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에 기초한 감정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뜨겁거나 예민할 때,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또는 복음의 영광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겪었던 놀라운 경험들과,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안전한지, 또한 천국에 갈 확신이 얼마나 있는지 등등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조나단  에드워즈

 

영적 감정들로부터 이기심이나 사리 사욕을 전적으로 제외시키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기심이나 사리 사욕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소유해야 할 유익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적 감정들의 주요 대상은 우리의 이기심과 직결된 것이 아닌, 신령한 것들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장점과 아름다움이다.

 

모든 사랑은 자기애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믿음의 뿌리에 자기애가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들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며 그분이 영광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이러한 것들을 소망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자기의 행복(자기애)에 대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의 행복을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시키는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결과이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분의 영광을 자신의 행복으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물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사랑도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베푸는 호의라든가 선물들 때문에 생기는 사랑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품이나 인격에 대한 어떤 순수한 아름다움이나 장점에 매력을 느껴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자기애에서 비롯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신령한 것이 될 수 없다. 자기애는 순전히 자연적인 것이다. 자개애는 천사들뿐만 아니라 마귀의 마음속에도 있다. 따라서 단순히 자기애에서 비롯되는 것들은 그 어떤 것도 영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은 이 자기애에 대해서 누가복음 6:32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깊은 동기는 지극히 사랑스러우신 하나님의 본질에 있다. 이것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동기이다. 한 사람이나 피조물을 사랑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피조물의 탁월함 때문이다. 당연히 하나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올바로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 얻을 수 있는 유익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동기로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관점에서만 하나님을 보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선한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의 근본인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의 진가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기애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지만 거기에는 신적 본질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대한 이해가 없다. 예컨대, 자기애는 전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인 감사만 있게 할뿐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 즉 마치 하나님은 전혀 원수를 갚으시는 심판의 하나님이 아닌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만 이해하는 경우나, 또는 그 사람의 가치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될 때, 사람들은 참하나님에 대한 이해나 사랑은 전혀 없으면서도 자기 상상 속의 하나님을 믿게 된다.

 

또한 자기애는 죄에 대한 자각의 결여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죄가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 하나님의 거룩성이 이런 죄를 얼마나 미워하고 증오하시는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각도 고작 인간의 생각 수준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감을 느끼고 하나님께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은 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상상 속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자기애에서 발동되는 또 다른 종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 비슷한 감정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을 때 일어난다. 이런 경우에도 그 감정에서 신령한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사랑을 느낀다. 그들은 긴 고난의 골짜기와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후에, 갑자기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자신을 양자 삼아 주셨음을 믿게 될 때가 있다. 이런 일은 환상이나, 특별한 음성, 또는 다른 비성경적인 방법을 통해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분 자체만으로 사랑할 만하며 위대하신가 묻는다면 다들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며, 그토록 사랑하시고, 천국에까지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하셨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은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자기애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랑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영적 사랑은 전혀 다른 식으로 생겨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먼저 발견하고 나서 하나님은 사랑 받으실 만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 받으시기에 합당하심, 그리스도의 위대하심, 또한 그 영광을 본다. 그들의 마음은 먼저 이런 하나님의 성품에 사로잡히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 된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며 그분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애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에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단순히 자연스런 이기심에서 발동된 것이라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신령한 영적 감사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진정한 영적 감사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단순한 이기적인 감사와는 다르다.

 

첫째,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 그분 자체에 대한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으며 그 영광은 그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그는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베풀 때 쉽게 감격한다.

 

이 상황을 인간의 삶으로 설명해 보자.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감사의 마음은 이미 깊은 우정을 느끼는 사랑하는 친구에 대해 가지는 마음과는 다르다. 친구들이 우리를 도와줄 때, 우리가 친구들에게 느끼고 있던 사랑은 더 깊어진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을 때 더욱 더 깊어진다.

 

따라서 영적 감사에서 모든 자기애를 제외시킬 수는 없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116: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 때문에 그분이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영적 감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단지 그 선하심이 사람들에게 축복을 베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선하심이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성품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자체만으로 영원히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구원의 필요를 깨달은 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거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본질인 선하심에 더욱 더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결국 자기애는 영적 명상의 종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9)는 구절을 인용해서 이 모든 주장을 반박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째 동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요한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생각과는 아주 다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의 증거로 우리 마음속에 넣어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움직여 주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자유로우면서도 주권적인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지 않았을 때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야 많겠지만 그것은 단순히 이기적 사랑이 아닌 영적 사랑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 안의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도덕적 무결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도덕적인 무결성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의 회심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큰 영광이 임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위에 설명한 바대로, 이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거룩한 영적 감사를 불러 일으킨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거룩하고 영적인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한다. 이것이 바로 이기적 사랑이 아닌 요한일서 4:19에서 말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즐거움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은, 그분이 주시는 축복 때문이 아니라, 대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완전하심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방법까지도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구원 방법에 드러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완전하심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개인적인 구세주 되심을 즐거워하지만, 그것이 그들 기쁨의 가장 큰 동기는 아니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얼마나 다른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공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의기양양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을 살펴보면, 이 모든 축복이 자기의 것이므로, 그리고 자기의 신분을 높이는 것이므로 그들이 즐거워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선택의 교리도 즐거워할 것이다.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생각에 우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기쁨은 하나님 안이 아닌 자신들 안에서의 자기 중심적인 기쁨이다.

 

이와 같이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을 누릴 때 자신에게만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이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아닌, 자신들의 경험으로 꽉 차 있다. "이 얼마나 좋은 경험인가! , 얼마나 놀라운 계시를 내가 받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자리를 자신들의 경험으로 대신한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충만함을 즐기는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놀라운 경험을 즐거워한다. 이것은 그들의 말에도 잘 나타나다. 그들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뜨겁거나 예민할 때,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또는 복음의 영광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겪었던 놀라운 경험들과,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안전한지, 또한 천국에 갈 확신이 얼마나 있는지 등등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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