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구원

★죄인들의 고백(51:1-5)

(성경은 죄인임을 자각할 때까지 인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죄인임을 자각시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인간에게 하는 첫 번째 요구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맞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또한 네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 무서운 지옥의 권세가 너를 늘 따라다니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 죄가 얼마나 강한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너에게 애걸하고 탄원하면서 너를 쓰러뜨리려고 하는 타락한 천사들과 권세들, 즉 이 세상의 악한 통치자들과 천상계의 악령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구원을 얻으려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의 첫 단계는 죄를 자각하는 일이며, 죄를 자각하려면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해 범죄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회개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David Martyn Lloyd-Jones

 

1        하나님,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의 긍휼을 베푸시어 내 반역죄를 없애 주십시오.

2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3   내 반역죄를 내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내 앞에 있습니다.
4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의 눈 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유죄 선고가 마땅할 뿐입니다. 주님의 유죄 선고는 옳습니다.
5   실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51:1-5)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편 51편을 가리켜 구약성경에서 회개의 문제를 가장 잘 표현한 진술일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신구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회개 문제에 관한 한, 시편 51편만큼 뛰어난 진술은 없을 것입니다. 시편 51편은 이스라엘 왕 다윗이 무서운 죄를 짓고 난 이후에 겪은 정신적인 고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의 표제에는 작은 글씨로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편이 나오게 된 동기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시편의 의미와 교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추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것을 살펴보고자 하는 까닭은 우리의 삶 속에 이런 추악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가 그와 같은 추악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군사들은 모두 전투에 참가했지만, 다윗은 그들과 함께 출정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지붕 위에 앉아서 도성을 바라보다가 문득 매우 아리따운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다른 군사들과 함께 전쟁터로 떠난 한 군인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다윗은 그녀를 자기 것으로 삼고 싶어 그녀를 데려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와 동침하였습니다. 또한 그녀가 임신을 하자 다윗은 죄를 은폐하기 위해 군대장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여인의 남편인 헷 사람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도록 명령했습니다.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즉시 왕을 접견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를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훌륭한 군이었으므로, 아내를 만나기 위해 곧장 집으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의 군사들이 전쟁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운명이 앞으로 어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혼자만 편안히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안돼, 안돼!...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라고 말하고 왕궁 문 곁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이 가련한 사람에게 술을 잔뜩 먹여놓고 집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그 계책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한 장 써서 그것을 우리아 편에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이 자를 없애 버리고 싶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 자를 최전선으로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압은 그 명령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헷 사람 우리아를 적군과 가장 치열하게 맞서 싸워야 하는 최전선에 배치했습니다. 그 전투에서 불쌍한 우리아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원하던 것을 이루고 매우 만족스러워 하며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끝내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모든 일이 완벽하게 처리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11:27)

 

다윗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실 때까지 아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단이 와서 왕에게 말했습니다. "슬픈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임금님의 나라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이고 양과 소가 매우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밖에 없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암양 새끼를 몹시 애지중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부자의 집을 방문하자 부자는 손님을 위해 자기 양을 잡는 대신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잡아서 요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난한 사람은 비탄에 잠겼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다윗은 화를 버럭 내며 말했습니다. "이런 비열한 짓을 한 자를 즉각 처단하시오!" 그러자 나단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오!" 나단은 헷 사람 우리아에게 행한 일을 다윗에게 상기시켜 그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일깨워주기 위해 비유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51편의 배경입니다.

 

갑자기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다윗의 마음은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시편 51편을 기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 시편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편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도에 대해 몇 가지 기본적인 진리와 사실들을 생생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시편은 구원이라는 중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구원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들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는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설교단에서는 이유도 성경에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들어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입니다. 그런데 구원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유일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경멸합니다. 또한 구원받기를 원하면서도 구원의 능력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찾을 수 있는 위대한 구원을 체험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깨닫고 이해하고 믿어야 할 몇 가지 사항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을 연구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개종자의 예를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개종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 이전에 먼저 회개를 체험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성인들의 생애나 과거에 하나님의 교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분들의 전기를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권능을 깨달은 사람은 모두 회개의 과정을 거쳤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회개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아무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설교자의 최초의 메시지였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우리 주님이시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개하라는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회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도 돌아다니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설교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신자들의 성원 속에서 최초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가 설교를 마치자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하고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회개하시오! 라고 대답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구원을 깨닫지도 체험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을 얻는 데 꼭 필요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좋습니다. 당신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시편이 회개의 문제와 회개론에 대해 매우 훌륭한 진술을 해줄 것입니다. 본 장에서 필자는 한 가지 측면, 한 가지 단계, 곧 회개의 첫 번째 단계만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것은 죄를 자각하는 것, 혹은 우리가 죄인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본 설교에 제목을 붙인다면, 죄인들의 고백, 죄에 대한 우리의 자각, 우리의 죄에 대한 고백 등이 적합할 것입니다.

 

죄를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에 들어있는 많은 내용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육신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와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며 속죄사상과 칭의, 성화, 중생과 같은 사상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들이 왜 필요한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논박하기도 합니다. "이론적이며 순전히 추상적인 이 모든 개념들을 교회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그것들은 신학자들이 고안해 낸 개념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저는 이들이 죄에 관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들은 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와 다르게 말합니다. 성경은 현대 세계에 이런 식으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 성경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의 삶을 이해할 때, 죄에 대한 가르침과 분리시켜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면서도 때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하고 묻곤 합니다. 정치가들은 우리가 안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을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자각하는 일이다. 죄는 도처에서 개인간의 불화를 유발시키며 친밀한 인간 관계와 국제 관계를 깨뜨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문제의 주범이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대단히 명료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특성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아무 것도 감추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책으로 믿지 않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매우 솔직하고 담백합니다. 성경은 신앙의 위인들을 허황되게 꾸미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위인들에게 흠이 없다고 과대 선전하지도 않습니다. 과장하거나 윤색하는 것은 오히려 신화이며 사람들이지 성경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전부 보여줍니다. 성경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의 궁극적인 관심은 사람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더 낫게 여긴다고들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기독교인의 입장을 대단히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의 입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이 성경적인 생각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소망을 둘 곳은 오직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죄인들에게 매우 기쁜 소식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죄인임을 자각할 때까지 인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죄인임을 자각시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인간에게 하는 첫 번째 요구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시무시한 죄론을 이런 입장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즉 죄는 매우 악한 힘이고, 우리를 모두 쓰러뜨릴 정도로 강하고 힘센 것이며,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입니다. 성경은 죄의 힘이 이스라엘 왕 다윗처럼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도 앞에서 묘사한 대로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크고 강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그러므로 죄와 맞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또한 네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 무서운 지옥의 권세가 너를 늘 따라다니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 죄가 얼마나 강한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너에게 애걸하고 탄원하면서 너를 쓰러뜨리려고 하는 타락한 천사들과 권세들, 즉 이 세상의 악한 통치자들과 천상계의 악령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죄론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이 시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맨 처음에 해야할 일은 죄를 자각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시편 51편을 "범죄자의 기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의 기도입니다. 또한 이 시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범죄한 사람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다윗이 말하는 죄는 신자든 불신자든 누구나 범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본질은 범죄자의 성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다윗이 말한 죄론은 죄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게다가 이 시편은 인간이 자기 죄를 자각하기까지 거쳐야할 단계들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찾아내어 밝혀보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자기가 범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3절에 나오는 다윗의 말을 들어봅시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그러므로 자기 죄를 자각하게 된 사람이 맨 처음에 할 일은 죄를 직시하고 정말로 솔직하게 자기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보면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께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추측컨대 다윗은 자기가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의 아내를 가로채는 것이 나쁜 짓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헷 사람 우리아를 죽게 하는 무서운 짓을 저지르고 난 후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셔서, 비유를 통해 그로 하여금 그 사실을 인정하도록 만드실 때까지 줄곧 그랬습니다. 나단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다윗은 자기의 범죄 사실을 깨닫고 겸허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시편 51편을 작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이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 자신과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과거에 우리가 했던 일,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돌아본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돌아볼 것을 요구하는 복음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으려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의 첫 단계는 죄를 자각하는 일이며, 죄를 자각하려면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 다시 물어봅시다. 자기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니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다윗은 온갖 죄악을 범하고서도 태연했습니다. 양심과 의식이 마비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천연덕스러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 사실을 잊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또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하면서 밤을 지샌다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이런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윗처럼 죄 많은 인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변명하고, 간과해 버리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거나 우리 자신이 피해를 당하면 맹렬하게 그 사람을 비난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속성입니다. 타락하고 범죄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이런 속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스스로를 기만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고안해 냅니다.

 

이쯤해서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져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직시해 보셨습니까?"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십시오. 그 다음 여러분 앞에 거울을 갖다놓고 이제까지의 삶을 뒤돌아  보면서 그 동안 생각하고, 행하고, 말했던 것, 그리고 이제까지의 생활 방식을 살펴보십시오. 만족할 만합니까? 여러분 자신이 했던 일들을 다른 사람이 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 봅시다.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첫 번째 사항은 회개하고, 다투지 말며, 자신을 직시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을 시험해 보십시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과 신학에 대해 논쟁하지 말고 잠시나마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살펴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여러분은 자신을 직시했습니까? 정말로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았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런 일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화감상과 독서를 즐깁니다. 그들은 공허한 삶을 메우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하려고 하지만, 생각하는 것은 딱 질색으로 여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과 영혼을 위해서 여러분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이 세상은 여러분이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지 다 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만 돌아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을 체험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면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 봅시다.

 

두 번째 단계는 우리가 행한 일의 정확한 의미나 본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의미를 정확히 규명하고 넘어가야 할 세 단어가 있습니다. 첫째는 "위반"(transgressions)이고, 둘째는 "불법"(iniquity), 셋째는 ""(sin)입니다. 이 세 단어에 대해 이제부터 간단히 언급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위반"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 단어는 모반, 즉 권위, 특히 권위자의 뜻을 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죄과(위반 사항)을 도말하소서." 바꾸어 말하면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위반했음을, 즉 자신이 하나님께 반역했음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는 그 어떤 권위에 대해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 반역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인간적인 생각이 싹터 올라 그 자신이 자기를 주장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욕정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위반(transgression)은 자기 자신의 길을 가려는 욕망,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려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이 말에는 의도적인 선택과 적극적인 반항 행위라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양심의 가책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반은 의도적으로 거역하는 사악한 행동이며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반의 의미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그런 죄를 저질렀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래, 나는 나쁜 짓인 줄 알면서 그런 짓을 저질렀어! 나는 하지 말라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도 그렇게 했어. 나는 반항아였어. 나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면 "불법"(iniquity)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불법이란 행동이 뒤틀리거나 구부러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타락(perversion)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나의 불법(추악하고 비열한 짓)을 깨끗이 씻어주소서.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이토록 뒤틀리고 타락하다니! 얼마나 타락했길래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다윗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행동이 얼마나 뒤틀리고 구부러졌는지 그리고 얼마나 왜곡되었는지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도 늘 이러한 죄를 저지르곤 합니다. 우리는 살인을 하지 않았고 다윗처럼 추악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서도 이제까지의 행위들이 뒤틀리고 왜곡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까? 또한 여러분의 행동이 구부러졌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질투와 시기와 악의, 얼마나 뒤틀린 행동들입니까!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 남을 칭찬하기를 생각하는 것(구부러지고, 뒤틀리고, 추악하고, 더럽고, 나쁜 생각들) 이것이 바로 "불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불법을 저지른 자들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이와 같이 뒤틀렸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와 같이 무섭게 뒤틀리고 타락한 행동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sin)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죄란 무슨 뜻입니까? 죄는 과녁을 빗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란 다시 말해서 과녁을 피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말에 함축되어 잇는 의미는 우리가 살아야할 방식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녁을 겨누고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과녁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과녁을 빗나간 것입니다. 이 말은 현재의 우리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즉 우리가"바르게 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말은 살아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왔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앞만 보고 똑바로 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형평을 유지하지 못하고 앞뒤로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선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겠지요.

 

이 논점을 더 이상 전개시키지 않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위반(혹은 배반)과 불법(혹은 타락, 뒤틀리고 구부러진 행동), 그리고 죄(즉 과녁을 빗맞추는 것, 가야할 곳으로 가지 않는 것, 우리의 본래 모습이 되지 않는 것, 앞만 보고 나아가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를 범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를 자각하고 고백하기 위해 거쳐야 할 두 번째 단계는 이제까지의 자기의 삶과 행동이 죄로 점철되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 단계는 이 모든 일이 주의 목전에서 주께 행해진 것임을 깨닫고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나이다." "이 말은 틀린 것이 아닌가? 다윗은 '밧세바에 대해, 우리아에 대해, 그리고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과 이스라엘과 내 백성에 대해 내가 범죄하였다'고 말해야 할 터인데 '주께만...' 이라고 말하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말은 전혀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다른 사람에 대해 범죄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행동이 인간들 사이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님을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만 해를 끼친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후회와 회개의 본질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깨달은 사람을 보고 우리는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 대해 범죄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회개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에 대해 범죄했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죄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 즉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를 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대답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보기로 합시다. 범죄는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범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죄를 범하고 잇는 것입니다. 즉 그는 인간의 본성을 손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에 대해 범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에 대해 범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하게 만드셨고 완전한 삶을 살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렇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범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의 계획을 망쳤고, 하나님의 창조물을 비틀고 왜곡시켰음을 뜻합니다. 죄를 범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위반하는 뜻입니다. 십계명과 도덕법, 그리고 품위를 지키려는 인간의 본성,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위반을 하고, 불법을 저지르고,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양심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 양심을 부여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좋든 싫든 양심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양심이 사라져 주기를 바란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양심은 늘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는데도 우리가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범죄행위입니다. 저자는 다윗이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를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낱 목동에 불과했던 그를 대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 그에게 많은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런 다윗이 "내가 이런 비열한 짓을 했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뜻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즉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게 하시고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반항하다니요!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범했으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우리가 절대로 변명을 하거나 구실을 붙일 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달리 말하자면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변명하거나 탄원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변명의 여지도, 제 행동을 합리화시킬 근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은 다 제가 꾸민 것입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정상을 참작해 달라고 탄원할 수 잇겠습니까?" 바로 이 점을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자각하고 회개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여러분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행동이 모두 옳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여러분의 행동이 정상 참작을 받을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군가가 선지자 나단의 입장이 되어 다른 사람에 관한 비유를 들어서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생활을 꼬집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직시할 수 있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해봅시다.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아직 회개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행동을 변호하는데 급급하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 회개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기의 행동을 후회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다윗과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행동을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저지른 짓을 증오합니다.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짓인 줄 뻔히 알면서 계획적으로 저질렀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실을 인정합니다! 저는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비난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되십니까? 또 하나님께서 불공평하신 분이라서 여러분에게 이토록 큰 시련을 안겨주셨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아직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하건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마음과 삶을 돌아본 연후에 "내가 갈 곳이라고는 지옥밖에 없어 그러니 하나님께서 나를 그 곳으로 보내시더라도 불평하지 않겠어. 내가 그 곳 말고 어디를 갈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세가 곧 회개의 필수요건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네 번째 단계에 이른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죄를 자각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 봅시다.

 

회개의 마지막 단계는 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단계들을 훑어봅시다.

첫 번째 단계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사실을 직시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단계는 자기가 저지른 행동들을 깨닫고 세 가지 관점에서 자기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 "그래, 이 일이 결국 하나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니까 나는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단계입니다.

네 번째 단계 "변명하거나 탄원할 여지가 없다."고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은 다음과 같이 자문할 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내게 이런 짓을 하도록 시킨 것이 무엇일까? 내가 어쩌다가 이 모든 것, 즉 시기와 질투, 증오와 원한, 그리고 탐욕과 욕망, 쾌락과 정욕에 눈이 멀었단 말인가?" 그 다음에 그는 마침내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다음과 같이 선언할 것입니다. "내 자신의 본성이 타락했고 내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틀림없어! 썩은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야!" 바꾸어 말하면, 회개의 마지막 단계는 자기의 범죄 사실을 깨닫는 데에서 더 나아가 자기 자신 속에 죄가 도사리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이 마지막 단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18,24). 즉 그는 이렇게 선언한 것입니다. "내 속은 썩을 대로 썩었다. 나는 어리석으며 속이 검은 사람이다. 내 잘못은 단지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썩었다는 데 있다. 내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고자 하는 욕망과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 일이 그토록 하고 싶었을까? 내 속에 악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괴롭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고 저지른 죄를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다."라고 말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해봅시다.

 

친애하는 부루터스여, 허물은 주역들에게 있지 않고 졸개인 우리들에게 있다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 말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내 속에서 악의 씨가 싹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뒤틀리고 왜곡된 것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내 안에 도사린 채 내 존재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죄를 자각하고 고백하는데 필요한 단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들이 진실임을 깨달았다면, 다윗처럼 "오 하나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라고 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잇는 일은 이렇게 외치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죄인임을 깨달았다면, 속히 하나님께로 달려가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렇게 해서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울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놓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갈보리 산 위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처벌을 받았으며, 우리 주님은 갈보리 산 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이 씻어 흰 눈보다 더 희게 만드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굳게 잡으십시오. 찾고, 구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즉각 "오 하나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 저를 씻겨 주소서."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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