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함의 힘/능력

이사야 40


이사야 40장에 있는 대원칙은 29절에서 발견됩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이사야는 매우 낙담하고 있는 국민들을 대면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가혹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 포로가 되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인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신자들은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와 똑 같은 현상이 오늘 날의 신자 가운데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고 낙담했고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요컨대 그들은 영적인 힘이 부족하였고 용기를 잃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신자들 사이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신자들은 여러 문제와 역경들 그리고 삶에 대한 용기를 잃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그리 오래 믿고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구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목적은 여러분은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우울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한 순간 기분이 좋았다가 다음 순간 우울해 지는 감정으로, 즉 감정에 의해 살아 갈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기 위해 어떤 과도한 영적 경험을 하려고 이곳 저곳으로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삶을 감정적인 경험의 기초 위에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는 두 가지의 극단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낙담한 신자들의 극단의 상태에 직면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보다도 더 영적으로 되고자 몸부림 치는 어떤 과도한 종교 방식으로 그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사람들과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다리는 것에 대한 동력을 소개하는 놀라운 이 말씀 구절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라면 “주님을 앙망하는 것/신뢰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속한 원칙입니다!


우선 우리는 의기소침이라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 때에 그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그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3). 여러분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기소침하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가만히 계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고 심각한 문제들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인간적인 관점 때문에 완전히 좌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낙담해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실의 -의기소침함-에 빠져 있으며 그리고 거의 단념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의기소침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현 상황에서 무언가를 하여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냥 그대로 맞아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태의 심리적 승화를 찾고 있거나 어쩌면 이미 찾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삶 속에서 약간의 행복을 발견하였습니다: 좌절과 의기소침함을 메우기 위한 그것은 술을 마시는 것에서부터 지적인 자극인 어떤 형식까지 다양한 것 가운데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혼동을 - 마음의 혼란, 생의 문제들, 우리의 생각을 너무 쉽게 괴롭히는 기가 죽은 태도- 연구해보도록 합시다. 물론 저는 성경말씀 시간에 제 앞에 앉아 오랫동안 공부한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포거 선수들 (얼굴 표정이 없는 카드 게임자들) 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앉아서 정색하여, 그것이 저란 말입니까?” 라는 모습으로 저를 가만히 바라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여러분은 “이것은 나랑 전혀 상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모든 것을 초월했으니까요라는 거룩한 모습을 얼굴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실을 직시합시다. 우리는 무기력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게도 해당되며 여러분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패배를 인정할때가 있으며, 포기할 때가 있으며,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손, 즉 하나님의 약속들이며, 성경의 노하우며, 성경의 교훈의 말씀을 잡고 있습니다. - 우리가 이런 놀라운 모든 재산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29절에서 이사야 시대에 믿는 이스라엘 사람이 소유한 것처럼 우리가 적용함으로써 그 재산들이 우리의

소유가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능력입니다! 흠이 있는 인간의 능력도 아니며 인간의 역량도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홍해에서 진퇴유곡에 빠져있었고 바로 왕에 의해 분명히 소멸될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무력한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말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출애굽기 14:13)


우리가 무력하여, 싸울 수 없으며, 겨룰 수 없으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한쪽으로 비켜서서 주님께서 그것들을 해결하시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여러분에게 강조해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서 말했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사무엘상 17:47)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이시며 구세주로 신뢰하였다면 싸움은 더 이상 여러분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전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미 여러분을 위해 싸우고 계시는데 신자가 그 전투에 나가 싸우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짓이며 어리석음의 전형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한쪽으로 비켜서서 주님께서 싸우시는 것을 지켜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사야 40:31 말씀처럼 “여호와를 앙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주님께 끊임없이 전념하도록 하십시오. 기독교인의 삶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 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이 여러분에게 말씀 드렸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닥쳤던 어려움들을 들었으며 무엇이 그에 대한 해답인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그저 앉아서 끊임없이 심사숙고만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텅 비우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의로 패배자가 되기 위해 삶에 있어서 모든 정상적인 기능과 활동을 멈추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제 말은 문제에 대한 걱정을 내려 놓고 그것을 주님께 위탁하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앙망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무력한 자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도우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력한 자들을 도우십니다!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니 신자로서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무력하였고, 그리고 자신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려다 장애에 부딪혔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인정하기 전까지는 결코 여러분을 도우실 수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문제를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도와 주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현실 도피라든가 심리적 승화로 삶의 현실을 우회하든가 혹은 가장 비참한 피조물이 될 때까지 앉아서 걱정하든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 무력한 자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들의 힘을 증가시키십니다.


우리는 DIY 세대 - 손수 조립하여 사용하는 세대- 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 받습니다. 구원받은 이후라도 여러분은 자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은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함으로써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의 능력 없이는 기독교인의 삶/ 영적인 삶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어떤 것도 여러분 자신의 노력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멋진 자동차가 있는데 그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는 세칭 그 차에 대해 흡족한 고객입니다. 하지만 이 자동차는 놀라운 모든 장치를 가지고 있고 모든 장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매우 분명한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달리기 위해서는 연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자동차에 연료를 보충해야 합니다. 모든 자동차는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중고차이든지 새 차이든지 간에 똑같은 원리로 달립니다. 모든 자동차는 연료가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어떤 격차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신체가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나이가 들었든지 젊든지 간에 중생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신자에게 영적 연료인 성령 하나님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소식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한계에 도달했다면, 상황이 절망적이고 무력하여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위치에 다다르면 바로 그때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여러분을 도우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인생에서 체험하는 압박들을 통해서이거나 혹은 훨씬 더 쉬운 방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으로 인해 이것을 알아채기 시작할 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바로 그 하나님의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력한 자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소년 [운동선수] 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라는 이사야 40:30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운동선수를 예로 든 본보기를 봅니다. 아무리 훈련이 잘된 선수일지라도, 아무리 그가 건강할지라도 상관없이 그는 피곤할 때가 있으며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Bob Thieme 목사님의 믿음으로 안식에 거하는 삶의 한국어 번역본에서 한 부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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