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주의 질문(12): 사도행전의 체험은 지금도 있는가?

 

 

데이빗 가우어

 

질문 12: 사도행전의 체험들이 교회 시대에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앞에 나온 내용에 대개 들어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방언과 기적과 치유의 은사가 실제 행해졌던 때의 일을 담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러한 은사들은 표적의 성격을 지니며 하나님의 새 메시지 곧 신약을 전하는 자가 진짜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신약 성경이 완성되자 표적의 은사들은 그 소임을 다했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과 그 동료들이 보여 주었던 기적의 은사들은 교회 시대의 일반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도기의 것을 가지고 현재의 교리로 삼으려 하기 때문에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다룹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 시대에 태어나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바로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비로소 신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서 생깁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한편 사도행전은 유대인들의 교회에서 이방인들의 교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였던 모세의 법을 성취하시고 끝내셨습니다. 또 그것 대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두셨고 이 복음이 교회 가운데서 역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물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처음 세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구약의 성전 예배 등을 행했고 사도행전의 뒷부분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하나님께 정결례를 드리는 등 율법에 따른 관행들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방식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서 자동차에서 기어를 바꾸셨는데 백성들은 그 속도에 따라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지요. 이에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새로운 운행 방식을 받아들이도록 일시적이나마 자신을 특별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여러 가지 은사를 통해서 말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은 이런 과도기 역사를 보여 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은사주의자들은 사도행전을 교회 시대 전체의 청사진으로 봅니다. 그래서 사도 시대의 교회와 똑같은 모습의 교회를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첫째,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들이 서신서에 나타난 역사들과 늘 같지는 않다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가령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은 죄지은 자를 쳐서 죽이심으로 즉각적인 교회의 징계를 보여 주셨습니다( 5:1-11). 그러나 서신서에서 하나님은 지역 교회가 죄지은 자를 겸손하게 기도하며 징계하라고 말합니다(고전5:1-5; 고후2:5-11; 6:2; 살후3:6-14, 15; 3:10-11). 오늘날의 지역 교회는 앞에 나온 두 가지 경우처럼 차이가 있을 때에는 과도기의 사도행전의 예가 아니라 모든 것이 확정되고 이방인 교회를 향하여 주신 에베소서를 따라야 합니다.

 

둘째로 사도행전이 오늘날 교회의 청사진이 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방식대로 일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은사주의자들은 성령 침례의 교리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둘째 축복이라는 의견을 지지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강림이 늦어진 경우가 사도행전 2장과 8장에 등장합니다. 2장의 경우는 위에서 계속 설명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믿은 지 몇 년 후에 성령침례를 받은 이유는 그들이 성령 침례와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기 전에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8장의 사마리아인들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올 때까지는 이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때는 이미 믿는 유대인들과 믿는 이방인들의 두 부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 8절의 말씀에 따라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의 순서로 전파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기록을 보면 성령님의 나타나심 즉 방언이나 표적으로 나타나심이 매번 이루어지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행전은 오순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구원받은 후에 방언 등과 함께 임하는 두 번째 축복 즉 성령 침례에 대해 일관적인 사례를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 침례를 구원의 일부 즉 구원받는 즉시 신자의 몸을 가득히 채우시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는 성령의 역사로 보는 에베소서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은사주의자들은 사도행전을 의지하여 성령을 ‘기다리는’ 교리를 지지하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2, 8, 10, 19장 중 오직 2장만이 믿는 자들이 성령을 기다린 사건을 싣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제자들은 성령님을 간청하지 않았고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실 때를 단순히 기다렸습니다(1:4, 5, 8). 서신서에는 성령을 받는 것, 심지어 성령을 기다리는 것에 대한 지침도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방인 교회를 향한 이 시대의 우리의 지침서는 서신서입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께서 과도기에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보여 주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서신서는 교회 시대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교리와 실천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내용을 바르게 분별하기 위해 신약 성경 전체를 주의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신서에서 말한 것과 같은 지역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3:20). 이 위대한 부활의 권능(1:19-21)은 기적 같은 일을 해 낼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3:21).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순종하고 기도하며 움직일 때 하나님이 이 같은 일을 행하시지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적의 은사를 구할 때 행하시지 않음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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