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31)


우리가 좌절되고 지쳐가고 무너질지라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약속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원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앙망해야/기다려야 합니까? “신뢰”또는 “믿음”이라 번역될 수 있는 이 단어 “wait/앙망”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사실 믿음이라는 말에 대한 히브리어로는 다섯 여섯 가지의 단어가 있습니다. “믿음-faith-”으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들 중 한 개의 히브리 단어는 창세기 15: 6에 있습니다. 그 단어는 אָמַן / aman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버팀목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의 근거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의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시편 37:3에서 믿음/faith” 또는 “신뢰/trust”로 번역되어 있는 히브리어 בָּטַח/batach는 원래 한 선수가 상대방을 들어 올려 그를 땅에다 내 던지는 격투하는 두 레슬링 선수에 대해 쓰였습니다. 결국 이 단어는 “여러분의 곤란함이나 문제들을 들어 올려 주님께 힘차게 내팽개치다” 즉 “신뢰하다” 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단어는 욥기 13:15에 나오는 יָחַל/yachal 이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신뢰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온전히 전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여러분은 구원을 확신합니다.

시편 57:1에서 사용된 단어 חָסָה/chasah/chacah는 “토끼처럼 달아나다” 라는 뜻입니다. 토끼가 크고 포악한 동물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이 도망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토끼는 이빨을 드러내어 으르렁거리며 맹렬히 추적하며 달려드는 약탈자와 싸우려고 멈추지 않습니다. 토끼는 누가 이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도망칩니다. 그러나 토끼의 적은 그에게 너무 힘겹기 토끼는 기진맥진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토끼는 갈라진 틈이 있는 바위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작은 토끼는 그 틈새로 깡충 뛰어들어가 힘껏 도피합니다. 그래서 그 토끼는 안전하게 됩니다. “바위의 갈라진 틈새 안에 있는 토끼처럼 도망가다” 라는 이 단어는 믿음에 대한 말입니다. 그것은 바위의 틈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숨는다는 뜻입니다. 그곳에는 어떤 것도 여러분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이사야 40:31에서는 이 단어들 가운데 어느 것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이 단어가 모든 개념을 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성령님께서는 영어 “wait(앙망하다)”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קָוָה / qavah/kavah를 사용하십니다. 이 단어는 원래 밧줄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우선 쉽게 끊어지는 외 가닥의 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찮은 외가닥의 끈이 다른 가닥들과 함께 꼬여 질 때 끊어지지 않는 밧줄이 됩니다. 그런 이유로 이 단어는 외가닥의 끈이 여러 가닥으로 꼬여져 크고 굵은 밧줄이 되어 그 때문에 튼튼한 밧줄이 된다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래서 “신뢰하다” 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약할지라도 앙망하는자들 혹은 주님을 계속 신뢰하는 자들은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강한 밧줄이 됩니다. 구약에서 여러분이 “믿음” 또는 “신뢰”라는 단어를 매번 발견할 때 그 단어는 위에서 알아 본 5개의 히브리 단어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모든 말씀 구절마다 조금씩 다른 강조점이 있습니다. 31절에서의 “앙망하다”는 모든 어려움과 모든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계속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그들은 -앙망하는 사람들이란-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기법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앙망하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새롭게 하다(renew: 그들의 힘이 새로워 지다)”라는 단어는 빈약한 번역입니다 (참조: 이사야 40:31절의 KJV 의한 구절
-
But they that wait upon the LORD shall renew their strength…..). 그것은 그야말로 “주님을 계속해서 신뢰하는 그들은 그들의 힘을 교환할 것입니다” (그들의 힘 대신에 하나님의 힘을 대용할 것이니” 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의 구절에서 인간의 힘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힘에 대한 것입니다. 그 개념은 여러분의 육체적인 힘이 새롭게 되는 것처럼 여러분의 힘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약한) 인간적인 힘을  (강한) 하나님의 힘으로 교환한다는 것입니다. 최선의 상태에서도 매우 약한 인간의 힘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약한 인간적인 힘을 버리고 하나님의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 저는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비로소 주님께서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 내가 네게 힘을 줄 것이다; 나는 네가 너의 삶에서 이런 어려운 문제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줄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하지만 그러나 주님께 대한 끊임없는 신뢰가 있기 전 까지는 인간적인 힘을 하나님의 힘으로 교환할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에 대한 말씀의 구절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거리 달리기 선수인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려고 감정적인 일시적 기분으로 서약하는 타입의 신자입니까? 그래서 여러분은 온통 장미 빛으로 세상을 정복하러 나섭니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감정이 점점 쇠하면 그것은 어떤 결과를 남길까요? 텅 빈 껍데기입니다. 여러분은 감정적으로 불타올랐지만 여러분의 동기였던 감정이 사라지게 되면 여러분의 추동력도 없어집니다. 여러분은 교훈의 말씀을 생각하기 보다 감정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감정을 비난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감정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님과 말씀에 의존해야만 합니다. 실질적인 것에 의존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기독교인의 삶을 살도록 견실히 지켜줄 것입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단거리 경주를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힘을 쏟아 부어야 하는 사람이 단거리 달리기 선수입니다. 이를 유추해보면 신자가 감정으로 자극 받는 짧은 시간만 믿지만 그의 감정이 빠져나가면 그는 믿는 것을 멈추고 전진해 나가는 것을 멈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 “하나님의 능력은 간헐적으로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역주와 중단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감정주의나 이성주의 또는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에너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과 습관적으로 주님을 앙망하는 것/ 기다리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그리고 아무리 일이 잘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자신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였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상황이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믿습니까 아니면 감정적으로 자극을 받아야만 합니까? 여러분은 감정적으로 자극을 받아야 하며 흥분되어야 합니까? 여러분은 시작과 중단을 반복하며 나아갑니까 아니면 계속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갑니까 주님을 위한 선행을 낳는 꾸준하며 안정되고 영향력 있는 믿음으로 나아갑니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라는 말씀은 그들은 그들의 오래된 비참하고 하찮은 인간의 힘을 신기하고 아주 멋진 하나님의 힘과 교환한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날아오릅니다. -“그들은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그들은 연료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그들을 중단 시킬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들은 계속해서 걷습니다”, “그런데 기운이 쇠하지 아니합니다.
”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멋진 삶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앙망하는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아무리 전반적 상황이 절망적이고 아무리 상황이 암울해도 또는 역경이 아무리 커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계속 주님을 신뢰합니다!
이사야 40장은 사실 “주님을 앙망하는 것은 이익이 됩니다;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는 것은 이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그리고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갈 것이란 것을 알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라고 말하는 성경 구절이 있는 장입니다.  


이제 이사야 40:12절의 말씀을 돌아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어떻게 이익이 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누가 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이사야 40:12)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이루어 내시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주님을 앙망하는 것이 이익이 됩니다. 이 말씀 구절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리는 것”은 대단한 능력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모든 물과 모든 바다를 손바닥으로 잴 수 있으십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뼘/새끼 손가락으로 하늘을 재셨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의 *span/ 한 뼘이란 단어는 새끼 손가락을 뜻합니다.
( *
זֶרֶת / zereth – span: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사이의 길이).


안드로메다 성운이라 불리는 성단은 우리에게 우주가 광대한 것에 대해 대충 감을 잡게 해 줍니다. 인간은 대기권 밖의 우주 공간에서 이룩해낸 엄청난 업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달에서 걷는 그런 것들로 경외심을 가집니다. 인간은 중력의 원리를 이용해 우주 공간으로 로켓을 발사합니다. 우주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우주의 광대함에 비교할 때 오로지 양동이에 있는 하나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밤에 밖으로 나가서 안드로메다 성운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 빛은 백육십만 년 / (이백이십 만년 전 등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전에 그곳을 떠나 빛의 속도로 1년에 6 (trillion) 마일을 여행해 온 빛입니다. 그런데 그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에 매우 가까이 있는 별들의 집단입니다. 안드로메다 성운 너머에는 수백만, 수십억, 수십 조의 별들이 있는데 그 별들은 그곳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새끼 손가락으로 그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0; 골로새서 1:16; 히브리서 1:2 -참조 시편 8:3-6;).


만약 주님께서 주님의 새끼 손가락을 움직여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 수십억, 수조의 별들과 수백만의 은하계들을 창조하실 수 있으시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문제들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하십니까? 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까? 성경 구절 12절 말씀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익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익이 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문제들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상황을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13. “누가 여호와의 영 [성령 하나님]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주님께서는 주님을 앙망하는 방법을 계시해 놓으셨습니다. 계시자이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멘토-스승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4:2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하시는 능력과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능력이 있으실 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매 순간순간 안식하는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기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하여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당연한 권리로서 청구하는 것입니다.  


 


Bob Thieme 목사님의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책자에서 한국어 번역본의 한 부분을 올립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성도간의 말씀을 공유하며 은혜를 누리는 공간입니다. 서성필 2014.01.28 3234
93 하나님의 계획 (Plan of God) 1 : 여섯 가지 명제 file Steve 2016.11.04 1220
92 6. 죄를 자백하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8] Steve 2016.10.09 954
91 5. 죄를 자백하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다윗의 실패와 회복 [12] Steve 2016.10.03 1262
90 4. 리바운드 : 자기를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인가 [14] file Steve 2016.09.23 1236
89 3. 죄를 자백하고 영적 전진을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준은 절대적입니다 [1] file Steve 2016.09.11 1004
88 성령의 기름부으심에 대한 질문입니다 [1] [2] luis 2016.09.08 1347
87 2. 죄를 자백하고 영적 전진을 계속하십시오: 내 속에 있는 반역자 [13] file Steve 2016.08.30 1164
86 1. 죄의 자백과 영적 성장을 향한 계속적인 전진 [19] Steve 2016.08.13 1310
85 12.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흑암 속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는 삶 [4] Steve 2016.07.25 1037
» 11.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사용 [4] Steve 2016.07.14 949
83 10.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신뢰함의 힘 /능력 [8] Steve 2016.07.08 902
82 9.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하나님의 감찰하심의 특성, 믿음을 간증하는 특성, 시험과 기도의 특성 [8] Steve 2016.07.04 875
81 8.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의 특성 [9] Steve 2016.06.29 828
80 7.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특성 [1] Steve 2016.06.22 755
79 6.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에 대한 역사 [1] Steve 2016.06.17 906
78 5.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실행을 위한 조치 [1] Steve 2016.06.10 837
77 4.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정의 [5] Steve 2016.06.01 807
76 3.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신약에서의 Meribah의 적용 [2] Steve 2016.05.27 828
75 2.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출 애굽 세대의 두 번째 므리바 [Meribah] 사건 [1] Steve 2016.05.20 1026
74 1.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 : 기독교인의 삶 Steve 2016.05.07 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