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주일 - C. H. 매킨토쉬

2012.11.21 14:02

서성필 조회 수:2793

안식일과 주일

 

C. H. 매킨토쉬

 

안식일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의 문제가 단순히 어떤 한 날을 지키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러한 것들을 비판의 이유로 삼을 수 없다고 가르친 로마서 14 5,6절과 골로새서 2 16절에 의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중요한 원리가 들어 있으며 안식일에 대한 분명하고 성경적인 근거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십계명 중에 제4계명 전부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20:8
11).


동일한 내용이 출애굽기 31 12절에서 17절까지에도 반복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민수기 15장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이 법을 이행하여 안식일에 나무한 자를 돌로 쳐죽이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하고 절대적입니다. 인간은 안식일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법을 바꿀 권리가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제칠일을 안식일로 확정지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과 함께 안식일을 지켜지는 양식에 대해서도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 이 안식일의 전례가 행해졌는지를 묻습니다. 어디에서 이 명령이 준수되었습니까? 교회가 그 명령을 지켰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전통에 의해 무효화 되었습니다. 비록 심판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 사랑스럽고 흥미로운 백성들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의해 계속 눈이 멀어 있는 동안에 그들의 특징적인 날(안식일)을 빼앗겼고, 그 날에 관련된 모든 특권들을 오늘날 한시적으로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들만의 독특한 날(주일)의 영광스러운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만일 기독교계가 주일을 진실로 이해하기만 했다면, 이 세상의 것들을 초월하여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머리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자신에게 속한 높은 지위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계는 그 영광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계는 순수한 유대주의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순수한 기독교 신앙도 아닌 그 둘의 비성경적인 결합에 의한 비정상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대한 문제에 관련된 깊은 영적인 진리를 발전시키기보다는 이 주제에 대한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만으로 우리 자신을 제한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어떤 교회가 안식일 준수를 위해 제4계명이나 그에 연결되는 다른 성경구절들을 인용할 경우,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 율법은 완전하고 명백한 사실을 우리는 강조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이 말씀은 유대인의 배경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을 완전히 속박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일쯤은 안식일에 해도 괜찮치 않느냐고 인정할 만한 것들을 소개할 만한 여지가 없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 하인들로 하여금 우리를 태운 마차를 몰게 하는 일 정도는 해도 괜찮치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엄중하고 절대적이며 가차없고 확고부동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편리를 따라서 그 기준을 낮추거나, 인간의 생각대로 조정하기를 허락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주어진 명령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입니다.

 그리고 "제칠일"은 지금 우리의 토요일에 해당합니다. 안식일의 엄격한 준수가 최소한으로 완화되었다는 예외적인 성경구절을 알고 있다면 제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성경의 조명을 받아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해 보기를 독자들에게 요청합니다. 괜히 겁내지 말고, 진실했던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noble) 정신을 본받아 성경을 상고해 보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창세기 2장에서 안식일이 이름지어진 그 말씀을 통해 안식일은 다른 날이 아닌 일곱째 날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 날을 준수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에 관한 신적인 권위는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음도 깨달을 것입니다. 율법은 법입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는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27: 26; 3:10)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가장 온전하게, 또한 자유롭게 감사하십시오.

로마서 7장과 8장 그리고 갈라디아서 3장과 4장에 따르면,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신약 시대에 산다는 이유로 행복한 자들이며 특권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를 특징 지우는 날은 어떤 날입니까? "일곱째 날"이 아니라 "일주일의 첫날", "주일"(The Lord's Day)입니다. 이 날이 확실히 그리스도인들의 날인 것입니다. 우리 안의 새로운 성품이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엄숙함, 신성한 경외심, 그리고 고상함으로 이 날을 지키십시오. 그리스도인이 세속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 주일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어떤 사람이 일반적인 오락, 필요치 않은 여행, 개인의 편리, 세상적인 일들의 이익을 위해 주일을 보낸다면 이는 매우 서글프고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러한 행동들을 들어 그들을 심하게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주의 날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존중히 여기지도 않는 자들과 어떻게 경건한 교제를 즐길 수 있겠으며, 그토록 거룩하고 즐거운 날을 고의적으로 더럽힌 자들과 어떤 사귐이라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슬프도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무지와 잘못된 교훈의 영향으로 인해 주일에 관하여 그른 이야기를 하며, 그 날에 불건전한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주일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들은 매우 충분해서, 주일에 대해 알고자 그 마음을 잘 예비한 사람들에게는 그 날의 적절한 위치가 계시된다고 믿습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28:1
6; 16:1,2; 24:1; 20:1).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처음 만나신 날도 주일이었고, 다시 만나신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 20:19,26).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주일에 떡을 떼기 위해 모였습니다( 20:7).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바울 사도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주일에 연보를 하도록 가르쳤습니다(고전 16:2). 마지막으로 유배 중이던 사도 요한은 주일에 성령으로 감동되어 장래의 일들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1:10).


이상의 말씀들은 결정적입니다. 주일이 아주 독특하고, 매우 거룩하며, 무척이나 신성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입증해 주며, 유대인의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완전한 차이점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구분하여 말하는 것처럼 신약성경을 통해 설명되어진 두 날은 서로 다릅니다( 28:1; 13: 14, 17:2, 20:7; 2:16).

유대인의 안식일과 주일에 관한 문제를 많이 언급했으므로, 이제 독자들에게 다음의 질문들을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어디에 안식일이 주의 첫날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안식일을 변경시키거나 그 날을 준수하는 기준을 낮춘 것이 어디에 허용되었습니까?
성경에 `기독교 안식일'이란 표현이 나옵니까?

우리는 주일을 경건하게 지키는 일에 있어, 주위의 다양한 교파에 속한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 중 그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심으로 주일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 만일 주일인데도 우리가 세상을 떠나 쉼을 누릴 수 있는 상태에 있지 못하다면, 우리로서는 그 날에 다른 일을 멈추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향한 예배와 봉사에 온전히 드릴 것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차가운 율법주의의 문제가 아니고 거룩하고 즐거운 특권에 관계된 사항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불경건함, 세속성, 무분별함, 향락적인 친구들로 주일을 더럽히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 마음에 크나큰 슬픔이 있습니다. 주일에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과 이 세상의 자녀들이 관광 열차에서 만난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불경건한, 즉 주일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직접적으로 거스리는 것이라 우리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