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음식이 육체적인 몸의 양식이듯이,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입맛을 잃게되면 심각한 육체적인 몸의 문제를 가져오게 되듯이, 영적인 욕구를 잃게 되면 치명적인 영적인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D. 펜테코스트

 

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성숙으로 나아가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때때로 그 이유를 개인적인 기질이나 신령한 것에 대한 내적인 욕구 등의 차이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을 구원을 경험하는데서 오는 차이로 결론짓기도 하는데, 예를 들자면 과거에 큰 죄에 빠졌던 사람이 아주 놀랍게 변화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성장하여, 어릴 적부터 주님을 잘 배워서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게 영적인 진보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참된 비결은 산상보훈에서 발견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5:6). 바로 영적 성장의 비결은 영적인 욕구에 있습니다.

적게 먹는 사람은 조금 성장하고, 많이 먹는 사람은 그만큼 많이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욕구가 강한 사람은 말씀을 먹고, 또한 주님과의 사귐을 통해 그 욕구가 만족함을 얻게 되며, 따라서 영적인 거인으로 점차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원칙은 성경에 기록된 영적인 거인들의 간증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담 이후로 사람이 받은 계시 가운데 가장 놀라운 계시인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함을 계시해주셨는데, 이는 모세로 하여금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하게 하고자 함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산에서 내려왔을 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세는 성막을 지었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모세는 회막에 들어갔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모세는 "주님이 계시해주신 것으로 인해 당신을 찬미하고 감사를 드립니다"라며 감사의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의 갈망을 간구로 표현했는데, "제가 주를 섬기며, 계속하여 주님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부디 저에게 주의 계획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께서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33:13)라고 했습니다.
또다시 모세는 "
"저에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18)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친히 계시해주신 어떤 것으로 만족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로 불러주신 분의 인격을 더 깊이 경험하고자 하는 더 깊은 주림(hunger)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반석 틈에 두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지날 때에 하나님의 손이 모세를 덮음으로써 모세로 하여금 소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보호조치 아래서 하나님은 모세의 갈망에 만족해하셨고, 자신의 영광을 모세에게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다윗도 그러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행했던 영적인 거인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경험을 한 다윗은 수많은 시편을 기록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여러 세대의 고난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으며, 심지어 오늘날까지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계속해서 인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것까지 교제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쉬움 없어라"( 23:1)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 6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 물기 없이 메말라 황폐한 땅에서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내가 주님을 찾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육신도 주님 찾아 애가 타서,"(1)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속 깊이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가 종교적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혹은 그가 처한 어떤 환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의 마음에 있던 주림에 만족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다른 시편 기자는 그 마음의 갈망으로 인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슴이 타도록 목말라 시냇물을 찾듯,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애태웁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명의 하나님을 갈망하니, 언제 내가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을까?"( 42:1,2). 사냥꾼에게 쫓겨 극도로 갈한 상태에 처한 사슴처럼, 그 몸의 모든 세포가 샘에서 나는 시원한 냉수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갈급함같이 시편 기자는 "내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나이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친히 예수님을 앎으로써 받은 엄청난 신령한 축복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은 유대교에 있을 때 알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빛을 로마제국에까지 가져가려는 사역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3:10)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알려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나 그 수고의 열매로 인해 그 마음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마음은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로 인해서 만족함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있는 비극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너무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바쁘게 일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 나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더 깊은 것들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가려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베드로의 관심이었는데, 즉 자신의 목양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쓴 서신에 나타나있습니다.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벧전 2:2).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아는 지식 안에서, 여러분이 자라나기를 빕니다"(벧후 3:18).

베드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적인 유아상태에서 영적인 성숙으로 자라가야 할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덧붙이길, 성숙은 각자의 영적 욕구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음식이 육체적인 몸의 양식이듯이,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입맛을 잃게되면 심각한 육체적인 몸의 문제를 가져오게 되듯이, 영적인 욕구를 잃게 되면 치명적인 영적인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원받은지 오래된 신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견뎌내었고, 말씀 안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선생이 될 자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5:11-14에 의하면, 그들은 말씀을 등한히 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영적 분별력"에 있어서 후퇴하여 유아상태에 떨어졌습니다. 그러한 위험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등한히 하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목자의 마음과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알게된 어떤 사람들의 그 구원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겉으로 드러난 만족할줄 모르는 말씀에 대한 주림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산 떡"(Living Bread)으로 그 주림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그들을 모든 형태의 봉사에 있어서 신실하고 충성되이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목회자들에게 성경공부에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곤 합니다. 또한 그들은 자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묻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님에 속한 신령한 것들을 배움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하는 증거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화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고, 기도집회에 한두번 빠지게 됩니다. , 그들은 주일 아침과 저녁에 꾸준히 참석하던 신실한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그 영적인 욕구가 소진된 것입니다. 그들은 곧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교회에 나오는 습관을 들이게 되고, 마침내 어쩌다 한번 집회에 나오는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여전히 채움을 받아야 할 갈급함은 있지만, 그러나 이제는 말씀에 의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양식이 아닌 것들에 눈과 귀를 열고 결코 그 마음을 채울 수 없는 것들에 온통 빠져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바쁜 일에 정신을 쏟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로부터 멀리 떠나있습니다. 영적인 퇴보가 시작된 것입니다. 영적인 욕구를 잃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상태에 빠진 하나의 징후입니다.
영적인 욕구를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 혹은 영적인 욕구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다음의 권면을 하십니다. 즉 그러한 사람들은 말씀과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교제로 돌아오게 될 때에만 그 영적인 욕구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그때에야 비로소 영적인 성장이 다시 시작될 것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하는 기쁨을 회복하게 되며, 그 삶에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드와이트 펜테코스트 / 미국 달라스 신학대학 교수 및 저술가. <세대주의 종말론>외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