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여성의 한이 한국 개신교회에 끼친 영향에 관한 연구

 

 

이광호

 

1. 서론

 

흔히 한국인을 한 맺힌 민족이라 표현한다. 무속과 깊은 동질성을 보유하고 있는 그 한이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삶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이다. 기독교 신학자인 김경재 교수는 “무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한풀이’라는 종교의례를 통한 화해의 신학이 있으며, ‘굿’이라는 종교의례를 통하여 모든 참여자들이 하나 되는 공동체신학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다른 민족의 심성과 구별되는 한국인 고유의 한이 언제부터 존재했느냐 하는 점과 생성이유, 그리고 구체적인 존재형태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한의 생성시기와 생성이유에 대한 분야보다 기독교가 전래될 당시였던 19세기 후반으로부터 한국교회 성장이 가속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미 존재하던 여성의 한과 그에 관련된 내용과 의미, 그리고 기독교회와의 종교적 연관성 및 영향을 중요한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의 실체와 그 기능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다시 말해 ‘한’의 본질적 문제와 그것이 개인과 집단, 혹은 민족 사회에 순기능을 하느냐 아니면 역기능을 하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학자들간 상이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어떤 학자들은 한에는 순기능적인 면과 역기능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며, 한을 무미(無味)한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한의 배경이 원한(怨恨)이라고 보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며, 한이 개인적, 사회적 억눌림과 억압에 대한 참음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 모든 주장들 가운데 어느 하나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은 대개 부정적이어서 정신 병리적 현상이나 가슴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어두운 응어리로서 치료하고 풀어 해소해야 하는 개념으로 이해해 왔으나 근자에 들어와서는 민족 정서적인 측면에서 한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들이 많이 시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적 한국인의 심성 저변에 존재하던 한의 속성은 과연 무엇일까? 논자는 한국인의 한의 주류는 평균적인 모든 한국인들의 심성에 균등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여성들로부터 발생된 집단적 개념으로 이해한다. 즉 전통적인 한국의 개별 여성들에게서 생성된 한은 여성을 중심으로 사회적 집단현상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그것이 억눌리는 다수 계층 사회를 거쳐 전체 한국사회에 전이된 개념이라 보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급성장기였던 1970년대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인들의 심성에서 전통적 개념의 한이 사라져가고 있거나 많이 희석되어 가고 있기는 하나 한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습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현재 한국인의 심성에 한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한국인의 고유한 민족정서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과거 한국인의 전통적 개념에서의 한은 단순한 민족정서가 아니라 개인과 집단에 어우러져 존재하는 응어리이며 풀어 해소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개념이다. 특히 기독교 전래당시와 한국기독교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배경에는 전통적인 여성의 한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예의주시 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에 관한 연구와 논의는 그 동안 많이 있어왔다. 그렇지만 이제껏 대다수 한국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주로 기독교의 전래과정과 신학적 입장에 대한 문제들을 그 중심 대상으로 삼아왔다. 한국인의 본래적 종교심성이 무엇이며, 그것이 무속이나 불교, 유교 등에 담기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기독교에 어떤 식으로 새롭게 담겨왔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의 수천 년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정통적 기독교와는 다른 매우 독특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성경과 전통적 교리 위에 세워진 기독교라기 보다는 한국 고유의 전통적 종교들 위에 세워진 종교이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들어와 정착을 시작한 한국 기독교는 한국인들의 종교적 정서의 틀 위에서 서서히 어우러지며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통적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기독교는 변종(變種)의 기독교 형태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기독교에 끼친 여성의 영향을 고찰함으로써 한국 기독교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내려보고자 한다. 한국인의 종교의 저변에는 여성의 종교적 정서가 크게 자리잡고 있으며, 한과 연관된 한국무속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는 여성중심이라는 점이다. 이는 여성이 미신적이라기 보다는 신앙심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전반적인 한국인의 종교로 퍼져 나가면서 자리매김을 했으며, 한국 기독교의 종교정서의 구도를 주의 깊게 고찰해보면 정통적인 여성의 한이 자리 잡고 있음이 드러나게 된다. 이는 전통적 기독교의 내부에는 ‘성경과 교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 기독교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여성의 한에 관한 연구를 전개해 가고자 한다.

 

2. 본론

 

1) 한국기독교와 한국 전통종교의 관계

 

한국의 다양한 종교들을 나타내는 종교 지형도(地形圖)는 매우 특이하다. 역사적 상황이나 세계적 정황을 살펴보면 민족적, 지역적으로 단일한 문화범위 내에서는 종교적 유사성과 어느 정도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테면 어느 특정 시대 특정 민족을 종교적 관점에서 탐구하게 되면 그들의 종교적 보편성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현대에도 역시 이와 동일한 설명이 가능하다. 세계지도를 펼쳐두고 우리는 종교지도를 그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교, 아프리카 토속종교,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종교 등을 지역별로 각기 다른 색깔을 표시한다면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어느 정도 선명한 선들을 그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색깔은 마치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처럼 드러나게 된다. 특정한 단일 종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 다종교 상황에서 특정종교가 절대우위를 누리지 않는 가운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으므로 전통종교의 종교적 이상을 섭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종교적인 외형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호 습합하여 종교 심리적으로는 커다란 유사성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한국 무속,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상호 불편함이 없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 집안에 아버지는 유교, 어머니는 무속, 아들은 불교, 딸은 기독교를 믿고 있다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견지에서는 한 집안 식구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거나 신기한 일일 수 밖에 없다.

 

한국종교가 이렇게 된 것을 종교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 및 동양 종교와 서양 종교들이 어색함 없이 상호 교호해 왔던 역사상의 민족적 경험 때문이다. 즉 한국의 종교사회는, 다양한 종교들이 들어왔으나 그 저변에는 일정한 한민족 고유의 종교적 기초이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민족의 정서에 깊은 뿌리를 가진 민간신앙으로서 무속은 폭넓게 전승되었으며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 까지의 불교문화, 조선시대의 유교문화, 그리고 근대 이후의 기독교 등 외래종교 안에도 그 요소들이 그대로 살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오랜 세월에 걸쳐 흘러온 한과 결속된 무속신앙은 그 기본 형태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신앙 정서적 저변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무속은 한국 종교문화의 지핵(地核)으로 볼수 있으며, 이는 한국 민중의 종교가 한의 종교라고 하는 개념과 동일한 개념이다.

 

이러한 무속신앙이 한국종교사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과 한국의 기층종교라는 사실은 이제 학계에서 두루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기층종교의 바탕 위에 삼국시대 이래 유교, 불교, 도교가 도입되었으며, 조선시대 말기에는 다시 그 위에 기독교가 도입된 것이다. 한국종교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무속이 종교로서 신앙되고 있는 나라로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신봉되고 외래종교가 수용, 토착화 하는 기반으로 기능한 무속이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의 형성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인가는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 전래 당시의 일반인들은 거의 무속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당시는 귀신들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었으며 무속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18세기 후반 서학(西學)이라 이름 붙여졌던 천주교의 전래와 그 이후 19세기 말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기존의 종교사상으로부터 상당한 저항을 받는 듯 했으나 곧 한국인의 종교적 정서와 부합하게 된다. 이는 한민족의 역사상의 종교구조와 부합되는 개념이다. 19세기 말의 한민족의 종교적 구조는 장기간 이어진 불교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과거 2천년 동안 전반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19세기 말 서구로부터 개신교가 전래될 당시 한반도에 살던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상이하면서도 통일성 있는 민족 고유의 종교적 한의 정서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무속, 불교, 유교 등이 때로는 분리된 상태로 때로는 습합된 상태로 민중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급성장을 한 배경에는 기존의 전통적인 한국종교들이 밑거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성경을 받아 읽었던 사람들은 공관복음서 속에서 예수의 ‘사귀 축출사건 기사’와 ‘치병사화’를 접하면서, 그리고 예언자들의 영() 체험의 소명기사를 접하면서 그들의 무의식 속에 있는 무속의 종교적 유형의 특징과 유사성을 발견하고 쉽게 무속과 기독교의 지평융합을 이루어간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심성은 한국 전통적 종교심성 위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즉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는 원래의 전통 종교의 뿌리를 제거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고자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에 양분을 주고 그 위에서 무성한 잎을 피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한국인들 가운데는 내부적으로 기존의 자기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이고 간편한 종교외형을 가진 기독교를 선택한다고 생각한 자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종교적 내부 심성 가운데는 여전히 한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인의 고유한 신앙의 틀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특히 당시의 여성들은 기독교 세계에 한민족의 한을 운반하는 도구적 기능을 감당하게 되어 기독교 성장에 괄목할 만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2) 19세기 말의 한국전통사회와 여성의 존재

 

한국 전통사회에서 여성이란 어떤 존재였는가 하는 점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 처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접한 서양 선교사들의 눈에 비쳐진 한민족은 모두가 상한 심령을 가진 백성으로 보였다. 당시 일반 백성들 가운데는 스스로 힘이 없고 불행에 빠져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인격자로 설명되지 않던 시대가 곧 한국 전통사회의 특성이었다. 19세기 말 한반도에 살았던 일반 여성들은 도덕적인 존재가치가 전혀 없었다. 여자는 환락과 노동의 도구였을 뿐 남성의 반려(伴侶)라거나 동등한 존재로서의 의미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갖지 못했다. 당시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아기를 낳을 때 까지 이름을 갖지 못하는 것이 풍속이었다, 아이들을 낳게 되면 그 때부터 ‘아무개의 엄마’라는 간접적인 이름으로 불려졌다. 당시의 조선에서는 대개 여성들은 영혼도 없고 이름을 가질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예닐곱살이 되면 집안에서만 지내게 했고 결혼 후에는 다시 시댁의 집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여자가 열 여섯 살이 될 때까지 혼인을 하지 못하면 집안의 큰 흉이 되어 집안의 체면이 손상되었다. 당시의 조선사람들은 성인이 되어도 독신으로 있는 여자는 불구자이거나 또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말의 기독교 전래는, 한자문화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뒤 근 2천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기층적 무속신앙 위에 형성된 유, , 도 삼교 전통 종교중심의 종교지형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난 민족적 종교개벽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이미 토착화된 한국 전통종교들에 기반한 조화로운 중층다원적 한국인의 종교심성이 기존의 동양적 국지성을 타파하고 경쟁적으로 등장한 새로운 기독교와 더불어 서양적 양태까지 포괄하는 통문화적(cross-cultural)이 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편, 타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는 판단과 결단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개별적 인간과 전통적 가정에 대한 이해를 중시할 수 밖에 없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가정이 사회의 기초가 된다. 가정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며 국가와 민족을 이루게 된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에서 그 핵심적 역할을 하는 구성원이 있다. 한국 전통사회의 경우 가정을 다스린다는 측면에서는 남성위주의 가정이었다. 중요한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남성인 가장(家長)이 결정적인 힘을 행사했다. 남성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아선호사상이 보편화 되었으며 남자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들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할 바는 남성들만 남아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마저도 남아를 선호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회적 개념인 남성위주의 분위기를 여성들도 그대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동일한 설명으로 여성의 사상이나 사고를 남성들도 함께 공유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곧 여성 중심의 한국적 종교성이다. 남성위주의 성향이 외향적이라면 여성위주의 성향은 내면적이다. 남성위주의 성향이 겉으로 드러나 떠들썩한 면을 연출한다고 볼 때, 여성위주의 종교적 성향은 보일 듯 말듯하면서도 내면에서 꿈틀거리며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한국의 전통적 사회는 겉으로 드러난 남성위주의 권위주의적 행보와 여성위주의 내면적 방향제시 역할이 상호 어우러져 움직여지던 사회였다. 특히 신앙과 연관된 종교성에서 그것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19세기 말 기독교 전래당시의 한국여성의 역할에 있어서 본질적인 면과 그 표현방식을 살펴보아야 한다.

 

(1) 경천사상(敬天思想)과 여성신앙

 

한국인의 종교는 원래적으로 하늘신을 지고신으로 섬기는 민족적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종교들의 습합으로 인해 온갖 신령들이 있었으나 신들의 서열과 계층화는 괄목할만하다. 즉 한국인의 일반적인 신앙은 하늘신 사상과 다령숭배신앙(poly-demonism)이 결합된 신앙이다. 무속신앙으로 인해 다양한 전체 신령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이 있다는 신앙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최고의 신이 ‘하느님’이었던 것이다. 집안에 상주해 있는 조왕신이나, 안방귀신, 장독대 귀신, 칙간귀신, 삽짝귀신 등 신령들 사이에도 서로 다른 역할과 서열이 존재한다. 그 외에도 조상신들이 있어서 나름의 서열이 있다. 집밖에 나가면 골목귀신, 서낭당 귀신, 산신 등이 있는데 그 중에는 산신이 가장 힘이 강하다. 물론 농사를 주로 하는 지역과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섬기는 신령들은 달랐다. 그런 중에서도 옥황상제를 믿기도 하고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믿기도 했다. 그런 많은 신령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고의 신은 역시 하늘신이다. 무속적 한국민간신앙에서 일반적인 다양한 신령들은 선악간의 개념 보다는 대가적(代價的) 신령들이다. 즉 신령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잘못을 빎으로써 현재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소원하지만 보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에 비해 하늘신은 초월적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간들의 선악을 지켜보고 있는 신이다. 그러므로 당시 억눌리며 억울한 삶을 살고 있던 여성들에게는 특히 편견없이 내려다 보는 하늘신이 최고였던 것이다.

 

(2) 주부무당

 

한국 무속은 여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다수 굿을 하는 사람이나 굿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들이 중심을 이룬다. 또한 무속의 많은 신령들 중에서 여성 신령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리고 여성들은 거의 한 가정의 주부이다. 따라서 주부의 가정에서의 역할과 지위라는 관점에서 무속신앙이 어떻게 표현되고 무속의례가 어떻게 행해지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전통 가정에서 주부의 역할은 절대로 중요했다. 주부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 주부가 안방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권위이양을 ‘안방을 내어준다’는 말로 표현했다. 한국 전통가정의 안방은 조상들의 영혼을 모시거나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의례들은 안방에서 이루어졌으며 사람이 숨을 거두는 임종 때 천거정침(遷居正寢)이라 하여 안방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객사라 하여 불행한 죽음으로 이해했다. 주부가 차지하고 있는 ‘안방’의 의미는 그만큼 종교적으로 중요했던 것이다.

 

과거부터 우리나라 속담에는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종교적 담론을 담고 있다. 좋은 며느리가 들어와야 살림살이를 잘하며 튼튼한 자녀를 많이 낳아 집안이 번성케 된다는 말이 그 일차적인 의미가 아닌 것이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한 가정에서 집안에 존재하는 신령들을 섬기는 자로서 주부무당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인의 가정은 매우 종교적이었으며, 종교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여성이었다. 집안 전체를 관장하는 조왕신은 부엌에 상주하고 있었으며 부엌은 여성만의 전용공간이며 남성들의 제한구역이었다. 그러므로 과거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의 부엌은 안방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성전(聖殿)이었다. 그 공간에서 주부들은 매일 아침마다 어김없이 조왕신을 섬겼던 것이다.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조왕신을 위한 여성들의 고수레는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들의 종교행위는 부엌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엌 밖에서는 장독대가 여성과 가장 가깝다. 사실 장독대는 집안 식구들의 생명선이다. 여성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신령에게 빌기도 하고 새벽하늘의 달이나 북두칠성 등 별을 보고 빌기도 했다. 장독대 역시 성전의 기능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곳은 늘 신령한 공간이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은 장을 담그며, 악귀를 물리치는 푸른 솔잎이나 부정을 제거하는 검은 숯, 그리고 악귀가 싫어하는 붉은 고추를 장독 속에 넣기도 하며 왼 새끼를 꼬아 장독 밖에 동여매어 두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신령들과 연관된 가정 속 여성들의 종교행위이다.

 

그러므로 전통 사회에서의 한국여성들은 주부무당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한 집안의 여성이 주부무당의 역할을 얼마나 잘 감당하느냐에 따라 집안의 명운이 달려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부엌과 장독대에서 행하는 새벽제단(祭壇)이 얼마나 성심껏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것이 나중 한국 기독교의 새벽기도를 활성화하게 되는 바탕이 된다.

 

(3) 남존여비사상과 한 개념

 

과거 전통사회에서의 우리 민족 여성들에 대한 가정에서의 대우는 양면성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인격을 인정받지 못할 만큼 비하되는 면과 동시에 남성보다 훨씬 강하고 존경받아야 할 여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비천하게 취급받던 것과는 대비되는 개념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것을 통해 내재된 한이 극명하게 표출되기도 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될 시대에는 보통 여성들 중에는 이름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저 누구 집 딸, 누구 마누라, 누구 어머니 정도로 불려질 따름이었다. 혼례를 치른 후 일반적으로 여성의 친정지역을 따라 불려지는 택호는 실제적인 여성의 새이름이었다. 시집 온 여성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이름이 있다 해도 날마다 만나는 이웃은 물론 한집에 살고 있는 식구들 마저도 그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19세기 말의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의 혼사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이는 동일한 성을 가진 집성부락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점차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대개 자기가 태어나서 살던 마을을 떠나 다른 동네로 마치 영원히 이사를 가듯이 시집을 갔는데 그것은 모든 여성들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여성은 일정기간 약자일 수 밖에 없었으며 그것은 곧 남존여비사상으로 이어졌다. 한국전통사회에서 남존여비사상은 일반적으로 매우 심했다. 중류계층 아래의 여성들은 매우 심한 노동에 시달렸으며 농사일은 주로 그들의 몫이었다. 농작물에 비료를 주는 일은 주로 여성의 몫이었으며 남자들이 그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뿐만 아니라 여자들은 남자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남존여비사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여성의 역할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여성이 무조건 고개를 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성의 통제영역을 벗어난 가족사회를 비롯한 다른 방향에서 더욱 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속담에 “무서운 시어미 밑에 시집 산 며느리가 더 무서운 시어미 된다“는 말이 있다. 많은 학자들은 남성위주의 사회가 여성의 역할을 위축시켰다고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여성의 강한 역할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강하게 커져갔을 따름이다.

 

우리는 과거 한국전통사회에서 고령화 여인들의 가정에서의 위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성은 분명히 무시되는 대우를 받지만 어머니는 최고의 존경의 대상이 된다. 어떤 계층의 가정이건 자식이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을 과거 한국사회는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었다. 멸시와 존경이라는 양극의 대우를 동시에 받게 되는 여성의 삶의 정서를 중요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 보는 대목이 여성의 한풀이와 또 다른 한의 형성 메커니즘이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마흔 살이 되면 소위 ‘어른’의 대열에 서게 된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며느리를 보게 되면 생일상을 받게 되며 드디어 새로운 권위가 생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가 미리 당했던 고통에 대한 한풀이의 대상을 두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과거 한국 전통가정에서는 시어머니의 위치가 매우 중요해서 며느리의 생활을 심하게 간섭하고 지도했다. 우리민족 가운데 지금까지 이어지는 ‘고부갈등’에관한 담론은 오랜 역사적 전통의 산물이다.

 

 

3) 한국여성과 외래종교의 만남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개신교 활동은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는 과정에서 들어오는 외국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된다. 당시에는 국가적, 사회적 여건상 기독교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으므로 선교사들은 개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교육, 의료사업 등을 통한 민중계몽에 주력함으로써 간접선교를 동반했던 것이다.

 

개신교를 통해 유입된 근대문명은 외형적으로는 유교적 가치관과 사회질서에 묶여 있으면서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신령들의 세계에 묶여 있던 당시 대중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것은 주로 집안에만 매여 있던 여성들에게는 파격적이었다. 당시 기독교를 받아들인 여성들에게 있어서 초기 한국기독교는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비밀리에 모인 종교집단이라는 의미에서 일종의 밀의종교(密儀宗敎) 혹은 (密議宗敎)였다. 수많은 여성들은 가족이나 남성들의 박해와 멸시 속에서 숨을 죽이며 기독교 신앙을 지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기 기독교 전래 당시의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가 남정네들의 눈에 띌지도 모르는 교회당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이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남녀평등 사상과 여권신장 운동은 가부장적인 남성들을 자극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서양문화가 담긴 신흥종교를 받아들인다는 자체가 파격적인 것이었다. 거기다가 집안의 어른들이나 남성들의 허락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왜래 종교에 빠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엄청난 일이었다.

 

기독교를 접한 초기 한국 여성들은 기독교를 ‘해한(解恨)의 종교’로 이해하는 경향성이 짙었다. 그들은, 예수가 내세적 구원과 사랑의 십자가를 통하여 로마의 빌라도 총독 치하에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을 풀어준 해한자(解恨者)로 생각했다. 즉 사랑의 화신으로서의 나사렛 예수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죄많은 자에게 축복과 승리를 가져오는 구세주로서 우회적 복수를 하였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래당시의 일반 여성들은 심한 멸시와 함께 박해를 당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러한 억압을 통해 한을 지니고 있던 여성들의 해방구로서의 회당(會堂)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에게 있어서 초기 한국 기독교의 회당은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집회소였다. 아직 종교적인 건축양식을 갖춘 교회당이 있기 전에는 회당의 모습이 규모가 조금 큰 보통가옥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개인의 집에서 돌아가며 예배를 보다가 자력으로 예배당을 건축할 힘이 생길 때 예배당을 장만했다. 예배당 건물은 화려하지 않아도 개인주택 정도였지만 자기들의 힘으로 마련한 종교적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기독교가 어느정도 정착된 후에는 남녀교인들이 가운데 쳐진 휘장을 중심으로 하여 따로 앉았으며, 나이가 많은 여성들은 측면 통로 가까이 앉고 젊은 여성들은 보다 안전한 안쪽으로 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지만 교회당의 건축양식이 점차 뿌리내리면서 한국의 교회당은 점차 성소(聖所:sanctuary)의 개념을 띠게 되었다.

 

한국 전통 가옥의 집안에서는 부엌이나 장독대 등이 성소의 기능을 감당했으며 밖에는 절간이나, 산신각, 사당 등이 신성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나 동네 어귀의 서낭당도 신성한 공간이었다. 즉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성소는 집 안팎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집안의 성소들뿐 아니라 사찰이나 사당, 서낭당, 굿집 등 성소의 개념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는 기독교 회당으로 전이된 것이다. 이는 과거 한국인의 종교들에 있어서 성소의 개념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며,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는 교회당이 과거 종교적 성소에 대한 대체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전통적인 공간들이 아닌 새로운 종교적 공간을 두게 된 것이다. 이는 집회소로서의 회당 자체가 종교적 피난처로 승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미화하게 된 개념이다.

 

고통 중에 살아가면서 종교적일 수 밖에 없는 한국여성들에게는 항상 의지하며 한을 풀어낼 만한 특별한 성소가 필요했다.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초기 한국 기독교 여성들에게 있어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초기 기독교의 역할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것 중에 하나는 여성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는 점이었다. 이전에도 여성들이 외부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었어도 특정한 장소에서 매 주일, 혹은 매일 정기적으로 외부인을 만나는 일은 있지 않았다. 그것은 결국 기존의 가치체제에 대한 저항과 함께 엄청난 사고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한국 기독교의 회당이 성소화(聖所化) 된 것은 한국 여성의 성소개념과 연관된 것이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독교의 교회당이 성소개념을 가지는 것은 정통적인 기독교에서는 있지 않은 현상이다.

 

4) 여성의 한을 바탕으로 한 한국 개신교회의 틀의 형성

 

기독교 전래 당시에는 여성들이 아침 늦잠을 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성들은 기독교를 알기 전부터 매일 새벽마다 부엌에서 조왕신에게 정성을 드리거나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신령에게 비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집안에서 새벽예불을 드리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조왕신은 집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재산에 관여하며 식구들의 건강에 관여한다. 조왕신에 대한 제사는 특별한 날이 없고 매일 새벽 정화수를 한 주발 떠놓고 빌었다. 부인들은 특히 조왕신을 무서운 신령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단 하루도 조왕신에 대한 새벽기도를 거스릴 수 없었던 것이다. 부엌이나 장독대 앞에서 기도를 드린 자들은 남성이 아니라 모두 여성들이었다. 말 못할 한을 가슴에 가득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마음 놓고 자기 사정을 발설할 수 있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 종교적 신령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닭의 시간’으로 알려진 ‘인시’ 즉 새벽 3-5시에 신령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믿어 그 시간이 가장 효과적인 기도 시간이라 믿고 날마다 기도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기독교를 알고 나서 천지신명이나 북두칠성, 혹은 다른 잡신들에게 기도하는 모든 종교행위를 그만 두었을 때 새벽시간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새벽 일찍 교회당을 찾아 기독교의 신에게 기도하게 된 것은 도리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인 새벽기도회는 길선주 목사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새벽기도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한국 전통종교인들, 특히 일반 여성들이 행해오던 종교의례였다. 기록상 한국 기독교의 새벽기도의 효시는 1905년 초에 열린 남감리회 개성지방 부인 사경회에서였다. 그 때 우발적으로 있은 새벽모임에 대해 당시 한국에 와있던 외국 선교사들은 그들의 그런 모임을 장려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그러므로 이는 한 개인이 만들어낸 신앙적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시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종교적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즉 한 개별 기독교인의 단순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도입한 종교의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 온 초기 외국 선교사들은 그 기도에 참여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 했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의 새벽기도는 길선주 목사의 개종이전의 종교적 습성과 한국여성들의 종교심이 결합한 특이한 기도형태임을 알 수 있다. 길선주 목사는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 선도를 수행하며 새벽, 정오, 밤 하루 세 차례 기도하던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개종 이후에도 이전의 개인적인 습성에 따라 새벽기도를 지속하다가 점차 교회차원의 집회로 발전시키게 되었으며, 1906년 가을 장대현 교회의 당회 결의에 따라 전교회적으로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전후하여 한국교회에 완전히 정착되어 그 후부터 기독교가 전파되는 곳에는 새벽기도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 갔던 것이다. 이는 원래 기독교의 기도방식이 아니라 전통적 기도의례와 습합된 토착화 종교행위의 대표적인 것이다.

 

한국 여성들의 종교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극한 성심(誠心)이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종교사상은 한국 여성들의 본질적 심성을 이루고 있었다. 백일기도는 원래 지성을 다해 하늘신에게 비는 무속과 민간신앙적 기도방법이다. 백일기도는 거의 여성들의 몫이었다. 숫자 백(100)이 완성을 의미한다고 여기며 백일 동안 정성을 다하게 되면 신령이 원하는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그 기도방법을 받아들여 백일기도를 하는 것이 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매우 좋은 기도방법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백일기도를 하기에 적절한 사람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백일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주로 여성들이며, 남성들이 백일기도를 드리는 경우는 여성에 비해 현저히 작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들은 밖에 나가 일을 하기 때문에 분주한 일상생활에서 백일을 정해 성심껏 기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현실적 이유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심리적, 환경적 특성상 집안에 있는 여성들이 기도하기에 훨씬 적합하다.

 

한국 기독교의 특성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철야기도는 전래 초기부터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다. 한국 무속신앙에서 귀신은 빛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로 밤에 내려온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인들은 밤에 기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일년 중 12 31일 자정에 묵은해를 보내고 이듬해 새해 첫날을 맞이하기 위해 드리는 송구영신예배는 한국민간신앙에서 따온 무속신앙적 개념이다. 그리고 다수 한국 개신교회들은 매주 금요일 밤을 철야기도 하는 날로 정해두고 있다. 이 때 참여하는 성도들 중 여성도들의 비율은 남성들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

 

그리고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종교 사상에 있어서 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상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산신신앙은 한국인의 기본신앙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영산(靈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는 신령이 기거하는 영험한 산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의 70% 이상이 산지이므로 산과 인간의 삶은 밀착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한국 무속이나 민간신앙에 있어서 산은 신령한 영역이었다. 인간사회와는 구별된 공간으로 온갖 짐승들과 다양한 수목이 있어 산신령이 살고 있을만한 영험한 곳이라 여겼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삶을 배경으로 하는 높은 산에는 항상 산신령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산에 가서 고사를 지내기도 하고 산신령에게 빌기도 했다.

 

기독교 전래 당시 한국교회에는 초기부터 산기도를 했던 흔적이 나타난다. 많은 교인들이 부흥회의 밤집회 후에는 산에 올라가 얼어붙은 맨땅에 엎드려 성령강림을 위해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하는 것은 흔히 있던 일이다. 19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한국교회의 기도원 운동과 산기도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당시는 기도원을 가지 않거나 산기도를 하지 않는 교인이라면 신앙심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성장비결을 산속에 위치한 기도원 운동과 산기도에 두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 알 수 있는 점은 기도원을 찾아 기도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여성신자들이었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낮의 직장생활과 활동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기도원을 찾아 기도하기 힘들었으므로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도리어 산기도를 마치고 귀가한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들의 아침상을 차리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하는 일상적인 일들을 면제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한국교회 여성들의 산기도 운동은 여성의 한과 연관된 종교적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통 종교활동에 있어서 여성의 한풀이 형태의 신앙과 의식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므로 한과 관련된 한국 전통 종교에 있어서의 중심축은 여성들이었다. 한국인들의 일생에는 특별의례를 요구하는 중요한 마디들이 존재한다. 출생, 칠일, 백일, ,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관례, 혼례, 회갑, 상례, 제례 등은 시간적 통과의례를 요구하는 날들에 해당한다. 그 내용들 가운데 생명과 번성에 관련된 의례들은 주로 여성의 몫이다. 생명의 공급과 보존을 위한 출생, 백일, , 혼례 등에 대한 통과의례는 여성의 몫인데 이는 관례, 회갑, 상례, 제례 등이 남성 주도적이라는 점과 대비된다.

 

또한 각 집안마다 따로 챙겨야할 조상제사와 식구들의 생일이 있다. 여기서도 역시 생명과 직접 연관이 있는 생일은 여성이 챙겨야 할 몫이다. 집안 식구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음식을 장만하며 가정적 종교의례를 담당하는 것은 여성이 해야할 종교적 직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에 이르기 까지 생명과 관련된 의례는 주로 여성들이 챙기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혼례를 위한 날을 잡는 일이라든지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그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여성이 집안에서의 종교적 위치도 그와 동일한 범주에서 해석이 된다. 가정의 평안을 위한 기도나 우환을 해결하기 위한 기도는 거의 여성들에게 맡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다양한 종교들 뿐 아니라 기독교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교회의 기도의 주역은 항상 여성들이었다. 교회를 지도하는 남성들이 적극적인 목회를 주도했다면 평균적으로 일반 남성 신자들이 기도의 주역이 되지는 못했다. 남성들이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면 주로 신학교에 진학하거나 종교인으로 신분전환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각종 기도에 열성적이었으며 그들이 영적인 측면에서 한국 개신교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점을 알 수 있다.

 

전통사회에 있어서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한을 삭이고, 그 삭은 한을 즐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삭임의 기능은 일차적으로 카타르시스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기독교의 또 다른 기도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울면서 하는 기도이다.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울면서 기도하는 것은 일상적이었으며, 울면서 애타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최상의 기도라 믿고 있었다. 이러한 한국 여성들이 우는 울음의 중요한 모티브는 넋풀이로 이해된다. 또한 울면서 애통하며 기도하는 것은 통성기도와 연결이 된다. 초기 한국 선교사였던 스캇은 통성기도를 ‘소리의 바벨탑’(a babel of sound)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런 기도형식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기독교 신학자인 이덕주 교수는 통성기도가 불교나 유교, 민간신앙에서 집단적으로 소리내어 경이나 주문을 외우는 독경(讀經) 혹은 독송(讀誦)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구 한말의 독특한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창출된 토착적 신앙양태로 보고 있다.

 

그런 울면서 하는 기도나 통성기도는 특히 새벽기도나 심야기도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초기 한국기독교에서는 교인들이 새벽기도회를 계속했으며 심지어는 새벽종 치는 소리만 들어도 울면서 예배당에 나오는 자들이 허다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대화의 기도보다 애타는 마음으로 울면서 기도하는 것이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한국 교회의 여성들은 교회에서 많은 눈물을 쏟았다. 초기 한국교회 여성들은 기도를 할 때 큰 절을 하듯이 마루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기도했다. 이는 감히 신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신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복종의 신령한 대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들은 주로 교회당에서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교회당이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지닌 성소로써 여성의 해방공간이 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 ‘울음’은 한풀이와도 맥이 통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집안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없는 해방구에서 마음껏 울며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여성들에게 주어진 엄청난 특권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바 한국인의 종교전통에 있어서 울면서 한을 풀어내는 일에는 여성들이 익숙하다. 남성들은 울고 싶어도 체면으로 인해 울지 못하고 참으며 그렇지 않은 듯이 행동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자신의 속내에 집중하며 울면서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하기에 용이한데 이는 한국 여성의 한의 심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무속에서 무당은 굿을 하면서 자연스런 울음을 유발하고 그것을 통해 굿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나아가 그것은 무당의 수입으로 직결 되었으니 그로 인해 확실한 선전효과 까지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에 있어서 통과의례(通過儀禮)와 세시의례(歲時儀禮)적 신앙관습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종교문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신령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한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민간신앙을 신봉하는 일반 사람들의 생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통과의례와 세시의례는 새로운 신과 종교로 대치되어 이어졌다. 그 의례중 일부는 점차 기독교적 방식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의미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들 가운데 스스로 독실한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새벽기도를 하며, 그런 종교적 관습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빠지면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이는 의례화된 종교관습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새벽기도가 모든 교인들에게 보편적으로 해당되는 기도관습이 아니라 성직자를 비롯한 남성 지도자들과 여성 일반 신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종교적 관습이다. 성직자나 장로 등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새벽기도가 필수적이며 독실한 여성 신도들은 날마다 새벽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성직자나 장로 등 직분자가 아닌 일반 신자들은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다 해도 질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올바른 신앙이란 교회에서 직분적 위치나 남성, 여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어야 하지만 한국교회의 새벽기도에서는 그것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가족의 백일, , 생일, 혼인, 회갑, 장례, 추도식 때 성직자를 불러 특별예배를 보는 것과 설, 추석 등 명절을 맞게 되면 제사대신 예배를 보는 것, 그리고 집안에 일상적이지 않은 변화나 일이 있을 때 특별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와 동일한 맥락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 신에게 자신의 정성을 표현하는 한국 기독교의 송구영신예배는 특이한 종교적 의례이다. 많은 교인들은 송구영신예배를 통해 소원을 빌기도 하고 소원을 적은 쪽지를 성직자에게 주어 특별한 기도를 받기도 한다. 물론 더 나은 효과를 위해 특별한 헌금을 바친다. 이 또한 여성들이 그것을 위한 주도적 위치에 있음은 괄목할만하다.

 

또한 집안 식구들의 특별한 날을 맞추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다. 즉 가족 중 백일, , 생일 등을 맞이하게 되면 성직자를 불러 특별예배를 보게 되는데 그것을 위한 대외적 섭외나 준비는 대개 여성들의 몫이다. 또한 한국 기독교에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특별예배를 드림으로써 종교적인 통과의례를 치르게 된다. , 개업을 한다든지 이사를 했을 때 혹은 공장의 기계나 자동차 등을 구입했을 때 동일한 예배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이때도 그 섭외를 담당하는 것은 주로 여성들이다.

 

그리고 여성 신도의 성미제도는 한국교회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하루일과에 있어서 날마다 감당해야할 여성의 종교적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옛날 부인들은 늘 단정한 자태를 유지하는 것이 종교적 덕목이었다. 특히 주부들은 다른 사람들이 세수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이른 시간에 몸단장을 마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부인들이 이른 새벽부터 정결을 유지하였던 것은 신령제사와 깊은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들은 대개 이른 아침 남몰래 몸단장을 마치고 부엌에 들어가 조왕신에게 정화수와 함께 성미(誠米)를 바쳤다.

 

성미는 ‘정성이 깃들여진 쌀'이라는 뜻으로 주부들이 아침밥을 짓기 전 조왕신에게 바치는 가장 미리 행하는 종교의례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주부들은 쌀의 일부를 신령에게 바치는 몫으로 한 숟가락 정도의 양을 조금씩 따로 챙겼다. 그것을 ‘고수레’의 한 방식으로 신령에게 바친다는 성심으로 밖으로 던지기도 했으며,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아 두었다가 시주(施主)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쌀은 정성이 깃든 특별한 성미였던 것이다.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던 부인들이 복음을 알고 나서부터는 매일 아침 그 성미를 조금씩 모아 신령에게 바치는 대신 교회에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성미는 ‘주의 종’이라 인식된 성직자와 그의 가족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여 거룩한 쌀인 성미(聖米)가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국 기독교의 십자가는 붉은색이 그 상징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여러 교회들이나 현재 세계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붉은색 네온싸인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한국 기독교인들의 마음에 새겨진 십자가는 붉은색이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인의 기본신앙에 깔려 있는 피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한국 기독교의 붉은 십자가는 단순한 표지일 뿐 아니라 종교적 영역표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보아 일종의 ‘골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자들은 그 표시가 있는 지역에 가거나 그 표시를 보게 되면 경외감과 동시에 안도감을 가지게 된다. 서울의 밤하늘에는 온통 붉은 십자가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붉은 십자가를 잘 볼 수 없다. 대개 외국인들은 붉은 십자가(Red Cross)를 민간 자선단체 적십자라 생각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교회당 건물에 있는 십자가는 대개 목재나 철재 십자가로 그 위에 닭 모양을 올려두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뢰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 기독교가 붉은 십자가에 깊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한국인의 한과 연관된 종교적 심성 때문이다. 피는 여성과 관련되는 개념이다. 여성의 출산 때 발생하는 피의 의미는 종교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출산 후 붉은 고추와 함께 금줄을 치는 것은 잡신을 물리침과 동시에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종교의례였다. 집안의 잡신과 우환을 물리치기 위한 일은 주로 여성들의 종교적 활동에 기인한다. 장을 담글 때 장독 안에 붉은 고추를 넣어두거나 장독 밖에 새끼를 꼬아 꽂아두는 것은 역시 붉은 피와 관련된 것이다. 장을 담글 때는 신령에게 비는 특별한 제사의례를 행했으며 장독 안팎에는 악귀를 물리칠 수 있는 검은 숯, 푸른 솔잎, 붉은 고추 등을 사용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집이나 새집에 이사를 하게 되면 집 안팎에 붉은 색 황토를 뿌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또한 자기 집과 상관없는 악귀들을 물리치려는 종교심과 연관된다. 또한 동짓날 팥죽을 끓여먹는 것도 피와 연관이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여성 주도적이다.

 

한국 기독교의 십자가가 붉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전통적 종교에 있어서 여성들의 피에 대한 개념과 조화되는 개념이다.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 교회당 위에 장식된 십자가는 낮에 모형으로만 보는 의미와 밤에 붉은 색깔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 틀리다는 점은 괄목할만하다. 그것은 역시 피와 관련된 색깔로서 한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종교의 배경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종교심성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에는 매개자(Medium) 개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또한 성직자와 일반 신자들, 특히 여성들 사이에 두드러지는 종교적 개념이다. 한국 민간신앙에서는 일반인들과 무당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일반인들은 신을 쉽게 만날 수 없었지만 무당은 신과 교제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종교 심성에는 신령에게 직접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항상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해야만 하는 신앙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개인, 집안, 마을 등 모든 영역에서 드러난다. 예를들어 눈에 보이지 않으나 늘 가까이 있는 ‘삼신 할매’는 항상 신령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중재자 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대개는 마을에 함께 살고 있는 가시적인 ‘용한 할매’를 두어 무의(巫醫)의 역할을 감당하게 했다. 뿐만아니라 한국여성들이 가정에서는 주부무당의 기능을 감당했다는 점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이보다 좀더 넓은 종교적 범주에 존재하는 자가 곧 무당이다.

 

이와같이 전통적인 한국사회에서 일반인들은 항상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신적인 인간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수의 여성들은 특별한 중재자를 두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일시적인 특별한 중재자가 되기도 했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성직자를 신과 일반성도 사이에 존재하는 매개자 처럼 인식하고 있다. 일반 교인들의 기도보다는 성직자의 기도가 훨씬 효력이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직자들이 마치 신처럼 말하고 행세하기 때문이며 자신의 생각과 기도를 마치 신의 것인 양 선포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스스로 ‘신의 종’이라는 논리로서 자신을 매개자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 교회와 가정의 연결고리 역할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특히 한국교회의 심방에 있어서 접객자로서 여성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남성인 성직자가 주도적으로 심방을 했다는 점과 심방객을 맞는 집주인은 주로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직자가 심방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성직자가 가정을 위해 복을 빌어줄 것이라는 종교적 기대심리 때문이다. 성직자가 심방을 할 때는 대개 여성 보조원들이 있다. 그것은 여성 혼자 있는 집안에 남자인 성직자 혼자서 들어가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일 것이며 동시에 여성을 대할 수 있는 여성의 역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그렇듯이 남성들은 밖으로 일을 나가고 주로 부인들이 가정에서 심방객을 맞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안에서 하는 역할 중 하나는 집안이 복을 받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순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이것이 종교적 지배층에 있는 성직자와 가정의 주부의 신앙심을 통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으며 한국교회 성장의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이다.

 

 

 

3. 결론

 

한국교회는 한국무속 신앙의 종교적 토양 속에 그 뿌리를 내렸고 오늘에 이르기 까지 성장하였다. 무속신앙은 한국 민중의 신앙이며 ‘한’의 종교이다. 한맺힌 민중 특히 여성들이 한풀이를 해온 것이 곧 무속신앙이다. 한국 민중들은 이 신앙습성을 통해서 맺힌 한을 풀어왔던 것이며 이 민간신앙은 천대받는 사람들 특히 부녀자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났던 것이다.

 

한반도에 기독교가 전래될 당시인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이 처음 본 한국 여성의 모습은 비인격적이었으며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주어지는 진정한 자유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기독교가 정착되어 가면서 선교사들은 여성들을 특별히 교육시키기도 했으며 처음부터 여성들을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선교단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의 초기 여성들은 억눌렸던 의식을 기독교 활동을 통해 발산했으며, 당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모임은 교회를 통해 제공된 유일한 여성들만의 세계였다. 초기 한국기독교 여성들이 교회내 여전도회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했던 것은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을 위한 회복운동이었으며 그것은 짓눌렸던 여성의 의식을 해방시키는 역할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한국 기독교 여성들은 1920년대부터 여성권익 향상을 위한 조직적인 다양한 운동을 교회 안에서 전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여성 신도들은 전혀 다른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통적인 종교심성은 저변을 통해 여전히 강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종교사회의 변천과 무관하게 한국인의 종교적 정서는 기독교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아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던 것이다. 수 천년 이어져온 정통적 기독교에 비한다면 ‘변종’(變種)인 한국 기독교의 중심에는 여성의 집단적 한()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종교들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 가운데, 모든 종교들과 상호 연관되고 습합된 상태로 기독교 여성 신도들의 종교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인의 한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세계가 놀라워했던 한국교회의 급성장의 배경에는 여성의 고유한 한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기독교가 전래된 직후 이어졌던 일제강점기와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한 상실감과 60년대의 극한 가난과 사회적 혼란은 한을 담고 있던 한국 기독교 여성들의 가슴에 더욱 강한 종교적 불을 지폈으며 그 폭발력이 한국 기독교의 고속 성장에 크게 한몫을 했던 것이다.

 

현재 한국 기독교는 종교적 순기능과 역기능을 노출시키면서 많은 문제점들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가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리어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지적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한국 기독교의 이면에는 종교적 기복사상과 민간신앙적 소원(所願)이 잠재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한국인의 한, 더 정확하게는 한국 여성의 한이 서구 종교의 변형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보편 기독교와 동떨어진 한국교회의 현세 기복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종교형태가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나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과는 무관한 종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한국 교회가 구심점을 잃은 채 소강국면을 맞고 있다는 소리들을 한다. 한국교회가 복음의 알맹이를 상실한 채 지리멸렬하게 된 그 원인이 기독교의 기독교답지 못한 비윤리적 행태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논자는 기독교의 성장이 멈춘 것은 현대화된 한국인들이 가진 전통적인 삶의 양식에 커다란 가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점과, 전통적인 한의 심성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한다. 성직자가 복을 기원하는 일이나 기도를 통해 현세적 복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종교적 기대심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즉 한국인의 기복사상과 기독교의 사상 사이에 공통점이 없으며 커다란 간격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기복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천상(天上)의 기독교를 신앙할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으며 해소할 만한 한이 다른 방향으로 전이된 사실, 그리고 종교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한을 풀어낼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려 있는 것과도 연관된다.

 

현대 한국 기독교에서 일어나는 페미니즘 운동의 기저에는 역사상 흐름의 맥 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집단적 한과 연관되며 기독교적으로 한층 승화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한국 교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뚜렷이 구분된다. 여전히 교회의 정치 영역은 주로 남성들의 몫이며, 여성들은 교단 내부에서 봉사하는 소극적인 일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일반사회에서 힘이나 권위로 말미암은 남녀 구분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진보적인 인사들은 기독교 여성들이 교회생활에서 남성 우월주의에 의해 억눌린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외적인 권력형 지위들과 군림할 수 있는 활동들은 거의 남성 성직자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거의 교회의 내부 활동이나 사회 봉사적 행사에만 참여하고 있는 것은 남성우월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진보적 성향의 여성들은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일에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남성들의 권력지향적 목회에 대해 민감한 저항적 반응을 한다. 역사적 피해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 보상심리 뿐 아니라 무의식적 새로운 틀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교회에는 숫적인 측면에서 항상 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절대 다수를 차지해 왔다. 한국 기독교에서 성비(性比)가 맞지 않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래 기독교의 종교적 정서는 보편적으로 한을 기저로 한 여성들에게 적합한 것으로 변해 있는 것이 그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성향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한국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진리와 학문의 세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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