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생명” -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진학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예수님의 방법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사랑과 용서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아무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과 용서의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국어사전을 보면 용서란 잘못이나 죄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음이요, 사랑이란 대가없이 상대방에게 행복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사랑, 용서, 순종이라는 말과 비판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으로 인하여 교회에서 잘못된 일이 벌어져도 입밖에 내어 말하면 사랑이 없는 자요, 믿음이 약한 자가 되고 자기 눈의 들보는 안보고 남의 눈의 티끌을 보는 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니 속으로는 불만이 있고 교회가 잘못되는 것 같고 옳지 않은 일이 진행되고 있어도 겉으로는 모두 거룩한 척, 은혜 받은 척하며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하고 억지로 지어낸 경건과 행복과 화평을 누리는 척하고 있는 것이 교인의 도리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교회에 출석하여 기쁨과 감격과 감사를 찾아야 하는데 모든 것을 억누르고 있자니 얼굴이 굳어지고 영생의 기쁨과 거듭남의 감격대신 “사람이 하는 일인데 별 수 있나”하는 자포자기와 이러한 불만을 건강과 사업과 물질 등 개인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으로 돌리어 만족을 찾으려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는 교회가 셀 수 없이 많고 국민의 오분의 일 이상이 기독교인이어도 사회 정의실현은 점점 멀어지고 오히려 무슨 사건이나 비리가 터질 때마다 문제 인물로 지목되는 사람 중에 기독교인들이 더 많은 것을 본다. 교인들 중에 교회에 매주 출석하고 부흥회 열심히 참석하고 새벽기도 매일 하시는 분이 그렇게 많은데 교회에서 사랑만 강조하고 정의실현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는 것으로 교육받아서인지 교회만 벗어나면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교회 밖의 일은 안 믿는 사람과 차이 없이 세상 풍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상처받은 사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예수님께서도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필요하며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위해 오셨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근본적으로 교회는 사랑과 용서가 충만해야 되고, 경건과 거룩이 충만해야 되나 그 방법으로 무엇이든 참고 숨겨야 하며, 거룩한 곳이니 모인 사람도 거룩한 척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교회는 오히려 갈등이 표출되고 상처가 노출되는 곳이어야 한다. 단지 세상과 다른 것은 그러한 갈등과 상처가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에 의해서 치유되어 속과 겉이 모두 하나인 진정한 사랑과 용서, 즉 정의에 바탕을 둔 사랑과 용서로 치유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기보다 사랑과 용서와 순종과 거룩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고 아예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가장하여 오히려 더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았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는 정의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 사랑으로 그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려면 그에게 정의로운 삶을 권면해야 하며 죄는 용서하고 벌을 주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더 이상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깨닫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불의한 행동까지 용납하여 계속 답습하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의가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에서만이 아니고 우리 삶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서 불의와 미움에 갈등하며 살던 이들이 교회를 통하여 다시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정의를 실현하게 되며 소위 이 세상에서의 교인의 역할 즉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과 용서는 단순히 모든 잘못을 모른 척하거나 기도와 몇 마디 말로 그치는 것만이 아니고, 사랑을 바탕으로 한 대화와 권면으로 바로 되어 치유되기까지 실행해야 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은 원칙을 하나님의 뜻에 따르라는 것이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일을 드물게는 직접 나서서 시행하시기도 하지만 성령의 시대인 현대에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또는 주위 사람의 권면의 말씀을 통하여 그 뜻을 전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직접 하신다면 우리가 전도할 필요가 어디 있고 교회를 세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주님의 능력이나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주님의 일하시는 방법이 사람을 통하여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항상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셨으나 성전을 더럽히는 일은 용서하지 않으셨고, 사랑을 강조하셨지만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따라서 성전이 더럽혀지고 불의가 고쳐지지 않을 때에는 옛날에도 하나님께서 교회개혁을 위해서 마틴 루터, 칼빈 그리고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라는 사람을 쓰셨듯이 오늘날에도 사람을 통하여 바로 잡는 일을 하실 것임이 분명하다. 옛 시대의 개혁이 한두 사람만의 행동이 아니라 교회 성도들의 열성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듯이 오늘날의 교회 문제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각 교회의 목사님, 장로님, 그리고 일반 신도들이 침묵과 맹종을 깨고 교회의 정의를 말과 행동으로 실천해야 이루어질 것이며 그 역할이 바로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인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 해가 저문다. 2001년은 어느 해보다 정의보다는 불의가, 사랑보다는 미움이 앞섰던 한 해였다. 이제 밝아오는 새해에는 우리 기독교인 모두가 회칠한 무덤 같은 가장한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를 위해 침묵과 맹종을 깨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털어놓는 “교인 대화의 해”가 되었으면 한다. 목사님과 교회 임원들 간의 대화, 목사님과 성도들과의 대화, 교회 임원들과 일반 교인들과의 대화로 우리 모두 진정으로 상처를 치유받고 정의로움을 회복하여 그 동안 잃어버린 진정한 기쁨을 찾는 한 해, 그 정의와 기쁨이 사회 속으로 전파되는 새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한다.

 

 

 

서울의대 졸업(1972), 의학박사(1981)
서울의대 안과 전임강사(1980), 미국 Kresge Eye Institute 교환교수(1983-1984)
서울의대 안과학 교실 주임교수, 서울대학교 병원 안과과장(1998-2001),
서울대학교 병원 사회사업실장, 의학박물관장, 병원 보 편집인, 임상의학연구소장(2001-2005) 역임
한국 콘택트렌즈회장, 한국 외안부학회회장, 한국 백내장 굴절학회회장 역임, 현 대한 안과학회 이사장
Ocular Surgery News, Yonsei Medical Journal 편집위원, 한국 의학 한림원 회원
두 가지 목숨, eye 닥터 119(단독 저서 2) “안과학 11개의 공저
인공각막(국내 및 미국 특허) 4개의 특허
올해의 의사평론가(1995), Topcon 안과학술상, 과학 기술 우수 논문상(2002) 수상
▲Marquis Who's who 등재(1998-현재),
백내장 명의(한국일보,1992), 한국의 명의 100(뉴스메이커,1994), 의학계 10대 뉴스(한국일보,1998), 신명의 백내장(경향신문,1999), 명의 베스트15(신동아,1999), 베스트닥터 안과 1(동아일보, 2003)
▲BK 연구교수, 보건 복지부 G7 연구비 수혜, 국내 학술지 195, SCI 학술지45편 총 240편 논문발표 

(이진학/서울대학교병원 임상의학연구소장이며, 서울대학교병원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진학 교수는 서울대의대 안과과장, 임상의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안과학회 이사장에 재임중이며, 2003년 동아일보 베스트 안과닥터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국내 백내장 분야의 최고 권위자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이진학 교수 E-mail:jjhlee@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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