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휘장(2) - Horatius Bonar

2012.11.20 16:28

서성필 조회 수:3484

찢어진 휘장

2

어떻게 휘장이 있게 되었는가?

호라티우스 보나르 () / 이 권우 (옮김)  

낙원에서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휘장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는 에덴과 "에덴 동산" 혹은 "낙원"과 외부 지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사이에 서로의 출입을 막는 울타리나 휘장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나아올 때에도, 하나님께서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오실 때에도 장애물은 없었습니다.

 

휘장이 쳐지고 하나님과 사람이 분리되어 사람의 거처와 하나님의 거처가 구분된 것은 인간의 불순종 이후 일어난 일입니다.

 

인간이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먼저 분리를 선언하고 행동으로 옮긴 건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전에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숨기고 가리는 무언가를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도망가 동산 나무들 사이에서 나뭇잎으로 자신을 숨기려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과 하나님사이에 휘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이제 자신의 바뀐 처지에서는 (가능하다면) 하나님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하다.

 

비록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라" 말씀하셨을지라도, 인간은 "가까이 나아가자"라고 대답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좋다"고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죄가 그 사이에 들어왔기 때문에, 용서와 제거라는 방법으로 죄가 처리되기까지 인간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접근하리라는 것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양심에 죄책감이 생기게 되었고, 하나님도 전처럼 기뻐하지 않으셨으며, 인간도 이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교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대론 둘 사이의 어떤 만남도 범죄자와 재판관의 대면일 뿐이었으며, 한 쪽은 두려움에 떨고 한쪽은 의로운 선고를 내리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전과 같이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전혀 거리낌 없이 사랑 안에서 이루어졌던 하나님과 사람간의 친교를 이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선포하기 위해 오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은혜를 드러내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정죄 뿐 아니라 용서를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얼마나 철저히 미워하시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오셨을 뿐 아니라, 죄인들을 향해 얼마나 은혜로운 마음을 품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떤 방해물이 창조주와 피조물사이에 들어와 이전과 같이 교통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인간 스스로도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도 그렇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럼 그 "방해물"이 어떻게 처리될 수 있나요? 그 방해물을 만들어 낸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 방해물을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 방해물을 제거해야 하나요? 그대로 두어야 하나요? 만일 그대로 둔다면, 사람은 하나님과 스스로에게  잃어버린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엔 정녕 죽으리라." 방해물이 제거되어 장벽이 없어지고 거리가 사라져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하셔야만 합니다. 그것도 즉각적으로 범죄에 대한 최종 집행이 이루어지기 전에 말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행하신 바가 확고해져 장차 있을 축복이 화가 되거나, 없어졌던 장벽이 다시 생길 가능성이 없게 됩니다.

 

사람에게 내려오실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전에 서로 가졌던 그런 교제는 사라졌다. 그리고 장벽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그 장벽을 제거할 것이다. 갑작스레 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완전히 제거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과 스스로에게 잃어버린 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사람은 그냥 져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소유물이었으며, 그냥 멸망하기에는 하나님께 너무 귀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3:16).

 

하지만 하나님의 차단막은 여전히 있어야했습니다. 이것은 예초부터 공표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막으셨고, 사람을 막으셨습니다. 이는 죄인을 위해 가장 거룩한 곳으로 가는 길이 그 즉시 준비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우주조차도 새롭고 산 길이 열리기 전에 의와 은혜 안에서 오랜 가르침을 받아야했습니다.

 

율법은 말합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 18:4); 은혜는 말합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33:11) 의는 말합니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지리라."( 9:17) 긍휼은 말합니다. "내가 어떻게 너를 건져낼꼬?"( 11:8) 어떻게 이 둘이 조화를 이룰 수 있나요? 정죄는 정의로운 것인데, 용서 또한 정의로운 것이 될 수 있나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 밖으로 쫓겨난 것은 의로운 처사였습니다. 그럼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의로운 것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 답하려면 공정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 범죄와 범죄자에 관한 모든 법적인 요소들을 치우침 없이 고려해야 합니다. 법은 법이고, 은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둘은 섞일 수 없습니다. 법이 요구하는 바를 만족시키면서, 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은혜가 갈망하는 바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은혜의 다스림" "법의 다스림"이 되어야하며, 은혜의 승리가 법의 승리가 되어야 합니다. 죄인의 재판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은혜는 법을 제정하신 분의 은혜, 곧 재판관의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에 인간은 이 진리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진리이고 새로운 계획이기 때문에 오랜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가르침의 방식은 독특했으며, 불완전한 지식을 가진 인간에게 적합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4천년을 거쳐 길게 이어져온 계시의 끈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대가 지나고 시간이 더할수록  더욱 많아지고 분명해지는 일련의 표적들이었습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전적으로 새로운 진리였고, 한 줄 한 줄 충분히 계시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천사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본다면, 죄인은 하나님에게서 어떤 호의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징벌과 "영원한 사슬"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첫 말씀은 은혜의 말씀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천사들과 달리 다루신다는 것과 죄가 풍성한 곳에 은혜가 더욱 풍성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정죄가 아닌 용서가 처음 약속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대한 원시 계시의 전반부에 불과했습니다. 은혜를 선언하신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 은혜가 어떻게 법의 완전함과 입법자의 거룩함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후반부가 펼쳐지면서 거룩한 말씀의 더 놀라운 부분들이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범죄가 일어난 그 장소에서 자신의 조건 없는 사랑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 사랑이 죄인에게 미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바깥쪽, 곧 낙원의 문 앞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첫 희생단이 세워졌고 첫 희생물이 드려졌으며, 첫 죄인이 경배했습니다.

 

피흘림은 낙원 바깥에서 이루어졌고, 죄인들은 낙원에서 차단되었습니다. 여기서 낙원은 사람이 스스로 차단했던 하늘 성소의 예표입니다. 안쪽에서는 피흘림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곳이 거룩한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인간은 죄인으로 그곳에서 쫓겨났고, 피는 오로지 그 자신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필요했습니다.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화염검이 문 앞에 놓였습니다. 이는 인간이 그곳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들어가려고 시도한다면 죽게 될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낙원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낙원이 금지된 대신 희생단을 쌓고, 그 문 앞에서 경배하는 것은 허락되었습니다. 물론 그동안에도 인간은 바깥에 있어야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완성되면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 안에 있는 생명의 확신 가운데 확실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화염검은 말했습니다. "지금은 아니라, 아직은 아니라." 사람이 거기로 들어가기 위해선 먼저 많은 일들이 이루어져야했습니다. "아직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드러나지 않았음을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9:8)

 

세대가 지남에 따라 더 이상 화염검이 그곳을 지키진 않았습니다. 성막의 휘장이 그것을 대신하였습니다. 그 휘장 또한 말했습니다. "지금은 아니라, 아직은 아니라. 좀 더 기다리라, 오 사람아, 문은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너희가 드리는 희생물들은 문을 여는 것과 많은 관련이 있다. 희생물 없이는 문이 열릴 수 없다. 그러나 심지어 희생물을 가지고도 문을 열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는 가운데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은 그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오직 ""뿐이며, ""가 나타나고 이루어지는 것은 한 대속물의 피흘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 한 시간 만에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반대로 다시 그곳에 들어가기까진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인내로 기다리며 사람은 하나님과 자신, 죄와 의, 그리고 자신이 쫓겨난 이유와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배우는 것이 더딘 인간은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성품을 한번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충분히 "훈육"하셔야 했습니다. 그것도 단지 수년이 아닌, 수 세대에 걸쳐서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희생을 통해 사람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희생을 통해 은혜와 의를 가르치는 방식은 세대가 지날수록 점점 퍼져나가 백성들 가운데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좀더 충분한 교육을 위해 성막이 세워졌습니다. 이 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학교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학교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르치셨고,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교과서에는 설명이나 해설이 있긴 했지만, 대개 상징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레위기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그 책에 담겨져 있는 심오하고 놀라운 교훈들을 터득한 후에야 비로소 휘장이 제거되고 접근이 허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의 살아있는 성취요, 실체이신 그분이 오신 후에야 비로소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다리기에는 오랜 시간이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교훈의 가르침은 비단 이스라엘에게 뿐 아니라 세계를 향한 것이며, 몇몇 세월 동안뿐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며, 이 땅 뿐 아니라 하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휘장 밖에서 드려진 모든 육체의 희생은 들어가게 해달라는 하나의 두드림이며 외침이었습니다. "언제까지이니까, 오 주여, 언제까지이니까?" 구약의 성도들은 인내 가운데 기다렸습니다. 조만간에 휘장이 찢어지고 사라져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죄인에게 긍휼자리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은 영원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 Horatius Bonar "Rented Veil"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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