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지혜(조건-믿음)

 

(유일한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 즉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 편에 있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문제점은 그들이 서로 다른 두 세계 모두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David Martyn Lloyd-Jones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 1:5-8)

   

야고보서 1:5-8의 말씀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고 주신 주목할 만한 권고와 직결된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즉 환난들과 시련들을 우리가 긍정적인 태도로 보고 그래서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쁨이 넘치는 결말을 맺을 수 있는 방향으로 대처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 참 멋진 권고입니다만 인간 본성으로는 불가능 한 것을 하라고 하는군요. 성도들의 성숙에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들이나 또는 기도와 명상에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 수도자들이나. 아니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썩 어울리는 말씀이겠습니다만 이 조언은 평범한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 글을 쓴 사람이 다름 아닌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던 야고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 권면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줍니다.  "이것은 내게는 해당이 안 돼! 라고 사람의 자연적인 본능은 충동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제공하시는 가장 놀라운 복을 잃게 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기다리시고 소원하시는 이 복을 우리가 잃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가상적인 난제들을 처리해 갑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만약 여러분 중에서 누가 이것이 완전히 자신의 수준을 뛰어 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실제로 얻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경우를 단순히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적용하려고 노력하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그러한 사람에게 감사드려야 합니다.

 

 

지혜를 추구함

  

지혜라는 말은 성경에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이 낱말은 학자들의 관심을 심심찮게 끌어왔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혜란 이해력, 학식, 그리고 진리에 대한 통찰력 등을 암시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지식에의 열망과 이해력에의 갈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혜를 추구하는데에 전력을 투구했습니다. 이 지적인 사람들은 위대한 선생들과 연설가들이 하는 생의 의미에 대한 토론을 경청하는 것과 자신들이 이해하고 깨닫는 여러 이론들을 발표하는 것에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지혜라는 낱말은 구약의 지혜문서에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실로 구약성경의 일부분에는 '지혜문학'이라는 명칭까지 붙어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언급된 지혜는 그리스인들이 이해했던 지혜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이해력이나 지적 능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란 철학 이론들을 이해하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언급하기보다는 오히려 생의 전반에 관한 설정과 자기 존재에 대한 전반적인 의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이 낱말을 썼을 때, 그는 헬라어적 의미보다는 히브리어적 의미로서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 여러분들 중에서 누구든지 이 근본적인 자세, 이 핵심적인 관점이 없으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그러면 주실 것입니다."

 

 

지혜의 두 측면

     

이제 다시 관점을 돌이켜 우리가 어떤 측면에서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십시다. 사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실제적이고 단순해질 필요가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시련의 시기를 통과하면서 난관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들 모두가 자신들의 처지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합니다. 야고보는 그들이 기뻐하는데에 지혜가 필요하다면 얻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들에게는 생을 직시하고 생에 연루된 환경들을 직면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기뻐하게 하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이 특수한 주제는  바울이 자주 다루는 지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그 첫 번째 서신에서 헬라인들의 지혜와 그리스도인들의 지혜가 어떻게 완전히 다른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 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지식을 소유했다고 해도 그 지식이 그로 하여금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 속에서 기뻐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또는 전기문을 읽거나 역사를 훑어보기만 해도 이 주장은 실증이 됩니다. 자연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이 특수한 지경까지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삶을 보아야 합니다.  삶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영적인 이해력을 얻을 필요가 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약 오직 이 세상만을 위하여 살며, 이 세상이 주는 것만을 위하여 살아가며 또한 그가 평탄과 쾌락과 안위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그가 이 세상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는다면, 그러한 상태에서 그가 기뻐하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그가 싫어하던 것들만이 온통 주변에서 일어날 때, 그가 결코 기뻐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그런 상황가운데서 그가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는 없는데, 그것은

삶을 영적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해두신,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던 것들을 아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과 완벽하게 맺어짐으로써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즉 그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소유는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 지혜와 이해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로부터 최대한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정돈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한데, 그래야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하는 지혜야말로 무엇보다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정말로 무엇을 해야할지 알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파악하기도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적당한 것을 취사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만 할까요?  여기에서 세상의 지혜는 완전히 무용함이 증명됩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보다 차원 높은 인도, 즉 하나님 자신의 인도입니다.

우리는 지혜가 필요한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삶에 있어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영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야고보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오직 예외적인 몇몇 사람들만이 지혜를 소유할 수 있으며, 그 지혜로운 사람은 학식과 지식과 지적 이해력을 지닌 사람인 반면, 평범하거나 또는 그 이하 수준의 사람들은 진정한 지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중심적인 영광들 중의 하나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지혜의 은사가 선택된 소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모든 것에 가장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세상과 세상의 철인들은 이 지혜를 얻는데에 실패했으나 기이하고도 기이한 것은 이 지혜가 낮고 천하고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교회의 역사를 읽어보시기만 한다면 야고보가 여기서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 가상이 아닌 실제적인 것이며,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현되었던 것임을 알 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을 택하셔서 능력 있는 자들을 치십니다. 세상적인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 높은 경지에까지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범상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환난 가운데에서 즐거워했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초대교회 시절에 노예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당하면서도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이야기를 읽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박탈당한 후에 감옥에 처넣어졌지만 그래도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렇게 야고보가 말하는 진리의 말씀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증되었는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알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삶 속에서 닥치는 모든 사건들은 단지 그들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 주는 역할을 할뿐이었습니다.   또한 야고보는 신분과 관계없이 이 지혜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반박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말은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등져왔거든요. 나는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야고보가 말합니다. "당신이 만약 지금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선 지금의 당신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으실 것이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나간 일을 가지고 거듭 책잡는 분이 아니십니다. 만약 당신이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에는 여러분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지혜를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책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면전에서 공박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이 없이 공급해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며, 심지어는 우리의 의로도 아닙니다. 비록 우리는 연약하며, 어리석고 그리고 악할 지라도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의 조건

   

여기에서 오직 하나의 조건만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1:6)  야고보는 확신이 없는 사람을, 제어하지 못하고 위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바다물결에 빗대어 말합니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8) 라고 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 즉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 편에 있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문제점은 그들이 서로 다른 두 세계 모두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를 정학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 동시에 속인(俗人)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이 두 영역에 모두 속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결과로 위기에 처해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향하고자 할 때에 그들은 기도할 수 있는 권리가 정말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자기 자신들을 믿지 못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하나님도 확신하지 못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6,7).

유일한 조건은 자기를 진심으로 하나님 편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 분은 전심을 쏟는 헌신을 원하십니다. 스스로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 외의 모든 것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 편에 속해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고 세상과 세상의 모든 방법들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우리는 분산된 마음을 바로 잡고 우리자신을 전심으로 하나님 편에만 서도록 할 결심이 되어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고 그의 신적 지혜를 구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것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 이해력을 갖게 될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모든 것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기쁨을 위하여 공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어 드림으로써 우리가 이 하나의 조건을 충족시켜 마침내 신성한 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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