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충만한 확신(믿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복되신 주님에 관해 계시된 역사적인 진술들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맡기는 것입니다.)

H.A. 아이언사이드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꿰뚫어서,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가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히브리서 10 19-22)

 

 

히브리서 10 19-22에는 이 장의 주제로서 상고해 볼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에 의해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가졌나니, 곧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별해 놓으신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베일, 곧 그분의 육체를 통과하여 들어가느니라. 또 우리에게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이 정결한 물로 씻기었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가운데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믿음의 충만한 확신”이라는 주목할 표현을 보셨습니까? 그 말씀을 읽을 때 당신의 영혼이 떨리지 않던가요? “믿음의 충만한 확신!” 이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요?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원하는 자만 그것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것은 감정적인 체험의 확신도 아니며, 심사숙고한 철학체계의 확신도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충만한 확신입니다.

 

믿음이 무엇이지?”라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겁니다.”라고 크게 외치는 꼬마 아이의 답변은 옳습니다. 믿음은 말씀하신 그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 11 1절에서 성령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믿음에 관한 놀라운 정의의 참된 의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그것에 실체를 부여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 되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사실이라고 선언하신 것을 추호의 의문도 없이 확실하게 의지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약속을 이처럼 확실하게 의지할 때 성령님께서 진리에 대해 증거 하셔서 믿는 자로 충만한 확신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떤 사실들을 단순히 지적(知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실들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을 뜻하며, 그 결과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일하는 역사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복되신 주님에 관해 계시된 역사적인 진술들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구원을 온전히 확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단단히 붙잡을만한 확실한 것, 의지할만한 가치 있는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는 바로 그런 메시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은 그렇지 않으면 버림받을 무력하고 절망적인 죄인을 위한 잘 정돈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가령 성경에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네 번 나오는데, 그 말씀은 단순히 우리가 낙관적인 태도로, 즉 만사가 결국 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 또는 기대로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할 때, 그것은 용기 있는 사람은 그 용기로 의롭다고 선언될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자가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을 붙잡는 손입니다. 그러므로 약한 믿음을 강한 믿음과 반대되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아무리 약해도 구원의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자기 자신이나 그 어떤 것을 믿는 믿음은 그것이 아무리 강해도 미혹과 올무에 불과하며, 마침내 영혼을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히 버림받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과, 우리의 구속을 위한 그 아들의 영광스런 사역에 관해 계시하신 것을 확고히 의지하자는 말입니다.

그 아들에 관한 계시가 이 히브리서 10장 앞부분에 놀랍게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율법시대에 드려진 많은 희생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희생 간의 차이를 분명히 엿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차이점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1) 구약의 희생은 많았고 종종 반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단 한번이며, 그 후로 아무 희생도 필요 없습니다.

(2) 구약의 희생은 죄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적인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무한한 가치가 있으며, 그 문제를 영원히 해결해 주었습니다.

(3) 구약의 희생은 희생물을 가져온 자들의 양심을 깨끗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믿는 자를 깨끗케 하고, 또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서 제거된 까닭에 온전한 양심을 줍니다.

(4) 구약의 희생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베일(휘장)을 찢고, 하나님 존전에 들어가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5) 구약의 희생은 희생물을 가져온 자를 온전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번의 희생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했습니다.

(6) 구약의 희생 안에는 매년 죄를 다시 기억함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으로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실 수 있게 했습니다.

(7)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죄를 단번에 영원히 제거하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을 의지합니다. 구약시대의 속죄제에 관한 내용을 한 번 살펴보는 것이 그 사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이스라엘 사람을 생각하라

 

죄를 범한 한 이스라엘 사람이 희생물을 가지고 나올 때, 성전 뜰의 희생단 곁에 우리가 서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이 희생단으로 염소를 끌고 옵니다. 제사장이 그 염소를 주의 깊게 살피고 외관상 아무 흠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그것을 잡으라고 명합니다. 희생물을 바치는 자가 직접 그 머리에 안수한 후에 칼로 목을 찌릅니다. 그 다음 껍질을 벗기고 각을 뜨고 내장을 신중히 둘러봅니다. 아무 흠이 없다고 선언되면, 그것을 취하고 그 일부는 희생단 불 위에 올려놓습니다. 피가 희생단 사방과 네 뿔에 뿌려지고, 그 후 제사장은 그 사람의 죄가 사해졌음을 선언합니다.

 

이것은다가 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에 불과했으며, 사실상 죄를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 흠 없는 짐승은 위대한 속죄제물이 되신 죄 없으신 구주를 상징했습니다. 그분의 피가 범죄에 대한 완전하고도 충분한 보상이 되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자는 영원히 용서받습니다.

 

만일 그 이스라엘 사람이 주 하나님께 다시 범죄했다면, 그는 다음날 새 희생물을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의 양심은 결코 온전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한 번의 희생은 무한한 가치가 있는 까닭에 그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토록 죄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그분께서 하나의 헌물로 거룩케 된 자들을 영원히 완전케 하셨느니라.( 10:14)

 

여기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구속사역과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완전함의 모든 효험(가치) 안에서 하나님께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그분 자신이 우리의 거룩함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안에서 우리를 보십니다.

 

참으로 놀랍도록 보배로운 사실이 아닌지요! 그것은 인간이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하나님 홀로 그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그 일에 대한 그분의 증거를 믿는 자는 충만한 확신을 소유합니다.

 

그가 스스로 구원받은 줄 아는 것은 그 마음이 기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말씀이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참된 신자는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알기에 기뻐합니다.

 

어떤 감정적인 체험에 근거한 믿음은 그 감정이 사라져버리면 그 사람을 완전히 혼돈에 처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데, 이는 그 말씀이 불변하기 때문입니다.

 

노신사는 평안이 없었다

 

여러 해 전 필자는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스에서 얼마 떨어진 한 시골마을 학교에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필자는 매일 밤 집회에 참석하면서도 전혀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던 한 친절한 노신사와 마차를 타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큰 나무들이 굽이굽이 늘어 선 아름다운 오솔길을 지나가다가 필자는 불쑥하나님과 화목하셨습니까?”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즉시 말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바로 그 문제 때문에 당신을 이곳에 데려온 겁니다. 나는 내가 구원받았음을 알 때까지, 아니면 그것을 확신하는 것 자체가 헛수고임을 알 때까지 한 걸음도 더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알 것이라고 기대하시지요?” 내가 물었습니다.

 

글쎄요, 그게 궁금한 점입니다. 나는 무언가 분명한 증거를 원해요. 흔들리지 않을 확실한 증거 말예요.”

 

정확히 무엇을 바라시죠? 어떤 마음의 뜨거운 반응 같은 것을 기대하시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종교를 갖게 되었을 때 무언가 굉장한 변화를 느꼈다고 해요.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을 찾았지만 늘 나를 비껴갔어요.”

 

종교를 갖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구원을 갈망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큰 기쁨이 생겼다면 선생님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시겠습니까?”

 

,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렇다면, 만일 선생님이 저를 통해 그런 경험을 한 후 시간이 흘러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때 만일 사탄이, 선생님이 구원받지 못했으며 곧 멸망으로 끌려갈 거라고 속삭인다면 선생님은 사탄에게 뭐라고 말씀하시겠어요? 오래 전에 아주 행복한 감정적인 체험을 했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겠어요? 만일 사탄이 그 행복한 감정을 준 이가 바로 자기였다고 말한다면, 선생님을 속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실 수 있겠어요?”

 

아니요.” 노신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증명할 수 없을 거예요. 기쁜 감정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겠네요.”

 

그렇다면 무엇이 충분할까요?”

 

만일 환상 중에 어떤 분명한 소리를 듣거나 천사의 메시지를 받는다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만일 선생님이 어떤 빛나는 천사의 환상을 보고 그 천사가 선생님의 죄가 사해졌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정말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될까요?”

 

내 생각엔 그럴 것 같아요. 만일 천사가 아무 문제없다고 말해준다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만일 선생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사탄이 또 와서 선생님이 멸망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말하며 혼란스럽게 한다면 선생님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어요?”

 

그러면 천사가 내가 구원받았다고 말해줬다고 하면 되지요.”

 

하지만 만일 사탄이, ‘내가 그 천사였어. 내가 너를 속이고 빛의 천사로 변장했던 거야. 이제 너는 영원히 멸망할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어요?”

 

노신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습니다. “맞아, 당신 말이 옳아. 천사의 말도 안되겠어.”

 

하지만,” 내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복한 감정보다 더 좋은 것을, 천사의 음성보다 더 믿을만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어 선생님의 죄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선생님이 그 아들을 믿으면 선생님의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그분 자신의 불변하는 말씀을 통해 증거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어보세요. ‘그분에 대하여 모든 대언자도 증언하되,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사면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사도행전 10 43절에 기록된 말씀으로 사도 베드로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여기 요한일서 5 13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고,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게 하려 함이라.이 말씀이 선생님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닌가요?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나요?”

 

, 믿어요. 정말 믿어요! 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아요.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신 줄 알아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뭐라 말씀하시는지 보세요.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충분히 믿을만하지 않나요? 이것은 하늘로부터 바로 선생님께 전해진 편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에게 말씀하신 것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천사나 감정보다 더 믿을만하지 않단 말입니까? 그분을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선생님의 죄가 용서되었음을 받아들일 수 없으신가요? 이제 선생님이 죽어 가는데 사탄이 와서 선생님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우길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탄아, 이젠 나를 두렵게 할 수 없어.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그분이 내가 영생을 가졌으며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고 말씀하고 계셔라고 말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회개한 죄인으로 그분께 나아와 그 복 되신 아들에 관한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받지 않으시겠습니까?”

 

노신사는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마음에 큰 감동을 받을 듯 했습니다. 그 입술이 움직이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눈을 뜨더니 말 등을 찰싹 때리며 외쳤습니다.

 

이제 됐어. 이제 모든 문제가 분명해졌어. 이게 오랫동안 찾아오던 답이야!”

 

그날 밤 집회에서 그는 앞으로 나가 청중 앞에서 자신이 반평생을 헛되이 찾아온 일과,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하신 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구원을 발견한 일을 간증했습니다. 그 후 오랫동안 그 노신사는 필자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교제를 나누다가 주님 품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의심과 두려움이 다 사라졌으며, 그 후로 기쁨이 넘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충만한 확신의 믿음이었습니다.

 

구원과 감정적인 요소

 

필자의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구원받을 때의 감정적인 요소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죄 사함 받은 증거로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님에 의해 자신의 잃어버린 상태를 깨달을 때 감정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입니다. 그가 회개에 이르렀을 때, 즉 자신의 죄와 자기 자신과 하나님을 향한 태도의 완전한 변화에 이르렀을 때, 참회의 눈물이 그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본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의지하고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는 성령님의 증거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웨슬리처럼 그 마음이 하나님의 구원을 즐거워하며 이상하게 뜨거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확신은 어떤 감정적인 변화에 근거하지 않으며, 그 어떤 감정적인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에 주어진 주님에 대한 증거를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합니다. 그 말씀을 믿을 때 온전한 확신이 옵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믿는 자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게 하려고 그의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은혜 안에서의 성장은 영혼이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구속의 피에 모든 것을 의지했을 때

그 때 성령님께서 들어오셨고

나는 하나님께로서 태어났네.”

 

- <구원의 확신을 갈망하는 이들에게>(전도출판사)에서 발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 불신앙의 비극 (행4:8-10) - 마틴 로이드 존스 서성필 2012.11.29 3616
41 불신앙의 불합리성 (행5:17-32) - 마틴 로이드 존스 서성필 2012.11.29 4675
40 그리스도의 최초의 유혹(마4:1) - 존 낙스 서성필 2012.11.23 3167
» 믿음의 충만한 확신 - H.A. 아이언사이드 서성필 2012.11.23 3715
38 너희도 가려느냐(요6:66-69) - 로버트 마케인(1813~1843) 서성필 2012.11.23 3137
37 믿음의 탁월성 - 로스 레인니 서성필 2012.11.23 3417
36 파도를 바라본 베드로(마14:28~31) - 마틴 로이드 존스 서성필 2012.11.23 3882
35 신앙에 의한 의인 (롬4:5)(믿음) - 존 웨슬리 서성필 2012.11.23 2777
3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14:1)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3 4850
33 천국, 우리의 영원한 본향 - 보이드 니콜슨(J. Boyd Nicholson) 서성필 2012.11.23 3102
32 ★ 하나님의 지혜(조건-믿음)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3 3025
31 불신(마태복음11장 16절∼19절)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3 5881
30 불신앙의 비극(행 4:8-10)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3 3195
29 사막의 샘터(사35:7)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3 3175
28 하나님의 약속(히12:27-29) - David Martyn Lloyd-Jones [3] 서성필 2012.11.23 3403
27 ★불신의 장애물(창26:17-18) - David Martyn Lloyd-Jones [11] 서성필 2012.11.23 3175
26 구원에 대한 확신(거짓 겸손)(벧후1:10)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3 2949
25 ★그리스도를 아는 것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3 3233
24 하나님의 개입 - David Martyn Lloyd-Jones 서성필 2012.11.23 3343
23 믿음을 위하여 싸움 - Robert Haldane 서성필 2012.11.23 3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