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님과 종놈 - 송인규 교수

2012.11.23 16:34

서성필 조회 수:3681

종님과 종놈

(우리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22: 37~40). 그러나 어떤 특수한 경우에는 이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이웃 사랑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 사랑에 대한 책임과 갈등을 일으킬 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사랑을 택함으로써 이웃 사랑을 포기해야 합니다(cf. 10: 37; 12: 3~8). 그러나 대개의 경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송인규 교수

 

목회자나 성직자에 대하여 보통 “주의 기름부음 받은 종” 또는 짧게 “주의 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명칭의 해당자가 하나님께 대해서는 종인 것이 확실하지만, 이런 명칭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소위 평신도들―에 대해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자체로 명확한 지침을 주지 못합니다. , 주의 종이 일반 그리스도인 위에 군림해도 좋은 영적 권세가인지, 아니면 그들에 대해서도 그저 종인지 잘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주의 종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종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의 종”을 영적 권세가로서 이해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과거 70~80년대에는 봄 가을이면 교회마다 앞다투어 부흥회를 열었는데 그 강사들 가운데 어떤 이는, 초청을 한 교회의 교우가 부흥 강사인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그냥 “주의 종”이라고 지칭했다며 그것을 꼬투리 잡아 호통을 치며 반드시 “주의 종님”으로 바꾸도록 야단법석을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당한 교우는 무척이나 속이 상해서(비록 그 강사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지만) 도대체 종이면 그냥 종이지 무슨 종님이냐며 굳이 따지려면 종은 종놈이 더 맞지 않느냐고 항의 비슷한 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 명확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께만 종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종이라고 말입니다. 어디에 그런 근거가 있느냐고요?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 13: 4~6, 12)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 주인을 섬길 때에 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평생 다른 이들을 섬겼고( 10: 45), 이로써 자신의 사람들에 대해서 종인 것을 밝히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주님의 모습을 깨닫고서( 2: 5~8), 자신이 주[그리스도/하나님]의 종( 1: 1; 1: 1; 1: 1)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에 대해서도 종 된 것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 19)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 5)


이상의 교훈으로 보건대 주의 종은 주께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종인 것입니다.


주의 종은 사람에 대해서는 종이 되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성경을 꼼꼼히 읽는 어떤 이들은 필자의 주장에 반기를 들지도 모릅니다. 사실, 몇 년 전에 한 그리스도인이 전화로,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우리가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구절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다음의 두 구절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 23)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 10)


둘 다 바울의 말인데 첫 구절은 직접적으로, 둘째 구절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종이 됨.”과 “사람의 종이 됨.”을 길항적인 것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들은 문맥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고전 7: 23절은 바로 그 전절(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하는 말씀과 연관해 보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는 고린도 지방을 포함하여 어디든 노예 출신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주장하는 바는, 고린도 교인들이 노예 상태 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든지 자유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든지, 어쨌든 이제는 참 주인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사회적 신분이 어떻든지 간에 이제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은 오직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하고, 그리스도께보다 더 충성을 바치는 곳―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 10절의 경우에는 그 배경이 조금 다릅니다. , 본문에는 “사람의 종이 됨.”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만,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종이 된다는 것과 비슷한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 당시 유대주의자)의 유혹에 빠져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외에 율법의 행위―곧 할례 및 모세의 율법 준수―를 더하려고 했습니다( 2: 16~21; 3: 1~4; 5: 2~4 ). 바울은 이에 대해 “다른 복음을 믿는 것.( 1: 6~9)이라고 엄히 경고했고, 아무리 그들을 아낀다고 해도 이런 상황 속에서는 그들의 기쁨을 구할(그들의 종이 될)―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들이 다른 복음을 좇아가도록 방치하는 것―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종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종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종이 될 수 있고, 또 종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종 됨이 하나님께 종 됨을 가로막지 않는 한, 우리는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사이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22: 37~40). 그러나 어떤 특수한 경우에는 이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이웃 사랑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 사랑에 대한 책임과 갈등을 일으킬 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사랑을 택함으로써 이웃 사랑을 포기해야 합니다(cf. 10: 37; 12: 3~8). 그러나 대개의 경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종이 되는 것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종이 될 수 있을까요? 목회자는 교우들에 대하여, 주교 교사는 아동들에 대하여, 구역장은 구역원에 대하여, 선교사는 현지인에 대하여 말입니다. 두 가지 사항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맡겨진 그리스도인들에게 권위주의적으로 군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특히 강조하신 바이고( 10: 42~45; 22: 24~27), 사도들의 가르침과 모범이기도 합니다(고후 1: 24; 벧전 5: 3).


둘째, 우리는 우리의 직분이나 은사를 통하여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 내에서의 지도력과 직분 및 은사는 지도자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유익과 성숙을 위해서 소비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10: 45; 10: 14~15; 고후 12: 15; 살전 2: 8).
주의 종이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종이 되어야 하고(고전 9: 19), 그 종국 역시 고난과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만큼 영광스러운 길은 없습니다. 주님의 모습을 닮는 길이요( 2: 5~8), 후에 참된 영광( 8: 17)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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