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실패와 회복

 

다윗, 영적인 거인

, 징계, 리바운드 (죄의 자백), 회복 그리고 축복에 대한 생생한 구약의 예화가 사무엘하 11장에 나옵니다. 이 예화의 주인공인 영웅은 바로 역사상 최고의 존경을 받는 신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스라엘 왕 다윗입니다. 성경은 다윗을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기리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3:14; 사도행전 13:22). 그렇지만 모든 신자처럼 다윗도 주님을 몹시 실망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다윗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급속하게 변합니다.  결과들은 비참합니다.

그 해가 돌아와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
사무엘하 11:1)

고대 근동의 군대는 전통적으로 가을과 겨울에는 전투를 쉬었다가 봄과 여름의 좋은 날씨의 계절 동안 출정군이 군사행동을 하기 위하여 다시 모였습니다.  작년에는 이스라엘이 암몬을 전투에서 패배시켰으나, 여름이 끝날 때까지 암몬의 수도인 랍바를 함락시키는데는 실패했습니다. 봄이 되자 이스라엘 군대는 랍바의 함락을 재개하기 위해 동원되어 진을 쳤습니다.

다윗, 육적인 거인

군주로서 다윗은 전투에 참가하여 그의 군대를 지휘해야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신중하게 이 점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하나님의 뜻은 다윗이 랍바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기는 커녕 참모장인 요압과 그의 부하들을 보냈습니다. 


다윗은 그 전에는 모든 군사행동을 직접 이끌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는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다윗의 책임 수행의 실패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지리적인 뜻, 즉 다윗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것,  에서 벗어나서 육적인 상태에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였지만 이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틀린 장소에 있게 되어 다윗은 가장 취약한 부분인 유혹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인상적인 강점들울 지니고 있었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의 대단한 용기,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는 경이적인 지도력, 하나님께 향한 진정한 겸손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강점들은 육적인 상태에 의해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자로 인한 약점 떄문에 그는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사무엘하 11:2)

다윗은 예루살렘 어디에서나 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의 책임은 랍바에 있는 군대와 함께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외관상 그는 거의 하루종일 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에 그가 일어났을 때  심히 지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궁전의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고대에는 정원들은 평평한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붕 위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어슬렁거리던 동안에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다윗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원보다 훨씬 더 신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떄 하나님과의 교제 상태에 있었다면 그는 그 유혹을 떨쳐 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에게는 세 명의 아내와 적어도 열 명이나 되는 후궁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에서 이렇게 숨막히게 아름다운 여자를 본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교제 밖에 있었습니다. 교제 밖에 있는 신자는 어느 누구라도 유혹은 저항하기 힘듭니다. 특히 죄의 본성의 약한 영역에서는 저항하기 힘듭니다 


만일 여러분의 죄의 본성의 약한 영역이 질투, 원통함, 부러움, 험담, 또는 다른 사람들을 악담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영역에서 죄를 범하는 유혹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다윗의 약점을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있으면 약한 영역이 유혹 받을 때 그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아니오라고 거절하는 것이 쉽지만 (왜냐면 신자의 혼 속에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의 능력과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제 밖에 있으면 죄의 본성의 약한 영역이 유혹 받을 떄 이는 완전히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에는 그 신자는 죄의 본성의 능력과 권세 아래 놓이게 떄문입니다. 그래서 유혹에 저항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혼 속에 내재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사무엘하 11:3)

다윗은 그의 측근들에게 그 여인의 신원을 알아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이 다윗 의 사령관 중 한 사람의 아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우리아는 다윗과는 달리 그가 있어야 할 곳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랍바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11:4-5)

다윗은 그의 지루함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간통이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오늘날의 기독교인이었다면 아마 그의 친구들은 그는 결코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 말했다면 그들은 잘 못되었습니다. 다윗은 구원되었고 현재는 천국에 있습니다. 그는 세속성의 함정에 선뜻 걸어 들어간 또 하나의 신자였습니다. 그의 정신적 태도의 죄들은명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떨어져 있는 신자는 불신자와 같이 야비한 죄들을 범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이 불신자들보다 더 나쁘다고 암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간통을 다른 죄들보다 더 타락한 죄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간통이 항상 그에 관련된 두 사람 이상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혀로 범하는 죄들 -인신 공격- 또한 많은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마치 간통이 언제나 관련되어 있는 두 사람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죄는 신자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뗴어냄으로 처참한 연쇄적인 죄를 짓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왕국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연쇄적인 죄를 범하려는 참이었습니다.  

 

다윗의 계략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
사무엘하 11:6-7)

다윗이 우리아에게 질문할 떄 그는 전장터의 상황에 대해 걱정하는 체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랍바의 포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그는 밧세바를 유혹한 것을 숨길 책략을 꾸몄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임신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우리아를 집으로 가게 해서 그의 아내와 함께 하도록 꾀는 교묘한 술책을 조작하였습니다. 다윗이 그의 군대에 관하여 물을 때 다윗의 선한 겉모습은 단지 위선과 속임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위선은 세속성의 상태에 있는 신자의 공통적 특성입니다. 교제 밖에 있는 신자는 종종 그의 죄를 감추거나 부인하려고 합니다. 꾸준히 진행되는 죄로 말미암아 다윗은 영적 거인에서 육적인 위선자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사무엘하 11:8)

"발을 씻다집에 들어가다라는 말에 대한 관용어입니다.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 거리들은 먼지가 매우 많았으므로 모든 집은 문간에 발을 씻는 물통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신을 벗고 발을 씻곤 하였습니다. 손님이 문을 두드릴 때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그 응답은 발 씻으세요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사무엘하 11:9)

우리아는 다윗의 의도에 따르지 않았고 그의 계획을 좌절시켰습니다. 대신 그는왕궁 문에서 잤습니다”. 왕궁 문은 다윗의 왕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왕궁 문 근처에 있는 위병소를 의미합니다. 왕궁 근위병들이 숙사로 쓰는 특별한 막사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아는 집으로 가서 아내와 그 날 밤을 보내기 보다는 왕궁의 경비병들이 있는 위병소의 막사로 갔습니다. 우리아는 군대가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동안 자기 혼자 집에서 즐기는 그런 무책임한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고하여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11:10-11)

다윗이 우리아의 이 반응을 들었을 때 그는 움찔하여 놀랐음이 틀림없습니다. 다윗은 평생 엄청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우리아의 충성심과 그의 부하들에 대한 염려가 다윗의 양심을 깨우치게 했어야 했습니다. 다윗의 모든 작전 참모들이 전투에 참가하여 참고 견디는 동안 다윗은 왕궁에서 쾌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있었다면 다윗과 우리아는 동시에 랍바로 떠나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우리아를 집으로 유인하려는 또 다른 시도를 하였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
사무엘하 11:12-13)

다윗은 우리아를 만취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아의 의지적 억제가 허물어지기만 하면 그는 아내와 동침하게 될 것이라고 다윗은 기대하며 그렇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나쁜 결정들의 결과로부터 도망치려고 제정신이 아닌 육적인 위선자의 특성을, 온갖 교묘하고 부정직하게 사람을 조종하는 수완들을, 드러내었습니다. 다윗의 잔혹한 교활함은 점점 더 타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하려고 은밀히 계획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하나님과의 교제 밖에 있는 신자들입니다 


그런데 교묘하고 부정직하게 사람을 조종하는 그의 수완들이 성공했습니까? 다윗의 고집으로 우리아는 술이 취했으나 그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대의 규범인 원칙을 지켰습니다.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사무엘하 11:14)

다윗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가 이 궁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아의 죽음인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사악한 행위를 성취하기 위해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다윗은 살인을 저지르는 죄인이 될 뿐만 아니라 요압도 공모자로 만들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가 청직 (淸直) 한 장교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휴대하는 편지를 결코 열어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사무엘하 11:15)

요압은 그의 총사령관의 의도를 알아차렸습니다. 그 명령은 분명했습니다: 우리아를 앞세워 랍바로 진군한 후에 우리아를 격리시키고 적들로부터 엄호해 주지 말고 버려 두고 퇴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
사무엘하 11:16-17)

우리아의 부대는 성벽 바로 아래까지 출격했습니다. 그렇게 용감한 군인이 다윗의 욕망 때문에 희생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지요.

요압이 사람을 보내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윗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사무엘하 11:18-21)

왜 요압은 다윗이 화를 낼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었을까요? 왜냐하면 요압이 몇몇 병사들의 생명을 잃게 하는 전술적인 실책을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한 부대를 공격에 노출시켜 놓고 엄호해 주지 않음으로써 그 부대 지휘관이 죽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 보고를 듣게 되면 그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요압에게 그는 필시 격노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압은 만일 다윗이 화를 내면 그에게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습니다.”라고만 말하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먼저번에 한 명령을 그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사무엘하 11:22-24)

그러자 다윗은 위선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사무엘하 11:25)

다윗이 요압을 격려한 것은 순전히 겉치레 였습니다. 요압은 우리아를 죽게 하라는 다윗의 명령에 복종하였기 때문에 그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이전에는 다윗이 부하들의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해 그렇게 가볍게 다룬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정상적인 관행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지휘관 그 누구도 전쟁에서 패했을 때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철학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사무엘하 11:26)

다윗의 세속성 (육적인 상태)은 표면상 남편을 사랑했고 죽은 남편을 애도한 밧세바에게 슬픔과 비탄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신자의 죄들은 종종 다른 사람을 연루시키고 아프게 합니다.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사무엘하 11:27)

하나님과의 교제 밖에 있거나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어느 신자도 승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윗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 작전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그의 죄들을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가 우리아에게 했던 것에 대해 책임이 있었습니다 (마땅히 되돌려 받아야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끝난 후 다윗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다윗의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인 엄청난 육체적, 정서적 고통을 겪고 나서야 그는 마침내 리바운드를 (죄의 자백) 했습니다. 그런 후 그는 신자로서 계속해서 성숙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치가 있었습니까?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시편 38:1-2)

자기가 끌어들인 불행과 그리고 도려내는 듯한 고통의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범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그가 당하는 엄격한 시련으로 괴로워 합니다. “화살()”이란 다윗의 혼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하나님의 징계의 화살들이었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라는 말은 다윗이 처해 있는 역경의 심각성을 극적으로 하는 비유의 표현 입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공정하게 심판 받고 있었습니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시편 38:3-6)

3절에서 6절의 말씀은 다윗이 지은 죄로 말미암은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정도의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결과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살이 성한 곳이 없사오며라는 말은건강을 잃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관용어 입니다. 다윗의 죄는 그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심해지는 죄책감은 몸의 거동에 반영되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정서적 부담이 되었습니다 


징계의 혹독함은 다윗이 리바운드를 하지 않은 것에 기인함이 분명합니다 (시편 32:3). 우리가 리바운드 (죄를 자백)를 하지 않고 범한 죄와 결별하지 않으면 죄의 연쇄 반응을 발달시킵니다. 첫 번째의 죄는 위선, 공포, 두려움, 불안, 암울함, 부러움, 원통함, 증오, 분노를 포함하는 여러 가지의 정신적 태도의 죄들과 결부되어 죄책감의 반응에 의해 악화됩니다. 이러한 죄들이 함께 하게 되어 우리의 혼 속에 스트레스와 번민을 낳게 하며 그래서 결국  육체의 건강을 해칩니다 (시편 32:3-4).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시편 38:7-8)

여기서 허리란 신경 조직을 뜻하며 이는 다윗의 정신적 태도의 죄에 의해 발생되었습니다. 염려와 불안의 결과로써 그의 육체적 고통은 너무 강렬하여 신음 소리를 내며 헤매었습니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도 나를 떠났나이다 (시편 38:9-10)

다윗의 문제는 죄책감을 포함한 정신적 태도의 죄에 의해 생긴 명백히 드러나는 죄였습니다. 이런 죄들이 다윗의 혼에 자리하게 되어 그래서 점점 증가하는 스트레스는 다윗의 온전한 정신을 위협하였습니다 (그 스트레스의 압박감은 그를 정신적 질병으로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스트레스가 그의 기력이 떨어지게 하고  그의 삶의 동기와 능력을 망가뜨렸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
시편 38:11)

다윗의 죄들은 일시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관계와 그의 건강 마저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죄들은 그의 인간 관계도 완전히 파괴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항상 비참한 사람 주변에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에 휘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친구들은 그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가족들조차도 그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시편 38:12 -14)

하나님의 징계는 또한 적으로부터의 공격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수많은 적들은 다윗이 재난을 겪는 것을 고소해 했습니다. 비록 적들은 원인이 무엇인지 몰랐겠지만 그들은 다윗이 약해졌고 정서적으로 연약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다윗의 약점을 기회로 이용하여 그들은 그를 대항하는 잔인하고 기만적인 공격을 획책하였습니다 


이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다윗은 할말이 없었습니다. 무방비 상태에다가 근심 걱정에 깊이 빠져있는 그는 반격할 의욕도 없어졌습니다.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모든 일들이 그에게는 상관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그는 드디어 그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야 다윗은 리바운드 (죄를 자백) 할 생각을 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시편 38:15-17)


 

아래 주소를 CLICK 하시면 이 말씀의 다음 부분으로 연결됩니다.

http://www.godswill.com.br/xe/associa/36527


아래 주소를 CLICK 하시면 이 말씀의 첫 부분으로 연결됩니다.

http://www.godswill.com.br/xe/associa/36320




Bob Thieme 목사님의 Rebound & Keep Moving 의 한글 번역판 일부를 올립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성도간의 말씀을 공유하며 은혜를 누리는 공간입니다. 서성필 2014.01.28 3232
93 하나님의 계획 (Plan of God) 1 : 여섯 가지 명제 file Steve 2016.11.04 1205
92 6. 죄를 자백하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7] Steve 2016.10.09 946
» 5. 죄를 자백하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다윗의 실패와 회복 [11] Steve 2016.10.03 1249
90 4. 리바운드 : 자기를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인가 [13] file Steve 2016.09.23 1223
89 3. 죄를 자백하고 영적 전진을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준은 절대적입니다 [1] file Steve 2016.09.11 1001
88 성령의 기름부으심에 대한 질문입니다 [1] [2] luis 2016.09.08 1335
87 2. 죄를 자백하고 영적 전진을 계속하십시오: 내 속에 있는 반역자 [12] file Steve 2016.08.30 1156
86 1. 죄의 자백과 영적 성장을 향한 계속적인 전진 [17] Steve 2016.08.13 1299
85 12.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흑암 속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는 삶 [4] Steve 2016.07.25 1032
84 11.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사용 [4] Steve 2016.07.14 943
83 10.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신뢰함의 힘 /능력 [7] Steve 2016.07.08 892
82 9.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하나님의 감찰하심의 특성, 믿음을 간증하는 특성, 시험과 기도의 특성 [7] Steve 2016.07.04 867
81 8.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의 특성 [8] Steve 2016.06.29 821
80 7.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특성 [1] Steve 2016.06.22 748
79 6.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에 대한 역사 [1] Steve 2016.06.17 900
78 5.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실행을 위한 조치 [1] Steve 2016.06.10 832
77 4.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정의 [4] Steve 2016.06.01 802
76 3.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신약에서의 Meribah의 적용 [2] Steve 2016.05.27 822
75 2.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출 애굽 세대의 두 번째 므리바 [Meribah] 사건 [1] Steve 2016.05.20 1019
74 1.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 기독교인의 삶 Steve 2016.05.07 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