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리바운드 (죄를 하나님 아버지께 자백하는 것) 는 오직 신자들만을 위한 것입니다. 만일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았다면 죄를 자백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의 죄를 자백했고 그가 지은 죄에 대해 한탄했으며 심지어 돈을 반환하기까지도 했습니다(마태복음 27:3-4).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자백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생명을 잃었고 불신자인 채 죽었습니다. (Bob Thieme 목사님의 저서의 번역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님의 제자였던 그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룟 유다와 같은 믿음의 동기로 출석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만이 그 믿음을 아십니다). 신자인 여러분은 죄를 범함으로써 영적 생활을 파괴하는데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자는 리바운드를 하고 계속해서 전진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μολογέω, homologeo- 분명히 확인하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취소하다]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정화하다] 것이요. 
(
요한일서 1:9)

이 구절에서 “If/만일이라는말은 헬라어의 ** 3 유형 조건절로 쓰였습니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여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리바운드를 할 수 있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그 선택을 결정 해야 합니다.

 

** 헬라어는 네 가지의 다른 용법으로 조건절을 나타냅니다.

     (1) 1 유형의 조건절은 전제의 사실을 추정합니다: “If 즉 만일..,.이라면은 사실로 추정합니다;”

     (2) 2 유형의 조건절은 전제가 사실과 반대임을 추정합니다: “만일 여러분이하다면 이라는 이 조건절의 말은, 여러분이 ..하지 않다라는 말입니다;”

     (3) 3 유형의 조건절은 불확실하지만  더욱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조건을 나타내며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하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4) 4 유형의 조건절은 발생 가능성이 더 없는 미래의 조건을 나타냅니다: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H. E. Dana, Julius R. Mantey , 헬라어 신약 문법 편람 (뉴욕: 맥밀란사, 1955), 289-290쪽 참조.

 

자백하다로 번역되는 헬라어의 homologeo  범한 죄를 분명히 대다 [밝히다], 열거하다, (범행, 잘못을)인정하다, (범한 죄를 알고 있음을) 말로 나타내다/ 드러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동사는 법정에서 범행을 자백하다, 법률 서류를 작성하다같이 주로 벌률과 관련된 상황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요한일서 1 9절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단지 하나님께 여러분의 죄를 (범한 죄를 알고 있음을) 말로 나타내다/ 드러내거나, 분명히 죄를 밝힌다는 의미입니다. 죄의 사실을 인정하다또는하나님께 여러분의 죄를 명확히 밝히다라는 뜻입니다. Homologeo (자백하다) 라는 말은 범한 죄에 대해 미안해 한다는 뜻이 아니며, 공개적으로 죄를 말하고는 죄를 끊어 버리겠다고 선언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백이라는 말에는 감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천국의 대법정 앞에서 여러분이 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함이나 감정의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지불하신 죄 값에 보태질 수 없습니다. 비록 회한의 진정한 감정이 자백에 동반된다 할지라도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용서하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하나님께 여러분의 죄들만 밝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책이나 참회를 강요하는 자백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간청함으로써 하나님을 절대로 모욕하지 마십시오. 요한 일서 1 9절의 말씀은 만일 우리가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거나 애걸하면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단지 지은 죄를 알고 있음을  나타내십시오.

오직  하나님께만  자백함

성경에는 정결의 의식절차를 행하거나, 또는 신부나 목사 혹은 다른 어떤 성직자에게 반복적인 예배용의 성구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없습니다. 구원 받는 순간에, 여러분은 기도하고 자백할 때 하나님께 직접 여러분 자신을  대변하는 특권을 가진 왕족 제사장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2:5, 9). 자백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의 죄는 여러분이 책임져야 할 일이지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죄를 하나님 아버지께 은밀히/개인적으로 밝혀야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이 그 죄들을 사해주실 수 있습니다.  

죄를 자백할 때 -리바운드할 때-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적 태도의 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해를 입는 결과들은, 비행 --의 공개적 인증으로 해를 입은 당사자의 상처를 다시 덜쑤씨며, 이전에는 애먼한 당사자들이 휩싸이게 되며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달리 극악 무도하고 충격적인 죄를 드러내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은 장기적이고 파괴적인 결과가 따르는 무시무시하게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을지라도 다윗왕은 오직 하나님께만 죄를 자백했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시편 51:4전반부).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은 언제나 옳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려는 진정한 열망이 동기가 되어야지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과할 때는 반드시 리바운드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한 후에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은혜로만 용서됨
 

하나님의 용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특성에 의존합니다: “그는 미쁘시고 신실하십니다.” “미쁘시고-신실하심-”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죄를 인정 (자백)하는 모든 신자의 죄를 용서하심에있어서 하나님의 한결같으심 (일관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 이행을 게을리 할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자백하는 것에 결코 싫증을 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번에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용서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용서하십니다!

 의로우사라는 말은 용서의 근원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내지 온전하심은 의와 공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의(로우심)만이 하나님의 공의가 용납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공의는 타협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회, 죄책감, 감정적 반응 혹은 그밖의 인간의 선행들을 용납할 수 없으십니다. 오로지 십자가에서의 성자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만이 성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또는 달래실 수(화목해 질 수) 있습니다.

 

다음의 두 동사사하시며깨끗케 하실 것이요는 리바운드 (죄의 자백)의 결과를 묘사하고있습니다. 희랍어 동사 αϕίημι (aphiemi)용서하다, 도말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죄를 인정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그 죄들과 그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교제 상실인 첫 번째의 나쁜 결과를 제거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징계에 관련된 어떤 후탈들이 여전히 있다면 그 징계들은 징계를 위한 고통에서 축복을 위한 고통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제 성령님으로 채워진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게된 ) 신자는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을 자신의 고통에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영적 성숙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지은 것을 잊어 버렸거나 또는 잘못인지조차도 모르고 범한 죄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모든 불의에서 우리를깨끗케 해 주십니다. 희랍어 동사 καθαρίζω (katharizo)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척하다, 제거하다 는 것이기 떄문에 정화하다라는 뜻이며 모든 죄에 적용됩니다. 알고 있는 죄들은 알지 못하는 죄들도 수반합니다 (죄를 알면서 저지를 떄 모른 죄도 함께 범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죄를 하나님께 사실 그대로 인정할 때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알지 못했거나 잊어 버린 죄까지 포함하는 모든 불의로부터 우리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돌아온 탕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 (누가복음 15:11-32)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세 사람의 등장 인물들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맏아들 그리고 작은 아들입니다. 작은 아들은 계속적으로 죄를 짓고 육적인 상태에 젖어 있는 신자를 나타냅니다.  작은 아들이 지은 죄들은 성부 하나님을 의미하는 그의 아버지와의 교제관계에서 떨어지게 합니다.  

자신의 유산의 몫을 챙긴 탕자는 집을 나와 먼 나라로 떠납니다. 그의 계속되는 방탕과 사치는 그의 삶을 파멸시킵니다육적인 상태의 삶의 결과들 입니다. 그는 돼지들 속에서 사는 거지가 됩니다. 그는 어쩔 도리가 없게 됨으로 그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는지를 인식하고 자기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
누가복음 15:18)

이것은 작은 아들의 자백 (리바운드)의 기도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말은 용서에 대해 그가 혼동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누가복음 15:19)

탕자는 자신의 무책임한 타락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자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아들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만일 자기희생이나 죄책감으로써 자기의 죄에 대해 참회할 것을 제공하면 그의 아버지께서 그를 용서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생기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틀린 생각을 하였습니다. 용서는 그의 아버지의 특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주 하나님의 옹서하심에 대해 이와 똑 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 아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용서해 주심에 대해 크게 놀랐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20)

이 구절은 하나님의 본질이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어떻게 행하시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느 떄고 범하게 될 모든 죄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꼐서는 또한 우리가 하게될 모든 자백도 예지하고 계십니다.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느 때고 범하게 될) 죄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죄값으로 인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을 보장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죄 값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자유롭게 흘러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리바운드 (자백)할 때 우리를 긍훌히 여기심을 보장하십니다.

 

오랜 동안 죄를 자백하지 않다가 아버지께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달려오셔서 두 팔로 안아주시며 입맞춤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해 주십니다. 우리의 용서받은 죄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따금씩 율법주의적인 경향을 지닌 사람들은 리바운드 (자백)가 죄를 짓는 면허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상해 냅니다. 죄를 범하는 일부 신자들은 정확히 자백의 목적에 따라 리바운드 (지은 죄를 자백)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리바운드 (자백) 는 신자가 영적인 삶을 살며 하나님을 섬기는 위치로 회복시키는 것이지 죄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성령 충만 (성령님으로 채우심/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심)을 통해서만이 오는 하나님의 능력, 이것없이는 어느 신자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 리바운드만이 죄로부터 회복되어 성령의 채우심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리바운드의 원칙은 느헤미야 1:6; 시편 32:5; 38:18; 51:3-4; 잠언 28:13; 다니엘 9:4; 고린도전서 11:31; 베드로전서 4:17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백 후에는 무엇을?

죄를 하나님께 명확히 밝힌 후  (인정한 후)에 세 가지의 단계들을 따라야 합니다: 고한 죄와 결별하고, 그 죄를 잊어버리고 그리고 계속해서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들이 연쇄적으로 죄를 범함으로 계속되는 세속성 (육신의 생각)을 방지합니다.  


<첨부도표참조>

 


리바운드 (죄의 자백)의 네 단계


러분의 죄와 결별하십시오.

 

너희는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히브리서 12:15)

식물의 뿌리는 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땅에서 영양소를 흡수하는 식물의 기초 혹은기반입니다. 여러분의 혼 안에끊임없는 분개가 뿌리 내리면 대단히 파괴적인 죄들의 사슬 -정신적인 죄, 말에 의한 죄, 그리고 분명히 드러나는 죄- 이 싹틉니다. 끊임없는 분개는 분노, 증오 혹은 앙갚음, 그리고  험담, 비방함, 폭행, 혹은 심지어 살인에 대한 정당한 근거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불만에 대한 기억이나 용서받은 죄가 다른 죄를 만드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지은 죄로 인한 연속적인 반응을 끊기 위하여 과거의 죄는 이제부터 떼어 놓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죄를 잊어버리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계속 전진] (빌립보서 3:13)

구원받기 전의 사도 바울은 다메석 도상에서 독선 (스스로 의롭다고 여김)으로 가득차서 행동주의자적인 활동으로 기독교인을 몰살시키는데 악명이 높았습니다 (빌립보서 3:6). 비록 하나님께서 그의 이런 악랄한 죄들을 용서해 주셨을지라도 그 죄들에 대한 죄책감의 기억이 바울의 영적인 삶을  제대로 기능 못하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과거의 죄와 결별하였고, 잊어 버렸고, 영적 성숙이라는 현재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일단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잊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 죄를 잊어야만 합니다 (시편 103:12; 이사야 43:25). 누군가가 여러분을 불쾌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분개와 분노로 반응했으나 그리고 나서 자백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셨고 잊어 버리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죄를 잊어 버리지 못한다면 이것이  마음에 부글거리는 증오와 복수에 대한 갈증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적 태도의 죄들은 리바운드 (자백)를 하고 그 죄와 결별하고, 그리고 그 죄가 속해 있는 과거 속으로 그것을 보내지 않는다면 곧 말로 범하는 죄와 분명히 드러나는 죄에 불을 붙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죄를 자백하고, 그 죄와 결별하고, 그리고 그 죄가 속한 과거 속으로 보내 버림으로써 비로소 여러분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영적 성숙을 향하여 계속 전진하는데 자유롭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계속 전진]. (빌립보서 3:14,)

자기 판단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인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로 인한 징계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
히브리서 12:6)

우리의 선택은 자기 판단을 하는 것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 사이에 있습니다. 리바운드 (자백) 를 등한시 함이 신자로 하여금 하나니의 징계로 빠져들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식에 관한 구절에서 이 원칙을 고린도교인들에게 명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
고린도전서 11:28-32).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기 전에 신자는 반드시 자신을살피거나또는하나님의 말씀에 미루어 판단해야만 하는데 이것은 리바운드 즉 자백해야만 한다는 말의 동의어 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리바운드를 하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
고린도전서 11:28)

모든 신자는 성찬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실 권리가 있지만 각 신자는 삶을 살면서 자백하지 않은죄를 가진 채 성찬을 먹거나 마셔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 [하나님의 징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9)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 [경고의 징계]와 병든 자 [강도 높은 징계]가 많고 잠자는 자 [죽음에 이르는 징계]도 적지 아니하니 (고린도전서 11:30)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리바운드 (자백)를 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 하려니와
 (
고린도전서 11:31)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1:32)

31절의 “If/만일은 가정법의 제2 유형의 조건문으로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 점검을 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초래된 하나님의 징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영적 병폐에 기인한 세 가지 범주의 징계는 육적인 고린도 교인들에게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린도전서 11:30).

 

1. “약한 자” ― 기본적으로 사실 신체 장기의 질병들이 아닙니다. 이 질병들은 활기와 힘과 동기 부여의 상실과 우울증까지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가 리바운드(자백) 하도록 격려하는 경고의 징계입니다.

2. “병든 자” ― 이는 분명한 장기 (육신의)  질병들과 심지어 입원 환자가 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도 높은 징계는 반항적인 신자를 육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충격을 주는 징계입니다.

3. “잠자는 자” ― 헬라어 단어 κοιμάω (koimao)는 오직 신자들의 육체적 죽음에 대해서만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 만일 신자가 고집스럽게 육적인 상태에 머무른다면 주님께서는 죽음으로 이르는 징계  혹은사망에 이르는 죄를 통해서 그 신자의 생명을 조기에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요한일서 5:16 전반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대안은 자기판단 (리바운드)입니다. 리바운드를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다음 세 가지 선택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셔서 행하십니다. 첫 번째 경우 하나님께서 모든 징계의 고통을 제거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1:31). 두 번째로 징계의 고통을 줄이시고 축복으로 바꾸십니다. 세 번째로 징계의 고통은 같은 강도로 계속되지만 그 고통은 더 큰 축복을 위하여 설계되어 있습니다.

 

신자가 교제밖에 오래 머물수록 그 징계는 더욱 더 겅렬하게 됩니다. 장기간의 세속성은 (육적인 상태-죄를 자백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음) 혹독한 징계를 낳을 수 있으므로 일부 신자들은 그들이 절대로 구원 받지 못했다고 굳게 믿을 수도 있습니다. 이 신자는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쓸모없는 자가 됩니다. 이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요한일서 1 9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사용해야 하며 그리고는 계속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영적 전진을 위한 리바운드

 

신자가 장기간 동안 리바운드를 (죄를 자백) 하지 않고 살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돌아온 탕자를 보십시오! 신약에 기록된 돌아온 탕자와 똑같이 죄를 범하고, 징계 받고, 자백하고, 교제를 회복하고 그리고 축복 받는 양상이 구약 시대의 삶에서도 관찰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브리서 12:1)

대단히 많은 (허다한)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이란  히브리서 11장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명부는 구약 시대의 뛰어난 영웅들입니다. 그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고우리보다 더 거룩한사람들도 아니었으며 죄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었을 때 리바운드를 (죄를 자백)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도 역시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만 합니다. 구약의 영웅들은 영적으로 전진하기 위하여 리바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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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Thieme 목사님의 Rebound & Keep Moving 의 한글 번역판 일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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