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의 아름다움 - Stephen Hulshizer

2012.11.21 13:43

서성필 조회 수:2978

단순함의 아름다움

(오늘날 많은 서적과 세미나와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은 실제로 믿는이의 삶을 매우 복잡한 미궁으로 빠뜨리며, 결국 "분석의 마비" 상태로 인도하는 것 같다.)

- Stephen Hulshizer -



  대지는 곱게 뿌려진 눈으로 덮여 있고, 구름 한 점 없는 캄캄한 하늘에는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다. 번쩍거리거나, 여러 가지 색을 띄거나,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그 단순함에서 아름답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차를 몰고 당신이 사는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다양한 색의 수많은 등()으로 덮여 있는 많은 집들을 보게 된다. 그 등들이 당신의 시선을 끌지만, 계절의 따스함으로 감동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붉은 색 활을 가진 단순한 화관이 문 앞에 걸려 있고, 등 하나가 그 문을 비추고 있는 집이 있다. 매번 차를 몰고 지나갈 때마다 당신의 시선은 그 집을 향하며, 마치 장작 타는 소리가 나는 불 둘레의 따뜻한 교제로 당신을 초대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의자에 앉아서 경건했던 부모의 삶을 회고한다.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돌이켜 볼 때 어려운 때도 있었고, 웃음으로 가득한 때도 있었다. 그 때는 부모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들의 삶을 특징짓는 것은 단순함이였다. 당신의 부모는 주님을 사랑했고 서로를 사랑했으며, 지역 모임을 섬겼고, 열심히 일했다. 화려하지도, 재능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삶은 단순함으로 아름다웠다.


당신의 삶에 단순함의 아름다움이 비추는가? 고백하건대 때로 내 마음은 오늘날의 기독교의 복잡함으로 눌리곤 한다. 이 복잡함은 지금 내 생각을 기록하고 편집하는데 사용중인 컴퓨터와 같은 기술의 사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 단체로부터 들은 개념과 사상의 복잡성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서적과 세미나와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은 실제로 믿는이의 삶을 매우 복잡한 미궁으로 빠뜨리며, 결국
"분석의 마비" 상태로 인도하는 것 같다. 잠언 23:7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가'에 큰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혹자는 우리가 생각에서 그렇게 복잡할 경우, 복잡한 삶을 낳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책을 읽고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매번 나는 그 내용의 복잡함으로 몹시 고통스럽다. 그들의 대부분은 듣는 당시에는 매우 감동적이고 고무적이였다. 그러나 많은
"사상들"을 적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단지 기억하려고 애쓰기만 해도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을 분석하고, 자신을 찾고,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을 주제로 하는 많은 책들이 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혼란스럽고, 낙담하고, 마비되고, 소진되어 버렸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너무나 복잡하게 만들어서, 단순히 자신이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가를 알고자 하는 데에도 심리학 석사과정을 필요로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매우 단순한 언어로 이러한 사실들에 관해 말한다( 1:26-27; 11:36; 2:10)


나는 어떤 이가 최근에
"성경에서" 배운 것을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진리"의 큰 구조물들이 일부 성경의 구절이나 또는 인간 철학의 매우 작은 기초들 위에 세워졌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나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들었으며, 그들이 배운 바를 사용한 결과 오히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남편에게 줄 토스트를 태웠다고 해서 당신이 자제심이 모자란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나는 그리스도인 마다 포옹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신이 남편과 벽지 문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혼에 실패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신이 영적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가 영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생활하기보다는 자기 삶의 모든 행위와 결정을 분석하는데 더 시간을 소모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경우, 찾아낸 결과가 차라리 찾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쁜 것 같이 보여진다.

우리 보다 앞선 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알았던
"단순한 삶"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는 정말로 확신할 수 없다. 시대는 변해왔다. 그러나 주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3:6) 어쩌면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떠나서 "사람의 생각"을 더 가르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변의 방법보다는 심리학에 비추어 성경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인내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을 인내로 기다리기보다는( 1:10), 너무 압박을 가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믿는이의 삶이 단순히 아내를 사랑하고, 그날 그날을 정직하게 일하며, 주님을 경외하도록 자녀들을 양육하고, 신실하게 지역 모임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3:24; 13:21).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보다는 "자신"을 아는 것을 더 강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3:10). 어쩌면 죽은 종교와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씻은 물과 함께 아기를 내던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옛 양식"을 던져버렸는지도 모른다( 9:31). 어쩌면 개인의 특성보다는 개성을 훨씬 더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떠하든, 분명한 것은
"많은 지식"이 자유케 하는 진리로 이끌기보다는 자신의 마음 안에 잡아 가둔다는 것이다(딤후 3:7). 나는 삶 자체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며, 지나치게 삶을 단순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의 삶과 다른 경건한 사람들의 삶을 조사해 볼 때, 과거나 지금이나 그들의 삶은 복잡함이 아닌 단순함으로 특징지어진다고 확신한다. 단순한 삶, 바로 이것이 그들이 가르쳤던 바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있음직한 것인가?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더 나쁜 적()이라는 사실이 있음직한 것인가? 우리의 삶을 많은
"화려한 사상(思想)"로 채우면서 단순함의 아름다움이 결여되는 것이 있음직한 것인가?( 2:8)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충분하지 못하신가?(고후 2:14-17) 우리 조상들이 마셨던 그 샘물을 다시 마시는 것이 있음직한 것인가?( 28:18; 22:28) 이것은 과거로 돌아가라는 외침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의 단순함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