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만약 우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C. A. Coates 

 

 

우리의 마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굳게 세워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에 대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였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축복으로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불쌍한 죄인들을 향하여 흘러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벽은 없다. 은혜의 위대함은 오직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자신 안에서 은혜를 분명하게 드러내신 한 인격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그 크기를 잴 수 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4:25; 5:1,2)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의로서 그곳에 계신다. 또한 우리는 그분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간다. 은혜는 우리의 필요와 거리를 채워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갔던 자들과 같이 우리를 하나님 가까이 데리고 간다. 이 은혜를 이해하기 위하여 은혜를 우리에게 임하게 하시는 한 사람(the One Man)을 우리 혼 앞에 분명하게 보이듯이 모실 필요가 있다. 은혜가 임하는 자들을 생각하는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배울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그 은혜를 임하게 하시는 한 분만을 생각해야 한다.

 

대속을 성취한 승리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사람의 머리가 되신 분은 부활하시고 영광 받으신 사람(Man)이다. 그분은 생명을 주는 영이시다. 은혜는 "이는,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로 사람을 지배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 한다( 5:21). 아담은 죄와 사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의와 생명을 가져 오셨다. 그리고 은혜에 따라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께로 옮겨졌다.

 

특별히 로마서 8:9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담의 자손으로서 우리의 상태가 어떠했는가가 로마서 3:10-18에 기술되어 있다. 그것은 대속에 관한 기사가 단 하나도 없는 끔찍한 묘사이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상태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정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그러한 상태를 자신의 은혜 안에 넣으실 수 없다. 따라서 거룩한 판단 가운데 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전()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우리의 죄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 안에 있는 우리의 전() 상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상태를 끝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어떠한 축복 안으로도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하며, 육신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전 상태를 정죄 받게 한 의()의 위대한 행위이다. 이 위대하고 복된 사실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밥티슴(침례)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형(figure)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 아담의 자녀로서 우리의 전() 상태가 필히 치러야 하는 모형에 대한 승인으로, 침례는 반드시 안 보이게 장사(葬事)되어야 한다. 우리는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었다. 이것이 유일한 축복의 길이다. 우리의 육신은 개선되거나 그리스도인화() 될 수 없다. ()의 역사는 필히 죽음으로 끝나야 한다. 사람은 천연적 애정, 사랑스러움, 등과 같은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특성들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특성들은 "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라는 끔찍한 사실들을 바꾸지 못한다( 8:7,8). ()은 반드시 정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육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정죄를 받았다. 나는 모든 젊은 믿는 이들이 부디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하기를 간청하는 바이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것이"( 6:6).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된" 것은 이 기초 위에서이다. 죄는 더 이상 우리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에 대해 죽으셨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 계신다. 우리의 특권은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산 자로 여기는 것이다.

 

로마서 7장에서 우리는 자신이 죄아래 팔려간 사실을 발견한 사람의 실행을 보게 된다. 그는 결코 탈출할 수 없는 폭군의 지배아래 있다. 그는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죄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마침내 그는 자신 안에, 곧 자신의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사실을 안다. 나는 한 젊은이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항상 내 안에 나쁜 것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 안에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실행 가운데서 혼은 죽음으로 떨어진다. "죄가 되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 7:24). 죽음은 하나님을 위한 어떠한 것도 나오지 않는 상태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실제적인 것으로 실현될 때, 우리는 다른 한 사람(Man)과 그 사람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기쁨의 사람이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모든 은혜와 축복을 갖는다. 그분 안에는 모든 것이 완전하며, 모든 것이 신성한 사랑에 멋지게 어울린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어떠함의 깊음 아래로 내려가서, 그곳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발견했다면,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고, 그분 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떠한 즐거움인가! 대속의 기초 위에서 하나님의 복된 은혜로 말미암아 당신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며, 당신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시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우리가 더 이상 "육신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영은 자신과 육신을 동일시 할 수 없다. 그분은 육신에 더하는 것으로 임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에 따라, 우리가 전적으로 새로운 상태에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는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다.

 

이것에 대한 실제적인 결과는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이다( 8:12,13). 우리가 그렇게 행할 때, 하나님의 영께서는 자유로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특권과 몫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8: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신성한 사랑의 대상인 것같이, 성령님께서는 의식적으로 우리를 신성한 사랑의 범위 안으로 데려 오신다. 우리는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기에,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짖는다. 이것이 자유이다. 우리는 육신 안에 있었을 때 우리에게 달라붙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성한 사랑이 우리를 위해 예비한 것 안으로 들어왔다.

 

만약 우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자유와 성장의 비결은, 곧 영적인 형통의 비결은 육신을 실제적으로 부인하는데 있다.

- C. A. Coates "The Food of Life"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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