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두가지 면을 상고하면서()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C. H. 매킨토쉬

 

율법과 관련해서 두 가지 고찰해 볼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율법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이고, 둘째는 율법이 우리의 생명의 법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입니다.

성경 몇 구절을 통해서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율법으로 의를 얻을 수 있느냐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3:20).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32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16).


다음은 율법이 생명의 법으로서의 기능을 하는지에 관해 기록된 말씀입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7:4).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얽어 매던 것에서 죽어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7:6).


두 번째로 인용한 로마서 7 6절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본성(nature)의 만족을 따라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함 속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로마서 7장을 더 읽어 가면 10절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여기서 율법은 분명히 바울에게 있어 "생명의 법"으로 발견되지 않습니다.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내가 살아 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7:9).

 
로마서 7장의 ""가 누구이든지 간에, 율법이 이르기 전에는 살아 있었지만 율법이 온 후에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에게 "생명의 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나타나 "사망의 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율법의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음이 명백해집니다. 그리고 율법이 신자의 생명의 법이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해집니다.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3:10).


율법은 거듭난 자들과 거듭나지 못한 자들을 구별할 줄 모릅니다. 율법은 그 앞에 서고자 애쓰는 모든 자들을 저주합니다. 그 사람이 살아있는 한 그를 지배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므도인은 자신이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확실히 인정하며, 율법 아래의 완전한 저주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의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또 우리 생명의 법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의 법이 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으로 친히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의 잔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망의 이기는 것과 쏘는 것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시자 그분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이시자 곧 그분의 아버지이신 분 앞에서, 우리를 생명과 거룩함과 은혜와 영광 안에서 그분 자신과 영원히 교제케 하시려고, 주님은 우리가 머물던 사망으로 내려오셨습니다(다음 구절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십시오. 20:17; 4:25, 5:1~10, 6:1~11, 7장 여러 곳에, 8:1~4; 고전 1:30, 31, 6:11, 15:55~57; 고후 5:17~21; 3:13, 25~29, 4:31; 1:19~23, 2:1~6; 2:10~15; 2:14,15; 벧전 1:23).

 
만일 당신이 기도하는 심령으로 이 모든 말씀들을 상고한다면,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가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소유한 생명과 의로움과 평안함의 견고한 토대에 대해서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속한 이 생명과 의와 평안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가운데 있었던 것이며, 완성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계시된 것이며, 모든 참된 신자들의 즐거운 경험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도는 신자의 생명의 법에 대해 언급하기를 "내게 사는 것이 율법이니"라고 하리 않고,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1:21)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법이시며, 본이시고, 기준이시며, 모든 것이 되십니다. 율법은 결코 우리의 대적들을 향해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축복해주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복음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바요, 우리 안의 거룩한 성품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만일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 한다면 그는 멸망당할 것입니다. 또한 율법을 사기 모든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자기 자신이 세운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아닌,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미리 정하여진 것입니다( 5:21
48; 8:29; 고전 13:48; 13:810; 5:1426; 1:35; 3:20,21, 2:5, 4:8; 3:117).


"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4; "the righteousness of the law is fullfilled in us", "율법의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역주)라고 하신 말씀과, 우리가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고 율법을 우리 생명의 법으로 삼을 수도 없다고 가르치는 말씀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모순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이런 말씀들 상호간에 모순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이 복스런 교리를 이해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인데, 죽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얻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율법은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지도 않은 생명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 안에서 삽니다. 우리는 나무에 달려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신 주님 안에서 복을 얻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신 주 예수님 안에서 의롭습니다. 우리 위해 버림을 받으신( 5:6
15; 2:46; 3:13)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의를 얻었기에,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것처럼 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순결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도 순결하게 나타나야 합리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며, 그분의 덕을 드러내야 하고, 그분의 성령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3:14,15, 17:14
19; 벧전 2:21; 요일 2:6,29, 3:3),

 
독자들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신약성경을 제외한 십계명이 삶의 법칙으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충분하겠습니까? 십계명을 뺀 신약성경만으로 충분히 우리 삶의 법칙이 되지 않겠습니까? 결코 불충분한 것으로 우리 삶의 법칙을 삼을 수는 없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주어진 것들의 일부분임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큰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저주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죄인들이 오직 율법을 통해 생명을 얻으려 한다면, 율법이 그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 신자들이 오직 율법을 따라 행한다면, 그가 어떠한 사람이 될지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을 따라 사는 신자가 살인이나 절도 등의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모세의 법이 제시한 기준에 속박시키면서 사는 자는 진리의 영을 따라 사는 삶에 현저히 미치지 못할 것도 역시 확신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자면, 훨씬 더 많은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두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독자들 스스로 이 글에 인용된 여러 말씀들을 찾아서 상고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인간의 가르침과 영향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 한 자가 되었고, 거룩한 자가 되었으며, 영원한 의를 얻었고, 모든 정죄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높은 지위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목표이시며, 본이시고, (rule)이시며, 소망이시고, 기쁨이시며, 힘이시고, 모든 것이 되십니다.


당신 앞에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당신이 어디 있든지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진 죄인으로서 십자가 밑에서 용서와 평안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인정된 양자이므로 시내산 밑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으십니다. 거기에는 율법의 무서운 저주로 인해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가장 순수한, 가장 깊은 그리고 가장 풍성한 은혜로 그분의 품에 안으신 회개한 죄인들을 무쇠같은 율법으로 다스리지 않으신다 오! 그것은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5:1,2).

신자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아닌 은혜로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영광을 기대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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