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란 무엇인가? - E.L. 러버링

2012.11.21 13:09

서성필 조회 수:3821

침례란 무엇인가?

 

E.L. 러버링

 

      어느 날 저녁 몇 명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침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침례라는 주제는 그들이 신약 성경을 읽는 동안 계속 보아왔던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만이 침례를 받아야 하고 또 물 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 나는 유아세례도 옳고, 물을 뿌리는 수세례도 옳다고 생각하네. 그렇게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네, 꼭 필요한 침례란 성령의 세례뿐일세. 물세례는 어떻게 행하든 관계없네. 그것은 다만 외적인 표시일 뿐이니까"라고 세 번째 사람이 말을 했습니다.


      침례에 대한 이러한 견해들은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것들입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들도 이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성경이 침례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에 대해 어떤 의심이나 불일치, 또는 어려움이나 또 다른 어떤 것들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이러한 주제들을 모호한 채로 두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람이나 기관의 견해나 결정보다 뛰어난 권위를 갖고 있으며, 유전이나 교회의 역사보다 더 중요하기에, 시편 119 105절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그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됩니다.



질문과 답변


성경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왜 침례를 받아야 하는가?

2. 누가 침례를 받아야 하는가?

3. 침례는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4. 침례의 의미와 상징은 무엇인가?


1. 침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주님께서 침례를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 명령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그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28:19-20).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침례를 주라는 이 명령은 이 은혜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침례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중단되었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습니다. 비슷한 말씀을 마가복음 16:15-16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주의할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는 것은 침례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참된 신자들은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삶의 지침서로 삼는 사람들은 이 구절들 속에서 침례를 받는 것에 대한 권위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 중요성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메시지인 복음 전파와 연결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무런 중요성도 없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아주 오래 전에 그 종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지금 그의 종들에게 주의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침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려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2. 침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명령을 하신 후에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것을 읽을 때,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 침례를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주님의 명령의 순서를 따른 것입니다. "제자를 삼아 그들에게 침례를 주라."


사도행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침례에 대한 실례를 연구해 보십시오.

- 처음 기록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2:41). 침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 복음이 빌립에 의해 사마리아에 전파되었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8:12). 그들은 믿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 에디오피아 사람이 광야에서 회심한 후에 어떻게 물에서 침례를 받게 되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8:36-39).

- 다소 사람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였습니다. 아나니아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인은 그를 "형제 사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다음에 사울은 신자로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9:18).
- 복음은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에게 전해졌습니다( 10:34-43). 고넬료와 그와 함께한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은 후에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44, 48).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령님을 소유한 사람은 물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말은 소용없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제시한 이유는 침례의 절차에 대한 것입니다.

- 사도행전 16:13-15에서 우리는 루디아가 침례를 받는 것을 봅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셨고, 그 가족들의 마음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장 30-34절에서는 빌립보 간수와 그 가족들이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습니다.

 -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18:8). 그들은 듣고 믿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 에베소에서는 복음을 듣기 전에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던 요한의 제자 열두 명이 이번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19:5). 이것은 회심하기 전에 어떠한 "침례"를 받았더라도 신자가 된 후에 받는 침례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모든 예를 볼 때, 오직 신자들만이 침례를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믿지 않는 자나 유아들이 침례를 받았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유아세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3. 침례는 물에 잠기는 것이다.


성경에서 묘사되어 있는 침례의 방법은 늘 물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80번 언급된 헬라어 밥티조(baptizo)의 실제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뜻은 "담그다", "잠기다"입니다. 헬라어 성경을 1611년에 영어 킹 제임스 역으로 번역할 때 번역자들은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냥 "외래어 표기"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밥티조(baptizo) -o -e로만 바꾼 것입니다. 이 이상한 행동은 제임스 왕의 지시에 따른 것인데 그는 번역자들에게 침례의 방법으로 수세례를 사용하는 교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어떠한 일도 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실례들은 초대 교회들이 물에 잠기는 침례 방법을 사용했던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에디오피아 사람의 침례에 대해 읽어보면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 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8:38-39).
성경에서 침례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사단이 왜 그렇게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것을 왜곡하여 모조품으로 대치하려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사단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완전히 멸망시킨 것이기 때문에 사단은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에서 이 위대한 진리를 누리고, 침례로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될 때 사단과 죄를 이기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죄악된 세상에서 사는 동안 시험을 받게 되면 우리가 받은 침례의 의미를 기억하십시오( 6:1-4).

 

유아세례의 역사


      유아세례가 어떻게 수많은 교파들에 의해 그렇게 광범위하게 시행되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그들의 유전으로 대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소개한 거듭난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다는 이론은 요한복음 3장에서처럼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근본적인 교리 위에서 나온 것입니다.

교회 역사가인 니엔데르(Neander)는 유아세례가 들어오게 된 것이, "그 성례전은 신비적인 영향이나 부적과 관계가 있다"는 근거를 얻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유아세례라는 "부적"은 원죄를 없애준다고 생각했었고, 고해성사는 행위로 짓는 죄를 없애주며, 죽은 후에는 연옥에서 죄를 완전히 씻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의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의 것입니다. 영국 국교회 기도서는 유아세례는 "천국의 유업을 이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준다고 선언합니다. 장로교인들의 "소요리 문답"에서도 유아세례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증표요 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이러한 사상에 대한 아무 근거도, 권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주장도 성경에서는 전혀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1. 유아세례는 때로 고린도전서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는 말씀으로 "증명"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믿는 배우자로 인해 "거룩하게" 되는 것과 동일한 의미에서의 "거룩"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믿음으로 인해 자녀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들이 거듭나기까지는 믿지 않는 자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침례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 구절을 통해 자녀들에게 침례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치 믿는 아내를 둔 믿지 않는 남편들에게도 침례를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전서 4:5에서 신자들이 먹는 음식이 "거룩하여 진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 거룩하다는 단어가 언제나 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 유대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했던 것처럼 이제 "침례가 할례를 대신하였"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침례를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결코 침례가 할례를 대신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디모데가 침례를 받은 지 오랜 후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16:3). 그 때는 유대인 교회 인도자들이 할례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여겨 이방인 신자들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했던 때였습니다( 15:1-11). 만약 침례가 할례를 대신해서 나온 것이라면, 그 때도 그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침례는 한번도 그렇게 논의된 적이 없었습니다.


3. 유아세례를 믿는 사람들이 때때로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서 온 가족이 침례를 받았다고 말할 때 그 가족에는 유아들도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가족이 받은 침례에 유아도 함께 침례를 받았다고 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무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사실 침례를 받았다고 하는 가족은 세 가족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구성원들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빌립보 간수의 가족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의 말씀을 전하자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34). 그들 모두가 들었고, 모두가 믿었으며, 모두가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집에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듣고 믿고 침례를 받을 정도의 충분한 나이였습니다.

둘째로, "스데바나의 집"(고전 1:16)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16:15절에서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자들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섬김(또는 봉사)은 성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성인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하는 아기들의 일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루디아의 집이 있습니다( 16:15). 이 집에서는 아기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루디아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두아디라에서 300마일이 넘는 빌립보로 건너와 자기의 사업으로 자주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루디아의 집에 "형제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바울과 실라가 떠나기 전에 그들을 위로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6:40). "형제"라는 호칭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자에게만 사용하는 말입니다.


     결론으로 교회 안에서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의 글을 인용하는 것도 합당할 것입니다. 마틴 루터"유아세례가 그리스도에 의해 또는 그리스도 후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제정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존 칼빈 "어디에서도 유아들에게 침례를 주었다는 전도자들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루터 시대의 저술가인 에라스무스 "사도들의 기록 어디에서도 어린아이들에게 침례를 주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10:14)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에게 침례를 주도록 명령도 지시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와야 합니다. 주님은 그들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이 충분한 나이가 되어 주님께 믿음으로 나오면 그들을 받으시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주님의 희생이 그들 모두에게 피난처요 보상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침례나 어떤 예식이 그보다 더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