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2)-누가 안식일을 지켰는가?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성찬을 나누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그들과는 그리스도에 관한 즐거운 대화도 나눌 수가 없었다.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은 연고였다.)

F.D 해리스

 

인류의 조상들은 안식일을 지켰는가?


       아담의 시대로부터 모세의 시대까지는 수천 년이 흘렀다. 그러나 성경은 그 동안 안식일을 지킨 사람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아담, ,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또는 다른 누구도 안식일을 지켰다는 기록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제7일에 쉬셨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실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지 않으셨다. 욥기에서 우리는 오래 전 인간의 종교 생활과 그들이 해야 했던 것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하여 읽어볼 수 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데 대하여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후에야 이스라엘 민족에게 안식일이 중요하게 되었다. 욥기에서 안식일이 그들에게 지키게 되어 있었다면 거기에 대해서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건강을 위해서 7일 중 하루는 쉬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일곱 번째 되는 날에 쉬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야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의 바로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고 구하신 후에야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시대에서 모세 이전 시대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셨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 같으나 안식일 먼 나중에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기만 한다면 그 답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자신을 주시고, 유일한 방법인 그 자신으로 인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셨다. 그 방법은 요한복음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그의 생명을 내 놓으셨고 그의 희생으로 인하여 우리는 안식을 얻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휴식의 날로서 안식일을 얻기 전에는 유월절에 양을 죽여서 또는 산 채로 제물을 바쳤다. 출애굽기 12장에서는 애굽에서의 유월절에 관해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켰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하셨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20:8)고 명하셨고, 후에 모세는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으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5:15)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양을 죽여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12).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놀라운 힘으로 애굽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셨다( 14). 그들은 구원받은 백성의 기쁨을 노래하였다( 15).

그리고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15:22-27).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생활과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상징인 만나를 그들에게 주셨다.

 요한복음 6:22-33에서 주님께서 "하늘로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상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역시 같은 장 49-5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빵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이스라엘은 구속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상징인 만나를 먹었다. 그 때에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셨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라. 이 장은 구원받은 후에, 또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안식이 있게 되었다고 말해준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도 구원을 받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시지 않으셨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구속(구원)하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하나의 표시로서 안식을 주셨다( 5:15, 20:10-12).


      진실로 하나님의 안식일의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우리를 위하여 온전히 자기를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의 보혈로 자유함을 얻었고 그들의 죄를 용서받았다( 1:7).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과 영혼의 휴식을 참으로 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다윗 왕이 쓴 시편 32:1-2에 있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복되어라! 지은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주께서 그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그 마음에 거짓이 없는 사람은 복되고 복되다!".
다음은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 5:1절 말씀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어떤 사람도 자기의 최선을 다한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4:10). 이와 같이 창세기 2:1-2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안식의 진정한 의미를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휴식(안식)은 사람 자신의 업적을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 옛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업을 온전히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으리라 생각하여 하나님께 자신들의 최상의 선한 행위를 드릴지 모르나,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쓸모 없고 넝마와 같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이사야 64:6과 히브리서 9:14을 보라.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지 결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2:8-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안식일은 자신의 노력에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업적을 믿음으로만 안식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안식의 상징이다. 민수기 15:32-36에서, 안식일에 나무를 했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한 사람의 기사를 읽는다. 하나님께서 안식에 일하는 사람은 죽어야만 한다고 명하셨다( 31:15). 하나님께서 만약 그에게 순종하지 않아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그 날에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지을 운반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면, 예루살렘 성을 불질러 태워 버리실 것을 말씀하셨다( 17:21,22,27).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거듭거듭 명하셨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죽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가르쳐 주시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갈 만큼 선한 자가 되기 위해 아무리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벌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식과 우리의 노력은 병행하는 것이 아니다. 계명이 명한 대로 행한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6장에서 그의 휴식 또는 그의 안식을 주셨는데, 그것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출애굽기 20장에서 계명을 주시기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의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진정한 평화와 영혼의 휴식을 누린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구원하신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노력이나 선한 행위를 믿지 않고, 온전히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안식일 가르쳐 주는 사실이 또 있다.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에 유용하다고 우리는 말하지만( 1:7-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서, 그분의 피로 구속 곧 죄의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이상의 사실을 또한 우리는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생명을 살아가기 위해 그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로마서 5:10에 있는 대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서 영광의 자리를 누리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속에서 이 힘과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안식일을 주신 것은 이 사실을 또한 분명히 밝히시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원을 위해 양을 죽이고, 그 다음엔 사막을 가로질러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그 다음에야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의 상징인 만나를 받았다. 그리고서 그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휴식을 즐겼다. 이 사실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을 주시고 다음엔 새 생명, 그리고 그 다음엔 휴식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의 노력이나, 선한 행위에 관계없이 은혜로 주셨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4장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발견하는데,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는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쓰여진 것이다. 이 히브리서 4장에서, 창세기 2장의 하나님의 영적인 휴식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휴식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기 6장과 16장 이후의 여러 구절에서 보여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의 백성들에게 주려고 하는 영적인 휴식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정한 영적 휴식을 갖지 못했다. 여호수아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휴식을 줄 수는 없었다( 4:9-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 휴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업적을 통해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4:10).

하나님의 휴식은 우리에게 주실 휴식의 상징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실을 믿을 때에만 하나님의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안식일에 대해 성경 구절을 공부할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제7일의 안식일을 주셨다. 이방인에게와 교회에게 안식일을 주시지 않으셨음은 명백하다.


2. 안식일에 대한 모든 성경 구절들은 어떤 면이든 그리스도안에 있는 완전한 휴식의 상징이다.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계명을 지킴으로 얻으려고 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냥 주신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
( 10:4 -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해주시려고 율법에 끝마침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을 지키셨는가?


주님께서는 확실히 안식일을 지키셨다. 그분은 유대의 율법 아래 사셨기에( 4:4-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지키셨다. 그는 메시야였고 그리스도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권위 아래 있는 것을 알았다.

 
"...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가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4:16).

"예수께서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로 내려가셔서,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4:31).

       우리 주 예수님께서 축복으로 안식일을 주셨다는 것을 다음 성경 구절이 보여준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27).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안식일 관하여 주신 계명을 지키셨으며 유대의 모든 율법을 지키셨다. 그뿐 아니라 계명을 완전히 지키신 유일한 분이셨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셨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40:8, 10:9 참조)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안식일을 유대 백성에게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짐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말하기를, 안식일에 어떤 것은 할 수 있으나 어떤 것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등을 매일 작성해서 마침내는 1,512가지나 되게 했다. 이것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만 선한 일을 하려고 했고 종교적 훈련을 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주간 중 다른 날은 나쁜 생활을 했는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분노하신 이유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어떤 것은 꼭 하려 하고 어떤 것은 피하려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들이 안식일의 진정한 영적 의미를 깨닫기를 원하셨다.

 
      안식일이란 그리스도 자신을 마음속에 품었을 때 이루어지는 휴식의 상징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보여주려고 하셨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그리스도는 메시야인데도 불구하고 이 메시야를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지 않았으며 왕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11). 마태복음 11:20에서 "예수께서는 그 때에, 자기가 기적을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꾸짖기 시작하셨다"라는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이 구절에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마태복음 11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께 대적한 사실과 예수님 당신이 하나님의 휴식인 진정한 안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11:28).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12:1-13, 3:1-6, 6:1-11, 10-17, 14:1-6, 5;1-18, 7;22-23, 9:1-38). 또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 12:8, 2:28, 6;5). 유대인의 대부분이 안식일을 어김으로 해서 더욱 분노를 발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안식일 문제로 그와 사웠다는 것을 여기에서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에 또 가르쳐 주는 사실이 있다. 요한복음 5장에서 병자에 대한 기사를 읽어 볼 수 있는데, 그는 38년간이나 앓고 있었다. 그의 앓은 햇수가 신명기 2:14-16에서 보여주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황한 햇수와 똑같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1,900주일 이상을 그 안식일에는 아무도 이 병자를 돕지 않았다. 그때 예수께서 그에게 "일어나라"고 하셨다. 안식일의 주인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사름은 나아서 그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이것은 안식일에 일어난 일이다( 5:8-9).

이 일을 똑같은 주님께서 예레미야 17:22에서는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아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5장에서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킨 모든 안식일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려고 하신 휴식의 상징일 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안식을 찾을 수 있다. 유대의 계명을 따라 안식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끝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기에 그리스도인들도 안식일을 지켜야한 한다고 말한다. 우리 주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지키셨다. 그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유월절 식사까지 하셨다. 이것이 유월절을 바르게 지킬 수 있는 최후의 기회였다( 22:15-26). 그리고 나서 성찬을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그를 기억하기 위해 성찬식을 계속하라고 명하셨다( 22:19-20, 고전 11:23-26).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주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를 기억하기 위해 떡을 떼려고 둘러 모이기를 앞서 유월절 축제를 지켜야만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성찬식을 가질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에 관해 가르치실 때 안식을 지키셨는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일의 첫 날에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장소에 오셨다( 20:19, 26).


사도 바울은 안식을 지켰는가?(내가 교회를 가는 이유)

 

      바울은 구원받기 이전에 종교적인 유대인이었으며 안식일을 지켰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바울은 제7일의 안식일을 계속 지켰다고 말한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바울이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모여 있는 회당으로 가서 변론하고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게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회당에 갔다.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은 방문해서 그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회당에 간 것이 아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성찬을 나누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그들과는 그리스도에 관한 즐거운 대화도 나눌 수가 없었다.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은 연고였다. 바울이 안식일에 유대인과 같이 회당에 간 것은 회당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계명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교하였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세의 계명이 우리를 속박하던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다( 13:39-모세의 율법으로는 여러분이 어떤 일에 있어서도 결코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었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예수를 힘입어서 의롭게 됩니다.). 또한 회당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가르쳤다. 회당에 감으로써,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바울은 말하기를 "유대 사람들에게는, 내가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고전 9:20)라고 했다. 바울이 안식일에 회당에 간 것은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화를 받고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안식일에 회당에 나아갔다. 이로써 그는 주님의 명령을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다 행했다. 그 당시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과는 교제를 끊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만 만났었다. 사도행전 17:2~4-(바울은 자기 관례대로 회당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또는 '메시아') 반드시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해석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승복하여 바울과 실라를 따르고,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에서, 바울이 평소의 습관대로 회당에 가서 세 주간 동안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다는 것을 읽을 수가 있다. 바울은 성경의 뜻을 풀고 메시야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증명하였다. 바울은, 예수는 메시야였다고 그들에게 가르쳤다.
이러므로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바울이 말한 것을 믿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고 했다. 이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바울은 주일의 첫째 날 믿는 무리들이 모이는 곳에 갔다. "주간의 첫날에(또는 '안식일 밤에' 또는 '토요일에' 또는 '주일에'), 우리는 빵을 떼려고 모였다. 바울은 그 다음날 떠나기로 되어 있어서 신도들에게 강론을 하는데, 강론이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다."( 20:7). 바울 및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드로아에서 한 주일을 보냈는데( 20:6-우리는 무교절 뒤에 배를 타고 빌립보를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이르러, 그들에게로 가서, 거기에서 이레 동안을 지냈다.), 이는 바울이 주일의 첫날을 믿는 사람들과 하께 보내고 함께 성찬식을 갖기 위해 온 주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바울이 급히 예루살렘에 가야 했지만 주일의 첫날을 기다리기 위해 드로아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안식일에 설교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는가?

그 답은 매우 분명하다. 초대 교회 당시 믿는 자들은 매주간의 첫날에 만났지 안식일에 만나지 않았다. 초대 교회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저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의 첫날에 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라바는 그리스도 이후 100년 경까지 산 사람이었으며, 이그나타우스는 107년경까지, 져스틴 마터는 145-150년 경까지 , 이레니우스는 155-200년 경까지 산 사람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저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의 첫 날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 이후 400여년이 지난 "라오디게아 칙령"에 의해 교회가 예배드리는 날을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바뀌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은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맨 처음부터 바로 주일의 첫날을 지켜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