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증 (성령) - 로이드 존스

2012.11.21 16:45

서성필 조회 수:3778

★ 보증 (성령)

(그것은 가장 먼저 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드러내는 것은 항상 성령의 첫 번째 사역입니다. 그분은 어두움에 감춰진 일들과 우리가 먼저 깨닫지 못한 죄를 밝히 드러내십니다.)

 

 

로이드 존스.


1. 확신할 수 있는가?


1)보증불능교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 삶에서 구원의보증을 얻기란 불가능 하다고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① 로마카톨릭의 가르침.

로마 카톨릭에 의하면 보증의 교리란 개신교의 가장 악독하고 방항적인 가르침들 중 하나입니다. 로마카톨릭의 가르침 전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삶에서 보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들을 어머니 교회(mohter Church)에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뢰는 보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전에도 그리했던 것처럼 영속적으로 교회와 성례들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내적인 보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에게는 전적으로 혐오스럽고 가장 위험한 이단입니다.

 
② 신학자 칼바르트(Karl Barth)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연합된 신학적인 운동.
이들 역시 이 부분에 있어서는 로마카톨릭 교회와 일치합니다. 바르트는 구원의 보증의 개념을 철저히 싫어했고 부인했고 자신의 신학체계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전적으로 일치하여 전개시켰습니다. 바르트는 모든 체험을 싫어했으며 그의 전체 견해는 이런 체험들 중 어느것도 여러분이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려는 시도 역시 필수적이지만 잘못된 것이며 불합리하다고 주장합니다.

 
2) 보증필수견해

개신교 선구자들은 믿음의 보증이 바로 믿음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의심할 것도 없이 그들이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은 부분적으로 로마 카톨릭에 대한 반동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압제와 전제로부터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에 몰두 했기 때문에 이런 보증과 확신이 없이는 사람의 믿음이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요한웨슬리는 특히 초기에 그와 동일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그런 가르침을 수정했습니다.

18세기에는 알미니안주의가 아니라 개혁신앙을 가졌던 다른 감리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처음에는 보증이 믿음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동일하게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구원의 확신만을 가지고있는 사람들을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였던 웨일즈의 감리교 선조들이 그러했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확신이란 믿음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고 확신이 없는 믿음이란 불가능하며, 그러나 동시에 확신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라는 것으로 그것을 가지기까지는 누구도 쉴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바로 종교개혁 이후 복음적인 사람들이 취할 수 있었던 가장 보편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2. 의심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혹은 의심이란 그자체는 믿음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의심이란 확신에 반대되는 것이지 믿음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남녀가 의심에 의해서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을 향하여 물위를 걸었던 베드로는 흉흉한 파도를 인해서 의심하였고 물에 빠져들었다(14:31).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의심했기 때문에 믿음을 상실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의심은 믿음과 상반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의심이란 일반적으로 약한 믿음 혹은 적은 믿음을 의미하며 이 의심은 많은 원인들로 인해 올 수 있습니다.


1) 의심이 오는 이유 1 : 죄 때문에 올 수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죄에 빠지게 되면 죄책감을 가질 것이며, 그 결과로 의심에 빠질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죄를 고백하고 죄에서 떠나 모든 것이 깨끗케 될 때까지 의심의 상태에 있을 수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남아 있지만 약하고 불확실하며 그 기간 동안 의심의 희생양이 됩니다.
2) 의심이 오는 이유 2 : 의심은 믿음의 참된 본질을 오해함에서 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믿음이 능동적인 것이며 적용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못합니다. 만약 우리가 무엇인가 발생할 것을 기다리면서 순전히 수동적인 상태에만 머물러 있다면, 의심은 믿음보다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믿음을 충당하고 진리 위에 세운다면, 우리는 의심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며 그때 우리의 믿음은 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1:10).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소명과 선택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그것들을 확실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권면하는 전체 문단은 바로 이 점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서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5-7).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에 속했다면 여러분은 우리 아버지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그왕국에 풍요롭게 들어감을 원한다면 여러분은 소명과 선택을 확신해야만 합니다.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 이것은 요한이 불신자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편지는 불신자들에게 쓴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쓴 것입니다. 그들은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 사도는 그들이 영생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도록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요한은 또한 그들이 확신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확신없이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면 이 편지늘 결코 쓰여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공상태에서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믿음이란 여러분이 마음으로 믿고 말씀 속에서 가르치고 있는 진리에 대해 지적인 동의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믿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 주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이러한 것들을 믿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약간의 확신과 위로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해가 가지만 저는 그것을 믿음에 대한 참된 확신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확신은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둘 모두를 포함합니다.


3. 확신의 근거들은 무엇입니까?

 

완전한 확신은 객관적인 것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것까지,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것까지를의미한다고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3:33절“그의 증거(진리에 관한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진리 위에 우리의 보증을 두고 있으며 “하나님은 진실하시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신실하시며 저는 그 사실에 나의 보증을 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5: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도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서도 역시 미리형이 아닌 '지금 가지다'는 현재형입니다. 그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바울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 말씀을 전파하시면서 말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여러분이 어떤 일에 있어서도 결코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었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예수를 힘입어서 의롭게 됩니다.(13:39). 이러한 것들이 첫 번째 근거들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벌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이러한 성경의 진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명백한 진술들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 말씀들을 믿었다면 그들은 벌써 영생을 소유했다고 이런 구절들은 말합니다.

 

<주의사항>
그러나 슬프게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그것만이 유일한 근거이며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며 그 이상의 것들을 거절합니다. 이제 저는 그 관점을 극도록 위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라하려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것에 동의합니까?” 만약 그들이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매우 좋습니다. 당신은 모두 다 되었습니다”라고 가르치는 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단지 그 가르침에서 멈추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그 가르침에서만 머물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인용한 요한일서 역시 우리를 그 가르침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의 2장은 한 때 교회의 구성원이었던 자들이 이제는 교히 밖으로 나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교회에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나간 이들도 하 한 때는 이런 모든 것들을 믿는다고 말했으며, 그리고 의심할 것도 없이 그들은 완전히 행복했습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갔지만, 그들은 원래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었다면,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침내, 다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요일2:19).


2) 형제사랑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이것은 옳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극자에 가는 것보다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저는 더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형제들을 사랑하며 모두가 저와 함께 있습니다.

형제사랑에 대해서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이것이 바로 형제 사랑의 일부분입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7-18). 그렇습니다. 형제사랑은 그들과의 모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사랑은 만약에 필요가 발생할 때 그 필요를 충족시키는 이런 실제적인 면을 반드시 포함해야만 합니다. 사랑은 항상 실제적이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진실함과 철저함으로 적용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3) 주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이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참으로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요일23). 요한은 이 점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5장에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따라서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은 여러분에게 어떤 것들은 하지 말고 어떤 것들을 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당신의 비위에 거슬립니까? 그런 명령 때문에 당신은 괴롭습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그런 것들을 실천합니까?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생명의 소유에 대한 시험입니다.

4) 성령을 소유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선물이 우리가 장차 들어가야만 하는 기업을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인침(the seal)이라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구속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합니다.(1:13-14). 제가 영광스러운 기업으로 들어갈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제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제가 상속자라는 서류 위의 인치신다는 것이 그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22절에서 동일하게 바울은 성령님을 ‘보증’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선물을 주셨다는 것을 어떻게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질실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는 점을 믿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에 관한 교리를 우리가 믿는다는 바로 그 사실은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8:7).

고린도전서2:14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요, 그런 사람은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런 일들이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의 관원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을”(2:8) 것입니다. 왜 그들은 그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 그래서 여러분이 이러한 것들을 믿는다면 성령을 소유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② 만일 우리가 이러한 지식을 더욱 더 사모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바울은
8:14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만일 여러분이 성령에 이끌림 받기를 원하며, 만약 여러분이 자신이 소유한 재원의 끝에 도달했다면, 만약 여러분 자신의 인간적인 명철함과 철하게 의존하여 살지 않으며, 만일 여러분이 ‘나는 모든 면에서 성령에 의하여 밝히 분별력이 있게 되고 인도함받기를 원한다’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우리가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③ 우리안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들이 바로 그분이 우리안에 계시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가장 먼저 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드러내는 것은 항상 성령의 첫 번째 사역입니다. 그분은 어두움에 감춰진 일들과 우리가 먼저 깨닫지 못한 죄를 밝히 드러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더욱더 큰 능력으로 일하실 때에 우리는 더욱 더 죄에 민감하게 되고 우리가 간과했던 일들을 이제 죄로써 간주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역의 큰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또한 죄에 대한 증오심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열망을 일으키십니다.

       
5)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있는 위대한 목록으로 되돌아가 보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

       
6) 양자의 영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8:15).

       

4. 참된확신과 거짓확신

              
가짜 확신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가르침, 잘못된 복음, 그리고 성령의 역사의 진행에 앞서서 사람들에게 결단을 촉구하거나 아니면 성령의 역사없이 사람을 중생케 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오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할것이라 그 때에 주님께서 저희에게 밝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7:22-23).

             그들은 자신들이 모두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였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세 개의 비유는 동일한 점을 가르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 달란트를 감추고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들, 불쌍한 이웃을 돌보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이 항상 주님만을 기쁘게 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너희들은 구원받지 못했다. 너희들은 내게 속하지 않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것은 가짜 확신이었습니다.

            

<참된 확신의 특징>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확신이 참된 확신이라고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까? 참된 확신들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겸손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입니다. 참된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확신이 단지 즐거운 생활이라거나 그것으로부터 큰 활력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결단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확신을 소유한 자들은 자신들이 누구이며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항사아 하나님 자녀들에 대한 겸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확신이 여러분을 겸손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간청하오니 다시 그 근거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② 자기성찰입니다.

      만일 여러분 자신을 살펴서 자신을 안다면, 그것은 참된 확신의 표시입니다. 거짓확신을 가진 사람들을 자기 성찰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을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을 불안정하게 할 것이며 나아가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아서 자기성찰을 합니다. 바울은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가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고전9:27)고 말합니다.

고후13:5에서 고린도인들을 격려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하여 보고,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르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고 권면합니다.

     
③ 경외심을 가집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존경과 경외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육적인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들은 이러한 진리에 비추어 살아가는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④ 거룩을 추구합니다.

      더욱이 참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핫앙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려고 노력합니다. 더욱이 참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3:10).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3:13-14)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그 일을 해 나갑니다.

      참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그분과 같이 되려고 하는 고양된 열정을 품고 있습니다. 요한도 그렇게 말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긋하게 하느니라”(요일3: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영적 감정을 분별하라 - 조나단 에즈워즈 [2] 서성필 2012.11.21 6085
65 영적 감정과 믿음의 의무 - 조나단 에드워드 서성필 2012.11.29 3308
64 영적 감정과 천국 - 조나단 에드워즈 서성필 2012.11.29 2903
63 영적 감정의 실천 - 조나단 에드워드 서성필 2012.11.29 3441
62 영적 감정의 종류 - 조나단 에드워드 서성필 2012.11.29 3443
61 영적 감정의 중요성 - 조나단 에드워드 서성필 2012.11.29 2959
60 영적 감정의 실체 - 조나단 에드워드 서성필 2012.11.29 3496
59 성령의 내주(內住)와 충만(充滿)에 관한 고찰. - 이광호(Ph.D/홍은개혁신학연구원) 서성필 2012.11.23 3080
58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성령) - 로버트 맥체인 (Robert McCheyne, 1813 - 1843) 서성필 2012.11.21 3266
» ★ 보증 (성령) - 로이드 존스 서성필 2012.11.21 3778
56 성령의 첫 열매(롬8:1-4)(성령) - 존 웨슬리 서성필 2012.11.21 3842
55 ★노예의 영과 아들의 영 (롬8:15)(성령) - 존 웨슬리(1703~1791) [1] 서성필 2012.11.21 3171
54 ★성도의 견인의 의미(성령의 열매) - 존 오웬(John Owen, 1616~1688) [34] 서성필 2012.11.21 4550
53 성령 세례(교회, 유기체) - 어네스트 타담 [12] 서성필 2012.11.21 3752
52 성경이 말씀하시는 부흥 - 알반 더글러스 [1] 서성필 2012.11.21 3551
51 한 본성주의 - 데이빗 던랩 [5] 서성필 2012.11.21 3231
50 율법의 두가지 면을 상고하면서(롬) - C. H. 매킨토쉬 서성필 2012.11.21 2952
49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롬) - C. A. Coates 서성필 2012.11.21 2863
48 영적인 사고의 중요성(시73:16-20)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1 2989
47 성령의 열매 16: 선함/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 제임스 낙스 [1] 서성필 2012.11.21 4136
46 성령의 열매 15: 믿음/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삶 - 제임스 낙스 [3] 서성필 2012.11.21 2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