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중요한 질문

(그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 인생에서 우선 순위 1위가 될까요? )

 

 

David Martyn Lloyd-Jones

 

(9:1-2 욥이 대답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질문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 동의할 것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연구를 하든, 가장 필수적인 것은 그 주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을 파악하고 집중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훌륭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궁극적으로 구분 짓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정말 중요한 것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릴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의 요령, 모든 영역에서 이해의 요령은 바로 나무들을 바라보다 숲을 놓치는 일이 없게 되는 것 - 그것은 결국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의미 심장하고, 가장 두드러진 필수적인 것을 분간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한 소송 사건을 맡아 변론하는 변호사의 역량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봅시다. 변호사로서의 그의 진짜 역량은 그가 그 사건을 변론하기에 가장 합당한 사실과 요인들에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의 목적은 전부 배심원과 재판관의 주의를 그 특징에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변론을 잘하는 변호사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맡은 사건을 읽을 때 즉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지를 알아냅니다. 그것은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도 환자에 대해 수많은 사실들을 발견합니다. 굉장히 상세한 점들에 대해서까지 알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은 이런 것들을 체로 걸러내서 그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무시한 채 그 중요한 것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훌륭한 강사란 가장 중요한 원리들을 강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강연을 들은 강사 중 가장 형편없었던 강사가 누군지 아십니까? 그는 아주 유명 인사였지만 바로 이 점에서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 주제에 관한 권위자이긴 했으나 아주 형편없는 강사였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심적인 원리들과 함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세한 점들까지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강연을 잘하는 비결은 크고 필수적인 중심 원리들을 잘 뽑아서 그것들을 청중에게 질서 정연하게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인생의 어느 면을 바라보든 첫 번째 필수 요건은 질문을 잘 던지는 기술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될 때, 예를 들어 그것이 법적인 소송 사건이든, 진찰실에서 환자를 진찰하는 일이든, 어떤 주제에 관해 강의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그 주제를 분명히 이해시키는 일이든, 먼저 거기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이 그 주제와 관련이 있는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결국 질문을 잘 던질 줄 아는 요령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인생 또는 사는 것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질문을 잘 던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물어볼 질문들은 많이 있습니다. - 인간은 지적인 호기심과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며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들을 제시하고, 어떤 질문들을 물어보며, 또 어떤 것들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유난히 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당혹과 혼란 그 자체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라면 구태여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이 지금처럼 혼란스러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방면에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신문과 책 및 잡지 등을 통해 글을 읽습니다. 온 세계가 이처럼 소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보니 끝도 없이 많은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에 가장 하기 힘든 것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분별하는 일입니다.

 

그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 인생에서 우선 순위 1위가 될까요?

- 이것이 바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이런 문제점과 어려움과 시련들로 가득 차 있는 주변 세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 중 가장 힘든 일은 이 커다란 질문 덩어리를 잘 둘러보고 "이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반드시 집중해야 할 문제다"라고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 현재 이 순간보다 더 참되고 궁극적인 질문들에 제대로 직면하지 못한 적도 없을 것입니다.

 

복음 전파, 다시 말해 성경의 메시지가 하는 일은 결국 그 첫째 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교회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대해 교회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라고 믿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질문들인지는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 경제에 관한 질문 , 사회적 상황에 관한 질문, 전쟁과 평화 및 기타 다른 수많은 것들에 관한 질문 등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가 하는 일은 바로 이 엄청나게 많은 질문들에 대해 교회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라고 믿게 하려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를 완전히 왜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성경과 교회가 하는 첫 번째 기본적인 일은 특별한 질문 하나를 제기하는 것이요 가장 합당한 질문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인류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뒤죽박죽이 되게 해놓은 이 세상과 인생 속에서 잊혀져 가는 것들에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약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현재 인간은 그 잘못 자체보다도 그 잘못의 증상이라 할 수 있는 것들에 온통 주의를 집중시키는 경향이 잇다는 것입니다. 책과 잡지들을 읽어보십시오. 방송에 나오는 토론들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면 위대한 과학자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인생 문제 전반에 걸쳐 토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 모두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어려움은 바로 그들이 그 질병 자체에 관심을 갖는 대신 그 질병의 증상이나 현상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위험은 사실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런 사실들이 발생하게 된 진짜 원인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 성경과 복음이 주장하는 전체 논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 그것은 성경과 복음 메시지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정말 그 질병이 무엇인지 말해 주고 또 그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출처라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첫 번째 원리로 돌아가서 인생의 나머지 모든 문제점과 어려움의 궁극적 출처라 할 수 있는 그 근본 문제들에 직면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책 성경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 속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맨 처음 던져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그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가 이 시간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 말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는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여명기에 이미 던져졌던 질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세대에만 사로잡혀 사는 노예들입니다. 우리 모두 20세기와 같은 세상은 일찍이 없었다고 자신 만만해 합니다. 인간은 오늘날과 같은 적이 없었다는 말, 우리는 아주 별나고 독특한 사람들이라는 말에 우리 모두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오래 전, 역사의 여명기에 욥이라는 사람이 던졌던 이 질문과 똑같은 질문이라고 말하면, 아마 사람들이 대경 실색할 것입니다.

 

그럼 욥이 던진 그 질문은 과연 무슨 뜻이었을까요? 그 질문을 약간 바꾸어 적어 보면 아마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간이 어떻게 정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어떻게 계속해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이를 수 있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 이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현대 생활 속에서 야기되는 모든 질문과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필수적이요 첫 번째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현대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일축해 버린 채, 우선 이 질문에 직면하여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절대 다른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면 반대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잘 압니다. 예를 들어, 이 말을 듣고 즉시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우선 순위 1위에 대항되는 질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질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 온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릅니까? 열방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 서로 군비를 확장하며 협박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까? 현대 세계가 안고 있는 이 모든 고통과 의구심에 대해 모른단 말입니까? 그런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실 제일 첫 번째로 중요한 질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하찮은 질문 아닙니까?"

 

그런가 하면 그것은 너무 이기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원 세상에! 이처럼 불행과 고난과 불투명한 것들이 많은 이 어수선하고 거친 세상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전 인류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이 마당에, 개인의 구원 문제에나 우리의 주위를 기울이라니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망도 없고 무덤도 없이 영원히 산다는 그 운명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라니 그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 케케묵은 복음은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이기적이다. 지금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다 - 바로 그런 이기심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소란하고 요란한 것이다. 사실 목사들은 지금 이 순간 그보다 더 큰 문제들을 다뤄야 하지 않을까? 정치 문제, 국내 문제, 경제 문제 등 그보다 더 큰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나라 시민이라면 단순히 인간이라든가 인간의 영혼, 그리고 그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보다는 오히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것 아닌가? 고작 개인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나 관심을 갖다니, 얼마나 이기적인가!" 이것 또한 우리가 흔히 부딪히게 되는 반대입니다.

 

그런가 하면 현재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바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싫어하고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노조라든가, 상공업 또는 산업 분야를 보라. 국제 관계, 부부 관계, 가족 관계를 보라. 법적인 관계를 보라. 인간과 인간 관계가 잘못돼서 생기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신인(神人) 관계가 아니라 대인(對人)관계다.

인간과 인류라는 이 커다란 문제 앞에서, 설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라고 말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이 주제에 관해서라면 이미 글로도 많이 발표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공동체" 또는 "사회"라는 단어입니다 -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반드시 사회 속에서의 인간, 공동 환경 속에서의 인간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맨 처음으로 주목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 원자력과 같이 엄청난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는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우리의 이 작은 영혼과 이 영혼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며 아주 진지하게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 천체와 광대한 우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공간과 무한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고작 인간과 인간의 영혼이라는 이 작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니, 그것이 가장 필수적이요 근본적이요 제일 첫 번째로 중요한 질문이라고 말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여러분, 이런 사람들한테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요?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랴"라는 이 첫 번째로 중요한 질문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에게, 제가 여기서 성경 자체가 주고 있는 답변 몇 가지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 질문이야말로 언젠가는 반드시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할 유일한 질문이라는 것이 맨 처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충분한 답변입니다. 저도 지금 현재 이 세상이 아주 많은 문제점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절대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가 다룰 부분이 아닙니다. 그런 질문들도 그 나름대로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직면해야 할 질문이 꼭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욥이 던진 이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평생 동안 원자력 문제에 실제로 직면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위험이 이 세상에 도사리고 잇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정말 중대한 문제로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닥칠 수도 있고 닥치지 않을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위험 중 하나 - 즉 모든 개인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치는 위험은 아니라는 뜻 - 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여기 모든 사람이 조만 간에 반드시 부딪혀야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뜻에 관계없이 이 땅에 이렇게 살게 된 존재입니다. 그가 스스로 이 땅에 있기로 선택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해 여기 있게 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현재 이 세상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궁극적인 의미에서 이 세상을 전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살게 될지 그 기한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믿든 믿지 않든, 우리는 아무튼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저 세상에 가면 오래 전에 욥이 던졌던 질문 - 하나님과 그분에 대한 나의 관계에 대한 질문 - 에 직면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 주제에 대해 아주 훌륭하고 인상적인 시를 쓴 시편 기자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피하려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려고 애쓰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은 항상 하나님은 절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사냥개"(The Hound of Heaven) - "내가 주를 피하여 흑암으로 내려가고 새벽 날개를 치며 올라간다" - 라는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인간은 이 문제를 회피하려고 애쓰지만, 성경 메시지는 여러분이 하늘로 올라가든 음부로 내려가든,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북으로 가든 남으로 가든, 언젠가는 결국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거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비로소 욥이 던진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는 질문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질문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만일 이 질문이 그처럼 절대적으로 분명한 것이라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질문에 직면하되 반드시 첫 번째로 직면해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에 따르는 두 번째 원리, 어쩌면 이 첫 번째 질문보다 더 불가피한 것이라 볼 수 있는 두 번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그 문제에 직면해야 할 뿐 아니라 언제 그것에 직면하게 될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 질문에 속히 직면해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어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안고 있는 이 원자력이라는 전체 문제와 그로 인해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세계의 돌발 사고라든가 분쟁의 가능성 그리고 그 위험들에 대해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 가운데는 아마 그 문제에 직접 부딪히지 않을 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10년 내지 15년내에 끔찍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는 이 원자 폭탄들이 사용될지도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10년이나 15년 후에 이 자리에 계시지 않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질문은 불확실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 분명히 직면해야 할 질문이요 또 언제 직면하게 될지 모르는 질문입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제가 앞으로 20년 내지 30년을 더 살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만 한다 해도, 아마 이 문제를 좀 나중에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점에 대해 전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 있지만 우리 모두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 이렇게 멀쩡하다가 내일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 인생이란 것이 무엇이냐?" 바로 오늘의 본문이 나와 있는 이 장에서 욥이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불확실한 인생! 만일 인생이 그처럼 불확실한 거라면, 언제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될지 모르는 거라면, 우리는 이 질문을 우리 인생 중 제일 첫 번째 자리에,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이처럼 이 문제는 그 불확실성 때문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질문을 검토해 보아야 할 마지막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랴"라는 질문은 그 질문에 달려있는 것들 때문에 가장 필수적이요 맨 처음으로 던져야 할 시급한 질문입니다. 여기 가장 크고 궁극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바른 답변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려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심지어 이 현재의 세계 속에서나 지금 여기서도 그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려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앞날을 점치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질병, 노년, 낙심, () 기아 상태를 야기시키는 경제 공황, 전쟁, 이런 일들 중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다라서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자기 자신에게 반드시 물어보아야 할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런 가능성들과 예측 불허의 사태에 대비해서 나 자신을 어떻게 준비시킬 것인가?"입니다..

 

그 대답은 성경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성도들의 체험에 의해 확증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은 욥의 질문에 답할 줄 아는 사람, 어떤 형편에든지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인생의 온갖 시련과 곤경과 고난에 둘러싸여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그는 또 환난의 한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말도 했습니다.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여기에 자신을 대적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든 언제나 평온하고, 화평하며,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욥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앞으로 이 중에서 어떤 것들에 부딪히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까요? 주변 세계를 둘러보십시오. 바로 그 세계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먼저 욥이 던진 그 질문에 답하는 거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질병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슬픔과 사별을 당하고도 끄떡없이 서 있을 수 있으며, 재정적인 상실이나 인생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는 다른 일들에 과감히 맞설 수 있겠습니까? 신문이나 사람들에 대해 써 놓은 글을 한번 읽어보십시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심지어 지금 이 당에서도 성공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진자 잘살 수 있는 길은 바로 욥이 던진 이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원한 나라에서야 오죽 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걸려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이 책의 말이 맞다면, 이 성경책의 메시지가 참된 것이라면, 인간의 영원한 운명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고 욥이 던진 이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저는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저의 전 운명은, 저의 영원한 운명은, 제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저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내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저를 보시고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 만큼 잘살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렇게 살지 못했다면 저는 그 반대 심판, "나를 떠나라"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보다 더 시급한 질문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이보다 더 먼저 물어보아야 할 질문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인간의 운명은 이 질문에 달려 있습니다. 사망, 영원, 영원한 삶, 이 모든 것이 이 질문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다라서 제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성경 말씀과 이 말씀 안에 담긴 메시지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다른 질문은 모두 옆으로 제쳐놓으십시오. 다른 질문들은 다 잊어버리고 이 질문 -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을 직시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계십니까? 일순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가 서게 될텐데, 그때 하나님께 드릴 말씀을 갖고 계십니까?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요 첫 번째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가 여기서 지금까지 그 질문에 대해 자주 주어졌을 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주어지고 있는 거짓 답변들에 대해 한마디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저도 목사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건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 그러니 착하게 살아야지요.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있는 한 선을 많이 행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자선도 많이 베풀고, 다른 사람의 은혜도 갚아야겠지요." 어떤 이들은 한 수 더 떠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만 가지고 되나요? 거기서 더 나아가야지요. 신앙심도 좀더 돈독해지고, 기독교 단체에 늘 붙어 있고, 교회에도 속해 있어야 하지요." 그들은 이런 사람이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보다 분명히 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입장에 대해 뭔가 하려고 애쓰며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사람들이 그 질문에 대해 이런 식으로 답하지 않던가요?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 누구하고든지 이야기하다가 욥이 던진 이 질문을 한번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이런 대답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 질문을 이런 식으로 물어 보십시오. "죽어서 영원한 나라에 가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때, 당신은 무엇을 의지할 겁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보시면서 당신의 인생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으며, 당신의 영혼을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시면 그때는 뭐라고 대답할 겁니까? 하나님 앞에서 당신 자신을 어떻게 정당화할 생각입니까?" 그들이 여러분에게 어떤 대답을 할지 그건 아주 뻔합니다. - "나는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나는 도리 수 있는 한 항상 착하게 살려고 애썼다. 정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애썼다. 나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살려고 애썼으며, 그래도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는 내가 낫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런 식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짓 답변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 성경책의 위대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욥이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우리에게 이 모든 대답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요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이 20절에서 뭐라고 했는지 한번 들어보십시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우리 양심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론적으로나 지적으로 쟁론하려 할 때 우리 안에 있는 한 음성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살아서 숨쉬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내적 감시자를 갖고 있어서 자기 마음이 자신을 정죄하고 있으며 자기가 틀렸다고 말하고 있음을 압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 정직하다면, 그는 자기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물론 이리저리 돌려가며 아주 영리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부적절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제가 만일 하나님 앞에서 저 자신이 완전하다고 주장하려 한다면, 아마 제 입이 저를 정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어려움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함도 불가하고 대질하여 재판할 수도 없고"(9:32). 바로 이것이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계시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나으냐 못하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단지 어느 정도 선을 행하고, 신앙도 돈독하고, 자선도 좀 베풀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기준은 영원한 기준입니다.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은 하나님과 어떻게 거하며, 하나님과 어떻게 말씀을 나누느냐 하는 것입니다 - 바로 그것이 욥의 문제였습니다. 그때 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23:3) - 욥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께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위엄과 능력과 주권이 너무 위대하신 반면 우리는 너무 약합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과 위엄 외에도 우리는 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 빛과 어둠 사이에는 조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참과 거짓 사이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 그런 정반대 것들 사이에는 타협점이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10:31). , 우리 모두 경건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12:29) 때문입니다.

 

점점 더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현재 이 세상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모든 개념이 비극적일 만큼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 손으로 우리의 입을 막고 말하기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지라도"(9:30).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남은 여생 동안 저 자신을 깨끗케 하기 위해 아무리 애쓰고 수고한다 해도, 저는 저의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상상하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전혀 표현되지 않은 우리의 소욕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자를 쳐다보고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간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깊은 심연까지 다 보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행동만 보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과 우리의 죄악된 상태까지 다 보십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욥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따금씩 내어놓은 모든 대답들은 완전히 거짓말이요 잘못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저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그 대답을 드릴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랴?" 모든 것을 낱낱이 다 보시는 그 빛 앞에 어떻게 설 수 있단 말입니까? 잘 이해가 가지 않으면 무한히 확대된 엑스선(X)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눈은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그 앞에 설 수 있단 말입니까? - 그 앞에서 우리가 무슨 소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 이 성경책이 주고 있는 대답뿐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욥은 "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9:33)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 그 문제를 떠맡아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심연에 다리를 놓아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나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해줄 옷이 내게 한 벌 있어서 하나님이 그 옷 외에는 아무 것도 보시지 않게 된다면, 내 안에 있는 더럽고 역겨운 것들을 보시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런 옷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인간을 의롭게 하기 위해 무언가 행하셨습니다 - 여러분과 저의 죄를, 여러분과 저의 잘못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는 이 문제 속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그것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시며, 우리 죄를 친히 감당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제가 하나님을 대면하려면, 먼저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전에, 이 더럽고 불결한 것, 이 죄책과 죄의 모든 것을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의 의로 제게 옷입혀 주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제 손을 잡으시고 저를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없이 내어 놓으시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5:15-17).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 그럼 여러분에게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의롭게 할 예정입니까? 좀더 다급하게 물어 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께 뭐라고 말씀드릴겁니까? 아직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산 기록을 가리키며 "그렇게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요 뭐,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여러분 자신의 노력과 의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반드시 그 말을 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아들을 향해 돌아서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 주셨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바로 그분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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