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성경적 역사의 중요성

 

 

David Martyn Lloyd-Jones

 

1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이 두 번째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나는 두 편지로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려서, 여러분의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 합니다.
2    그렇게 해서 거룩한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한 말씀과, 주님이신 구주께서 여러분의 사도들을 시켜서 주신 계명을, 여러분의 기억 속에 되살리려는 것입니다.
3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여 말하기를
4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 조상들이잠든 뒤로, 만물은 처음 창조 때로부터 그냥 그대로다" 할 것입니다.

5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오랜 옛날부터 있다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서 물로 형성되었다는 것과,

6    또 물로 그 때의 세계가 홍수에 잠겨서 망해 버렸다는 사실을, 그들이 일부러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7    지금 있는 하늘과 땅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 심판을 받아서 멸망을 당할 때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벧후 3:1-7)

  

 

이제 우리는 이 베드로후서 3 1-7절 말씀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일곱 절이 그 자체에 완전하고 전적인 주제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로 묶어 생각해야만 합니다.

 

사도가 이 편지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제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사도가 1 16절에서 우리 주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전반적인 주제에 대해 말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행악자들을 최후로 심판하시며 경건한 자를 구원하신다는 데 대한 확실성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그 교리에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위치와 태도에 대해서도 알아본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대에 항거하고 변질과 죄악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처신해야 할 일을 행할 것을 권고하고 나서 우리가 이 앞장에서 본 바와 같이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라는 위로와 위안의 말씀을 그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명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것을 알려주는 것도 다 좋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인들처럼 고난을 받으라고 권고하는 것도 다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대부분이 박해를 당하였고 지극히 혹독한 시련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확고부동하게 견디어내고 지속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토대 위에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그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나 알맞은 것이었습니다. , 당신이 그들에게 그 교리를 전파한다면 당신은 주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계속해서 시간은 흐르고 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잠으로 떨어진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습니다. 모든 표지들과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전파하고 있는 것과 전혀 반대되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이와 같이 계속해서 참고 견디어내라고 요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계속해서 다루고 잇는 주제이며 오늘날만큼 이 주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낀 때도 없습니다. 이 경우는 복음과 복음의 약속들과 그리고 특히 역사의 진행 과정과 이 세상에 있는 생명의 최후의 결과에 관해서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는 모든 것을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설명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입장도 사도가 이 말씀들을 기록하였을 때 통용했던 것과 같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타나는 모든 것이 여기 이 성경 속에서 가르치는 것과 반대되는 것같이 생각이 되고 또한 이 모든 반대는 오늘날 소위 여러 가지 과학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에 의해 크게 증강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단호하게 반항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사도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제 그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고자 합니다.

그가 첫 번째로 이야기한 것은 이 전반적인 문제는 근본적이고도 결론적으로 믿음의 문제이자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데 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종말을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으며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 종말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역사가 최고점과 최후의 심판을 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 그것은 우리가 가장 믿기 어려운 일들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용서의 교리와 속죄의 교리에 관한 복음을 가까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교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심판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과 세상의 파멸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 전반적인 사상이 특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일이 성경과 반대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육의 생각으로는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것은 결국 설명할 문제도 아니고 논의할 문제도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경 자체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을 기억하게 하노라"

다시 말해서 이 편지에서 우리는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모든 중심적인 문제 가운데에서 계시를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던가를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시란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잇습니다. 이 말은 이 순간에 사람들을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는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 이 성경의 계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잇는 사람과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조롱자로서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이 사람들이 계시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며 그 설명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계시의 영역은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것은 실제로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어떤 것을 제시하며 도움을 받지 않은 이성의 능력으로서 결코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의 생활에 관한 성경의 전체적 관념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서술할 수가 있습니다. , 창조 자체는 기적적인 것이며 무에서 만물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입니다. 물론 자연인은 그것이 매우 믿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며 또한 그것은 특히 지난 백 년 동안 베드로의 가르침이 거절당하고 잇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연인은 우리가 어떤 일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하고 만물은 어떤 것에서부터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진화론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되었으며 그 근본적인 문제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비록 사람들이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어떤 의미에서 그 진화론은 창조의 어떤 근본적인 부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진화론은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제시하는 모든 문제 중에서 단지 하나의 실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의 생각으로는 지극히 조롱 당할 것 같은 일들을 믿도록 요구합니다. 우리는 그 실례를 바로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베드로가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대홍수에 관한 경고와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이 그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성경은 초자연적이며 기적적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경은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 주님의 재림에 관한 모든 예언은 육의 생각으로는 지극히 환상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나사렛의 목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되신다는 것은 그 시대의 합리적인 유대인들에게는 참으로 어리석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어리석었으며 그들은 그를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이 같은 일은 정확히 시대의 종말에 대한 교리와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파멸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기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행했던 일이며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비웃으면서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과 이 세상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이것들이 당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종말을 향하고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습니까? 모든 것이 처음과 같이 그냥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거기에 대해 여러분은 인간의 이성과 이해에 여러분의 전 인생관의 기초를 두며, 또한 여러분이 헤아릴 수 있고 여러분이 해낼 수 잇는 것과 여러분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에 인생관의 기초를 두던가, 아니면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것을 배우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동의합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던가를 택해야 합니다. 종말과 최후 심판에 대한 이 교리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그리스도인의신앙에 대한 다른 모든 중요한 교리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본질상으로 계시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데 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중심적인 이야기가 다른 여러 가지 보증되는 이야기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입증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경은 이 같은 조롱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해 줌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며 우리의 믿음을 강건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이 말씀은 저에게 큰 위로와 위안을 줍니다. 같은 방법으로 그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오늘날 이런 것에 대한 회의론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떤 의미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교리를 조롱함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을 확증해 주고 잇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복음과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그 견해를 내가 계속해서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주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 견해는 세상이 마침내 완전하여질 때까지 세상은 점차로 진보하고 있고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신약성경이 예언하고 있다고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그릇된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이해하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만일 사람과 세상이 자동적으로 진보하고 있다고 한다면 현대의 세계를 이해하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그 문제로 인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믿음마저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와 같이 말하고 잇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복음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거의 2천년 동안 전파되어지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라면 더욱 강하게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잇는 위력이 있어야 한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수세기 동안 복음이 전파되어 온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의 교리도 사람의 마음속에 주입되어서 오늘날까지 전세계가 기독교화되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 견해를 지지하고 교회 박에 잇는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나라에 있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만난다 할지라도, 대부분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은 복음을 반대하거나 복음에 대해 무지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은 흔들리고 있으며 복음이 과연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모든 능력인가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복음의 가르침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이 세계가 점차로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곳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복음은, 말세에는 위험한 일이 닥쳐올 것이며 이 같은 조롱자들이 나타나고 이 세상은 복음을 비웃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물으신 것을 기억합니까? 신약성경이 전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종말이 있기 이전에 무서운 배교가 있을 것이며 이 세상은 복음을 비웃는 이와 같은 조롱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태나 상황으로 인해서 약하여지기보다는 더욱 그 속에서 참으로 현저하고도 비상하게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확증하는 것들 중의 하나를 깨달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로 하여금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게 해주는 사실은 성경이 다른 어떠한 가르침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인간과 세상을 바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무서운 특징 자체가 성경말씀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이 조롱자들의 상태와 상황을 한층 더 폭로하고 잇는데 그는 우리에게 확실한 사실들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다시금 그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조롱자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만물이 처음과 같이 그냥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교리를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는 그런 어리석은 태도를 어떻게 폭로하고 있습니까? 그는 우리에게 확실한 사실들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신학상의 어떤 동향이 일어나고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그것이 성경으로 복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방향과 비슷한 종류의 동향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동향의 창설자들은 소위 성경의 고등비평이라고 하는 것과, 특히 구약성경의 고등비평이라고 하는 것이 막다른 곤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성경을 너무 비판해 온 나머지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성구별로 분류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와야만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이 주장하는 구약의 메시지라고 부르는 것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여전히 고등비평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지만 구약의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구약의 많은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 그들은 창세기의 처음 몇 장을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과학적 지식으로 그와 같은 일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전체 속에는 종교적 가치가 담겨져 있으며 기꺼이 그 종교적 원리와 가르침을 붙잡고자 한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같은 사실들을 부인하고 있으며 그것을 신화로써 생각할 뿐입니다.

 

이것은 사도가 이 장에서 주장하는 것과 아주 반대가 되는 거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그의 전반적인 문제가 그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대홍수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베드로의 주장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의 전체적 주장은 이 사실들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나도 또한 그와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적이란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믿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구약성경에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성경적 역사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 내가 이 성경을 이해하고 있는 바로는 하나님의 구원은 행동 속에서 주어진 어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구원하시지 아니하시고 행동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 주님께서 구약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는가를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그는 대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그는 이런 것들을 믿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해볼 수 있겠습니까? 그의 인격에 대한 나의 믿음은 구약의 역사의 이런 사실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합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서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조롱자들의 이 그릇된 주장이 어떻게 여러 가지 근거에 따라 이미 변증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잇습니다. 그는 대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사실에서 한 가지 완전한 주제를 골라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조롱자들을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 옛날에 사람들이 스스로 죄악과 허물에 빠져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라고 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세상을 심판하사 파멸하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방주를 지어 자신과 가족들을 구하고 사람들에게 경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그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120년 동안 참으로 닥쳐올 파멸과 대홍수에 대해 그 시대 사람들에게 경고하였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보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시대 사람들은 그 경고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대단한 농담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그를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 바로 온 세상이 물에 잠길 것이라는 생각을 비웃고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피조물들의 안전성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산들과 계곡과 언덕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모든 것이 갑자기 파멸되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들은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면서 참으로 자신만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웃음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오만한 자신과 확신이 완전히 어그러졌으며 폭로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약성경을 올바르게 읽으면 바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온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에 관한 아모스 선지자의 엄중한 이야기를 기억합니까? 그는 닥쳐올 파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가서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람은 우리를 놀라게 하려는데 참으로 어리석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시온에서 편안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빠르고도 확실하게 파멸이 그들에게 닥쳐왔을 때에 그들이 시온에서 편안히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을 돕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사람들이 자기의 육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얼마나 하나님의 계시를 거절하였으며 이 경고들을 비웃었고, 그 후 그 사건들이 일어나자 그들이 어떻게 파멸되었는가를 보여준 구약의 중요한 메시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신약성경을 읽으면 여러분은 우리의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와 똑같은 메시지를 반복하여 강조하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계속해서 이 사람들이 그 사실들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눈을 감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일이 실제로 이미 일어났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무지는 고의적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세상을 파멸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세상도 파멸하실 것입니다. 조롱자들은 이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구약의 조롱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사실들은 엄숙한 경고로써 그들을 대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믿지 아니하는 것은 그가 역사에 대해 눈을 감고 이미 일어난 일을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도가 마지막으로 주장하는 것을 살펴봅시다. 사도는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잊고 잇는 것이라고 말하고 잇습니다. 그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것은 세상의 창조에 대해 언급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형태가 없이 공허하였으며 혼돈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꼭 한가지 곧 하나님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세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특성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있게 되는 그러한 능력입니다. 그것이 우주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정확히 그러한 방법으로 옛날의 세상이 분명하고도 영원토록 안정된 상태에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대 홍수를 명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물이 땅 위로 넘쳐흘러 옛 세상이 멸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롱자들에게는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매우 안정되어 잇는 것처럼 보이며 확고하여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과 전 우주를 만드셨고 또 지배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존재케 하실 수 있고 또 그것들을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잇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세상을 주관하시고 마치 원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별들을 자유롭게 운행시키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징벌하기 위하여 보존하고 계신 분은 바로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세상을 단번에 창조하셨고 파멸시키신 것과 같이 그는 동일한 말씀으로 세상을 다시 파멸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는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세상을 보존하여 두고"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1절에 나타난 진실한 마음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즉 그릇된 가르침으로 섞이지 아니한 마음을 의미하며 조롱자들의 마음과 반대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베드로가 서술한 바와 같이 조롱자는 세상의 사람이며 자신의 정욕을 좇아 행하는 자이고 종교 전체를 조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똑똑한 자이며 과학과 불변의 원리에 대해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똑똑한 자입니다. 조롱자는 기적을 믿으며 자연법칙에 저촉되는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의 말을 주목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을 보존하여 그러한 조롱과 그러한 가르침에 섞이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지극히 조롱거리로 생각하는 그러한 태도와 입장을 택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오늘날 이것들을 믿는다는 것은 노아 시대의 불신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인에게도 기괴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받아들이고 또한 계시로서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근본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온 세상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있는데 곧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입니다. 심판은 속히, 틀림없이,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이 두 가지 위치에서 어느 쪽에 속해 잇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육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계시를 거절하는 자연인의 비난하고 조롱하는 마음이 아닌 진실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이 진실해지도록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계시의 분명한 가르침을 거절하게 하는 모든 현대의 계시와 가르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