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 러브(tough love) - 최영기목사

2012.11.23 16:18

서성필 조회 수:4518

터프 러브(tough love)” <고린도 후서 2>

 

                                                                                                            최영기목사

 

    사도 바울은 전형적인 담즙질의 사람입니다. 이런 형의 사람들은 집념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담즙질 사람들은 보통 유능하기 때문에 무능하거나 약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후서를 읽어보면 바울의 마음이 참 여린 것을 방문합니다. 주님이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하기로 했다가 취소한 것과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을 징계하라는 강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2:1-4에서 사도 바울은 왜 자신이 그렇게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의 여린 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방문을 취소한 것도 강한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도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I. 사랑은 터프해야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터프 러브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터프(tough)라는 단어는 강인하다, 강하다, 질기다는 뜻입니다. 부드럽다는 의미의 텐더(tender)와 반대되는 단어입니다. 텐더는 부드럽다, 약하다, 연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부드러운 것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때로는 강해야합니다. 이것을 터프한 사랑 즉 터프 러브라고 부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여성적인 부드러움도 있어야하지만 남성적인 강한 면도 있어야합니다.


1.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


    터프 러브를 실천하기 위하여서는 자기보다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지 않아야합니다. 터프 러브를 실천하는 사람은 사랑의 결과로 자기가 상처를 입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개의치 아니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방문 계획을 바꾸면 거짓말쟁이라느니 이중성을 가진 사람이라느니 비방을 들을 것을 알았습니다. 교인을 징계하라는 강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 사랑이 없다느니 독재를 한다느니 비방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를 다 하였습니다. 왜요? 1-4절을 보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3:5).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자신의 유익을 돌보지 않아야합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버릇이나 행동으로 반복적으로 손해를 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자신과 이웃을 다쳐주어도 잠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끼어들어서 자신의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또 바로 잡아주고 도와준다고 하다가 오히려 상대방과 원수가 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또 도와준다고 하다가 자신이 손해를 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이 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이 날카로워서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다쳐주고 친구도 없고 한 직장에도 오래 붙어있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다 피하려하지 이 사람을 바로 잡아주려 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가 실패하는 인생 외로운 인생을 살다가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문제를 지적해주고 문제를 바로 잡도록 고쳐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런 과정 가운데에 자신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대방의 미움을 받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반복되는 잘못된 습관으로 인하여 실패하는 인생을 사는 상대방이 불쌍해서 바로잡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목장을 통하여 경험되어야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가짜 물건을 판다든지 불법적인 방법으로 미국 체류를 시도할 때에 장기적으로 볼 때에 이러한 것이 유익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말해주는 것이 바로 터프 러브입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3:6). 목장이 바로 이러한 터프 러브를 실천하는 곳이 되어야합니다.


2. 징계하기도 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징계가 필요할 때에는 징계를 하여야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 없는 사도라는 말을 들을 것을 각오하고도 징계를 요구하는 강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을 징계한 것이 자신에게 잘못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에 해가 되기 때문에 징계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5). 징계 받는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지금까지는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계모와 같이 살던 사람이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요즈음은 사도 바울에게 도전했던 유대주의자일 것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이 사람은 사도 바울의 권위에 모욕적인 방법을 써서 도전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은 당시에 사도 바울을 변호할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개인적인 일이면 사도 바울이 용서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도전은 사도 바울의 사도로써의 권위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이를 가만두면 교회 전제가 잘못된 신앙에 빠질 것 같아서 사도 바울은 강하게 대응했던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징계하여야 합니다.  자녀들을 징계할 줄 모르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13:24). 자녀들의 장래를 망쳐놓는 것입니다.  매를 아끼지 말라고 했다고 반드시 체벌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가벼운 체벌이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청소년 자녀들에게는 체벌이 비효과적일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여기에서 매라는 것은 반드시 체벌을 의미한다기보다 징계를 의미합니다. 나이에 따라서 징계의 방법은 다르지만 반드시 징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통하여서 자녀들을 옳고 그른 것이 있는 것을 배웁니다. 자기가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넘어서면 부정적인 결과가 오리라는 것을 배웁니다. 이런 징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은 장성한 후에 이 경계선을 모르니까 대인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사회적으로도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징계를 한다고 해서 야단치고 매 때리면 다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징계는 행동의 한계를 가르쳐주고 이를 준수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올바르게 하려면 자녀들이 규칙을 알고 있어야합니다. 또 규칙이 이해가 가야합니다. 그러므로 규칙도 징벌도 자녀들과 같이 의논하여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규칙을 정했으면 규칙을 어겼을 때에는 반드시 약속된 징벌을 내려야합니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서 징벌이 내리기도 하고 안 내리기도 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징벌하지 않는 것이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입니다. 귀찮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올바르게 양육하고 필요할 때에 징벌하기 위하여서는 부모 자신들이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아야하고 자녀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야합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한다는 것이 여간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귀찮으니까 징계를 포기하고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입니다.

    한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이 엄청난 사명입니다. 어떻게 양육했느냐에 따라서 한 인간의 장래가 이렇게 결정될 수도 있고 저렇게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을 투자를 하여야합니다. 대가족 제도 안에서 살 때에는 자연스럽게 옳고 그른 것을 배웠습니다. 어른들이 계셨기 때문에 경계선을 넘으면 꾸중을 들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핵가족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이 보고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서부모의 삶을 수강한다든가 투자를 하여야합니다.


3. 회개하면 용서한다


    징계를 받은 사람이 회개하면 이를 받아줄 뿐만이 아니라 위로해 주어야합니다(5-11). 징계하라는 바울의 편지에 순종하여 교회는 또 뒤늦게나마 강한 징계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6). 그리고 당사자도 충분히 뉘우치는 기미를 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용서하고 위로해 줄 것을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단에게 빌미를 주기 않기 위하여서입니다(11).


    사단은 교회를 깨기 위하여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깨어진 관계가 있고 상처받은 사람이 있으면 이 기회를 이용하여서 교회를 깨려합니다. 만일 회개한 당사자를 용서하고 위로해주지 않으면 이 사람이 처음에는 잘못했다고 느꼈다가 나중에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교회에 대하여 불평하기 시작하고 교회에 분쟁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또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이 징계 받는 사람에 관하여 동정심을 느끼고 교회에 불만을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용서해주고 위로해 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진 관계를 회복시킬 뿐 아니라 마무리를 잘 하여야합니다. 감정의 찌꺼기가 남으면 사단에게 이용당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짐승 시체가 썩는 것이 있으면 수십 마일 밖에 있다가도 냄새를 맡고 vulture들이 몰려옵니다. 사단도 분쟁이 있고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 싶으면 그 기회를 이용하여 교회에 분란을 일으켜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단의 궤계를 간파하고 기회를 주지 말아야합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이러한 사단의 궤계에 무지합니다. 그래서 사단에게 이용당하여 교회를 다쳐주고 주님의 몸에 상처를 입혀드립니다. 이런 기회를 없애기 위하여 깨진 관계가 있으면 얼른 회복시켜야합니다. 성도들을 다른 성도와 관계에 문제가 있었으면 뒤처리를 깨끗하게 하여서 쓴 뿌리가 남지 않도록 사단이 역사할 여지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II. 성도는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사도로써의 자신의 사역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4-16절은 당시 불리던 찬송가의 일부일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서는 개선 행렬이 묘사되어있습니다. 목장 성경 공부에서 충분히 설명을 했을 테니까 자세히 설명은 않겠습니다. 로마 시대에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로마로 입성할 때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과 더불어 포로를 데리고 입성을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향을 피워서 환영을 합니다. 이러한 향내가 승리한 군사들에게는 승리의 냄새로 느껴질 것이고 포로들에게는 패배의 냄새로 느껴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개선 행렬을 들어 말하는 이유를 우리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개전 장군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승전한 군인들은 그리스도로 부름 받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군사로 부름 받았지만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요즈음 Band of Brothers라는 TV 시리즈를 DVD로 빌어다가 보고 있습니다. 몇 편을 되어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보지는 못하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관람하고 있습니다.  실화에 기초한 101 공수 부대 얘기입니다. 노르망디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공중에서 낙하산으로 적진에 투하되어 중요 거점을 확보하고 연합군이 상륙하는 것을 대비하고 그 후에도 계속하여서 가장 최전선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투하되어 작전을 벌입니다.

    이 부대를 비롯하여 많은 부대들이 전투를 계속했지만 사실 2차 대전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대세가 결정된 것입니다. 그 후에도 사상자도 나오고 치열한 전투도 벌어졌지만 연합군은 승리한 전쟁에서 소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고 독일군은 패배한 전쟁에서 최후 발악을 하는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 이락도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아직도 테로리스트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고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이락의 대세는 결정 되었습니다. 그곳에 사담 후세인이나 호메이니 같은 독재자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불완전하다할지라도 민주 정권이 세워질 것이고 테러리스트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원하는 정권은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 정권이 세워지는 데 얼마나 세월이 걸릴 것인가만 이 문제입니다.


    주님도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승리를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소탕전을 벌이고 있을 뿐입니다. 소탕전이라 할지라도 치열하기 때문에 사상자도 생길 수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승리하셨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단과 죽음은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사단이 대등한 입장에서 싸우는 이미지를 그리면 안 됩니다. exorcist를 비롯한 영적인 싸움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는 하나님과 악령이 엇비슷한 힘을 가진 것처럼 그리는데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악령이나 사단은 차원이 틀립니다. 악령의 상대는 예수님이 아니고 천사입니다. 사단이나 악령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저는 아픈 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이것을 기억하려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질병을 정복하였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았다고 사도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벧전 2:24).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에 질병이 물러간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물러가지 않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는 질병과 죽음과 사단을 정복하신 승리의 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도했다고 다 낫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한 치유는 천국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성도들도 아프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질병으로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지 예수님의 이름이 능력이 없어서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주이시고 우리는 승리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악령을 쫓아야할 때에도 예수님이 승리의 주이시고 우리는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잡신에게 나가 달라고 빕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은 승리의 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으로 명할 때에 악령은 물러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항을 하기도 하고 예수님 이름을 비웃기도 하지만 허세를 부리는 것이지 자신은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하게 물리치면 물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악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우리 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 즉 사단보다 더 큰 것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요일 4:4).


    예수님은 승리의 주이시고 우리는 승리한 싸움을 싸우고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 왜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허락하시는가? - 척 스미스 (미국 Calvary Chapel담임목사) 서성필 2012.12.01 6248
20 ★왜 예수가 유일한 구주이신가?(행4:12)(사랑타령에 대한 글) - 마틴 로이드 존스 서성필 2012.11.28 3924
19 종님과 종놈 - 송인규 교수 서성필 2012.11.23 3681
18 ♥ 노아의 방주 - 서성필 2012.11.23 4154
17 ♥ 그리스도인의 지식 - (조나단 에드워드, 1703~1758) 서성필 2012.11.23 3547
16 두려움에 종언을 고한 하나님의 성육신 - 찰스 스펄전 서성필 2012.11.23 3748
15 ♥ 사랑에 기초한 감정 - 조나단 에드워즈 서성필 2012.11.23 4402
14 사랑이 교리와 분리되고 연합이 진리를 거부할 때 - John C. Whitcomb Jr. 서성필 2012.11.23 3611
13 또 다른 요한복음 3장 16절 - H. P. 바커 [5] 서성필 2012.11.23 9362
12 하나님의 침묵(요한복음 3:16) - 로버트 앤더슨 서성필 2012.11.23 4153
11 그리스도의 사랑 - G. 스타인버거 서성필 2012.11.23 3935
10 사랑의 목적 - David R. Reid 서성필 2012.11.23 4369
9 순 종 - 프랭클린 퍼거슨 서성필 2012.11.23 3695
8 성경적 사랑 - David W. Cloud 서성필 2012.11.23 4554
7 무조건적 사랑과 수용 - David Cloud 서성필 2012.11.23 5925
6 인간 관계 갈등 다루기 지도 & Spiritual Transformation - 장이규 서성필 2012.11.23 5763
» 터프 러브(tough love) - 최영기목사 서성필 2012.11.23 4518
4 사랑의 음성: 딱딱한 음식 - 김승배 담임목사 서성필 2012.11.23 4237
3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 이진학 서성필 2012.11.23 3275
2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 M. H. Reynold, Jr. 서성필 2012.11.23 3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