느낌을 줍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곳은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구세주의 무덤은 그런 느낌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그곳은 빈 무덤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누워 계셨던 곳만을 발견할 뿐입니다.

 

이 무덤에 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설명 중에서 요한복음의 증언을 따라 가 보겠습니다. 확신컨대 이 기록 너머에는 눈으로 직접 목격한 목격자의 분명한 증언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요한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갔으나 들어가기를 주저했습니다. 뒤에서 벅찬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베드로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보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들어가자 요한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함께 무덤 속에 들어갔을 때, 아마포들이 놓여진 것과그분의 머리를 쌌던 수건은 아마포들과 함께 놓이지 않고, 싼 채로 한쪽에 따로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머리를 쌌던 수건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헬라어 단어가 어색하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저는 그 헬라어에서 그 같은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단어를 어색하게 느낀다고 말하지만저는 그러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어떤 학자들은 머리를 쌌던 수건을 묘사한 단어는 고리모양(예수님의 머리를 수건으로 둘렀을 때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모양)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이 머리 수건은 예수님의 몸을 쌌던 아마포와는 다른 곳에 놓여 있었으며, 예수님의 머리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주님의 머리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슬픔과 고통으로 짓눌려있었습니다. 그 수건의 형태는 저상처투성이의 얼굴”, 즉 그 누구보다 더 심하게 상한 예수님의 얼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 형상이 떠오르십니까? 이것이 바로 눈으로 직접 목격한 자의 증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애써 수건을 풀었던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습니다!

 

오직 홀로 홀로 홀로

그분은 무덤을 뒤로한 채 다시 살아 나셨도다.

- 일리스 메이넬(Alice Meynell)의 시 -

 

수치스럽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십자가 공개 처형과는 달리 복된 무덤은 매우 조용하고 은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조용하고 고요했는지요! 얼마나 예수님만의 복된 장소였는지요! 예수님께서는 홀로 있기를 좋아하셨지만 겟세마네에서 무덤으로 가시기까지는 홀로 계시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시간을 계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는 약 여덟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 끔찍한 여덟 시간예수님께서는 약 여섯 시간 동안 네 군데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극악무도하게 그들은 급히 서둘러 예수님을 대제사장 안나스로부터 가야바에게로, 이어 빌라도에게로, 그리고 헤롯에게로, 다시 빌라도 앞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의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가장 악독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십자가형을 선택했다면왜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은밀히 죽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술잔의 술은 그 바닥까지 다 마셔버려야 술잔이 비워진 것으로 인정되는 것처럼 십자가형으로 인정받으려면 공개 처형방식으로 행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개처형이야말로 십자가형이 주는 아주 쓰라린 고통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곳에는 소란함과 먼지와 고통과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이 끊임없는 소란함은 적어도 예수님의 고통 소리만은 아니었습니다. 군중과 조롱하는 자들과 저주하는 자들의 요동치는 소리와 흐느끼는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완전히 벌거벗겨져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때 홀로 느끼셨던 그 고요함, 적막함! 그때 예수님의 아늑해진 눈 속에 슬퍼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은 나사렛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과 갈릴리 언덕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어머니 옆에 서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요한이여!

 

“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말씀하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 19:26-27)

 

그리고 다시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고통 속에 흐느끼는 소리...그 낡은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있는 예수님의 거룩한 몸은 점점 무감각해져 갔습니다. 그리고다 이루었다!”, “아버지,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떠나셨습니다( 19:30)( 23:46).

 

그리고 이제 무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도 무덤이 차갑고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은 조용하고 평온한 곳입니다. 그곳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차가운 돌무덤 위에서 잠시 동안 안식하셨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오직 홀로 홀로 홀로

그분은 무덤을 뒤로 한 채 다시 살아나셨도다.

 

- 워런 위어스비 저「부활」(삼림 출판사)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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