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세례(교회, 유기체)

(그들을 한 몸, 즉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령 세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공통의 이해 관계에 의해 함께 모인 단순한 개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닌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

 

 

어네스트 타담

 

 

신약성경에는 이러한 경험에 관한 언급이 단지 일곱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3:11, 1:8, 3:16, 1:33, 1:5, 11:15,16, 고전 12:13).

우리는 이 각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는 반복적인 것인가, 혹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는가? 성령 세례는 개인적인 것인가, 혹은 단체적인 것인가, 성령 세례는 모든 믿는 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며 또 모든 믿는 자들에 게 적용할 수 있는가? 성령 세례는 표적과 특별한 능력을 낳는가, 혹은 각 그리스도인이 들어가는 어떤 영적 실체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위에 제시한 성경 구절들을 하나 하나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마태복음 3 11), 우리는 세례 요한이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 8, 누가복음 3 16, 요한복음 1 33절은 유사한 말씀들입니다 사도행전 1 5절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그들이 "몇 낱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H. P 바커는 이에 대해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으로부터 인용한 이 말씀들은 주님이 삼 년 반이라는 기간에 결쳐서 하신 말씀들입니다. 이 기간 동안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령 세례는 아직도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동안에도 몇 가지 매우 놀라운 일들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서 복음을 전하며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9:6). 그들은 많은 귀신들을 내어쫓았으며( 6:13),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10:17). 그들은 한 번 실패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성령님의 침례를 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그 귀신은 오직 기도와 금식으로써만 굴복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던 동안 성령 세례는 이러한 기적들을 행하거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말씀을 문맥과 상관없이 보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성령 세례에 대한 참된 의미를 오해하는데서 비롯된 교훈들로 인하여 혼동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 13절은, 우리가 혹시 교리적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는 방법으로 성령 세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경으고 세례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개역 성경(R.V)에서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Were we all baptized)"라고 번역된 것은 성령 세례가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흠정역 성경(A.V)의 번역(are we all baptized)에서 보다 의미가 정확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특별히 세 가지 사항을 주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얼마나 많은 고린도 성도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을까요?

모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어떤 성도들은 다투기를 좋아했으며 당파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11,12). 그들은 육신적이었으면 "사람을 따라" 행했습니다(3:3). 또한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하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6:6). 어떤 성도들은 주님의 만찬을 먹고 마시는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11:21,22). 그들은 전혀 모범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육신적인 삶을 보고 여러 번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였으며( 18:8),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6:11). 이러한 신분 때문에 그들은 모두 성령님의 세례에 참여한 자들이었습니다.


2.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목적으로 성령님의 침례를 받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이것은 주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방언을 하거나 어떤 특별한 경험을 즐기도록 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한 몸, 즉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령 세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공통의 이해 관계에 의해 함께 모인 단순한 개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닌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와 같이 좁은 의미이든 혹은 넓은 의미에서이든 그리스도의 몸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인간의 몸은 조직체가 아니라 몸의 각 부분의 똑같은 생명을 가지로 있고 머리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유기체입니다.

개인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았다거나, 개인적으로 성령 세례를 구하라는 권고가 주어진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집합적이며 단체적입니다. 이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들은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3. 고린도의 성도들은 언제 성령 세례를 받았을까요?

우리는 이 점을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령 세례에 대해 참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례로써 고린도전서 10 1,2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한 아모스 2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범죄한 그들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애굽이나 광야에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출애굽한지 오랜 후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그 놀라운 구출을 함께 경험하였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 성도들은 역사적인 성령 세례가 있던 오순절날 실제로 거기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시대의 "조상들"과 아모스가 언급한 "이스라엘 백성"도 그들이 조상들이 애굽으로부터 구출을 받을 당시 함께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출생했다는 점에서 그 놀라운 구출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라고 간구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역시 이와 동일합니다. 그들이 비록 역사적인 성령 세례에는 실제 참여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왔음을 듣고 믿었을 때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그들 안에 들어오심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놀라운 유기체의 일부분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 고린도 성도들은 성령님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고 언급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나 문자적으로는 아모스 2 10절에 언급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출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고린도 성도들은(혹은 그 이후에 살던 사람들 누구나) 개인적으로나 문자적으로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각 개인이 복음을 받아 들였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인침을 받았으며, 성령님의 세례에 의하여 한 몸이 된 무리 가운데 없어서는 안될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 세례와 관련된 세 번째 부분의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1:5)고 하신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우리에게 상세히 설명해 줍니다. 이 장에서는 그 중대한 사건에 관하여 "세례(침례, baptism)" 혹은 "세례를 주다(침례, baptizse)"라는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례에 관한 약속이 이루어진 사건임은 사도행전 1 15, 11 5, 16절을 볼 때 매우 분명합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2 33절에 "성령을 부어주심"(a pouring forth of the spirit)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며, 10 45절에서는 오순절날 성령님께서 임하신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도 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1:15).

고린도전서 12장의 "(all)"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주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20명의 남녀 제자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다 한 장소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 때 홀연히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모두" 충만케 하셨습니다(4).
거기 있던 사람들은 다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놀라운 방법으로 하늘에 계신,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생명있는 유기체의 한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사람들에게 보이고 악 사람 위에 임하는 등의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과 불꽃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 안에 어떤 바람을 일으키기를 원하셨거나 불타는 열정을 갖게 하길 원하셨을 때에는 천사들을 시켜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천사들의 사역은 오순절날 성령님의 은사로 대치되었습니다".( H. P. 바커 )


반하우스(Dr. Donald. G. Barnhouse) 박사는 다음과 같은 예화를 사용했습니다. 즉 미국의 헌법은 1787,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제정되었는데 그 이후에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어린이들은 자동적으로 그 헌법규정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또한 함께 나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헌법에 새로운 규정들이 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린이들은 그 역사적인 문서에 확정된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림과 아울러 헌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결코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권고를 받고 있지 않지만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은 받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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