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 성직의 수여인가?

(안수는 성령이나 은사 또는 섬기기 위한 능력을 받는게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성령과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13:1).

                                                                  알렉산더 스트라우크

 

 

사도행전 6장은 교회 안에서 안수가 행해진 것에 대한 첫 기록이다. 성경에는 안수가 여려가지 이유로 행해졌다. James Orr "보기에는 안수가 어떤 전달 또는 이전을 의미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레위기 16:21) 이와 함께 하나님에 대한 위탁과 '동일시하는 것'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먼저 구약에서 사용된 안수의 예들을 보자 .

* 축복 전달( 48:14)

*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의 동일시( 1:4)

* 죄를 이전( 16:21)

* 부정을 전달( 24:14)

* 사람의 행동을 하나님이것과 동일시함(왕하 13:16)

* 특별한 명령과 책임 또는 권위에 대한 전달의 의미로 사람들을 따로 세움( 8:10,14;

27:15-23; 34:9)


신약에서 안수의 예

* 축복 전달( 19:15; 10:16)

* 성령의 이적의 능력 전달( 6:5; 8:23,25; 16:18; 4:40; 13:13; 9:12; 19:11; 28:8)

* 어떤 신자들에게 사도들의 손을 통한 성령전달의 의미로( 8:17-19; 19:6)

* 아나니아를 통하여 바울에게 고침과 성령전달의 의미로( 9:17)

* 바울의 손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성령의 은사 전달(딤후 1:6)

* 성별 또는 공직에 두는 의미로( 6:6; 13:3; 딤전 4:14; 5:22 )


이러한 배경을 참조해 볼 때 사도행전에서 손을 얻는 것은 사도들의 축복과 사람들을 특별한 임무에 임명하는 것( 27:22-23 )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권위를 전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은 많은 돈을 다루어야 했고( 4:34-37) 헬라파와 히브리파 과부들 사이의 커가는 긴장을 다루어야 했으며 또 그
상황이 공적인 임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사도들은 무리 앞에서 그들에게 공적으로 안수하여 세웠다.

그러나 사도행전 6장의 안수는 그 사람들을 더 높은 계급의 사역(사제 또는 목사)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었으며 사도들의 대를 잇게 한 것도 아니었다. 이는 그들을 가르치고 성례를 집행하도록 세우는 안수식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안수는 은혜나 성령을 전달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이 사람들에게 안수한 것은 그들로 가난한 자들을 돕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교 여행의 초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를 하였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13:3). 오늘날의 성경주석가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안수식과는 관계가 없다. 이는 전통이 좋은 주석가들의 눈도 멀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좋은 예이다. 예를 들어 J. B. Lightfoot는 이 말씀을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안수식으로 잘못 해석하였다. "사도 바울의 사도직은 주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사도로서의 실질적인 부르심은 수년 후 안디옥에서 이루어 졌다( 13:2)라고 말했다.(갈라디아에 보낸 바울의 서신(1865: repr. London: Macmillan, 1892, p.98)


다음의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을 그러한 의미로 볼 수 없다.


바나바와 바울은 이미 안디옥 교회에서 뛰어난 은사자였다( 13:1).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의 새로운 일을 알아보고 격려하기 위하여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11:22-26).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에서 이미 지도급에 있는 교사였으며 그리스도를 위한 노련한 일꾼이었다. 바울은 이미 주님이 직접 임명하신 사도였다. 어떤 사람이나 교회도 그를 사도로 세웠다고 말할 수 없다( 26: 16-19; 1:1).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이미 일꾼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안수는 그들을 일꾼으로 세운 것이 아니었다. 이들에 대한 안수는 그들을 더 높은 지위나 은사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을 널리 전하게 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그들을 세우신 것이었다.

바울과 바나바에 의하면 그들의 안수는 성령이나 은사 또는 섬기기 위한 능력을 받는게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성령과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13:1).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하지 않았다. 본문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과 지도자들이 교회의 일꾼이 되려는 자들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교회를 떠나는 자들에게 그 머리 위에 그들의 손을 올려놓고 기도한 것으로 보인다( 14:26; 15:40).


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안수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본문은 교회가 기도와 안수를 통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복음전하는 일을 위해 따로 세웠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고 말씀하셨다( 10:2). 그래서 교회는 선지자와 교사의 인도에 따라- 주님이 말씀하신 추수할 일꾼에 대한 가르침의 순종으로 - 추수할 일꾼을 위한 특별한 금식과( 13:2) 기도를 하였다. 이것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교회에 의한 선교의 계획의 첫 기록이다. 이는 기독교사에 있어 하나의 획기적인 전환점이다. 이때까지 선교는 핍박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나 개인적인 소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이제 교회가 선교에 일할 일꾼을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바울과 바나바를 보낸 데에는 하나님과 사람이 아주 아름답게 합께 관여되어 있음을 우리는 다음의 구절들에서 볼 수 있다. 성령께서는 예언적 음성을 통하여 "
너희는 나를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13:2). 그래서 성령이 두 사람을 먼저 부르셔서 보내게 하셨다. 지역 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 기도하며 성령께서 보내시는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는 일에 함께 했다(인간의 동참).
지역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라는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여 금식 기도하며 안수하였다. 그리고 그후에 그들을 이방인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내보냈다( 14:27; 15:3, 12). 본문은 선지자와 교사들이 이일을 주관한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시므온 , 루기오 그리고 마나엔). 그러나 사도행전 14:26절은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갔다. 이 안디옥은, 그들이 선교 활동을 하려고, 하나님의 은총에 몸을 내맡기고 나선 곳이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아 그 일은 전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명한 일인 것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일을 전 교회 앞에서 보고했다. "그 곳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 회중을 불러모으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14:27). 그들의 선교를 위한 송별회는( 14:23) 금식과 기도 그리고 안수가 포함되었다 .

 

누가는 여기에서의 안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도행전 6 1-6절까지의 문맥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는 교회가 선택된 사람들을 특별한 임무를 위하여 따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2절에서 헬라어 단어 aphorizo는 성별을 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안수는 (아마도 다른 선지자들과 교사들)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성령께서 주신 명령에 따라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 그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위탁하고 또 축복을 비는 것이었다.

디모데전서 5:22절에 의하면 임명과 연관된 안수는 두 사람들간에 동료관계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세우는 쪽에서 세움을 받는 사람의 머리 위에 안수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성공이나 실패에 함께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안수는 양편 모두에게 깊은 책임과 의무 그리고 교제를 형성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