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경배(예배)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경배는 참 경배가 아니다. 경배드리기 위한 모든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한 가지 불길한 결핍 요소를 들라면,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A. W. 토저 지음 / 이 용복 옮김

참 경배(예배)가 아닌 경배(예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지만 그중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경배가 많다는 것이 참으로 비극적인 사실이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경배는 참 경배가 아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수백만의 교양 있는 크리스천들이 단지 교회의 전통에 따라 관습적으로 경배를 드리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잠을 이루기 힘들다.

 

많은 현대인들이 경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 태도를 생각할 때 나는 마음이 무척 불편하다. 은밀히 사람들을 조정하거나 교묘한 방법을 써서 경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참 경배가 아니다. 나는 교인들이 목회자를 가리켜영적 기술자라고 부를 날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가?

 

당신이 삶의 각 부분들을 둘로 나누어 한 부분은 경배를 드리고 다른 부분은 경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참 경배가 아니다.

 

교회에서만 경배를 드린다거나, 위험한 폭풍이 불어 닥치거나, 혹은 자연의 신비롭고 장엄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었을 때만 경배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아찔할 정도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커브 길에 섰을 때 아주 영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참 경배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참 경배를 드리려면 우리 안에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셔야 한다. 그러므로 경배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우리에게 찾아와, 마치 거울에 반사하듯이 다시 그분께로 돌아간다. 하나님은 이런 경배가 아닌 다른 경배는 받지 않으신다.

 

내 삶 속에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들이 있음을 내가 안다면, 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게 해드리는 경배를 드릴 수 없다. 내가 주일에 즐겁게 하나님을 경배했다 할지라도, 월요일에 그분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나는 주일에 참 경배를 드린 것이 아니다. 주일에 즐거운 노래로 찬양하며 하나님을 경배했다 할지라도, 월요일과 화요일에 사업상의 문제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린다면, 나는 주일에 참 경배를 드린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나의 경배관(敬拜觀)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이 내 안에 조금도 없을 때, 비로소 그분은 나의 경배를 온전히 기뻐하신다.

 

가인에게서 배우는 교훈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경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구약에서 그분은 가인의 경배를 받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들 사이에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인이 하나님께 드린 경배에는 세 가지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

 

첫째, 가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하나님이 주권적이고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경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가인은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알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의 문제를 절대적으로 심각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둘째, 가인은 자신이 하나님과 참된 관계를 맺지 못했으면서도 그런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했다. 가인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가 없이도 그분이 자신을 받아들이실 것이라고 태평하게 믿었다. 그는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셋째, 가인은 죄의 심각성을 모르고 그것을 아주 가볍게 여겼다. 이것은 가인뿐만 아니라 가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의 기록을 자세히 읽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용의가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신다. 죄 때문에 세상에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은 인생 최고의 목적과 기쁨, 즉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쁨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신다.

 

가인이 드린 경배는 부적절하고 무의미한 경배였다. 이것을 지금의 신약시대에 적용해서 말해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속죄의 필요성을 가르치기 거부하는 교회가 있다면, 나는 그런 교회에서는 단 한 시간도 경배를 드리지 않을 것이다.

 

 

 

공허한 경배를 드리는 교회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드려지는 경배는 몹시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경배드리기 위한 모든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한 가지 불길한 결핍 요소를 들라면,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충분하다. 그것은 사람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충분히 아름답고 웅장하다. 예복에 나타난 여러 가지 상징, 음악, (), 그림, 웅변술, 엄숙한 말투, 좋은 음향시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경배자들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는다. 그러나 종종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감동이 없을 때가 있다. 목회자와 회중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알지도 못하고 갈망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말 그대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여기에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걸려 있다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경배하지만, 삶으로는 그분을 경배하지 않는 일을 쉽게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당신의 삶이 경배하지 않는다면, 결국 당신의 입술도 경배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전부, 즉 우리의 삶 전체가 경배해야 한다. 믿음, 사랑, 순종, 충성, 행위, 생명, 이 모든 것들이 경배에 동참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삶의 각 부분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참 경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죽음의 목전에서, 장엄한 신비 앞에서, 우리의 영성이 깊어진다고 믿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사마리아인의 경배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이단적(異端的)인 경배를 뜻한다. 이단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진리를 전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은 받아들이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은 거부하는 편협한 사람이다. 삶의 각 부분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단적 경배, 즉 사마리아인의 경배이다.

 

자연 경배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종교적 시()이다. 이것은 장엄한 자연을 즐기며 명상하는 것이다. 자연 숭배자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은 아주 많다. 그들은 눈과 귀가 아닌 마음을 미()에 집중시킨다. 당신의 귀가 미()에 집중할 경우 그것은 음악이 되고, 당신의 눈이 미()에 집중한다면 그것은 미술이 된다. 그러나 음악이나 미술 없이 아름다운 생각을 한다면 그것인 시()이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 음악을 경배로 착각한다. 마음을 고양시키고 영혼을 거의 몰아(沒我)의 경지에 몰아넣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경배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경배를 다 받으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문명사회에는 많은 종류의 경배가 있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그것들을 받지 않으신다. 종교적인 체험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전부 받으시는 것은 아니다. 교인들끼리 어울리면서 서로 따뜻한 우정을 느낄 수 있다. 교회에서는 아름다운 오르간 소리와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곧 참 경배는 아니다. 참 경배가 되려면 성령님과 진리가 있어야 한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경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경배하라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이다. 또한 그것은 회심과 거듭남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오직 머리에장엄함이라는 혹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경배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구속과 관계없이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회심하지 않고서도,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 가인도 종교적 체험을 했다. 가인은 하나님께 말씀드렸고, 하나님도 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그 경험이 구원과 관계없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경배를 드리지만 잘못 경배드릴 수 있다.

 

경배는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든지 경배를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이다. 성령님 없이 우리가 경배를 드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성령님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그분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분의 감동의 불을 끄고, 그분의 인도에 저항하면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경배를 드리겠다는 생각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할 이단(異端)이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경배를 드리는 방법을 아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준엄한 메시지

 

먼저 경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일도 할 수 없다. 성령님은 오직 경배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는 일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경배드리지 않고 단지 종교적 활동에 몰두하면서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언젠가 착각에서 깨어날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육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경배이다. 경배를 열심히 드리는 사람이 복음에 따른 실천적 삶을 소홀히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곧 거룩한 섬김의 책무를 강하게 느껴서 섬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곧 순종과 선행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일보다 경배가 앞서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서이다. 이 순서를 뒤집어서는 안 된다.

 

나를 성경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제아무리 무해(無害)하게 보일지라도 나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과 영원한 것들에 대해 묵상해야 할 시간에 나의 주의를 다른 데로 이끄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의 영혼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생활의 근심 걱정 때문에 성경을 멀리한다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며, 또한 그 손실은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성경 대신 다른 무엇에 의지한다면 나는 영적으로 도둑맞고 사기를 당해 영원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이상(理想)은 우리가 최대한 온전한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부분이 내 존재 안에 있으면, 내 존재 안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당신의 모든 시간, 장소, , , 해를 성별(聖別)하여 하나님께 드리도록 힘쓰라.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당신의 경배를 받으실 것이다.


- A.W. 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예배인가, 쇼인가!](규장 발행)에서 발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하나님의 언약과 공예배 - 이광호 박사(홍은개혁신학연구원 교수) 서성필 2012.11.20 3602
19 예배의 참된 방식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30 3971
18 ★ 공예배의 회복 - 이광호(철학박사, 해서신학교) [15] 서성필 2012.11.21 3649
17 ★ 예배와 말씀 수종자로서 목사직에 관한 고찰 - 이광호(조에성경신학연구원) [1] 서성필 2012.11.21 3382
16 예배의 실제적인 문제들 - 브레인 건닝 [1] 서성필 2012.11.20 3499
15 진정한 예배회복(예배인가, 쇼인가!) – A. W. 토저, [1] 서성필 2012.11.20 6552
14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 데이빗 던랩 [18] 서성필 2012.11.20 4143
13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2) - W. W. 페러데이 서성필 2012.11.20 3330
12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1) - W. W. 페러데이 [19] 서성필 2012.11.20 5080
11 그리스도인의 예배 - 윌리암 맥도날드 [15] 서성필 2012.11.20 3841
10 예배에 대한 소고 - C.H. 매킨토쉬 서성필 2012.11.20 3125
9 예배의 특성 - 프랭클린 퍼거슨 서성필 2012.11.20 3090
8 찢어진 휘장(5) - Horatius Bonar 서성필 2012.11.20 3823
7 찢어진 휘장(4) - Horatius Bonar [28] 서성필 2012.11.20 3820
6 찢어진 휘장(3) - Horatius Bonar [11] 서성필 2012.11.20 3794
5 찢어진 휘장(2) - Horatius Bonar [14] 서성필 2012.11.20 3484
4 찢어진 휘장(1) - Horatius Bonar [1] 서성필 2012.11.20 3558
3 찢어진 휘장 - Horatius Bonar [31] 서성필 2012.11.20 3863
2 성도의 경배(예배) 모임 - J. Dunn [22] 서성필 2012.11.20 4185
»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경배(예배) - A. W. 토저 [1] 서성필 2012.11.20 4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