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주의 질문(8): 기적의 은사는 있는가?

 

 

데이빗 가우어,

 

질문 8: 왜 기적의 은사가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적을 행하실 수 없다거나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다는 얘기가 절대로 아님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단지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적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기적적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 자신은 기적을 행하실 수 있으며 또 행하십니다. 더 확실히 말씀드리자면, 이 시대에는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치리하기 위해 정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양식 혹은 법칙을 갖고 계십니다. 이러한 양식은 너무도 질서 정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흔히 자연의 법칙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특별한 방법으로도 움직이십니다. 이렇듯 변칙적인 운행 방식을 보통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말하자면 기적이란 흔치 않은 하나님의 역사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적이 흔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기적이 아니라 일상사가 될 테니까요. 지구가 일정한 각도로 회전하여 태양이 매일 아침 떠오른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성경은 태양과 지구 사이의 도는 과정을 기적으로 분류하진 않습니다.

 

성경은 인류의 역사에 세 가지 커다란 기적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첫 번째 기적은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에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율법이 주어질 때로부터 시작되어 약 10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난 것은 엘리야와 초기 대언자(선지자) 시대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상당 부분이 이때 주어졌는데 이 기간은 약 15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마지막 기적의 기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와 사도들의 활동하던 때에 일어납니다.

이때가 바로 신약 성경이 주어진 시기이고 약 7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어셔의 연대기(Usher's dates)에 따르면 성경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약 6000년임을 보여 주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이 같은 역사가 옳다고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발생한 시기는 그 중 5% 정도인 320년에 불과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33년간의 지상 생애 동안에 단 3년 동안만 기적을 행하셨다는 사실인데 이는 그분의 전체 생애의 9%에 불과합니다. 어떤 이들은 기적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상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코 성경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않습니다.

 

위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것은 곧 사도 시대에 주어진 기적의 은사가 교회 시대 전체에 걸쳐 지속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이 같은 주장에 타당성이 없음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적의 본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일시적인 목적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기적을 말할 때 쓰인 세 단어가 이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먼저 기적은능력 있는 일들로 불리는데 이는 행위 뒤에 숨겨진 권능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때론 기적이이적’(wonders) 놀라운 일이라 불리는데 이때에는 기적을 목격한 자들의 반응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기적은표적’(signs)으로도 불립니다. 이는 기적을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임을 보여 주고자 함을 강조하기 위해 즉 기적의 첫째 목적을 강조할 때 쓰였습니다. 만일 기적이 능력 있는 일이나 이적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항상 하나님의 일꾼과 말씀의 참됨을 보여 주는 표적입니다. 앞에 언급된 기적들이 많이 나타난 시기가 성경 말씀을 주신 시기와 비슷한 시기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나의 대변인이니 그들의 말을 들으라. 내가 표적으로 그들의 말을 확증해 주지 않느냐?”

 

신약 성경은 특히 기적을 표적으로 봅니다.

요한복음 20 30-31절과 10 37-38절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이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된 권위를 실제 자기가 행한 기적의 권능을 이용하여 입증하려 했습니다(고후12:11-12).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진실성을 확신한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그분을 목격한 증인들이 기적으로 자신들의 증거가 참된 것임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2:3-4).

 

기적의 취지가 전달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신뢰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기에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될 때 기적의 은사도 그쳤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기적의 은사는 초세기 이후로는 찾아볼 수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오늘날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교회가 육신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이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은사를 거두어들이신 것으로 봅니다. 우리의 논거는 기적의 목적에 따른 것입니다. 더욱이 신약 성경은 우리가 기적의 은사를 추구하거나 그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기적을 행하실 수 있으며 행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 시대에서 지속되는 현상으로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특정 개인에게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거짓 선지자들(마7:15-20)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2 3727
27 근대 한국여성의 한이 한국 개신교회에 끼친 영향에 관한 연구 - 이광호 서성필 2012.11.24 3529
26 방언에 대한 소고 - 송인규(합동 신학 대학원 ) [43] 서성필 2012.11.22 4166
25 마지막 때에 마귀가 준 이상한 방언(신비) - 김경환 목사 / 미국 Bible Baptist Church International 서성필 2012.11.22 5227
24 방언(4)-개인적으로 방언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신비) - 데이빗 롱(국제 동양선교회 총재) 서성필 2012.11.22 3527
23 방언(3)-서신서에 나타난 방언(신비) - 데이빗 롱(국제 동양선교회 총재) 서성필 2012.11.22 3705
22 방언(2)-성경에 나타난 방언들(신비) - 데이빗 롱(국제 동양선교회 총재) 서성필 2012.11.22 4303
21 방언(1)-오늘날의 방언들(신비) - 데이빗 롱(국제 동양선교회 총재) 서성필 2012.11.22 3006
20 은사주의 질문(12): 사도행전의 체험은 지금도 있는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2981
19 은사주의 질문(11): 성령침례의 증거는 무엇인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2802
18 은사주의 질문(10): 지금도 특별계시가 있는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3603
17 은사주의 질문(9): 지금도 병고침의 은사가 있는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3332
» 은사주의 질문(8): 기적의 은사는 있는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3027
15 은사주의 질문(7): 마귀 쫓는 것은 성경적인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3055
14 은사주의 질문(6): 방언은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 데이빗 가우어 [29] 서성필 2012.11.22 3804
13 은사주의 질문(5): 왜 방언하지 않는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3174
12 은사주의 질문(4): 방언은 성경적인가? - 데이빗 가우어 [2] 서성필 2012.11.22 3704
11 은사주의 질문(3): 초대 교회와 성령의 역사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3331
10 은사주의 질문(2):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은 다른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3540
9 은사주의 질문(1): 병고침이 속죄의 일부인가? - 데이빗 가우어 서성필 2012.11.22 2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