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침묵(요한복음 3:16)

 

로버트 앤더슨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믿음이 투덜거리고, 불신이 반란을 일으키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침묵을 깨고 그 자신을 선포하라고 도전할 때, 그들은 그 도전의 의미를 정말 모르고 있는가!

그것인 의미하는 바는 은혜의 통치의 끝이요,자바의 날의 마감이며 분노의 날의 새벽이 열리는 것이다.


      틴들 교수라는 분이 "과학과 인간"에 관한 유명한 버밍험 연설에서 그 정통성을 훼손시킨 말들 중에 선포자 천사들의 노래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 땅의 평화의 약속에 관한 비평과 사람들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지금 동쪽(예루살렘 쪽)을 바라보십시오. 그 약속은 약 이십세기 가까운 경험에 의해 파괴된 꿈이며, 예언적 비젼에 대한 "하늘무리"의 주장이 그 황폐함과 관련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외쳤다.

그러나 그 천사들의 노래는 약속이 아니며 예언은 더욱 더 아니다. 그 찬양의 송가는 거룩한 선포였다. 그대가 하나님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강요한 때는 아니었으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왔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평화와 호의로 이 "지구상"에 심지어 그들의 슬픔과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대하게 되셨다. "그는 오셔서 평화의 좋은 소식을 전하셨다"( 2:17). "들을 귀 있는 자"는 말씀이 공중에 여전히 맴돌고 있을 때 그 소리의 메아리를 붙잡을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신다면 그것은 이미 하늘이 이 땅에 내려왔으며 신성의 계시의 절정이 이미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사랑의 말씀을 하셨고, 향후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셨을 때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이 세상을 삼켜버릴 심판이 시작될 것이다( 50:3).


고요한 하늘은 하나님의 비밀의 일부이며, 거룩한 성경은"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질"그 날은 이미 하나님의 연대기에 정해져 있다( 10:7)고 선포하고 있다. 그날에 하늘의 통치권은 우리 주님과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며, 그분의 통치는 영원하실 것이다( 11:15). 그리고 마침내 그분은 권력은 하나님께 속했음을, 공적으로 선한 사람들에게 상주시고 악한 자들을 벌하실 것을 선포하실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마땅히 하실 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일을 하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늦추신다면 그것은 그분이 그 약속에 대해 부주의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은 그분께서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길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벧후 3:9) .


    그리스도의 초림 때까지 인류의 역사는 외관상 하나님을 불신할 수 있을 수도 있는 인간들의 죄에 대한 묵과였다 거룩한 능력, 지혜, , 사랑은 모두 의문시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하면서도, 마지막인 계시가 이루어졌다. 분명,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비밀들이 있으나 그것들은 이 세상 너머에 있는 비밀들이다.

현재 우리의 관심을 끄는 모든 문제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 사람들은 이 땅 위에 인류의 삶의 슬픈 사건들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는 하나님의 침묵과 모든 도전들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는, 상상할 없을 정도로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숨김없는 표출인 십자가를 가리키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유일한 한 아드님을 아끼지 않으셨다는 엄청난 사실을 무시하면서, 인류가 하나님에 대해서 제시한 시험은, 하나님께서 현재의 인류의 필요에 성급하게 촉구된 어떤 특별한 호소에 과연 부응(응답)하시는 바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현재 그분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약속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9).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들은 현재 하나님의 최상의 목적의 실현을 기대하고, 절대적으로 영원히 구원받는 것이다.


    순교자가 목숨을 걸었던 사실은 이러한 진리들의 능력에 있다. 여기 그들이 승리의 비밀이 있는데 "논리와 양심의 견지에서 바로 잡아진 성경의 일반적인 의미"는 아니고, 성직에 필요한 재능에 대한 거만한 체 함도 아니며, 그것들을 견뎌내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임하는 그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사랑을 찬양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지켜지는 마음으로 그들은 목사들과 성직자들에 반하여 진리 위에 서 왔다. 이단자로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은 삶과 죽음 가운데 그들의 주님에게 충실했다.


    하늘은 현재와 같이 조용했다. 그들의 박해자들을 멈추게 하기 위한 어떤 환상도 보여지지 않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초점 맞추어진 비젼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하늘의 실체들이 그들의 마음을 채웠으며, 그들은 그들에게 가치없는 이 세상의 집을 지나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집으로 갔다.

타락한 세대의 타락한 아들인 우리에게 믿음은 우리 삶의 사소한 시련의 긴장 아래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주님께서 "나는 결코 너희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반면, 우리의 중얼거림은 그분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한다. 믿음과 인내를 통해 약속을 상속한, 약속의 추종자가 될 것을 선포하면서도 우리의 성급함과 불신은 무한한 하나님의 동정을 밀어내고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견디어 냈다" 우리는 우리의 시련 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눈은 마땅히 영원의 영광을 봐야 하는데 말이다.


    율법, 말씀, 약속의 섭리(선택받은 백성들의 뚜렷한 특권들)는 이 땅 위에 거룩한 능력의 공적인 나타남에 의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의 것은 보다 높은 특권이며 "보지 않으나 믿는 이들"( 20:29)의 보다 더 큰 축복이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행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만일 오순절 때와 같은 "표적의 기사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믿음은 보다 더 낮아지고, 그리스도인의 훈련의 모든 성격들은 바뀌었을 것이다.
바울의 고난은 그의 초기 사역의 "권능있는 행위들"보다 높은 믿음을 나타내준다. 기적이 멈추고 그가 우리가 현재 밟고 있는 믿음의 길로 들어가자마자 "나중에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는 그의 삶이 계시되었다(딤전 1:16).


    인생은 무엇인가! 놀랄만한 기록은 고린도후서 11장에 나타나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군말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되어진 것이다. 그의 약함에 대한 불평없이 그는 그 점들을 자랑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불평없이 약함들을 기쁨으로 취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그것들을 가벼운 고난으로 묘사했다. 따라서, 하늘 본향을 향한 벅찬 기쁨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영광의 감동으로 성도는 심지어 수겹의 시련의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그분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다(벧전 1:6,7).


    사람들은 "사람의 계명과 교훈을 좇은" 종교적 금욕주의, 참회, 법령들을 높게 평가한다( 2:2). 그러나 이런 것들은 믿음의 삶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것들은 인간이 십자가에 이르기 위하여 헛된 노력으로 그들 스스로를 미혹하는 길이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바로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영적 기적들은 자연법칙의 운용을 주관하고 일시 정지시켰던 어떤 것보다 놀라운 것이다.

이 모든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거듭남의 기적이다.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입증한 동일한 결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것은 고립된 경우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분위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은 이방세계의 가장 낙후된 인종의 일부에 복음을 전파하여, 이전의 모든 기록들을 초월하는 결과를 갖고, 그것의 거룩한 특성들의 압도적 증거들을 제시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하늘은 침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다른 세상의 소리와 광경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일치된 목소리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분의 말씀은 사실임을 입증한다. 그리고 우리가 경주를 마치게 될 때, 우리는 경주장을 가로질러 권능의 무리에 합류하고, 마침내 그들의 정렬이 완성되고, 거룩한 무리는 셀 수 없이 불어나서 만군의 여호와의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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