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4)-개인적으로 방언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신비)

(하나님의 자녀가 방안에서 홀로 그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이해하시는 언어로 말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또한 그는 방언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말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표적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표적이 될 수 없습니다. 전달 면에 있어서도 옆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전달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이유로 볼 때 이것은 교회의 덕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방언은 절대적으로 무익하며, 이기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

 

데이빗 롱(국제 동양선교회 총재)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혼자서 다른 사람들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사랑 안에서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는 혀를 사용하여 말합니다. 또한 우리는 말을 함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방안에서 홀로 그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이해하시는 언어로 말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또한 그는 방언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말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표적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표적이 될 수 없습니다. 전달 면에 있어서도 옆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전달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이유로 볼 때 이것은 교회의 덕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방언은 절대적으로 무익하며, 이기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진정한 사랑


그러면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사랑은 어떻게 다릅니까?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하기 위해 행해야 할 7가지와 행해서는 안될 8가지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랑을 행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을 자랑하거나 자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거나 혹은 그들은 그들이 훌륭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행했던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은사를 자랑했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 바울을 판단하기까지 했습니다(고전 9:11).


바울은 결코 변질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를 계속합니다. 그 후에 13 813까지 성령님께서 바울을 인도하여, 기적적인 은사는 분명한 목적을 위하여 잠시 동안만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적인 은사는 그 목적이 성취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 언급된 지식이란, 영을 통하여 기적적으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지식을 말합니다(고전 12:10). 그러나 우리가 배움을 통하여 얻은 지식은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언도 그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언제 방언이 그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방언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온전한 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은 헬라어로 "완성"이라는 한 단어입니다. 헬라어 단어들을 살펴보면 "완성"이라는 것은 사물을 언급한 것이지 사람을 언급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은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전체 문장은 단순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헬라어에서 "온전한"이란 단어는 어떤 것이 "완성된 것" 또는 "개발된 것", "완전히 성장한 것"을 의미하며 성경에서도 이러한 의미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다가 나중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며 점차적적 변화가 아닌 일시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이만 그리스도의 재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또 주목할 것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가 항상 있을 것이고 다른 은사들은 잠정적으로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점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잠정적인 은사(예언, 방언, 지식 등)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혹은 하늘나라에 가서 그친다면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한 은사는 영원토록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영원토록 계속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이 은사 중 사랑은 영원토록 계속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8 24절의 말씀을 볼 때 믿음과 소망은 영원토록 계속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8:24).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를 뵙고 영원히 그분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과 소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항상 있는 은사가 그친다면 잠정적인 은사는 교회시대가 끝나기 전에 그쳐져야 됩니다.


신약성경에서 방언이란 단어는 고린도전서 14장 이후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에게로 옮기시면서 방언은 점차적으로 없어질 것임을 보여줍니다.

병 고치는 은사 역시 점차적으로 약해지다가 마침내 사라졌습니다. 전에는 아픈 사람을 고쳤으며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던 바울이었지만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그 자신이 병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에바브로디도, 드로비모, 그외 동역자들이 대단히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다는 기록은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 당시에 그의 영성과 능력을 상실하지 않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은사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성경의 완성


"온전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에게 주어진 성경의 완성입니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완성된 말씀이 기록되기 전에는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말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표적의 은사들은 이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비록 그리스도인들이라도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부분적으로만 보고 듣고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다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분명치 못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만약 "거울"이 물체의 상이라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도 보는 것이란 거울을 통해 보는 것과 반대이며 아무런 장벽없이 분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나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같이 완전하게 나 자신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이해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놀며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말하며.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어떻게 이해하며, 이러한 일을 생각하는 가운데 그 결과로써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여기에 사용되었던 헬라어의 "어린 아이"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 그 후 바울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으며 더이상 바울은 전과 같이 어린아이처럼 말하지 아니하고 장성한 사람으로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새롭게 자라면서 초기에 사용하던 방언이 후에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방언 사용의 원칙


마지막으로, 하나님 방언의 은사를 주셨고 실제로 방언의 은사가 초기 교회에 영향을 끼쳤던 사도 시대의 방언 사용의 규칙을 고려해 봅시다. 만일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법칙을 순종해서 방언의 은사를 사용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므로 방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방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의 법칙에 순종하시기를 권고드립니다.


(1) 방언의 은사는 언제나 교회의 덕을 세우는 가운데 사용되어져야 합니다(고전 14:4,5,26).

(2)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합니다(14:34), 우리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한 장소에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성도들이 교회입니다.

(3) 방언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통역자가 있을 때에만 방언을 해야 합니다. 통역자가 없다면 방언은 금지되었습니다(고전 14:28).


(4) 만일 방언으로 말하려면 통역자가 있다 할지라도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하는 무질서를 막을 것입디다(고전 14:27).


(5) 방언은 이상하고 의미없는 소리가 되어서는 안되며 항상 메시지로써 전달되어야 합니다(고전 14:23).


(6) 방언을 말하는 목적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고전 14:22).

이것이 성경이 방언에 관하여 가르치는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 짧고 간단한 공부를 마치면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살전 5:21)고 말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하기 위하여 주님께 대한 그들의 기쁨과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위험 가운데 깊숙이 빠져가고 있습니다.


현재 방언을 하고자 하는 운동이 150여년 전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그리스도인이 나뉘고 간증이 파괴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자세히 연구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 사랑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 드립니다 어떠한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이 지역교회의 연합과 간증을 해치지 않는가 거듭 살펴보십시오. 잘못을 범하기란 매우 쉽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란 너무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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