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샘터(35:7)

("신기루가 변하여 샘터가 될 것이다."  "내가 저 곳에 가 닿기만 하면, 내게 필요한 물을 다 얻을 수 있겠지. 나는 저 오아시스에서 실컷 물을 마시고 충분히 쉰 다음,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샘터에 도착해 보니 그곳에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은 모래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David Martyn Lloyd-Jones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35:7)

 

이사야 35:7절을 보십시오. 이 구절은 영역 본들에서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었습니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다"(A.V.). "뜨거운 모래밭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다"(R.V.). 본인의 생각에는 R.V.(Revised Version)의 난 외에 제시된 번역이 가장 나은 것 같습니다. "신기루가 변하여 샘터가 될 것이다."

 

35장 전체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의 복음과 그분께서 가지고 오실 대구원의 영광스런 결과의 일부분을 예고해 줍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서술은 매우 아름다운 표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35:4). 이 어구를 더 분명하게 옮긴다면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너희를 구하시리라."가 됩니다. 그 결과는 이런 것입니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신기루가 변하여 샘터가 될 것이다"(35:6-7).

 

이것은 독특하고 전형적인 구약의 인생관임과 동시에 중동인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특유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성경과 다른 중동 문학에서 우리들은 인생이 하나의 긴 여정(旅程)으로서 매우 자연스럽고도 직감적으로 묘사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시의 중동인들은 유목민이 많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먼 길을 다니곤 했었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행로(行路)의 흔적이 없는 사막이나 광야를 물이 없이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길이 나 있지 않은 건조한 땅을 통과하는 일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물없이 뜨거운 광야를 걷는 일이었습니다. 중동인들은 뜨거운 햇볕을 머리 위로 받으면서 도무지 목적지에 닿을 것 같지 않은 여행을 하느라고 극도의 피곤과 갈증에 시달리며 정신과 몸에 새 힘을 공급할 수 있는 시원한 물을 갈망하는 극한적인 체험을 자주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이글거리는 태양열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행적 없는 사막의 모래밭을 지나가는 한 여행자를 상상해 보십시오. 갑자기 그의 눈에 많은 물이 괴인 훌륭한 샘터가 보입니다. 그의 가슴은 뛰기 시작합니다. 그는 흥분해서 자신에게 말합니다. "내가 저 곳에 가 닿기만 하면, 내게 필요한 물을 다 얻을 수 있겠지. 나는 저 오아시스에서 실컷 물을 마시고 충분히 쉰 다음,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샘터에 도착해 보니 그곳에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은 모래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기루입니다! 신기루는 사막에서 볼 수 있는 특유한 자연현상입니다. 햇볕이 사막의 모래 위에 내려 쬘 때에 이따금씩 웅덩이에 물이 질펀히 고인 듯한 신기루 현상이 발생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양만 샘터처럼 보일 뿐이지 막상 가보면 샘터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기루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환상입니다.

실망한 여행자는 다시 걷습니다. 얼마틈 걸어가면 또 표면에 물이 찰랑대는 훌륭한 물 웅덩이가 나타납니다. 그는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하지만 가보면 샘터도 없고 물도 없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신기루입니다. 그는 신기루에 미혹된 체험을 반복하면서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사막과 길자국 없는 광야를 통과할 때에 당하는 가장 고통스런 체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인생이 이와 같다고 한 목소리로 가르칩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들의 삶이 하나의 여행길에 불과한 순례자라고 증언합니다. 중동인들의 생활 환경에서 인생을 이렇게 본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인간이란 여장을 꾸리고 길을 떠나는 행객(行客)과 같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들어와서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갑니다. 인간은 순례자이며 여행객입니다. 찬송가에도 인간을 나그네로 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히 인생이 나그네라는 정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이 나그네로서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항상 겪는 체험들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그 체험들은 중동인들이 실제로 광야나 사막을 지나갈 때에 직면하는 여정의 경험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들이 인생살이의 피곤함을 조금씩 느껴 보기 이전까지는 아직 나그네 길을 그리 멀리 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아마 꽃밭이 비치는 안경을 끼고서 인생을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출발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인생살이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낙관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이런 식으로 인생을 바라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얼마 가지 않아 인생살이에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사는 것이 피곤하고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은 만족을 얻고 싶은 갈망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무엇을 찾습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우리는 인생 길을 지나면서 종종 샘물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샘물들은 신기루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으면 나그네의 눈에 비치는 샘터들은 모두 신기루에 불과하든 넋이 성경이 증언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이 항상 찾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몇 가지만 열거하겠습니다. 누구든지 평안과 기쁨을 찾습니다. 행복도 누구나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보람된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우리들이 찾는 인생은 만족과 안정이 있는 삶입니다. 우리들은 광야를 지나는 중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사막에 있습니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현실입니다. 이 나그네길에서 우리들이 찾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에게 휴식과 힘과 활기를 주는 것들을 찾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들은 두 가지 가능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이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삶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이 두 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언제나 공급해 줍니다. 이 세상은 지금도 인간들을 만족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세속의 메시지를 듣고 받아들일 때 이 세상은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들이 갖기를 원하는 것들을 분명히 얻게 될 것이라고 다짐해 줍니다. 그러면 세상이 사용하는 방법은 어떤 것들일까요? 본인은 그것들을 일일이 열거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원하는 만족을 찾으려는 몇 가지 실례들과 이 세상이 인간의 만족을 충족시켜 주는 방식들의 일부만 언급하려고 합니다.

 

먼저 향응적 만족주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인생살이에서 꼭 필요한 것들로는 향응적인 수단을 통해서 얻을 수 잇는 만족감이 전부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설 읽기, 술 마시기, 도박, TV. 디스코, 스포츠 등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의 고민과 어려운 문제들을 잊어버리도록 이런 것들을 제공해 줍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향응주의나 환락 문화가 우리들의 생활권 속에 깊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보는 신문, 잡지, TV에서도 향응적인 측면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음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제공해 주는 향응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모든 문제가 돈에 달렸다고 확신합니다. (돈 많은 부자들뿐만 아니라 경제적 해결이 인간 사회의 모든 질환에 대한 치유책이라고 믿는 정치가나 경제 사상가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들은 재물(財物)이 확보되면 필요한 모든 것들과 원하는 모든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존재 목적을 재물의 축적에 두고 돈 쓰는 재미로 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돈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들은 만족과 행복의 길은 배움과 지적인 활동들을 통해서 열린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술, 음악, 철학, 토론, 평론, 문학 기타 연구 생활이나 지적인 창작 활동에 투신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몰두하기만 하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만족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생의 행복을 결혼에서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정이 행복의 보금자리라고 믿고서 가정에 파묻혀 일시적인 만족을 얻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정이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들은 좋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잘 꾸려나가면 궁극적인 만족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모든 것들을 다 시도해 본 후에도 기대했던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변화가 있어야 삶의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환경을 바꾸고 새 출발을 하면 만사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발생되는 많은 인생 문제들을 설명하는 하나의 철학적 사고 방식이기도 합니다. 요즘 증가 일로에 있는 엄청난 이혼율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혼이 급증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변화가 있으면 만족이 올 것이라는 세속 철학의 반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피곤을 느끼며 답답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지나가는 한 나그네가 있습니다. 그는 행복을 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갑자기 사막에서 하나의 오아시스를 발견합니다. 그에게 희망이 있는 듯합니다. 그 앞에 나타난 오아시스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새 출발을 하세요. 지금 그 약혼자와 헤어지십시오. 당신의 결혼 관계를 끊어버리세요. 새롭게 출발하세요. 그러면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막의 신기루가 속삭이는 말의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면 두 번째 결혼에는 성공한다고 낙관합니다. 그래서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나라로 가버리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더 이상 부연해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오늘날의 인생살이에 대한 엄연한 현실들이 아닙니까?

 

"내게 필요한 것은 새 출발입니다. 새 직업이 필요하고 새로운 환경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모든 문제들은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처지가 나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내가 만일 새로운 출발만 할 수 있다면, 내가 결혼을 다시 하고, 다른 나라에도 가고, 새 직업을 얻고, 무엇인가 새 것으로 바꾼다면 나는 만족할 것입니다. 저만큼 떨어진 곳에 보이는 저 새로운 곳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나는 정말 만족할 것입니다."

 

이제 좀 거시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인류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믿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세상 역사란 인간들이 새로운 소망과 아이디어들에 매달려 온 역사입니다. 인간들은 새 것들을 손에 쥐기만 하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이 새 것에 대한 기대는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또는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신념이 되어 있습니다. 금세기 초에 우리들은 전쟁을 종식시키는 마지막 전쟁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들은 국제 연맹과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 사상들에 새로운 소망을 두었습니다.

 

인류는 사회 환경을 개선하고 정치적인 개혁을 일으키면 만사가 바꾸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조가 풍미했던 빅토리아 시대 중간기의 시집(詩集)들을 읽어보십시오. 매우 슬프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한심스런 경우는 20세기 초반의 정치가들이 내건 슬로건이나 정치 연설의 주장입니다.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어떤 정치적인 결단만 내리면 모든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본인은 위에서 인간들이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이 세상이 그들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을 대강 약술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나그네길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여행의 피로와 만족이 없는 인생살이를 체험적으로 압니다. 우리들은 세상이 과거에 제공했었던 만족의 방편들이 미래에도 똑같이 주어질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두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성경이 진술하지 않습니까? 이 진리가 개인의 삶에서 실증되지 않습니까? 이 진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까? 역사책들과 전기들과 인간의 역사가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 모든 삶이 하나의 신기루였다고 증명해 주지 않습니까! 첫 번째 결혼을 깨뜨리는 사람들이 두 번째 결혼도 실패하고 세 번째에도 다시 이혼으로 끝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왜 그렇겠습니까? 그들의 삶이 항상 신기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커다란 비극들은 사람들이 이 신기루의 원리를 인식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들입니다.

 

이제 순전히 윤리적인 측면에서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한 가정이 있습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영혼과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고 그저 가족 생활 그 자체를 위해 삽니다. 이 가족들은 가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사는데 매우 이상적이고 행복한 삶인 듯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 가정이 행복을 찾았고 만족을 누린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의 어머니가 갑자기 병들었습니다. 그녀는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지만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가정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일시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신기루였습니다.

 

이 예는 다른 모든 인생의 신기루들을 대변합니다. 인간 남녀들이 참으로 만족을 찾습니까? 이 세상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까? 세상이 제공하는 그 모든 것들이 과연 우리들의 필요를 충족시킵니까? 이 세상은 행복합니까? 구태여 대답을 원한다면 이 세상을 보십시오. 날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소식을 들으면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모두 신기루입니다. 우리들이 찾는 것이 신기루 속에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막상 가보면 없습니다. 우리들은 다시 다른 곳에서 우리가 찾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도착해 보면 신기루에 현혹되었고 우롱당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들이 손에 잡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빠져나갑니다. 그것들은 신기루입니다!

 

우리들이 고려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의 신기루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몇 가지 해답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다음에 열거하는 내용은 인간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올바르게 설명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간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첫째 이유는 우리 자신들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으며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나 우리의 환경 또는 조건에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전제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이며, 우리의 직장이며, 우리의 환경이며, 세상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만사 형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나를 이런 전제로 위로하면서 나 자신은 근본적으로 나쁘지 않는다는 다짐을 줍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환경이나 생활 조건의 변화일 뿐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전제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을 전인적으로 다루지 않고 항상 부분적으로만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사고는 우리 삶의 한 부분만 다룹니다. 어떤 것들은 지성에만 호소합니다. 그것들은 지적인 관심의 대상으로서는 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마음도 있고, 혼도 있고 또한 정신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감정에만 호소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감정의 동물만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지적인 만족도 있어야 합니다. 감정에만 어필하면 인간의 지성에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몸과 영혼과 정신을 가진 자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세 가지 영역에서 만족을 갈구합니다. 만약 이 세 가지 측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인간은 항상 불안정하고 불행합니다. 그런 사람은 만족이 없는 삶을 살면서 계속되는 신기루의 희롱을 받는 사막의 여행자처럼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전인적으로 다루지 않고 단편적으로 보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입니다.

 

셋째, 세상적인 방법에 의한 만족을 추구하다 실패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제쳐놓기 때문입니다.

직장, 결혼, 가정 등등의 일들은 그 자체로는 아주 좋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창조주를 떠나서는 궁극적으로 도무지 행복할 수 없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저 위대한 어거스틴의 고백에 동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가슴은 당신 속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쉼을 얻지 못합니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당신에게 엄숙히 확언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면 아무리 당신이 이 세상 끝까지 여행을 하며 지적인 만족과정서적인 충족을 얻기 위해 온갖 것들을 다 붙잡아 보아도 결코 행복과 평안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이 없으면 당신은 참된 삶과 기쁨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결단코 피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며 하늘 높은 곳과 땅 속 깊은 곳까지 가더라도, 만약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없다면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매력적인 모습으로 최상의 것을 제공한다 할지라도 세상은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제공하는 것은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더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주저없이 당신에게 던지겠습니다. 당신의 나그네  길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십니까? 만족을 찾았습니까? 평안을 찾았습니까? 당신의 영혼은 평안합니까? 행복합니까? 당신은 지금어디에 서 있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찾고 구하던 것을 획득하였습니까? 정직한 남녀 인간들의 생애라 할지라도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 세상이 우리들의 손에 쥐어주는 것은 환상이며 신기루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행복과 만족의 문턱에 들어설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그곳에 도착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소망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인생은 신기루의 연속이군요. 우리 인생들은 줄곧 실망만 하면서 살아야겠군요. 우리들에게 죽음과 허무한 상실밖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단 말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해답을 상기시켜 드릴 수 있음을 본인은 특권으로 여깁니다. "신기루가 변하여 샘터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복음은 신기루를 샘터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복음은 우리들에게 인생의 본질을 이해시킵니다.

복음은 본인이 위에서 설명하려고 했었던 모든 것들과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인간에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인생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도록 만듭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늘 잊고 사는 단순한 사실 한 가지를 상기시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모두 인생을 시작했듯이 또한 모두 인생을 마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본질을 하나의 여행이나 하나의 순례로 보도록 합니다. 복음은 인생의 모든 피상적인 것들을 벗겨버립니다. 복음은 번쩍거리고 향응적인 세상의 자랑들을 집어던지며 말합니다. "인간이여 당신은 오늘 여기 있지만, 내일은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이제 이 시점에서 다시 출발하십시오." 복음은 우리에게 죽음과 무덤을 넘어 영원으로 이어지는 영구한 삶이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 복음은 우리들을 그리스도께로 곧장 데리고 갑니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복음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결단을 하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요청하는 것은 세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년 첫 주일이니까 보다 나은 삶을 시작하라고 우리에게 호소하지도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당신에게 오직 한 가지 하라고 청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와서 그분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복음이 왜 신년 결의를 요구하지 않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명한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박사님의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55년 동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유년 시절부터 보다 나은 삶을 살겠다고 늘 결단을 해 왔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무엇을 행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해야 할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솔직한 고백입니까! 존슨 박사님에게 진실이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들 가운데 신년 결의를 해 보지 않은 자가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다 더 나아지려고 결심해 왔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복음은 그런 식으로는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혀 다릅니다. 복음은 우리들이 사막에서 뜨겁게 내려 쬐는 불볕을 받고 있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우리들은 신기루를 잡으려고 뛰어다녔습니다. 우리들은 향락의 맛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남은 것은 공허뿐입니다. 우리들은 이곳 저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우리들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사막 속에서 비틀거리며 삽니다. 그런 사람에게 신년 결단을 하라는 요구야말로 얼마나 무용합니까? 그런 힘없는 사람을 보고 당장 산을 오르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허약한 인간에게 완전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우리들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우리들은 피곤에 지쳐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과 평안과 영양 섭취와 새 생명입니다.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복음은 당신에게 처음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오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광야에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사막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속에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한 분이 계십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나는 신기루를 너무 자주 보아왔습니다. 나는 신기루에 번번이 속았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분도 또 하나의 신기루가 아니겠습니까?" 저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그분께로 오십시오. 신기루가 변하여 샘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복음은 당신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필요를 넘치게 채워줄 수 있다고 확언합니다. 복음은 당신이 그리스도께로 오기만 하면, 타오르던 모래 밭 오아시스의 환영(幻影)이 실제 샘터로 바뀌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보증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일을 하실까요? 먼저 그분은 나를 하나님 앞에 바르게 놓습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세상의 모든 방법들이 지닌 문제점은 하나님을 제쳐놓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복음은 우리들에게 이 세상에서 인생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로 놓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나는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나는 여러 면에서 하나님을 저주하였습니다. 나는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겠습니까? 나는 과거를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은 이미 엎질러진 과거의 얼룩입니다.

 

나는 나의 과거를 고치지 못합니다. 내가 이미 기록한 것을 나는 지우지 못합니다. 나는 내 인생의 책을 이미 더럽혔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로 놓일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한 가지 대안(代案)이 있을 뿐입니다. 나사렛 예수님이 바로 그 대안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죄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책과 형벌을 감당하셨습니다. 당신과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이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우리들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가장 먼저 있어야 할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해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바르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본성과 새 생명을 주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들에게 어떤 새로운 도덕률이나 윤리적 규범을 따르라고 호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복음은 새 생명을 부여합니다. 우리들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본성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하며 새로운 욕구들로 채워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삶에서 익숙했던 것들을 더 이상 원치 않게 되고 선한 것들을 원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에 우리들을 오랫동안 짓눌렀던 옛 원수들을 이길 수 잇는 힘과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우리들은 원수들을 보고서도 겁내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며 넉넉히 이기는 자의 자세로 맞설 수 있습니다.

 

복음은 나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주고, 또한 나를 바르게 해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킵니다. 그리스도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한결같으신 분입니다. 나의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께서 내게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죽음의 시간에 내버려두고 떠나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행복과 만족의 방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이 그것들을 모조리 앗아갑니다. 먹고 마시는 향응은 당신을 돕지 못합니다. 철학도 당신을 돕지 못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자가 갑자기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돈과 예술과 음악과 그 이외의 모든 고상하고 멋진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것들은 당신의 심장에서 출혈이 멎지 않고 있는 때와 이 세상과 인생살이에서 당신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여겨질 때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당신에게 줄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죽음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사막에 계십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만나려고 오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안식과 평안과 만족과 행복과 즐거움과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있는 자라면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오 주님, 당신 안에서

내 영혼이 다시 찾아졌습니다.

애타게 그리던 평안과 기쁨을

여태껏 몰랐던 심령의 축복을

오 주님, 당신 안에서

온전히 찾았습니다.

 

나는 안식과 행복을

한숨으로 기다렸건만

당신은 내 맘속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구주 곁을 지날 제

주님의 넘치는 사랑

나의 온몸을 뒤덮었습니다.

 

제가 붙잡은 깨어진 물통 속을

허리 굽혀 마시려던 타오르는 목마름은

물없는 빈통 속을

울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물은 흐느끼는 나를 조롱하며

먼 곳으로 달아났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환락을 위해

아쉬움에 울었건만

당신 위한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움 가려진 내 눈 속에

현란한 은혜로 비쳐진 후에야

나는 오직 당신을 위한

뜨거운 눈물을 알았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참된 만족입니다.

당신의 이름밖에 누가 있으리이까

사랑과 생명과 영원한 기쁨이

나의 주님 안에서만

충만하게 찾아집니다.

 

어떤 이는 의심할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그냥 멋있게 묘사한 것이 아닙니까? 내가 당신의 메시지를 믿고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나의 삶을 그분께 바치면 정말 내가 필요로 했던 대상이었음을 증명되겠습니까? 신기루가 변하여 정녕 샘물이 될까요?" 찬송가 가사 한 절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찾으며, 따르며, 지키며, 몸부림치는

메마른 인생의 광야에서

주님이 참으로 축복하실까요?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순교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로 와서 주님을 만나 본 자들은 누구나 그 분 안에서 충만하고 완전하며 종결적인 최대의 만족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신기루가 마침내 샘터가 됩니다. 당신이 주님 안에서 그것을 찾으면 정말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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