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휘장(4) - Horatius Bonar

2012.11.20 16:31

서성필 조회 수:3820

찢어진 휘장

4

참 휘장 (The True Veil)

호라티우스 보나르 () / 김 세창 (옮김)

  

 히브리서 10 20절에서 사도 바울이 삽입한 "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이란 이 간명한 구절로, 그 동안 사람들이 고찰해 온 휘장의 참된 의미가 밝혀졌습니다( 10:20).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휘장이 상징하는 바를 해석해 주셔서 추측과 불확실의 세계를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휘장이 "예수님"의 몸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막의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으며, 성막 어디서나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성막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 되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성막 전체가 그리스도이며 성막의 각 부분도 그리스도입니다. 희생제단이 그리스도이며 희생물도 그리스도입니다. 물두멍은 우리를 위해 성령으로 충만케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성막에 드리워진 커튼들이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며, 모든 출입문 역시 그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촛대와 상()과 금 향단이 그분에 대해서 말하며, 계약의 궤와 긍휼 자리(mercy-seat)와 영광이 모두 그분을 구현(具顯)하며, 그분을 밝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막의 모든 것이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휘장은 "그분의 몸", 곧 그분의 인성(人性)입니다. 그분의 완전하심을 드러내기 위하여 어린양이 흠이나 점이 전혀 없어야 했듯이, 휘장도 사람의 아들들보다 더 아름다우신 그분의 뛰어나심을 보이기 위하여 모든 부분이 정교하게 짜여지고 보기에 아름다운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휘장이 땅에 속한 것으로 만들어졌듯이, 그분의 몸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분의 몸은 우리처럼 살과 뼈로 이루어졌으며, 몸의 모든 지체는 우리와 같이 땅에 속한 것들과 땅에서 자란 것들로 영양분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육체는 땅에 속하였지만 완전하였습니다. 비록 죄 있는 여자의 형질에서 나셨지만 죄가 없으셨습니다. 모든 점에서 흠이 없으셨지만, 우리의 육체적인 연약함을 모두 느끼셨습니다. 휘장을 통해 영광이 빛났듯이,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신격이 빛났습니다.

 

지성소 안에 여호와의 임재(shekinah)나 상징이 거하였듯이,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신성이 몸이 되어서" 거했습니다( 2:9). 그분은 "육체가 되신 말씀"이요( 1:14), "육체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요(딤전 3:16),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며, 실로 이 땅에 거하시며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 안에서 사신 여호와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은 그분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며, 사람이 그분과 함께 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사렛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으며,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분을 안 자는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나자렛 예수님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목수의 아들 안에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보았습니다. 슬픔의 사람 안에서 복되신 분의 아드님을 보았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분은 바로 영원부터 계신 분이셨습니다. 죽임을 당하셨던 분은 기록된 바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성전의 신비스러운 휘장은 매우 적절한 상징이었습니다. 이 휘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은 장차 오실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시며, 사람의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시며, 하늘에 속하신 분이시지만 땅에 속한 사람이시며, 하나님의 위엄으로 옷 입으셨지만, 우리의 가련한 인성의 의복을 입으신 분에 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와 같은 연약한 사람의 팔을 가지고 사시며 일하시는 가운데 밝히 드러났으며, 하나님의 지혜가 흙으로 지음 받은 입술을 통해 완전함 가운데 전해졌으며, 하나님의 위엄이 한 사람의 이마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한 사람의 눈에서 광채를 발하며, 한 사람의 손길을 통하여 베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한 사람의 뜻을 통하여 역사하였으며, 하나님의 주권이 한 사람의 몸의 지체들이 행한 모든 행위와 움직임 안에 체현(體現)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한 사람의 동정심과 공감하는 마음 안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한 사람의 눈물로 배출되었습니다.

 

우리는 휘장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며 참 사람되심의 완전함을 봅니다. 휘장에 사용된 재료들은 최상품의 것들이며 매우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땅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이 재료들은 사람들의 아들들보다 더 아름다운 분이시지만 우리와 같이 살과 뼈를 가지신 분에 관해 말해 주었습니다. 자주색 실과 주홍색 실, 고운 아마를 꼰 실을 가지고 잘 짜여진 정교한 솜씨의 천은 그분의 몸이 성령님께서 만드신 흠이 없는 완전한 사람의 몸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수를 놓거나 누벼서 만든 휘장의 케루빔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일부로서, 그리스도께서 성도와 하나이듯 성도도 그리스도와 하나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거룩케 하시는 분과 거룩케 된 자들이 모두 하나에 속한지라"

 

"그리스도의 육체"인 휘장은 영광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였습니다. 휘장은 신격(神格)을 가리기도 하고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휘장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경배자들 가까이 계심을 드러냈으며, 아울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하나님만이 친히 제거하실 수 있는 거리와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두신 것을 사람이 제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도 이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연관이 있었습니다. 예표(역주 : 성막의 휘장)에는 사람이 관련되지 않았지만, 원형(역주 : 그리스도의 몸)에는 관련되었습니다. 사람의 손이 휘장을 찢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살해한 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은 것이 하나님의 손이듯이, 그분을 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53:10). 그리스도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한 것은 뱀과 그 씨의 소행이었지만, 그 일은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기도 했습니다.

 

주님께는 찢기지 않은 몸과 찢겨진 몸이 있었습니다. 휘장은 찢기지 않은 몸을 가리킵니다. 휘장은 찢기지 않은 몸, 곧 더 나은 유언의 보증(surety)되시는 분의 상처 입지 않은 육체를 상징합니다. 휘장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관련이 있으며,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휘장은 생명과 관련이 있으며, 죽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휘장에서 성육신만으로는 죄인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죄인에게는 그 이상의 것, 즉 단순히 우리의 인성을 입은 것과는 다른, 훨씬 더 뛰어난 것을 필요로 합니다. 휘장은 여호와께서 계신 곳에 경배하러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몸이 반드시 부서져야 함을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단지 살과 피를 취하시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죽을 수 있는 육체를 취하셔야만 했으며, 반드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희생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안전하게 보존되어 그분의 임재 안에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임을 당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휘장과 지성소의 관계는 화염검과 주님의 낙원의 관계와 같습니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신 방의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검은 낙원 주위를 돌며 모든 길을 차단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임재(shekinah)의 영광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불의 띠로 낙원을 둘러싸며, 지성소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죽임을 당하리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낙원을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하여, 추방당한 사람이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낙원을 보존하시거나 사람에게 잃어버린 낙원보다 더 영광스러운 집을 마련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목적을 계시하였습니다.

 

휘장과 불꽃은 둘 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 들어올 수 없도록 위대하신 왕의 궁전을 지키고 있다." 또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이 안에 계시다. 그분은 사람과 사람의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다. 어느 날 너희는 아무런 방해 없이 그분께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지혜로운 이유로 인하여, 정해진 때에 보여지기 까지는 들어갈 수 없다. 너희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너희에게 안전하고 하나님께 의로워야 할 무언가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 그 휘장은 찢어지지 않은 채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휘장이 찢어지지 않은 한, 온전한 은혜나 또는 은혜가 죄인에게 도달하는 길은 결코 드러날 수 없습니다. 그 은혜는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흘러나갈 수 있습니다. 갇혀 있는 충만한 사랑의 물줄기를 터서 "닫힌 옹달샘과 봉한 샘" 안에 있는 생명을 흘려보내는 길은 오직 죽음뿐입니다. 바위를 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한 것은 구속(救贖)의 막대기, 곧 죄를 짊어지신 분의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같이 육체를 입으신 때부터 이스라엘의 눈에는 찢어지지 않은 휘장의 대형(對型:Antitype)만 보였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찢어지지 않은 휘장입니다. 나사렛과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찢어지지 않은 휘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시던 동안 베푸신 은혜의 기적들은 모두 휘장의 접혀진 부분이 흔들리는 것과 같았으며, 휘장을 통하여 내부의 장엄한 광채의 일부가 밖으로 흘러나오게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날마다 하신 은혜의 말씀도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은 경탄하며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4:22, 문자적으로는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처럼 말하는 이는 결코 없었나이다"( 7:46); "그분께서 모든 일을 잘 행하셨도다."( 7:37). 찢어지지 않은 휘장에 대한 찬사는 얼마나 대단하였는지요! 휘장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며 완전했습니다! 사람들은 휘장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휘장은 놀랍도록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이나 자신들의 긴요한 필요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매력적인 은혜로 인해 그분의 인격에 끌렸습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본 것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구원자가 되셔야 했는가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분을 구원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분의 죽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찢어지지 않은 휘장으로 충분했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그리하지 마소서."라고 말하며 주님이 죽으셔야 하는 당위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로 만족하였습니다. 죽음은 메시아의 특성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방금 인용한 장면을 주목하고 그 의미를 알아 봅시다.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16:21).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께서 지성소 앞에 서서, 휘장을 손으로 가리키시면서 제자들에게 "저 휘장은 반드시 찢어져야만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만류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거늘"(22) 베드로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휘장은 절대 찢어져서도 안 되고, 또 찢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23)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마치 사탄과 같이 말하고 있으며, 사탄을 위하여 말하는 것 같구나. 사탄은 여인의 씨의 발꿈치가 상하는 일이 없으면, 자신의 머리도 손상되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탄은 휘장이 찢어지는 일이 없으면, 네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도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탄이 너를 통해서 말하는구나. 어찌하든지, 휘장이 찢어지는 일을 막으려고 하는구나. 그러나 반드시 휘장은 찢어져야만 하리라. 만일 내가 죽지 않으면, 너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에 올 필요조차 없었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휘장을 살아 있고 감각이 있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휘장도 자신이 찢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나의 혼이 슬프도다."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찢어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표현이 아닐까요? 더욱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의 외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말씀의 의미는 앞에서 하신 말씀과 같지 않을까요? 그러나 또한 찢어지기를 바라는 갈망과 성취되기를 바라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받아야할 밥티슴(침례)이 있으니,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내가 얼마나 곤란을 받겠느냐?"( 12:50).

 

"주께서 나에게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10:5). 이 몸은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참된 사람의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몸은 성령님께서 예비하신 몸이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줄 것이다. 그러므로 4)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1:35). 이처럼 신적 능력에 의해 사람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이 몸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창세로부터 이와 같은 몸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철저히 사람이면서도 이같이 완전한 몸은 그 후에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몸은 사람의 모든 연약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전혀 흠이 없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주님의 몸은 첫 사람 아담의 몸과는 달랐습니다. 아담의 몸은 완전하였지만 분명히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완전함은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거나 우리처럼 시험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완전함의 본성은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기에 더없이 적합하였으며,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청색, 자주색, 주홍색, 고운 아마로 꼰 실로 만들어진 성전 휘장의 색상과 천은 모두 그리스도의 육체 혹은 몸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레미야가 나사르 사람(the Nazarites)을 묘사한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녀의 나사르 사람들은 눈보다 더 순결하고 젖보다 희며 그 몸이 루비보다 붉고 그들의 윤택함이 사파이어 같더니"(애가 4:7) 솔로몬의 노래에서 신부는 또한 신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 붉으며, 만 명 중에서 가장 뛰어나도다"( 5:10).

 

이러한 육체적인 완전함과 아름다움은 모두 성령님께서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전에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물질적으로 완전한 몸을 빚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 몸은 점이나 흠이 없었으며, 영원한 목적을 위해 오신 그분께 합당하였습니다. 그 몸을 하나님의 완전한 걸작품으로 뛰어나게 역사하신 분께 합당하며,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시는 분께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 Horatius Bonar "Rented Veil" 4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하나님의 언약과 공예배 - 이광호 박사(홍은개혁신학연구원 교수) 서성필 2012.11.20 3602
19 예배의 참된 방식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30 3971
18 ★ 공예배의 회복 - 이광호(철학박사, 해서신학교) [15] 서성필 2012.11.21 3649
17 ★ 예배와 말씀 수종자로서 목사직에 관한 고찰 - 이광호(조에성경신학연구원) [1] 서성필 2012.11.21 3382
16 예배의 실제적인 문제들 - 브레인 건닝 [1] 서성필 2012.11.20 3499
15 진정한 예배회복(예배인가, 쇼인가!) – A. W. 토저, [1] 서성필 2012.11.20 6552
14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 데이빗 던랩 [18] 서성필 2012.11.20 4143
13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2) - W. W. 페러데이 서성필 2012.11.20 3330
12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1) - W. W. 페러데이 [19] 서성필 2012.11.20 5080
11 그리스도인의 예배 - 윌리암 맥도날드 [15] 서성필 2012.11.20 3841
10 예배에 대한 소고 - C.H. 매킨토쉬 서성필 2012.11.20 3125
9 예배의 특성 - 프랭클린 퍼거슨 서성필 2012.11.20 3090
8 찢어진 휘장(5) - Horatius Bonar 서성필 2012.11.20 3823
» 찢어진 휘장(4) - Horatius Bonar [28] 서성필 2012.11.20 3820
6 찢어진 휘장(3) - Horatius Bonar [11] 서성필 2012.11.20 3794
5 찢어진 휘장(2) - Horatius Bonar [14] 서성필 2012.11.20 3484
4 찢어진 휘장(1) - Horatius Bonar [1] 서성필 2012.11.20 3558
3 찢어진 휘장 - Horatius Bonar [31] 서성필 2012.11.20 3863
2 성도의 경배(예배) 모임 - J. Dunn [22] 서성필 2012.11.20 4185
1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경배(예배) - A. W. 토저 [1] 서성필 2012.11.20 4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